<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12호는 '한반도, 봄은 오는가'를 주제로 5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3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제12호 전체 내려받기)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 지난 1월 미국을 국빈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 중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성장을 이뤄 미국에 이은 대국으로 부상했다. ⓒ로이터=뉴시스 |
지난 2010년 한반도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사건들은 중국의 대외전략이 현실 정책의 영역에서 어떠한 형태로 동북아와 한반도에 투사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함 사건,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북한 후계체제 가시화, 연평도 포격이라는 메가톤급 사건 속에서 북중간의 밀착과 문제 해결과정에서의 한중 간 인식차는 우려할 만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에게 중국의 한반도 전략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필요성을 제기했다.
중국은 1978년 개혁개방정책을 실행한 이후 다양한 국면 속에서 도광양회(韜光養晦), 유소작위(有所作爲), 화평굴기론(和平堀起論), 평화발전론(和平發展論)으로 함축되는 대외전략 노선을 제시했다.1) 이 과정에서 중국은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취를 이룩했고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 국면을 계기로 미국에 이은 경제 강국으로 부상했다. 강력한 중국의 등장은 동북아 세력판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의 독점적 지위는 예전 같지 않고, 전통적 경쟁관계였던 일본의 위상도 단독으로 중국과 일합을 겨루기에는 힘이 부치는 상황이다.
중국은 강화된 위상을 토대로 '책임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추구하는 가운데 자국의 지속적 경제발전을 위한 국제환경의 안정과 평화로운 조건을 유지, 발전시키고자 한다. 동북아 역내의 안정과 평화는 중국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때 한반도 문제는 북한의 불안정이 중국 동북지역에 주는 파급효과와 북한과의 이데올로기적 동질성, 미국의 군사교두보로서의 한미동맹 존재, 한반도 통일이 양안관계에 주는 함의 등으로 인해 중국의 핵심이익에 직접적이며, 그들의 표현대로 '관건적 이해관계'와 결부되어 있다고 보고 있다. 2010년 남북관계의 긴장이 동북아 세력판을 요동치게 하면서 중국이 긴박하게 움직이고 예민하게 반응한 것은 한반도의 역학이 주는 지정학적 민감성에 기인한 것이다.
중국이 천명하는 대외전략기조는 '선린우호정책'이며, 이는 중국이 주변국과 우호관계 발전을 통해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을 가진 중국의 한반도 전략 목표는 3가지로 귀결된다. 첫째, 한반도의 민주·자주·평화적 통일을 지지하는 것, 둘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 셋째, 남북대화와 상호이해 증진을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통한 공헌을 하며 궁극적으로 남북통일을 위한 여건을 창출하는 것이다.2)
이러한 기조 하에서 당면 목표는 '한반도의 비핵화'이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친중화 혹은 적어도 중립화가 중국의 장기적 과제로 설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한반도 전략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칙으로 제시되고 있는 공식적 의견만이 아닌, 중국이 한반도 공간이 주는 기회와 위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요구된다. 본고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3대 전략기조가 한반도에 어떻게 관철되어 나가고 있는지 검토하고자 한다.
첫째, 중국은 한반도의 민주·자주·평화통일을 지지하는가. 한국의 상당수 전문가들은 중국이 제시하는 한반도 전략을 '현상유지'라는 틀로 이해하고 있으며 분단된 한반도는 중국의 이데올로기적, 안보적 완충지대로 중국의 전략적 이해에 부합하고 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사실 현상유지는 유명무실화된 정전협정을 전제로 기능하고 있음을 볼 때 영구적인 대안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이 궁극적으로 동북아 안보환경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협력공간을 새롭게 창출하며 중국의 동북지역에 대해 긍정적 파급효과를 갖고 있음을 감안할 때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반대는 기우일 수 있다. 현상유지는 중국의 어쩔 수 없는 수동적 결과이지 적극적 정책목표는 아니며 동북아 협력구조의 공고화가 중국의 장기적 국가이익에 부합한다는 중국 전문가들의 주장도 수긍할 만한 여지는 있다.
한편 일단의 중국의 전문가들은 과거 중국이 취했던 한반도 통일에서의 북한 지지는 과학적이지 못했고, 단지 냉전체제 하에서 미국과 구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전략적 사고와 객관성이 결여된 냉전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라는 평가를 하고 있다.3)
그러나 과연 중국이 이데올로기적, 안보적 완충지대 역할에 대한 유혹과 완전한 절연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명쾌한 대답이 망설여지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 학자들은 통일된 한반도가 중국에 대립적이지 않는 한 자국에 대한 위협이 아니며 오히려 득이 될 것이라는 논지를 펴고 있으나 어떠한 형태의 통일도 중국에 있어 완충지대로서의 전략적 한 축을 잃어버리는 결과인 것은 자명하다.
