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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주역 12人, 누구도 '참회'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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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주역 12人, 누구도 '참회'하지 않았다

10년 지난 오늘도 "21세기에 발생한 가장 훌륭한 일"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20일로 10년을 맞았다. 2001년 9.11테러로 촉발된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은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좋은 구실이 됐다. 미국은 전쟁 발발 20여 일이 지난 4월 9일 바그다드를 함락시켰고 5월 1일 조지 부시 대통령은 임무 완수를 선언했다. 이로써 이라크 전쟁은 손쉽게 마무리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전쟁 이후 이라크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이라크 통치세력에 대한 반발과 수니파-시아파로 대표되는 내부 세력의 갈등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2011년 12월 미국은 이라크에서 완전히 철수했지만 오랜 전쟁으로 이라크의 국가시스템은 붕괴됐고 정치적 불안은 각종 테러와 폭력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역시 이라크 전쟁으로 많은 손실을 입었다.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1조 7000억 달러(한화 1892조 9500억)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었고 4488명의 미국인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다. 미국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은 14일(현지시간) 이라크 전쟁 10년을 맞아 CFR이 특집으로 준비한 인터뷰에서 "미국인의 피와 재산을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전쟁에 엄청나게 쏟아부었다"고 개탄했다.

재정악화 및 미국인들의 희생과 더불어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자존심이 큰 상처를 남겼다. 부시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감추고 있고 이것을 테러 집단들에게 넘겨주고 있다는 혐의를 씌워 침공을 감행했다. 그러나 이라크에서 대량 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고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이 연계되어 있다는 증거 역시 나오지 않았다.

미국 내에서 이라크 전쟁에 대한 반성이 잇따라 제기되는 가운데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방송 MSNBC는 이라크 전쟁을 기획했던 주요 인물들을 추적했다.(☞원문보기) 방송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을 때 백악관은 중동에 자유를 가져올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상황은 그들이 말한 것처럼 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방송은 당시 이라크 전쟁을 기획했던 몇몇 사람들은 이라크 전쟁이 엄청난 전략적 실수로 판명 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을 전쟁으로 이끄는 정책의 확고한 신봉자들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들 중 10년 전 이라크에 군대를 보낸 결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다음은 방송이 소개한 주요 인사들이다.<편집자>


▲ 2001년 3월 20일, 미국은 이라크 공습을 감행했다. 바그다드가 공습을 받아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알자지라 캡쳐

■ 존 볼튼

존 볼튼은 1998년부터 이라크 침공을 지지해왔다. 그는 신보주의자들(네오콘)이 주요 구성원인 PNAC(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있다. 그는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에게 사담 후세인을 공격하라고 독촉했다.

이후 부시 대통령 첫 번째 임기 때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을 맡았다. 그는 후세인이 아프리카에서 핵무기의 원료로 쓰이는 우라늄을 찾았다는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볼튼은 이를 내세워 유엔의 합의 없이 미국의 단독 행동으로 진행된 이라크 전쟁을 누구보다도 헌신적으로 옹호했다.

현재 볼튼은 공화당의 대외정책에서 여전히 영향력 있는 인물로 남아 있다. 미국 공화당 계열의 정책 연구 기관인 미국 기업 연구소(AEI)의 선임 연구원으로서 그는 지난해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였던 밋 롬니의 외교자문 역할을 담당했다.

■ 폴 브레머

'제리' 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는 폴 브레머는 이라크 침공 이후 수년 간 이라크 최고 행정관을 맡았다. 그는 이라크 군대를 해산시켰고, 새로운 정부에 기존 집권당인 바트당이 진입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러한 조치는 이라크 내 긴장을 더욱 증폭시켰고 미국에 반대하는 반란군이 세력을 확장하는 빌미가 됐다.

그는 MSNBC와 인터뷰에서 "나는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다. 왜냐하면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 무기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여전히 난 전쟁을 지지한다. 이라크 사람들이 그들의 정부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은 훨씬 잘 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에 대해서 브레머는 "(미군 철수는) 우리의 지위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스티븐 캠본

이라크 침공이 발발하기 몇 주 전, 스티브 캠본은 국방부 정보담당 차관이 됐다. 그는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를 찾아내기 위해 국방부와 CIA로 구성된 이라크 조사단의 활동을 조정하는 일을 맡았다. 하지만 이 조사는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판명 났다. 그리고 그는 미군의 이라크 수감자 학대로 악명 높았던 아부 그라이브(Abu Ghraib) 수용소 문제에 연루되었다.

