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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붉은 별이 떴다. 현실을 직시하라"

[정세현의 정세토크] 중·일 댜오위다오 분쟁, 뒷짐 질 일인가?

지난 9월 7일 동중국해에 있는 댜오위다오(釣魚島) 부근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을 들이받고 도주하다가 선원들이 일본에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문제 때문에 중국과 일본이 거의 한 달 동안 심각하게 갈등했는데, 그 사건의 정리 과정을 보면서 좀 앞서가는 것 같지만, 장차 우리 외교의 방향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독자들은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체제의 장래나 남북관계에 대해 궁금해 할 수 있으나, 여러 전문가들이 이미 많은 얘기를 했고 내가 특별히 보탤 게 아직은 없기 때문에 오늘은 댜오위다오 분쟁에 관한 얘기를 하겠습니다. 김정은 문제는 나중에 그림이 더 구체적으로 잡히면 그 때 가서 얘기합시다.

문제의 섬 이름이 댜오위다오인데 타이완에서는 댜오위타이(釣魚臺)라고 부르면서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합니다. 베이징에 있는 영빈관과 글자가 같은데, 둘 사이에 관계는 없어요. 어쨌든 낚시를 할 만한 정도의 돌섬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뾰족할 '첨' 자를 써서 센카쿠(尖閣) 열도라고 부릅니다.

소유권 문제가 좀 복잡해요, 거리상으로는 타이완에 가까운 섬입니다. 그런데 타이완은 명나라 때까지는 중국으로 치지 않았어요. 중국은 그저 타이완을 자기네 영역 안에 있는 관리 대상 정도로만 봤습니다. 명나라가 망한 뒤 명나라 복원운동 세력이 그 섬으로 들어가면서 중국과 밀접한 관계가 시작됐어요. 원나라의 고려 지배를 거부하는 삼별초(三別抄)가 제주도를 국권 회복 운동의 거점으로 삼았듯이.

청나라 중기에 타이완에 개척 이민을 대대적으로 보내면서 댜오위다오도 비로소 중국의 일부로 편입됩니다. 그렇게 해서 타이완이 중국의 일부가 됐는데, 1895년 중국이 청일전쟁에서 지고 일본과 시모노세키(下關) 조약을 맺으면서 펑후다오(澎湖島)와 타이완, 조선에 대한 관할권을 일본에 넘겼어요.

조선에 대해서는 일본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정도였지만, 중국 영토였던 펑후다오와 타이완에 대해서는 영유권 자체를 포기해버립니다. 승전국 일본의 대표였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리훙장(李鴻章)을 시모노세키로 불러들여서 완전히 내놓으라고 해서 가져갔어요. 그때 타이완에 가까이 있던 댜오위다오 역시 일본으로 넘어갑니다. 오키나와도 그때 일본으로 넘어갔어요.

그리고 2차 세계대전 후에 패전국 일본의 영토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평후다오와 타이완은 중국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런데 미국이 댜오위다오 만큼은 군사 작전상 중요하다고 판단해서 일본 영토로 인정해 주는 짓을 합니다. 내용상 미국이 쓰겠다는 거였지요. 댜오위다오 문제에 대해 중·일간에 분쟁이 있을 때마다 미국이 일본 편을 드는 것은 바로 그 당시 자신들의 정치·군사적 조치에 대한 책임과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댜오위다오는 중국이 아편전쟁(1842) 이후 한 세기 동안 서양과 제국주의 세력에 당했던 굴욕의 응어리가 서려 있는 땅이고 상징입니다. 그래서 중국이 더 민감하게 대응하는 겁니다.

내가 왜 자꾸 댜오위다오라는 중국 명칭을 쓰는가 하면, 원래의 소유자가 부르는 명칭을 쓰는 게 옳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댜오위다오를 센카쿠라고 부르면 원래 우리의 소유인 독도에 대해 일본이 다케시마(竹島)라고 부르는 걸 인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 중국 어선과 일본 순시선의 충돌 장면

마오쩌둥의 '종이호랑이' 호언이 현실로

일본이 중국 어선의 선장을 억류하니까 중국이 아주 강력하게 반발했어요. 일본에 비교적 우호적이라고 평가되는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까지 강한 얘기를 하면서 각종 외교적 교류를 거부했고, 결정적으로 일본 하이테크 상품 제조에 꼭 필요한 자원인 희토류의 수출을 중단한다고 통고했습니다. 그렇게 정치·외교·경제적으로 강하게 압박하니까 결국 일본이 맥없이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선장을 풀어주면서 관계를 정상화하자고 나왔어요.

