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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모택동의 출병을 강제하였는가"

[우수근의 '아시아 워치']

6.25전쟁 60주년을 맞이하는 요즈음, 6.25를 둘러싼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그런데 이는, 입장 변화라기보다는, 언젠가 하지 않으면 안 될 오랜 체증과도 같은 사안에 대해, 현재의 북-중 관계를'틈 타서 '슬그머니 내려 놓으려는 중국 당국의 신중한 행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의 자매지인 국제선구도보(國際先驅導報)는, 6.25전쟁 60주년 대형 특집 기획(6월 24일자)을 통해 6.25전쟁은 북한에 의한 남침이라고 단정한 바 있다. 이후, 신화통신이 기사를 그대로 인터넷 홈페이지에 전재하였으며, 뒤를 이어 다양한 중국의 인터넷 매체를 통해 '남침설'이 중국 전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앞서 인민일보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 영문판은 상하이 화동사범(華東師範)대학의 션즈화(沈志華) 역사학과 교수의 인터뷰를 인용하는 식으로 북한에 의한 남침설을 보도한 바 있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 매체의 이와 같은 남침설 보도는, 일견 한국전쟁 발발 원인에 대한 중국 정부의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동안 중국은,"한국 내전이 발발하자 미군이 북한을 침략해 중국도 참전했다'며 한국전쟁 발발 원인에 대해 모호한 태도(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사실상 북한이 침략당한 듯한 시각)를 유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관련 기사가 게재된 지 얼마 안 되어 신화통신 홈페이지 등에서 해당 기사를 삭제하는 등, 혼돈스런 모습을 보이며 나섰다. 실제로 현재 북한 남침설과 관련된 기사의 제목을 클릭하면,"삭제된 내용이므로 확인불가'라는 메시지만 뜨고 있는데, 그렇다면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과 관련된 중국정부의 변화 조짐은 이 상태로 없었던 일로 되고 말 것인가?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늘 자, 즉 6월 28일자의 <간천하(看天下)>라는 시사주간지는 "누가 모택동의 출병을 강제하였는가"라는 큼지막한 표지 제하에 무려 20페이지에 달하는 커버스토리로 한국전쟁에 관한 특집 기사를 게재한 채 가두판매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잡지는 커버 스토리 요약문을 통해 "1950년 6월 25일 새벽, 조선인민군은 폭우 속에서 남한에 대한 공격을 발동하였다. 조선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에 막 건국된 신중국의 마오쩌뚱은 김일성이 발동한 이번 전쟁에 대해 처음부터 반대하였고, 전쟁 초기에도 중국이 직접 휘말리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6.25전쟁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본문을 통해 한국전쟁의 이모저모에 대해 매우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런데 이는, 북한에 의한 남침설과 더불어 그 동안 한국전쟁에 대해 자세히 서술하지 않았던 중국 당국의 변화된 입장을 잘 보여주는 획기적인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 그렇다면 중국은 왜 6.25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는가? 이에 대해"…(중국은) 처음부터 전혀 원치 않았지만, 전쟁국면의 변화에 따라 미군 위주의 연합군이 참전하게 되었고, 이에 스탈린과 김일성의 간청과 재촉에 의해 참전을 결정하게 되었다" 고 기술하고 있는 동 잡지에 따르면 당시의 구체적 상황은 다음과 같다;

"6월 25일의 전쟁 발발 후 10월 25일 중국의 지원군이 참전하기까지 대북 방침과 책략에 있어 중-소 양국은 줄곧 충돌하였으며 전쟁의 국면 변화에 따라 양국의 입장은 당초와는 완전히 상반되게 되었다. 즉 전쟁국면의 변화에 따라 북한은 즐거워하던 입장에서 우려하는 입장으로, 소련은 전쟁 초기의 남침 적극 지지에서 더욱 큰 충돌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소련은 심지어 북한 포기 결정을 한 번 내리기도 하였다. 이에 비해 중국은 전쟁 초기 반대에서 전쟁국면의 변화에 따라 적극적인 방어전략으로 바뀌게 되었고, 이윽고 매우 불리한 조건 속에서 북한을 돕기 위한 출병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전쟁 초기에 북한의 남침은 순조로웠다. 그러나 스탈린과 김일성의 사전 예측과 완전히 다른 것이 하나 발생하였으니, 다름 아닌 미국이 매우 신속하게 참전을 결정하고 나선 것이다....당초 김일성은 스탈린에게 미국이 출병하기 전에 이미 조국을 해방할 것…."이라고 자신만만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예측과는 달리 미군의 신속 개입으로 인해, 김일성은 9월 29일자로 스탈린에게 긴급 구원요청을 하며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중국과 다른 국가들에게도 지원부대를 요청해 주길 간청…"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국가안보의 위협을 느끼게 된 중국은 어쩔 수 없이 지원군을 파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그렇다면, 6.25전쟁이 발발한 지 이미 60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중국이 종전과는 달리 그 원인을 명확하게 밝히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남침설을 보도했다가 허둥지둥 삭제하는 모습 등을 보며 다양한 분석을 내놓고 있다. 더 나아가 혹자는 "중국 공산당에서 미처 해당 기사를 스크리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신중국 건국 이후의 중국 공산당의 궤적을 들여다 보면,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없지도 않다. 즉,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나름의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우리는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고 역사를 거울삼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발언으로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발언에는 비록 "남침이냐, 북침이냐"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들어있지 않지만, 중국 당국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중국인 전문가들 사이에서의 공공연한 비밀인'남침설'을 고려할 때, 중국의 입장이 어느 쪽인가는 충분히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미뤄볼 때, 이번 남침설 보도와 관련된 중국 당국의 행보는, 오랜 동안 시달려 왔던 고민, 즉 과거의 선배들로 인해 바로 되지 못했던 '사실'을 바로 잡아야 하는 오늘을 사는 후배로서의 부담을, 북-중 관계 소원 국면을 맞이하여 다목적 포석으로 슬그머니 내려 놓으려고 하고 있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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