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즈음해 그가 등장하는 광고는 줄잡아 10개에 이른다.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파트너인 현대자동차 광고에서는 빨간 옷을 입고 춤을 추며 계속 우리에게 '외치라'를 주문하고 있고 흠플러스 광고에서는 쏜살같은 드리블로 매장을 누비고 있다. 국민은행 광고에서는 축구대표팀을 응원하는 노래를 부른다. 하루 24시간 춤추고 드리블하고 노래 부르며 월드컵 흥행을 이끌고 있다.
그가 국민적 인기를 발판으로 광고를 찍는 것은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그와 그의 부모는 지금 그 자리에 오기까지 엄청난 고생을 했고 상당 기간 주변의 도움 없이 운동을 하느라 많은 경제적 부담을 감내해야 했다. 그만큼의 경제적 보답은 당연한 것이다. 아니, 고생이고 보답이고를 다 떠나서 광고제의 들어와 광고 찍는데 누가 뭐랄 것이고 뭐가 문제가 될 것인가.
문제는 지금 김연아가 처한 현실이다. 김연아는 지난 4월 30일 소속사인 IB스포츠와 결별하고 어머니 박미희 씨와 공동 주주로 참여하는 신생 기획사 '올댓 스포츠'를 설립했다. IB스포츠가 큰 기업은 아니지만 국내 스포츠마케팅업계의 선두주자임을 감안할 때 IB스포츠의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버리고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과감한 도전이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무모한 시도이고 다른 한편 잘못된 선택이다. 사실 박찬호, 박지성, 양용은도 개인 매니지먼트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김연아 경우는 이들과 다른 점이 꽤 많다.
▲ 온국민의 응원단장이 된 김연아는 행복할까? ⓒ홈플러스 홈페이지 |
김연아가 월드컵에 올인 하는 이유
올댓 스포츠가 신생 스포츠 매니지먼트사로서 새롭게 독자적 사업을 일으키려면 상당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선수 수명은 대단히 짧다는 점. 20대 초반을 넘어서면 하강기에 접어든다. 김연아가 4년 후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때면 그의 나이 스물다섯으로 그 나이면 특히 여자 피겨스케이팅 쪽에선 노장에 속한다. 그러기에 올댓 스포츠가 돈을 벌더라도 '빨리' 벌어야 한다는 목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댓 스포츠라는 기업의 문제는 수익원이 오직 하나, 바로 김연아 밖에 없다는 점인데 또 다른 걸림돌은 김연아가 아마추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김연아를 최대한 활용해 빨리 돈을 벌어야 하는데 대회를 통한 상금은 없으니 수익을 올릴 수 있는 통로는 오직 광고출연 뿐인 것이다. 아이스쇼 개최 때 스폰서십을 확보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는 대회 경비를 빼면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피겨스케이팅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앞서 언급한 박찬호, 박지성, 양용은은 그들의 인기 외에 종목의 저변이 크게 형성되어 있지만 피겨스케이팅은 이른바 '연아 덕후' '승냥이'로 불리는 김연아의 광팬만이 존재할 뿐이다. 결국 올댓 스포츠가 김연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길은 광고뿐이다.
박미희 대표는 IB스포츠와의 결별하면서 "IB스포츠는 여러 사업 분야를 담당하고 있어 김연아의 니즈를 반영한 선수 관리에 한계가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김연아의 처지는 개인 회사를 차리는 바람에 이제까지 돈만 벌면 되는 입장에서 회사를 먹여 살려야 하는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정말 큰 문제는
그러나 정말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김연아는 스물한 살 나이에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이루었다.' 올림픽 금메달도 땄고 한국사회 최고의 명사가 되었으며 돈도 엄청나게 많이 벌었다. 문제는 어릴 때부터 오직 운동만을 하고 컸기에 그는 삶에 있어서의 목표를 상실했다는 점이다. 사실 그는 지금의 자기를 있게 한 운동을 하기 싫어한다고 한다.
운동선수가 운동하기를 싫어한다? 이해가 잘 되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동료 교수의 경험담이다. 대학원 학생이었을 때 지금은 프로농구팀에서 뛰는 스타선수와 같이 농구를 할 기회가 있었단다. 당시 학부생이었던 그 선수는 부상 후 회복기여서 팀 훈련엔 합류를 못한 상태였는데 마침 학생과 조교들의 시합이 벌어지자 몸 풀기 정도 수준으로 참여한 것이다. 그런데 시합 후 그 선수가 한 말이 매우 독특하면서도 전혀 뜻밖이었다고 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재밌게 농구 한 건 처음이에요."
나는 이 말을 이해한다. 내가 만나게 되는 대부분의 고교 및 대학 선수들, 아니 모든 선수들은 운동이 힘들다고 한다. 내가 사정 모르고 운동이 재밌지 않느냐는 말을 건네면 모두 힘들다고 하다가 결국은 지겹다고 토로한다. 대학도 가기 전에 운동이 지겨워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학생선수들은 대학에 가기 위해, 프로에 가기 위해, 성적을 위해 운동을 한다. 이들에게 운동은 즐거움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공간이고 지겨움의 원천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렸을 때 호기심에, 재미있어서 시작한 운동도 곧 성적을 위한 운동으로 전환된다. 사실상의 노동이다. 김연아 역시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그도 이제 좀 즐기며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것이 그의 처지다.
김연아는 프로전향도 생각해 봤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로 가면 회사를 먹여 살릴 방법이 없다. 프로 피겨스케이터가 되면 세계를 돌며 아이스쇼 하는 직업선수를 뜻한다. 그러나 이들은 서커스단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참고로 외국에서 서커스는 꽤 고급문화다. 비근한 예를 든 것이지 폄하할 의도는 아니다.) 큰 상금이 걸린 세계대회도 없다. 회사 차려놓고 할 짓은 아니다.
노동하는 김연아
▲ MBC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 울먹이는 김연아 ⓒMBC 화면 캡쳐 |
결국 김연아가 앞으로 취할 방식은 4년 후 올림픽에 도전하든 말든, 지금 그가 가지고 있는 '국가대표' 이미지를 최대한 끌고 가는 것이다. 그래야 올댓 스포츠가 산다. 그러고 보니 김연아는 자신의 거취를 분명히 밝히질 않고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김연아가 그렇다고 학교에 뜻을 두고 있지도 않다는 점이다. 현재 고려대 2학년에 재학 중인 그는 1년에 한 번 학교에 간다. 학교 가서 총장과 보직 교수들 만나고는 수업은 10분 앉아 있다 나온다. 보고 싶어 하니 얼굴 한 번 보여주러 가는 것이다. 그러다 결국 지난 학기에 F를 두 개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담당 교·강사와 그 어떤 접촉도 없었기에 F가 나왔을 것이다.
운동도 하기 싫고 학교도 다니기 싫고, 그런데 회사는 차렸으니 돈은 벌어야 하는 김연아. 좀 즐기며 편하게 살고도 싶은데 국가대표의 포장지를 계속 덮어써야 하는 김연아. 새로 차린 회사 때문에 노동해야 하는 김연아. 그래서 그는 지금도 우리 앞에서 춤추고 드리블하고 노래 부르고 있다. 날밤이 새도록.
그는 다시 스케이트 끈을 단단히 맬 것인가. 연예계로 갈 것인가. 프로로 갈 것인가. 학교로 갈 것인가. 선택은 그의 몫이다. 그러나 나는 여느 학생처럼 학교 다니며 스케이트 타는 김연아가 제일 사랑스러울 것 같다. 자랑스러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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