내가 지난 5월 정세토크에서 한국이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 중국을 너무 심하게 자극하는 바람에 중국의 유소작위(有所作爲. 국제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필요시 자기 목소리를 낸다)를 불러왔다고 했는데, 그때 한국에 대해서는 유소작위만 했을지 모르지만, 이번 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이 확실하게 굴기(堀起. 세계 속에 산처럼 우뚝 선다)를 했습니다. 지난 3월 중순 서울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 같은 대표적 미국 중심주의자도 인정했듯이, 미국은 '쇠퇴하는 강국'인 반면 중국은 부상하는 강국이 되고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였어요.

1960년대 미국에서 에드가 스노(Edgar Snow)의 (중국의 붉은 별)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마오쩌둥이 중국의 떠오르는 별이란 얘기였습니다. 이번 댜오위다오 문제가 처리되는 과정을 보니까 중국이 그야말로 'Red Star over Asia'(아시아의 붉은 별)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자기 고유 영역은 물론 아시아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미국보다 중국이 훨씬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위상을 정립하겠다는 메시지를 주었다고 봅니다.

20여년 전만 같았어도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중국산 물품 수입을 규제한다거나 하는 조치를 취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댜오위다오 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힐러리 국무장관까지 나서서 미일동맹을 운운하면서 일본 편을 들던 미국이 막상 중국의 위세 앞에서 어쩌지 못하고 사실상 무력하게 손을 들었어요.

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미국은 중국의 인권을 개선시킨다는 명목으로 무역에 있어서의 최혜국 대우를 매년 갱신·연장하는 걸 레버리지로 삼아서 인권 개선을 요구했어요. 그 때는 미국한테 그런 레버리지가 있었어요. 중국도 개혁·개방과정에서 미국에 수출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니까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인권을 개선해 나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중국이 미국에 직접 타격을 주진 않았지만, 희토류라는 자원을 가지고 일본을 굴복시켰어요. 그러니까 은근히 일본 편을 들었던 미국도 어쩔 수 없이 발을 뺐습니다. 댜오위다오 근해에서 미일 합동 해상 군사훈련을 한다는 게 기껏 뒤늦게 내놓은 반응이었습니다. 사또 떠난 뒤 나팔 부는 격이지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아무리 동원한다고 해도 그건 분명 미국이 주저앉은 겁니다. 중·일간에 승강이가 있을 바로 그 당시에는 못 치고 나갔거든요.

미국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과거 마오쩌둥이 문화대혁명 시절 미국에 대해 했던 평가가 드디어 현실화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문화대혁명은 사회주의적 순수성을 회복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마오쩌둥이 류사오치, 덩샤오핑 등 정적들을 '주자파'(走資派. 자본주의적 노선을 걷는 사람들)라고 규정하고 제거해 나가는 권력투쟁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론상 반제반미(反帝反美)를 외쳐야만 했어요. 제국주의와 미국은 자본주의였으니까.

당시 마오쩌둥이 미국에 대해 몇 가지 평가를 내립니다. 중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공미증, 즉 미국에 대한 공포를 불식시켜야 하고, 그래야 주자파를 제거할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겁니다. 그 중에 하나가 "미국은 종이호랑이(紙老虎)"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나중에 영어로 Paper Tiger로 번역되었을 겁니다. 미국이란 나라가 별 게 아니니까 겁낼 필요가 없다는 거였습니다.

미국이 당장은 굉장히 센 것 같지만 중국을 건드리지 못한다, 중국은 인구가 10억이 넘지만 미국은 3억도 안 되기 때문에 원자탄을 가지고 두 나라 사람들이 전부 죽을 때까지 살육전을 벌여도 중국 사람들은 남는 사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다 죽어도 전 세계의 화교들이 돌아와서 나라를 세울 수 있다. 그런데 미국은 그럴 사람들이 없다. 그러니 중국이 결국은 미국을 이길 수 있다고 마오쩌둥은 말했습니다.

공산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혁명적 낙관주의에 입각한 말이었고, 그 때만 해도 황당한 얘기였습니다. 선전선동 논리에 불과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마오쩌둥이 40여 년 전에 했던 말이 드디어 현실이 됐어요.

