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北의 조급증과 南의 착각 속에 실속 챙기는 中·美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北의 조급증과 南의 착각 속에 실속 챙기는 中·美

[한반도 브리핑] 천안함사건으로 드러난 욕망의 동북아 국제정치

지난 몇 달간 천안함 사건의 후폭풍으로 한반도는 불안의 시간들을 보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긴장의 파고는 잦아들었지만, 문제 해결이나 출구전략의 부재와 혼란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현재 유엔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입증과 반증의 치열한 공방이 더 큰 위기상황으로 몰아가지도 않겠지만, 출구를 마련해 줄 것 같지도 않다.

한국이 주도한 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를 두고 제기된 의문점들을 확실하게 해소하기도 거의 불가능해보이지만, 북한에 의해서건 중국이나 러시아에 의해서건 조사 결론을 뒤집을 수 있는 반증도 역시 찾기 어려울 것이므로 상당 기간 소모적 논쟁만이 오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므로 현 난국을 푸는 방법은 진실에 관한 국제여론의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전력투구하는 것보다는 한 발 물러서서, 남북한이나 미국, 그리고 중국 등의 정치적 입장을 냉철하게 분석한 후 행동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으로 본다.

북한의 조급증

1990년대 중반부터 체제위기를 핵무기 개발을 통한 벼랑끝전략으로 타개하고자 하면서부터 북한의 조급증은 시작되었다. 또한 벼랑끝전략이 가진 수축적 효과, 즉 사용하면 할수록 그 효과는 작아질 수밖에 없기에 그들의 조급증은 가속이 붙어왔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이라는 꽤 성공적인 결과물에도 불구하고 이행과정의 어려움을 인내하지 못하고 감행한 1차 핵실험도 그랬고,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섣부른 판단으로 벌인 2차 핵실험도 그랬다.

또한 이명박 정부가 출범 전부터 전임 정권과 다른 대북정책을 공언한 것은 사실이지만, 북한 스스로가 너무 빨리 타협의 가능성을 접어버린 것도 실리와는 거리가 먼 행동이었다. 오히려 남한과 미국의 강경 정책에 정당성을 제공함으로써 스스로의 입지를 더 좁혀버렸다. 이런 일련의 조급증에 의한 행동들이 축적되어 천안함 사태에서 더욱 코너로 몰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체제위기로 인해 시간은 결코 자신의 편이 아니라는 점에서 북한의 조급증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그들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 이후 더 인내하고 기다리지 못했던 북한의 행보가 못내 아쉽다.

새 정부의 대북 라인이 인선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당연히 대북 정책의 큰 가닥이 결정되기도 전에 너무 서둘렀다. 오바마는 적대국 지도자들과도 직접 협상외교를 하겠다고 천명했고, 김정일과도 대화하겠다고 공언해왔음에도 핵실험을 감행했다. 외교라인에 누가 등장하든지 간에 온건한 정책으로 전환하기 어렵게 상황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북한은 선수를 쳐서 자신의 존재와 협상의 긴급성을 재촉하면서,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했겠지만 그것은 미국의 방식에 대한 몰이해였다. 미국은 국내적으로 더 시급한 문제들이 있었고, 외교적으로도 북한 문제는 최우선 정책 아젠다가 아니었다.

또한 2.13 합의와 10.3 합의가 검증의정서 채택 건으로 틀어지긴 했지만 파국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으며, 시간을 두고 풀어낼 수 있는 문제였다. 더욱이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대화 의사를 피력했기에 기다려줄 수도 있었으나 결국 북한은 인내하지 못했다.
▲ 지난 2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기념촬영.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이명박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드미티르 메드베데트 러시아 대통령, 간 나오토 일본 총리 등 6자회담 참가국중 북한을 제외한 5개국 정상들이 모였다. ⓒ청와대

한국의 착각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대북 강경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자신들은 결코 강경책이 아니며 대화의 창을 열어두었다지만, 본질은 선(先)핵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 압박정책이었다. 미국 내 전문가들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부시 행정부와 놀랍게도 유사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다만 진보정권의 햇볕정책을 실패로 단정했음에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뜻을 표명했던 것은 한국정치에 있어 남북문제가 가진 상징성을 의식한 이미지 관리의 차원에 불과하다. 최선을 다했지만 북한이 옛날 버릇을 못 버리고 뒤통수를 쳤기에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은 전임 정권이면 몰라도, 이명박 정부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북한의 진의나 행동과는 무관하게 처음부터 북한을 뒤통수치는 정권이라고 단정해왔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건 때문에 대북인식이 바뀌어서 모든 대북채널을 단절하는 강경책으로 전환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후가 바뀌었다.

