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공개한 우라늄 농축 시설 이외에도 최소한 1개의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이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우라늄농축 문제와 관련해 "최근 북한의 공개를 통해 미국 (민간인) 대표단이 본 것(우라늄농축 시설)이 느닷없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며, "이는 최소한 다른 한 곳에서 (우라늄 농축)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확실히 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는 상당한 우려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14일자 <뉴욕타임스>(NYT)의 보도는 더욱 구체적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새로운 농축 프로그램이 20년 간 우라늄 농축을 시도해온 이란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결론지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개리 새모어 백악관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담당 보좌관은 지난주 "북한의 (농축) 프로그램은 이란보다 훨씬 선진적이고 효율적으로 보인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NYT>는 한미 정부 고위관료들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공개한) 새로운 농축 시설은 다른 비밀 시설의 정교한 네트워크가 없었다면 그토록 빨리 건설될 수 없다"며 북한이 다른 곳에서 우라늄 농축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이는 크롤리 차관보의 발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국의 의중이다. 새모어 보좌관은 현재 미국 전략의 핵심 요소는 "북한이 중동에 핵물질과 기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는 미국의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에서 북핵의 '비확산'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점을 강력히 시사한다.
북핵 문제가 중대 국면에 접어든 이유
이러한 상황 전개는 북핵 문제가 중대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선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은 북한의 핵무장 '잠재력'을 증대시키게 된다. 북한은 현재 이 프로그램이 실험용 경수로에 사용될 연료 생산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핵 연료로 사용되는 저농축 우라늄을 핵무기 물질인 고농축 우라늄으로 전환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그리 어렵지 않다. '정치적으로도' 북한이 미국의 적대시 정책을 문제삼으며 언제든 이를 핵무기용 프로그램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또한 우라늄 농축 시설은 은폐하기 쉽다는 점에서, 일각에서 거론되는 것처럼 북한이 비밀 시설을 가동하고 있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 전개를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도 심상치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최소한 1곳에서 비밀 농축 활동을 하고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북한 전역을 샅샅이 뒤져보지 않는 한 확인할 수 없다. 2008년 12월 6자회담의 결렬 원인이었던 검증 문제가 한층 복잡해질 것임을 예고해준다.
아울러 미국은 대북 제재와 봉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상당히 진척된 데에 놀라고 있는 눈치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다른 나라나 테러집단에게 확산되는 것을 저지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정부도 자인하고 있는 것처럼 제재와 봉쇄를 통해 북핵의 유출입을 막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이 핵무장의 잠재력 증대 및 외부 확산의 우려를 증폭시키는 요인이라면, 핵실험 준비 징후는 '핵무기 현대화'와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북한이 여러 차례 공언한 '핵무기 현대화'는 핵탄두를 소형화·경량화해 탄도미사일에 장착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고 추가적인 핵실험이 이를 촉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이 미국 본토에까지 다다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장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 있다. 그러나 남한과 일본을 사정거리에 둔 스커드미사일이나 노동미사일 등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핵탄두의 무게와 미사일 사정거리는 반비례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중단거리 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것은 ICBM에 장착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이다.
북핵 능력이 위와 같이 강화될 경우 한국은 대단히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북한의 강경파는 핵의 위력을 믿고 연평도 포격과 같은 군사 모험주의를 더욱 강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또 실제 그 여부와 관계없이 남한 내에서는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국내에서는 미국 전술 핵무기의 재배치, 북한 핵무기 시설에 대한 선제공격,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참여 주장 등이 기승을 부릴 것이고, 이는 한반도 긴장 고조와 맞물려 전쟁 위기를 급격히 고조시킬 위험이 크다.