▲ 중국인들이 지난 달 9일 주중 일본 대사관 앞에서 댜오위다오(釣魚島. 일본명 센카쿠 열도)의 반환과 구속된 중국 어선 선장의 즉각 석방을 욕하며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미국 제일주의 외치는 한국의 '이상한' 보수 세력

중요한 것은, 이번 일을 단지 중·일간의 분쟁으로만 볼 게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 외교와 관련해서도 많은 걸 미리 챙기고 생각해야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봅니다. 중국이 앞으로 분명히 굴기(崛起) 쪽으로 나아갈 텐데 큰 호수만한 서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 통일이 되면 압록강·두만강을 사이에 두게 될 우리가 중국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미 의존 일변도의 외교를 하고, 특히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한미동맹의 위력을 과시하고 북한을 압박한답시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했고 앞으로도 계속 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과 미국의 그런 행동을 단지 북한 때리기로만 보지 않을 겁니다. 중국은 미국이 북한을 핑계로 한국 편드는 척하면서 사실상 자기들을 압박하는 걸로 볼 겁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서해에서 한미 합동 군사훈련을 한다고 하니까 중국의 언론들이 '한국에 본때를 보여야 한다'고 했어요. 물론 군사적으로 한국을 응징하지는 못하겠죠. 그러나 실제 본때를 보이기로 했다면, 중국이 우리한테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를 쓰려고 했을 겁니다. 희토류 수출 중단으로 일본을 굴복시켰듯, 한국의 경쟁력 있는 상품과 관련된 원자재의 수출을 막아버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러면 우리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천안함 사건에 대해서도 더 이상 중국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무서워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우리 먹거리의 상당 부분이 중국에서 오고 있다면 그런 나라의 기분을 나쁘게 해서 득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국내적으로 보수 결집이라는 정치적 이득을 챙길지 모르겠지만 경제적 불이익이 뻔히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국민들과 언론들이 그 점에 대해 이명박 외교에 문제 제기를 해야 합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우리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했던 적이 있습니다. 보수층에서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균형자를 하느냐'고 비판했어요. 그 때 일부 진보도 비판했어요. 그런데 국제정치에서 균형자 역할은 꼭 강국만이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중소국도 외교를 잘하면 균형자 역할을 잘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중소국 정도 되는 나라들이 외교적인 지혜를 발휘하면 강국들의 충돌을 막고 자국의 외교적 위상도 높일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의 동북아 균형자론이 침몰해 버린 건 아쉽지만, 이제 다시 중·일간의 균형자에서 나아가 미·중간의 균형자가 되는 쪽으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습니다.

전에도 한 번 얘기했는데요, 광해군은 쇠퇴하는 명나라와 신흥 세력인 후금(청) 사이에서 균형자랄까 등거리 외교를 하면서 조선의 안위를 잘 지켰습니다. 숭명사대(崇明事大) 사상에 절어 있던 사람들이 결국 인조반정을 일으켜서 광해군을 퇴출시키고 왕이 아닌 '군'(君)으로 전락시켰지만, 두 세력과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광해군의 외교가 잘 됐다는 건 국사학계의 정설입니다.

그런 지혜를 이제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미국이 1등 강국인건 틀림없지만 2등 강국인 중국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중국과도 잘 지내고 미국과도 잘 지내는 균형 외교, 혹은 등거리 외교를 본격적으로 해야 합니다. 중국은 우리 최대의 시장이고 우리가 경쟁력을 가진 상품을 만드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 기지이기도 합니다. 그런 중국을 놔두고 무조건 미국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이명박 정부야 2년 정도밖에 안 남았지만, 차기 정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지금부터 그런 방향으로 전략을 세워 나가야 합니다. 특히 보수 세력일수록 그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의 보수들은 자국 제일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는데 우리나라 보수는 미국 제일주의 성향을 보인단 말예요. 제대로 된 보수라면 자기네 국가와 민족의 이익부터 챙기는 쪽으로 가야하고, 그게 바로 미·중간 등거리 외교를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진보도 마찬가지예요. 동북아시아의 국제질서는 큰 나라들에게 맡기고 그 영향권 하에서 남북관계만을 얘기할 게 아니라 우리가 국제질서 재편과정에서 객체로 머물지 않고 주체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크고 넓은 시각과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위원)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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