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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유도 정책이 '불황 극복 묘약'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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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 유도 정책이 '불황 극복 묘약'될까

[해외발언대]"디플레 위기 미국, 특단의 추가 조치 불가피"

미국 등 세계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국제 금값이 거품 논란을 비웃듯 장중 1300달러를 돌파하는 등 사상 최고치 경신을 거듭하고 있다. 24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2월물 금 선물가격은 전거래일 대비 온스당 1.8달러, 0.14%달러 오른 1298.1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장중엔 1301.60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금값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배경에 대해 전통적으로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라는 관점으로 해석했지만, 최근에는 '불확실성'에 대한 심리적 불안감이 금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는 관점이 우세하다.

오락가락하는 정책당국, 불확실성 부추기는 주범

특히 현재의 경제상황이 인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인지,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인지 정책당국의 진단과 대응조차 오락가락해 시장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미국의 경우,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결정기구인 FOMC는 9월 들어 "인플레이션 지표들이 현재 장기적으로 완전고용과 물가안정 달성을 위해 적정하다고 생각되는 수준 이하에 머물고 있다"고 진단했다. 불과 한달 전 FOMC는 "인플레이션 지표들이 최근 몇분기 하락추세를 보여왔다"고 표현한 것과 크게 다른 것이다.

또한 벤 버냉키 Fed 의장은 25일 "미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당초 기대보다 너무 느리다"면서 초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반면 물가 상승 압력이 높은 한국의 경우,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당장 금리 인상이 필요할 정도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다는 인식을 보여왔으나 정작 지난 9일 금리를 동결함으로써 시장의 불신을 자초했다.

시장의 비판에 대해 김 총재는 "우측 깜빡이를 켜고 좌측으로 갔다고 하던데 그것은 아니다. 우회전을 언제 하느냐의 문제"라면서 금리 인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하지만 그는 "거시정책은 특정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있으며, 사람마다 생각이 달라 항상 어려운 결정을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물가 안정이 제1 과제인 한국은행의 입장에서 인플레이션 위협이 적지 않지만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도 감안해 금리 인상 시기를 늦췄다는 해명이다.

중앙은행뿐 아니라 통상적으로 사람들은 디플레이션보다 인플레이션을 싫어한다. 하지만 현대의 경제학자들은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이 훨씬 다루기 어려운 난제로 보고 있다. 일반적인 경제상황이 아니라 이례적인 불황 국면에서는 통념과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불황의 경제학>이라는 저서를 통해 "불황이 닥치면 부채를 두려워 하지 말고 대대적인 정부 지출을 통해 수요를 자극해야 한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부채 줄이기에 나서면 극복할 수 없는 디플레이션이 초래된다"고 역설한다.

이런 논란과 관련, 미국의 진보성향 주간지 <뉴요커>는 최신호(9.27) 'IN PRAISE OF INFLATION'라는 에디터 칼럼을 통해 사람들의 뇌리에 '기피 대상'으로 자리잡은 인플레이션이 어떤 경우에는 '초청 대상'이 되는지 차분한 설명을 시도해 주목된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편집자>

▲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와 벤 버냉키 Fed 의장. 두 중앙은행장은 오락가락하는 정책 진단과 대응으로 시장의 불신을 사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로이터=뉴시스
실업률 높아도 낮은 물가 원하는 심리의 함정

리먼브라더스 파산 사태 이후 지난 2년 동안 연방준비제도(Fed)는 경제 회복을 위해 특단의 조치들을 단행했다. 대형금융기관들에 대한 구제금융, 제로 수준으로 기준금리 인하 등의 조치로 경제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미국 경제는 높은 실업률이 말해주듯 정상궤도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좌파건 우파건 놀랄만큼 많은 저명한 경제학자들이 Fed가 다시 한 번 특단의 조치를 취할 시기라고 보고 있다. 적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정책은 이상한 처방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현재 미국 경제는 상호 밀접한 관계가 있는 두 가지 펀더멘털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 첫째, 소비자들은 지난 10년 동안 돈을 빌려 흥청망청 소비한 결과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다. 두번째, 그 결과 소비자들은 소비를 주저하고,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늘리기를 꺼려하는 등 전반적으로 심리가 위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Fed가 인플레이션 관리 목표치를 현행 2%에서 적절하게 올려 향후 몇 년 동안 물가 수준을 높여갈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준다면 부채에 따른 심리 위축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람들이 물가가 앞으로 올라갈 것으로 믿는다면 현재의 소비에 대해 덜 주저하게 될 것이다. 돈의 가치가 시간이 갈수록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은 부채의 실질 가치도 감소시킨다.

하지만 Fed가 인플레이션의 필요성을 부각시킬 가능성은 희박하다. 원래 중앙은행들은 실업률보다는 물가 안정에 주력한다. Fed 역시 돈을 빌려준 사람들의 이익을 돌보기 위해 설립된 만큼 통상적으로 이들에게 나쁜 소식인 인플레이션 억제에 몰두한다.

Fed가 이런 태도를 갖는 것이 꼭 돈을 빌려준 사람들을 위해서인 것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인플레이션을 끔찍이 싫어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사람들은 인플레이션이 낮을 때조차 물가를 가장 우려하는 대상으로 꼽는다. 1996년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세계 각국을 상대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물가는 높은데 실업률이 낮은 상태보다, 실업률이 높아도 물가가 낮은 상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어 고통을 받는다고 해도 물가가 낮은 것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발생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은 물론 끔찍한 사태다. 하지만 사람들은 완만한 인플레이션은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해도 혐오한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율이 10%라는 높은 수준이라고 해도 소비는 불과 0.1~0.8% 정도 위축된다. 10%의 인플레이션은 최근 논의되는 '적정한 인플레이션율'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물론 인플레이션은 저축의 가치를 훼손하고, 물가가 불안정하면 기업의 결정도 어려워진다. 또한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치달을 위험도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3% 정도의 인플레이션이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달을 위험은 매우 작다.

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왜 인기가 없는가? 실러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가장 큰 이유는 물가가 오르면 삶의 수준이 떨어지고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소득이 고정돼 있거나 분수 넘게 소비하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과 함께 소득 상승을 동반해 삶의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1950년 이후 60년 동안 인플레이션이 진행됐지만 훨씬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반대로 느끼고 있다. 근시안적인 시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얼마만큼 더 버는가보다는 얼마나 더 많이 지불해야 하는가에 신경을 쓴다. 또한 인플레이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불확실성을 증가시킨다.

인플레 유도 정책, 정의로운 처방은 아니지만...

인플레이션 혐오 심리에는 도덕적인 차원도 있다. 인플레이션을 무절제한 소비와 연결시킨다. 실러 교수의 연구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부채가 많아 인플레이션이 도움이 될 미국인들을 포함한 조사 대상 중 인플레이션의 바람직한 면을 언급한 응답자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에 대해 이처럼 직관적인 편견을 갖는 것은 완전히 합리적 사고는 아니라고 해도, 평상시에는 바람직하다. 건전한 소비성향에 도움이 되고 임시변통적인 해결책에 의존하지 않게 한다.

하지만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해결이 안되는 위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 정책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런 인플레이션 정책은 채권자와 저축자를 희생시키고 채무자와 소비자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바로 그 점이 불편한 사실이다. 무책임하게 행동한 사람들에게 보상을 주고, 분수를 지키며 저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벌을 주는 정책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하지만 경제는 미덕에 보상하고 악덕을 처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는 총체적인 번영을 극대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무책임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는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인플레이션 정책은 정의로운(right) 정책은 아니다. 하지만 적절한(correct) 정책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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