펜타곤을 떠난 이후 캠본은 방위산업체의 고위 간부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지금은 빌라노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지난해 여름에 열린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이라크 침공을 두고 "21세기 전반기에 했던 일들 중 가장 훌륭한 전략적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 엘리엇 코헨

코헨은 크리스톨이 세운 PNAC의 창립 멤버다. 그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9.11 공격에 대해 날을 세웠던 대표적인 선동가다. 2001년 11월 한 논평에서 그는 테러와의 전쟁은 곧 "세계 4차 대전"이라고 주장했다.

코헨은 미국이 이라크를 '타깃'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라크가 "알 카에다를 도와줬고",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뒤이어 그는 9.11에서 여객기를 납치한 무함마드 아타와 사담 후세인이 관계가 있다고 과장 선전했다. 2002년 의회 청문회에서 코헨은 "미국에게는 사담 후세인에게 대량 살상무기를 획득하도록 허락하거나 혹은 그를 전복시킬 조치를 취하거나"하는 선택지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코헨은 현재 존스홉킨스 국제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2005년 당시 이라크의 안정화를 예측하는 데 실패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코헨은 "5년 혹은 심지어 10년 후에도 여전히 이라크 침공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더그 페이스

페이스는 국방부의 최종 정책 결정 부서에서 근무했다. 그는 리처드 펄, 폴 월포위츠와 함께 대표적 네오콘으로 꼽힌다. 이들은 전쟁을 위한 새로운 정보부서를 만들었다. 2007년 국방부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페이스는 직속 부서원들에게 "이라크와 알카에다 간 의미 있는 관계를 찾아내도록" 종용했는데 그들은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라크 사령관이었던 토미 프랭크스 장군은 "페이스는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이라며 맹비난했다.

2005년 공직을 떠난 후 그는 하버드, 조지타운 대학교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페이스는 허드슨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이다. 지난해 10월 그는 오바마의 "미국의 혐오가 테러를 낳고 있다"는 주장을 비난했다.

■ 루이스 "스쿠터" 리비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 겸 안보보좌관이었던 리비는 '리크 스캔들'의 주인공이다. 2002년 2월 CIA는 조세프 윌슨 전 이라크 대사를 니제르에 파견해 이라크 정부가 니제르로부터 우라늄을 구입하려했다는 정보를 조사하도록 했다. 그러나 윌슨은 조사 결과 이 정보가 허위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이라크 침공 명분을 찾던 부시 행정부는 윌슨의 보고를 무시했다.

그러자 윌슨은 2003년 7월, 이 내용을 <뉴욕타임스>에 투고했고 바로 일주일 뒤 친 공화당의 칼럼니스트였던 로버트 노박은 <워싱턴포스트>에 윌슨이 CIA의 비밀요원인 부인 플레임 덕에 니제르 임무를 맡을 수 있었다고 폭로했다. 윌슨의 니제르 조사는 단순한 관비여행이었으며 큰 의미가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 칼럼은 CIA요원의 신분을 누설했다는 비난을 받게 됐고 미 법무부는 특별 조사에 들어갔다. 조사과정에서 신원 유출에 가담한 자가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인 백악관의 칼 로브와 딕 체니 부통령의 비서실장인 루이스 리비인 것으로 밝혀졌다. 리비는 2007년 워싱턴 지방법원에서 위증 및 사법 방해 혐의로 2년6개월 징역형과 벌금 25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부시 대통령은 이후 리비의 형을 감면시켜줬지만 체니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사면조치를 취하진 않았다. 딕 체니는 부통령 자리에서 물러난 지 이틀 후에 "리비는 심각한 오판의 희생자다. 나는 그가 대통령의 사면을 받을만하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리비는 현재 워싱턴의 보수적 싱크탱크인 허드슨 연구소의 수석 부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요즘 중동 정책에 대한 강의를 자주 하고 있다. 그는 유죄판결로 인해 변호사로 일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버지니아 주지사인 밥 맥도웰(공화당)은 리비의 선거권을 복원시켰다.

▲ 이라크 전쟁이 발발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정파와 민족간 갈등으로 이라크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19일(현지시간) 바그다드에서는 시아파를 노린 차량 폭탄테러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AP=연합뉴스

■ 메간 오설리번

오설리번은 2003년 4월 바그다드에 도착했다. 그는 당시 이라크 현지 총 책임자인 제이 가너를 보좌했다. 이후 이라크를 관할하는 미국 주도의 연합국 임시 행정처(CPA)의 폴 브레머 최고행정관을 보좌했고 이라크의 과도국가 헌법을 세우기 위한 작업에서 이라크 사람들과 CPA의 중재자 역할을 담당했다. 오설리번은 이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의 문제를 다루는 국가안보 부보좌관을 역임했다. 당시 그는 조기에 이라크를 "수술"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오설리번은 지난해 밋 롬니의 대선 캠프에서 외교 정책 자문역을 맡았다. 그는 현재 하버드의 케네디 스쿨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블룸버그>에 외교 정책 관련 칼럼을 쓰고 있다.