대담해진 북한, "전략적 인내" 함정에 빠진 미국
"대화에는 대화로, 대결에는 대결로"라는 북한 외교안보전략 슬로건이 잘 보여주듯 북한의 최근 행보는 한미 양국에게 '대화에 나서든지, 핵 억제력 강화를 감수하든지 양자택일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한미 양국의 대북 강경기조로 인해 남북대화, 북미대화, 6자회담 모두가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북한 내 강경론이 득세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는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흡수통일론'과 한미 양국의 '북한급변사태론'에 맞서 결정적 한방, 즉 핵미사일을 조속히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헤커 박사도 지적한 것처럼, 경수로를 제공하겠다던 미국의 약속이 깨진 이상 자체적인 경수로 건설 및 우라늄 농축 활동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북한은 고(故)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에 맞춰 '2012년 강성대국론'을 선포한 상황인데 경수로는 김일성의 대표적인 유훈이자 강성대국을 상징하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사실상 무대책을 의미하는 "전략적 인내"를 고수하면서 북핵 확산을 막기 위한 경제 제재와 군사적 봉쇄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북한에게 핵 능력을 강화할 수 있는 구실과 시간을 줄 것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스스로 파놓은 "전략적 인내"라는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둘째는 오바마 행정부가 북한의 '비확산'과 핵 동결에 대해 확약을 받는 조건으로 모종의 타협을 시도할 가능성이다. 앞서 인용한 새모어 보좌관의 발언은 이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며 북한도 이를 선호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은 낮다. 2012년 재선을 앞두고 이러한 거래를 시도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자초할 것이고 '비핵화'에 사활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행정부가 비핵화에서 비확산으로 초점을 옮긴다면 이명박 정부는 난처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셋째는 북미대화와 6자회담 재개를 포함한 적극적인 대화 노선으로의 전환이다. 그러나 대화로의 전환이 성과를 확신할 수 없어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크고,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네오콘의 향기가 느껴지듯 대화 재개 자체를 "북한의 악행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며, 무엇보다도 이명박 정부가 조건 없는 대화 재개를 극도로 꺼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필요성에 비해 현실성은 떨어진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
답답한 현실, 불안한 앞날…희망의 근거는 없는가
이렇듯 대화는 실종되고 대결만 고조되는 상황이 지속되면 한반도는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불확실성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연평도 피격을 거치면서 고조된 군사적 긴장은 무력 충돌 및 확전의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북한의 극심한 경제난과 국제적 고립, 그리고 김정일의 건강 이상 및 3대 세습이 '북한 급변사태'로 이어질 수 있고 이를 '흡수통일의 호기'로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및 이에 호응하는 미국, 일본 정부의 태도는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와 맞닥뜨리면서 핵전쟁을 포함한 전면전의 위험도 잉태하고 있다.
이와 같은 '코리아 아마겟돈'을 예방하기 위해 조속한 대화 복원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고 있다. 일단 관심의 초점은 중국이 제안한 6자 긴급회동(혹은 예비회담)의 성사 가능성이다. 이와 관련해 북-중-러 3국은 회담 재개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반면, 한-미-일 3국은 전제조건 제시로 맞불을 놓고 있다. 3국이 합의한 '대화 재개 조건'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핵시설 모라토리엄 선언 △9.19 공동성명 이행 확약 등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은 최근 '김정일 위원장이 IAEA의 핵사찰 수용을 검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한국에 밝혀왔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큰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직접 밝힌 것이 아니라 중국을 통해 전해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 진정성이 의심되고, 핵사찰의 정확한 내용이 무엇인지 모호하며, 오히려 북한이 핵사찰 수용을 근거로 평화적 목적을 명분으로 내세워 우라늄 농축 및 경수로 공사를 계속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장외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협의 결과는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두 나라는 현재 고위급 회담을 하고 있고 내년 1월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 국가주석 간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미중 대화가 6자회담 재개를 비롯한 한반도 정세 전환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보지 않는다. 양국의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큰데다 설사 두 나라가 6자회담 프로세스 재가동에 원칙적으로 합의하더라도 한미관계 및 6자회담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는 이명박 정부가 이에 동의할지 미지수이다. 설사 동의하더라도 이명박 정부가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한 6자 회동은 말싸움만 하다가 끝날 공산도 크다. 회담 재개 및 성과 도출을 위해서는 갈수록 벌어지는 남북한 사이의 인식과 요구의 차이를 좁히는 것이 중요한 까닭이다.
차이를 좁히기 위해서는 남북한이 어떠한 형식으로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 6자 회동에서 별도의 남북 양자 회담을 할 수도 있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열리지 않고 있는 장관급 회담에서부터 특사 파견,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등 남북대화를 복원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북한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인식을 굳히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이를 기대하는 것도 난망한 상태이다.
결국 답답한 현실을 타개하고 불안한 미래를 예방하기 위해서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우리 국민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그것이 비록 계란으로 바위치기이고 쇠 귀에 경 읽기가 될지라도, 작은 힘이 모이면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대한민국의 역사는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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