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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의 '테러 지원'을 알고도 그를 추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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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의 '테러 지원'을 알고도 그를 추앙하는가?"

[해외발언대] "정치적 목적 위해 무고한 시민들 살해 공모"

미국 국민들이 '위대한 소통자'로 추모하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미국에서는 지난 6일 '레이건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미국 정계는 레이건을 추모하며 초당적인 찬사를 보내고, 미국 언론도 레이건의 유산을 긍정적으로 조명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레이건이 남긴 유산의 진실을 알려면, 다른 각도에서도 조명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 레이거노믹스(레이건의 경제정책)의 명암을 다룬 데 이어(☞관련기사:
레이건의 혹독한 유산, 진보는 왜 항상 패배하나?), 이번에는 '힘의 외교'를 밀어부친 레이건의 외교정책이 제3세계에서는 어떻게 전개됐는지 신랄하게 비판한 글을 소개한다.

미국의 패권주의적 외교정책을 비판적으로 연구해온 데니스 한스는 8일(현지시간) '레이건의 제3세계 테러 통치(Reagan's Third-World Reign of Terror)'라는 칼럼에서, 제3세계의 독재정권들의 인권유린 범죄에 적극 지원해온 레이건의 외교정책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이런 사실들을 알고서도 레이건의 탄생을 추앙할 수 있을지" 묻고 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내용(☞
원문보기)이다. <편집자>



▲ 지난 6일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레이건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 등장한, 경례하는 자세의 레이건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 '강력한 미국'을 되살렸다고 자부하는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제3세계의 피'가 흐르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테러행위 지원 위해, 이란과도 무기 밀매

로널드 레이건 탄생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국가적인 추모를 하고 있다. 언론 보도도 찬양 일색이다. 하지만 여전히 언급되지 않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레이건의 외교정책이 초래한 사람들의 희생이다.

불행히도 레이건의 주목을 받은 중앙아메리카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1981년 1월 취임한 레이건은 전임 지미 카터처럼 엘살바도르의 군사정권을 지지하는 정책을 취했다. 이 군사권은 보안군, 암살부대와 함께 1980년에만 1만명의 시민을 살해했다. 레이건 정부 초기 27개월동안 2만명의 시민이 추가로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노동운동은 초토화됐고, 비판적 언론은 사라졌고, 야권 정치인들은 살해되거나 추방됐고, 종교인들은 순교했다.

1983년 4월 레이건은 엘살바도르 군사정권 지원에 대한 여론과 의회의 지지가 흔들리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전국에 생중계되는 의회 연설에 나섰다. 그는 "엘살바도르 정부는 민주주의, 자유로운 노조,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뻔뻔스럽게 말했다. 위대한 소통자/위선자는 그의 목적을 달성했다. 지원-그리고 피-가 계속 흘렀다.

엘살바도르 이웃에 있는 니카라과에도 미국이 후원하는 소모사 독재정권이 있다. 이 정권은 1977~1979년 권력 유지를 위해 4만명의 시민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대선후보 시절 레이건에게는 슬프게도 소모사 정권이 무너졌다. 레이건은 취임하자마자 국민의 증오대상인 소모사의 국가보안대 출신 장교들이 이른바 '해방' 운동을 벌이도록 획책했다.

콘트라 반군으로 알려진 그들은 레이건의 용병으로 강간, 고문, 무방비 시민 살해 등에는 매우 능란했지만, 이후 8년 동안 노력에도 불구하고 니카라과의 마을 하나도 장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레이건이 아니었다면 없었을 전쟁으로 수십만 명의 니카라과 시민들이 죽었다.

레이건의 어두운 기록 중 잘 알려진 것으로는, 자칭 '테러에 맞서는 전사'라는 그가 의회의 지원이 끊기자 콘트라를 지원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테러 국가'로 지정된 이란에게 무기밀매를 했다는 사실이 있다.

하지만 콘트라 자체가 테러리스트다. CIA와 올리버 노스(이란-콘트라 게이트의 핵심 역할)가 콘트라를 돕기 위해 고용한 온두라스 군대와 비슷한 행각을 벌였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는 것이다.

인권유린 독재자들을 '자유의 전사'로 칭송

과테말라에서는 1982년 독재자 에프라인 리오스 몬트가 인디언 주민 수천 명을 학살한 군사작전을 감행하자 레이건은 분노했다. 몬트가 주민을 학살한 것에 분노한 것이 아니라, 몬트의 악행들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국제앰네스티 등 인권단체들에게 분노한 것이었다. 레이건은 몬트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고 불평했다.

레이건은 동남아시아에서도 카터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 이어 중국 정부와 협력해 캄보디아의 살인정권 크메르 루즈를 지원했다. 또한 1975년 포드 정부의 지지하에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침공한 이후 레이건은 동티모르의 독립 투쟁을 억압하고 인도네시아의 점령을 지지했다.

레이건은 남아프리카에서는 남아공이 나미비아를 불법점령하고,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혼란에 빠트리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그는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을 '자유세계'의 모범이며, 따라서 '건설적인 개입' 정책의 대상이 될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딕 체니처럼 그는 넬슨 만델라가 이끌던 아프리카민족의회(ANC)를 공산주의 테러단체로 치부했다.

레이건에게 아프리카의 영웅들은 자이레의 도둑정권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 그리고 앙골라의 반군 우두머리 요나스 사빔비였다. 사빔비의 가공할 인권유린 기록이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드러나서 그에게 찬사를 보냈던 일부 보수인사들도 등을 돌렸을 때도, 이전부터 사빔비를 '자유의 전사'로 칭송했던 레이건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긴 레이건은 니카라과의 콘트라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과 싸웠던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자들(그들중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과 연계해 미국을 상대로 싸우고 있다)을 "미국을 건국한 지도자들과 맞먹은 숭고한 도덕적 위인들"로 추켜세웠던 인간이다.

이처럼 레이건은 1980년대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연루돼 있다. 레이건의 유산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 사실은 레이건의 탄생을 추모할 이유가 결코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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