■ 리처드 펄

리처드 펄은 부시 재임기간 동안 미국 국방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는 이라크 침공 후에 "우리는 사담 후세인과 오사마 빈 라덴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다음해에 그는 미국 공영방송인 PBS에 출연해 "사담 후세인과 그의 군대를 지지하는 세력들은 화약의 냄새가 나자마자 붕괴할 것"이라며 "24시간 내에 이라크가 붕괴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한 달이 넘게 걸리지도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가 데이비드 프룸과 함께 2004년 집필한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에서 그는 "미국인에게 중도란 없다. 승리 또는 홀로코스트(전멸)만 있을 뿐"이라고 언급했다.

2006년 펄은 이라크 전쟁을 후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만일 내가 이 시점에서 이라크 문제를 봤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가 이라크로 가야하나?' 라고 물었다면 나는 '아니야. 사담 후세인이 테러 집단들에게 대량 살상무기를 건네주고 있다는 염려를 (전쟁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전략을 생각해보자'라고 말했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러나 펄은 MSNBC에 그때의 발언이 맥락을 벗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그가 언급한 '실수'란 부시의 임무 완수 선언 이후 미군이 곧바로 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이라크를 점령하려고 계속 머무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펄은 침공을 결정했던 것은 적절했다고 밝혔다.

■ 랜디 슈너먼

랜디 슈너먼은 1998년 미 의회가 통과시킨 이라크 자유법의 초안 작성과 법안 통과에 힘을 쓴 상원의원이다. 이 법안은 이라크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교체)"를 미국의 공식 정책으로 만들었다. 2002년 말 슈너먼은 부시 정부의 승인을 받아 '이라크해방위원회'(CLI)를 설립했다. 슈너먼은 이라크 침공 한달 전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은 한 치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확신했다.

그는 2008년 매케인 대선 캠프에 몸담았다. 당시 그는 매케인과 미하일 샤카슈빌리(Mikheil Saakashili) 그루지야 대통령이 전화 통화를 하는 데 다리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은 슈너먼이 2007년 1월부터 매케인 후보 캠프에서 외교 정책 자문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루지야 정부의 로비스트 역할을 겸한 것이 바람직한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슈너먼은 이라크 문제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그는 MSNBC에 보낸 메일에서 "후세인은 주변 국가들이나 이라크 국민들에게 다시는 화학 무기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이겼고 그는 졌다. 세계는 사담 후세인이 없어진 이후 훨씬 더 좋아졌다"고 주장했다.

■ 댄 세너

댄 세너는 CPA의 미디어 및 홍보 담당으로서 이라크 전쟁의 낙관적인 전망을 알리는 TV 브리핑에 자주 등장했다. 하지만 이라크의 상황은 그가 브리핑하는 내용과 달랐다.

지난해 세너는 롬니 후보의 주요 자문인사로 참여했다. 롬니가 이겼다면 세너는 백악관 수석으로 갈 수 있었을 것이다. 2010년 그는 9·11테러로 무너진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 자리였던 '그라운드제로' 인근에 이슬람 센터가 자리 잡은 것과 관련, 이 센터가 그라운드 제로에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너는 공화당 뉴욕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 짐 윌킨슨

짐 윌킨슨은 홍보 전문가로 칼 로브, 루이스 리비 등과 함께 백악관에서 국민들에게 이라크 침공에 대한 홍보를 벌인 인물이다. 그는 이후 도하에 있는 미군 중부사령부의 수석 대변인을 역임했다. 그는 NSC 대변인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대변인, 그리고 2008년 재정위기 당시 재무부에서 근무했다. 윌킨슨은 현재 펩시콜라의 커뮤니케이션 책임자로 근무하고 있다.

■ 폴 월포위츠

미 국방부 부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네오콘 인사였던 월포위츠는 부시정권에서 가장 강력하게 이라크 전쟁을 지지한 인물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월포위츠가 9.11테러 이후 처음으로 이라크 침공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침공 전 월포위츠는 이라크를 안정시키는 데 10만 명이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에릭 신세키 전 육군참모총장은 2003년 2월 미 상원 청문회에서 "이라크 전쟁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수십만 명의 미군 병력이 필요하다"고 증언했다. 이후 이라크 내 미군 사령관은 신세키의 예측이 맞았다고 증언했다.

2005년 월포위츠는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했다. 그러나 2년 뒤 <파이낸셜타임스>에 같은 세계은행에 몸담고 있는 여자친구 샤하리자에게 승진과 보수에 특혜를 제공한 것이 알려지면서 사퇴했다. 그는 현재 미국 기업연구소에 몸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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