둘째, 중국에게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어떠한 의미인가. 중국은 일정한 정도의 경제성장 동력을 유지해야 사회가 안정되는 '고성장의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국제정세의 불안정, 특히 인접지역인 한반도 지역의 불안정은 중국의 안보와 경제면에서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음을 예상할 수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정부는 2002년 정권 출범 이래 그 동안 고성장 과정에서 소외된 동북지방의 경제적 회생을 위해 야심찬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는 북한체제의 안정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한편으로 동해지역으로의 출해구(出海口) 확보라는 국가전략이 지방정부의 경제활성화 전략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추진되고 있다.
한편 중국이 한반도 긴장국면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논리는 북한체제에 대한 지원과 유지 논리와도 맥이 닿아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는 중국의 일관된 입장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체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압박을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배경이 되고 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은 중국이 의장국으로서 북핵문제 해결 이후의 문제, 즉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 다자안보 구도까지 망라함으로써 한반도 전략, 더 나아가 동북아 전략 구사에 중요한 교두보로 활용되고 있다. 이는 한미동맹, 미일동맹을 통해 동북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일방적 주도권에 다자적 해법 원칙을 견지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투사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셋째, 중국은 남북대화, 상호이해 및 통일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수행해 왔는가.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구축을 위한 건설적 역할을 해왔다고 자임하고 있다. 사실 건설적 역할은 차치하고라도 한반도의 격변기마다 지정학적 인접성을 고리로 숙명적 관계를 형성해 왔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뒤로 하고 90년 초 냉전의 균열을 이용한 전격적 한중 외교관계 수립은 동북아의 냉전형 진영구도에 파열을 내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구축하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행보는 비록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했다 하더라도, 아직 북한이 미국·일본과 미수교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한반도에 내재한 긴장된 균형이 이완되는 결과를 야기했다.
이후 중국은 한반도 정전체제를 대치한 평화체제 구축노력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1997년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노력,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의장국 자임, 6자회담 내 한반도 평화체제 형성을 위한 당사국 회의 조성 노력 등을 통해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2008년 한국의 신정부 출범 이래 전개된 남북 간의 긴장 속에 2009년 5월 2차 핵실험, 2010년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1992년 한중수교 이후 남한과는 경제적 실리를, 북한과는 전통적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불안한 대(對)한반도 등거리 정책에서,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북중밀착이 가시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대북 경사 정책은 결과적으로 북한의 대범한 연평도 포격, 그리고 후계체제 조기 가시화 흐름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국이 쌓아온 대 한반도 정책에 있어 중재적이고 건설적 역할 이미지를 상당부분 훼손하는 결과로 귀결되었다. 이로 이해 중국은 향후 한반도에서 '정직한 중재자'(Honest broker)로서의 역할을 복원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종합하면 중국의 대외전략은 큰 틀에서 국제정세의 변화와 중국의 국가위상을 반영하며 변화해 왔으며, 한반도 전략도 가변적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책임 대국'으로서의 역할을 추구하고 있고, 이를 대 한반도 정책에도 투영하고자 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이단아인 북한의 돌출행동은 국제사회가 중국에 요구하는 역할과 완충지대라는 전략적 자산 사이에서 중국의 딜레마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통일 한국을 희구하는 한국민에게 대국(중국과 미국) 사이에서의 균형을 찾으라고 조언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한반도 정책에서 남북 간 균형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그렇다면 불안정하고 불편한 양자간 '균형'을 모색하기보다, 안정되고 미래지향적인 입체적·다자적 '협력'의 공간을 창출하는 발상의 전환은 어떤가.
이 때 한국은 중국에 '의도'(intention)라는 자유주의적 패러다임의 유용성을 제시해야 한다.4) 동북아 국제정치가 강대국들의 이해가 충돌하는 전형적인 현실주의 패러다임이 충돌하는 현장일지라도 한국이 '평화와 협력의 촉진자'로서의 '의도'를 가지고 동북아 질서를 미래지향적으로 구축한다면 중국에 더 이상 통일 한국이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을 후견하는 동인이 약화될 뿐더러 자국 이익 실현을 위해 북한의 개방을 견인하고 한반도 비핵화 실현 및 통일한국을 위한 건설적 역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겠는가.
<NOTES>
1)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 시대를 통해 각각 도광양회(힘을 감추고 때를 기다림), 유소작위(해야 할 일을 함), 화평굴기 및 평화발전론(평화적 대국화 추구)을 대외전략 이념으로 제시했다.
2) 劉金質,'中國對朝鮮半島國家的政策',<世界經濟與政治論壇>,2007年 第5期. 78쪽.
3) 위의 글, 79쪽.
4) 동북아시대위원회,<중장기 동북아 안보구상 : 타개와 조성> (2006), 213쪽. 국제정치 현상은 국가들 간 다양한 상호작용의 결과로 만들어지며 경우에 따라 특정 국가의 정책적 '의도'가 다른 국가들의 정책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정 국제질서 내에서의 상대적 약소국이 중장기 전략을 구상할 때 특히 이러한 측면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 원제 : 중국의 한반도 전략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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