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물 분석 분야의 권위자로 꼽히는 정기영 안동대 교수(지구환경과학과)는 최근 천안함 흡착물질을 독자적으로 분석해 이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시사주간지 <한겨레21>이 15일자 최신호에서 보도했다. 잡지는 언론 3단체가 국회 이정희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흡착물질의 일부를 넘겨받아 10월 중순 경 정 교수에게 분석을 의뢰했다.
정 교수의 결론은 흡착물질을 바스알루미나이트라고 규정한 양판석 캐나다 매니토바대 지질과학과 분석실장의 결론과 같은 것이다. '아시'라고 불리는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과 바스알루미나이트는 사실상 같은 물질을 말하는 다른 이름이다.
이에 따라 흡착물질은 알루미늄 성분이 섞인 어뢰 속 폭약이 터지면서 고열과 고압으로 알루미늄산화물이 발생해 선체와 어뢰에 붙은 것이라는 국방부의 주장은 또 다시 신빙성을 의심받게 됐다.
▲ 정기영 교수가 흡착물질을 분석하는 장면(왼쪽)과 투과전자현미경(TEM)에 나타난 흡착물질의 미세구조 ⓒ<한겨레21> 사진 캡쳐 |
'황(S)' 성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니 국방부와 다른 결론
정 교수는 천안함 선체 3곳과 어뢰 2곳 등 5곳의 흡착물질 시료를 가지고 주요 성분과 화학 조성 비율을 분석했다. 현미경 분석, 엑스선회절분석(XRD), 에너지분광분석(EDS)과 같은 기초적인 분석뿐만 아니라 전자현미화학분석(EPMA), 원소분석(EA) 등 총 11가지 실험을 실시했다.
이를 통해 정 교수는 흡착물질 내 알루미늄-황-산소의 비율이 아시에 있는 각 성분의 비율과 거의 일치함을 확인했다. 흡착물에 있는 알루미늄과 산소만을 주목해 알루미늄산화물이라고 결론 내렸던 국방부와 달리 황(S) 성분의 존재를 무시하지 않았다.
정 교수는 이 물질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밝히기 위해 주사전자현미경(SEM)으로 미세 구조를 분석한 결과, 분말 형태의 물질이 결정 상태로 흡착된 게 아니라 바닷물 속에 녹아 있던 물질이 점액질 상태로 흡착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흡착물이 해수에 녹은 상태에서 침전됐다는 뜻인데, 대체로 일정한 방향성을 띠면서 쌓였다. 폭발에 따른 것이었다면 '규칙성 없이 무질서하게 쌓이는 흡착'이 있었을 텐데 그와 다른 양상이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한 층 한 층 쌓이면서 만들어진 구조로 볼 때 폭발을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아시는 알루미늄과 해수에 녹아든 황이 만나 결합된 것"이라며 "형태를 봤을 때 뭔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 '환경 변화'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지만 100℃를 넘지 않은 상태에서 아시가 만들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황의 기원에 대해 그는 바닷물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알루미늄에 대해서는 흡착물질 시료만으로는 기원을 밝힐 수 없다고 결론을 유보했다. 흡착물질이 선체와 어뢰 부품 어디에 어떤 형태로 흡착됐는지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료 분석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흡착물질이 아시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흡착물질이 폭발재라는 국방부의 결론은 기각된다고 잡지는 강조했다.
이같은 결론을 내린 정 교수는 국방부가 XRD, EDS 등 기초적인 실험만 하고 웬만한 대학·연구소에 다 있는 일반적인 장비를 통한 실험으로 넘어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방부가) 시간이 모자라서였든, 아니면 다른 상황이 있었든 좀 더 다양하게 분석했다면 중요한 정보를 놓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판석 "알루미늄은 바닷물 속 점토광물에서 왔다"
정 교수가 알루미늄의 기원에 대한 결론을 유보한데 반해 양판석 박사는 전자현미경분석과 적외선분광분석 등을 통해 흡착물의 알루미늄이 어디서 왔는지를 추가로 조사한 후 2차 보고서를 발표했다.
양 박사는 보고서에서 천안함의 함수와 함미에 각각 2개씩 있는 연료탱크에서 경유가 유출되어 물과 만나 '디젤 버그'라는 경유 분해 미생물이 생겼고, 이 미생물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산성수용액(황화수소와 황산)이 고령토 같은 부유성 점토광물을 녹여 알루미늄이 공급됐다고 주장했다.
양 박사는 "천안함 연료탱크 내부에 경유 분해 미생물로 인해 산성수용액이 생성됐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이 산성수용액 속으로 들어온 부유성 점토광물이 산에 의해 흔적 없이 부식됐고, 이 산성 수용액이 탱크를 나와 보통 해수와 만나 용해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침전이 일어난 것"이라고 흡착물질의 생성 과정을 설명했다.
바닷물 속 점토광물의 양은 그리 많지 않고 점토광물 속의 알루미늄의 양도 적어 천안함·어뢰에 흡착될 정도의 물질이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양 박사는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천안함이 물밑에 가라앉아 있던 20일 가량의 충분한 시간과 무한정 공급되는 해수 속 고령토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게다가 해수에는 고령토뿐만 아니라 알루미늄이 풍부한 일라이트(점토물질의 일종)와 스멕타이트가 있고 해저엔 장석도 있다"며 "알루미늄의 공급원은 충분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흡착물질이 서해의 부유성 점토광물과 펄 속의 장석에서 왔을 가능성은 흡착물질이 어뢰의 폭약에서 기원했다는 국방부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이에 따라 국방부가 추가적인 실험을 해야할 뿐만 아니라, 수조폭발 모의실험에서 나온 폭발물질을 공개하고 재실험도 공개적으로 해야 한다는 요구는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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