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는 극동문제연구소의 교수진과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한반도 문제 관련 정책소식지입니다. 이번 11호는 '북한 신년공동사설과 한반도'를 주제로 6편의 글이 실렸습니다. 1월 첫째 주 동안 매일 1편씩 소개됩니다.(☞제11호 전체 내려받기)
1972년 설립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는 북한·통일 문제에 관한 연구와 정책 제안 활동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는 최고의 민간 연구기관입니다. <편집자>
▲ 3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평양시 근로자 10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년 공동사설 관철 군중대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2010년 "민족사에 특기할 정치적 대경사"인 당대표자회 개최를 통해 김정은 3대 세습체제를 공식화한 북한의 2011년 정책목표는 당연히 김정은 후계체제의 공고화다. 그러나 이번 신년공동사설에서는 "당의 위업, 주체혁명위업을 계승 완성해 나갈 수 있는 근본담보가 마련"되었다는 언급은 있었지만 후계체제와 관련된 명시적 표현은 없었다. 김정일이 후계자로 대내외적으로 공표된 1980년 직후인 1981년·1982년 '김일성신년사'에서도 후계문제와 연관된 주장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후계문제를 신년공동사설에서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북한의 일반적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신년공동사설의 상당수 단어와 문구를 음미하면 그 함의의 종착이 다름 아닌 김정은 후계체제 공고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방도를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인민생활 향상을 통해 어지러운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김일성을 전면에 내세워 연소한 손자에게 그의 이미지와 권위를 그대로 물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작년 당대표자회에서 후계자에게 충성심을 가진 새로운 세대의 간부들을 권력구조에 배치시키는 '승계의 제도화'가 일정 정도 진행되었으므로, 금년에는 인민들에게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 교양과 더불어 후계자가 인민들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업적을 창출하는 '승계의 정당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작년 신년공동사설의 제목과 형식의 파격을 통해 인민생활 향상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올해 신년공동사설은 그 파격을 '계속' 이어받았고 오히려 더 강화시킬 정도로 인민생활 향상에 정책목표를 집중시켰다. 대표적으로 작년 신년공동사설의 제목이 "당창건 65돐을 맞는 올해에 다시한번 경공업과 농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에서 결정적 전환을 이룩하자"였는데, 2011년에는 문구 몇 개만 바꾼 채 "올해에 다시한번 경공업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생활향상과 강성대국건설에서 결정적 전환을 일으키자"로 발표했다. 작년에 처음으로 정치사상분야에 앞서 경제분야의 정책을 제시하였고 그 내용도 2/5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올해에도 경제분야의 정책을 가장 먼저 다루었고 그 내용은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으며 분량도 절반에 달했다. 더구나 당조직의 제일 책무도 인민생활 향상이라고 주장하였고 남북경제협력을 통한 남한의 지원도 기대하고 있다.
이는 2012년 강성대국 진입을 불과 1년 밖에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경제강국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북한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만큼 경제여건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민생활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김정은 후계체제에 대한 인민의 동요를 막을 수 없다는 북한 지도부의 절박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북한은 작년 강성대국 건설의 마지막 관문인 경제강국의 도약대를 딛고 강성대국으로 비약하는 '도움닫기'를 총체적 투쟁방향으로 제시했으나, 지난 1년 동안 그 도움닫기가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자인하고 올해에도 강성대국을 향한 도움닫기에 '계속'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강성대국을 위한 총공격전의 해", "계속 혁신, 계속 전진", "인민생활향상 대진군의 계속" 등의 언급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재작년 무려 250일 동안 실시되다 작년에 중단되었던 주민노력동원이 올해 재개될 듯하다.
그러나 김정은 후계체제 공고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2012년 '경제강국 진입'이 무망하다는 것을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금년 신년공동사설에서 인민생활 향상을 체감할 수 있는 두 가지 지표인 '농업과 경공업'에서 농업의 위상을 축소시키고 경공업의 위상을 강화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시대의 CNC기술 획득과 연관시켰다. 경제강국의 징표를 '생활수준(GDP/식량) 향상'에서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과 (국방공업의) 과학기술수준 발전'으로 전환하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것이다. 연일 강조되고 있는 CNC기술을 김정은의 업적으로 선전하는 것도 이 맥락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작년 8월 25일 김정일 선군혁명영도 50주년 중앙보고대회에서 한 김영남의 보고와 9월 당대표자회의 김정일 총비서 추대에 대한 로동신문 보도문에서 강성대국을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 '과학기술강국' 등으로 나열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또한, 이번 신년공동사설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김일성이 전면에 등장하였다는 것이다. 북한은 2000년대 첫 10년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상과 위업을 굳건히 고수하여온 계승의 연대"로, 지난 당대표자회의 의미를 "당을 영원히 김일성동지의 당으로 강화·발전시킨 것"으로 평가했고, 향후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후손답게 투쟁하며 창조하자"고 결의했다. 작년 신년공동사설에서는 김일성을 직접 지칭하는 단어가 '김일성' 2회, '수령' 4회 등 총 6회였으나 이번 사설에서는 '김일성' 8회, '수령' 9회 등 총 17회로 급격히 많아졌다. '김일성조선'과 '김일성민족'이라는 단어도 심심찮게 거론되었다.