그런데 대북 강경책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행위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북한이 사과할 리 만무이고, 경제 제재나 심리전 전개 등의 후속조치들도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남북한의 모든 채널을 단절한 상태에서 남은 것은 제재인데, 2차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 이상을 하기 어렵고, 알다시피 중국의 원조로 인해 그마저도 상당부분 무력화되었다.

이명박 정부 스스로도 원하지 않는다고 밝힌 무력행사나 전쟁불사론이 아니라면 남은 선택이 별로 없다. 후속조치들도 그렇다. 미국은 한국의 입장에 대한 포괄적 지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국이 이 문제를 확대함으로써 긴장 국면을 조성하기를 원치는 않는다. 6자회담과의 연계나 대북 심리전 전개 등에도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공허한 진실 공방 이외에 더 이상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북한에게 결코 끌려가지 않겠다는 감정적 차원의 카타르시스가 목적이라면 모르겠으나, 더 이상의 효과적인 정책옵션은 될 수 없다.

미국의 무임승차와 중국의 이삭줍기

북핵 문제 해결의 진척을 보이지 못한 데는 북한의 조급증과 한국의 착각에도 원인이 있지만, 미국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다. 부시 행정부와의 차별화로 대화를 통한 해결을 천명했지만 지난 1년 반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무정책에 가까울 정도로 진전이 없었다. 미국은 지극히 수동적이었으며, 선제적이기보다는 사후대응적이었다.

지난해 8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내 대화의 물꼬가 터지는 게 아닌가하는 기대를 낳았지만 6자회담이나 북미 양자회담 어느 쪽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심지어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위시해서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으로 대내외의 비판까지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천안함 사건이 터졌으며, 미국은 또다시 선제적이기보다는 사후적으로 대응했다. 한국이 대북정책을 전면에서 주도하고, 여기에 미국 행정부 내부의 강경파가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고 한국을 지지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더 많다고 판단한 듯하다.

우선 이명박 정부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한국에게 빚을 지게 할 수 있었고, 이는 차후 FTA(자유무역협정)나 MD(미사일 방어), 아프간 추가 파병 등에서 레버리지로 기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또한 하토야마 정권 출범 이후 껄끄럽던 일본과의 관계도 기지 이전을 포함해서 상당 부분 미국이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미국은 잃을 게 없는 게임이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어차피 제3국이 반증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한국이 모든 책임을 질 듯이 나섰고, 북한은 원래부터 그런 비난을 받아왔기에 혹시 상황이 바뀌더라도 미국이 책임을 질 일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무임승차에 골몰하고 있다. 초기에는 북한관련설을 적극적이다시피 차단하다가, 입장을 바꾼 것에서도 미국의 주판알 튕기기가 훤히 드러난다.

괌에서도 멀리 중국 연안의 잠수함 이동경로를 추적할 수 있다는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는 미국이, 특히 한국이 대북정보의 거의 대부분을 미군의 군사위성과 고공전략정찰기, 해상 이지스함 등에 의존하고 있는 구조에서, 이번 사건에는 오히려 한국의 정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듯한 행태를 보이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북한문제 해결에 있어 누구보다 중요한 열쇠를 지니고 있는 미국이 일시적 과실에 취해 한국의 강경정책에 동조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구축 프로세스에 결코 이롭지 않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난 북한 핵실험에 대한 국제사회의 공동 제재와 비교하면 천안함 사태에서 북한을 편드는 일은 훨씬 부담이 적은 선택일 것이다. 사태를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겠다는 점에서 미국과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에 중국의 이삭줍기는 땅 집고 헤엄치기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레버리지는 더 커질 것이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가 자칫 북·중과 한·미간의 냉전적 대치 구조로 몰고 갈 가능성이 없지 않고, 그렇게까지는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반도 및 동북아 전반에서의 미국의 주도권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중국에게도 이롭지 않다.

이렇듯 천안함 사태는 북한 문제에 대한 당사국들의 진의를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북한은 지나치게 조급함을 보이고 있고, 중국과 미국은 남의 불행을 통한 반사이익 챙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무래도 한국 정부의 행보다. 천안함 사태에 함몰되어 다른 모든 정책옵션은 정지하거나 유보시키고, 20년 걸쳐 구축해온 대북채널을 모두 단절했지만 다음 선택이 별로 없다. 게다가 엉뚱하게도 천안함 사건을 전시작전권 환수 연기와 연계시키면서, 미국의 레버리지만 더 올려주고 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