과거 김정일은 김일성의 권위가 절대적이기 때문에 그의 권위를 뛰어넘거나 제약하려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리더십을 정당화하고 권력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김일성의 권위와 위업을 이용하는 이른바 '유훈통치'를 통해 수령과 후계자를 일체화하고 권력승계를 마무리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수령과의 일체화는 경험과 경륜이 일천한 김정은에게 더더욱 절실한 문제다. 이에 북한은 김일성의 권위와 카리스마를 김정은에게 그대로 이전하고 또한 김정일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통해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김정은 후계체제를 공고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김일성조선'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은 일체화된 백두혈통이고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은 추호도 어길 수 없는 당의 강령과 같기" 때문에, 결국 김정은에 대한 충성은 김일성에 대한 충성과 동일하다는 논리적 구조를 생산·확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북한은 1월 17일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결성 65주년과 10월 17일 김일성의 '타도제국주의동맹' 결성 85주년을 대대적으로 준비하여 김정은 후계체제 공고화의 토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작년 9월 당대표자회에서 예상외로 김정은은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직책에 임명되었다. 이는 후계자론과 선군혁명영도의 절충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신년공동사설에서는 "정치와 군사, 경제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당의 령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확립하여야 한다" 그리고 "김정일동지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모신 20돐과 오중흡7련대칭호쟁취운동발단 15돐이 되는 올해에 … 군사정치사업에서 새로운 혁명적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 예전과 달리 유독 눈에 띤다. 물론 "올해가 당대표자회가 있은 이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해"이므로 '당의 영도체계'나 '군사정치사업'이 더욱 강조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출발한 김정은이 향후 어떠한 곳으로 자신의 리더십을 확장할 것인가는 또한 우리의 관심사일 것이다. 매우 '우연적'이지만 지난 11월 '군 대표성'을 가지고 있던 조명록이 사망했다. 당시 조명록이 가지고 있던 직책은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당정치국 상무위원, 인민군 총정치국장(2009년 해임설) 등이었다. 이는 김정일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책을 생존에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한, 김정은이 차지할 수 있는 최고의 직책들이다. 먼저, 김정은이 올해 초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지명된다면 그의 리더십이 국가기관으로 확장된 것으로, 그 후계기반도 탄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된다면 당내 김정은 리더십의 공고화로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총정치국장에 임명된다면 군부를 확실히 장악하려는 의지로 평가할 수 있다. 이 세 직책의 이양은 김정일의 건강이상 유무에 따라 '거의 동시에' 또는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다만, 작년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체제 강화를 통한 후계체제 기반 강화'를 표방했기 때문에 당장의 직책 이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권력이행기에 군부 내 반발·동요세력을 제압하고 '유일적 영군체계'를 강화하고자 공식 취임과 관계없이 인민군 총정치국 사업을 실질적으로 관장할 것이다.
북한은 신년공동사설에서 "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김일성민족의 최상최대의 명절로, 인류사적 대경사로 맞이하여야 한다"고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김정은 후계체제가 공고화되어야 2012년 북한 최대의 명절은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세습권력은 다수에 의한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고, 카리스마가 부재할 때 항상 권력투쟁에 노출되어 있으며, 자신의 통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전임자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김정은 후계체제는 과거권력으로 추락한 구군부와 시장세력에 결탁한 지방세력의 반격 가능성을 통제·관리하고 개혁개방에 의한 '진정한' 인민생활 향상을 통해 엘리트와 인민들의 자발적 동의를 이끌어내야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과 한반도의 당면 현실은 비관적 전망을 자아낸다. 북한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남한의 '비포용 무시정책'은 상호불신을 가중시키면서 북한의 보수화·군사화를 강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축구공' 같았던 북한의 정책목표와 수단이 점차 찌그러져 '럭비공'처럼 튀는 경우가 많아지고 공을 종종 정교하게 다루었던 북한체제의 내구력도 떨어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매우 불안정하고 예측불가능하게 되어가고 있는 것도 우려스러운 점이다.
* 원제 : 신년공동사설로 본 2011년 북한 정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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