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국면이 마무리되면서 7월부터는 미국도 중국이 주도하는 6자회담 재개 국면에 편승하려고 할 것 같습니다. 6자회담이 다시 열리면 이번에는 확실하게 북핵 문제 해결을 해야 하는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의 본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미국의 본심입니다. 아니 결정권을 가진 미국의 본심이 북한의 본심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이 말로는 북핵 폐기를 공언해놓고 내심으로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미국을 의심부터 하자는 것이 아니라, 말과 실제 행동이 똑같아지도록 다져놓자는 것입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작년 4월 5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했는데도 불구하고 '핵무기 없는 세계'를 건설하겠다고 연설했고, 그걸로 노벨평화상까지 미리 받았습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취임 직후에 '부시 행정부가 정확치도 않은 고농축우라늄 의혹을 가지고 북한을 압박한 결과 북한이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오바마 정부가 이제야말로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확실하게 해결할 준비가 된 정부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클린턴 장관은 작년 2월 25일 아시아소사이어티 연설, 7월 푸켓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연설, 11월 아프가니스탄 카불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할 준비가 돼있다면 미국은 미북 수교, 평화협정 체결, 경제지원을 할 준비가 돼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마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 즉 북핵폐기를 확실한 정책 목표로 설정하고 있다고 봤고, 이명박 정부는 거기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이 오바마 정부의 북핵 정책과 상치되는 대목이 많다면서 그 비현실성, 부당성을 비판했었는데, 요즘에는 오바마 정부를 보면 과연 뭘 목적으로 하는지 점점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의 본심이 뭐냐 이겁니다. 북핵 폐기냐 아니면 북핵 관리냐, 둘 중에 어느 것을 실제로 추구하는 지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6자회담 재개를 주도하거나 지원하는 것이 능사는 아닙니다.
작년 12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방북 이후까지만 해도 미국이 평화협정 논의에 상당한 진정성이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그걸 워낙 견제하고 반대하니까 미국이 슬그머니 중단했고,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이 터졌어요.
올 2~3월 까지는 한국이 미국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뚜렷했는데, 천안함 사건이 터지면서 미국이 변했어요. 사고 직후에는 월터 샤프 주한미군 사령관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황이 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도 북한의 소행이라는 결론을 설정해 놓고 그걸 입증하는 증거를 찾아내거나 혹은 만들어내려는 한국의 움직임에 서서히 동조했어요.
말하자면 미국도 북한 때리기에 보조를 맞추기 시작한 건데, 아마도 미국은 사건 초기에는 그게 일본하고 갈등을 빚고 있던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해결하는데 유용한 카드가 되리라는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천안함 사건으로 북풍 몰이를 하는 이명박 정부의 움직임을 적당히 활용하고 맞장구를 쳐주면 후텐마 기지 이전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는 하토야마 내각을 압박할 수 있고, 결국 미국의 국익을 챙길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6자회담 재개의 동력이 다시 한 번 떨어져 버렸습니다. '천안함 제재 후에나 6자회담을 해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연계 전략에 미국이 말려들거나 동조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왜 이러는가. 오바마 정부의 북핵 정책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미국의 본심 자체가 겉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하면서도 실제로는 어영부영 나중에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하면서 한국이 안보 면에서 미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려는 건가. 다시 말해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극대화되는 상황을 내심 바라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됐습니다.
북핵 연계론에서 천안함 연계론으로 나아간 상반기
그런데 우리 정부도 그렇고 보수진영도 냉철하게 따져 봐야할 점이 있습니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에 핵무기가 설령 몇 개 있어도 사실 겁날 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북한 때리기에 열중하다 보면, 북한이 독재국가니 인권 부재 국가니 대북지원으로 무기를 개발했느니 비난하면서 협상 보다 압박과 제재를 통해서 북한체제를 붕괴시켜야 북핵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는 얘기나 하다 보면 어떻게 되는가? 그 틈새시간에 북한은 핵무기의 개수와 미사일 사거리를 늘리면서 정말 한국한테는 엄청난 위협이 되는 비대칭 군사력을 키우게 되는 겁니다.
한미동맹만 강화하고 미국만 따라가면 되고 북한에 보상을 해줘선 안 된다는 게 보수진영의 일반적인 인식이고 대북관인데 그게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갖게 만들고 그 경우 우리가 받게 될 위협은 엄청나게 많아집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보즈워스 방북 후인 작년 말 금년 초에는 6자회담이 열리더라도 평화협정 논의를 일찍 하면 안 되고 북한의 비핵화가 어느 정도 진전된 후에나 시작해야 한다면서 6자회담 재개의 동력을 떨어뜨리더니, 천안함 사건이 터지니까 그 문제가 끝나기 전에는 6자회담을 해서는 안 된다고 연계를 걸다가 금년 상반기가 다 지나갔습니다.
핑계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천안함 사건은 우리가 일으켰냐, 북한이 일으켰지' 하면서 6자회담이 늦어진 건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나라의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하는 입장에서, 특히 안보 관련 정책을 입안·추진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미루기보다 득실을 따지는 습관이 붙어야 합니다. 눈앞의 사건에만 집중하고 그 사건 너머에 있는 더 큰 위협 요인을 의식하지 못하는 단견은 정말 금물중의 금물이에요.
21일 <조선일보>가 대서특필한 사건이 하나 있어요. 북한이 지난 5월 12일 핵융합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는데 5월 14일 우리 쪽 강원도 고성군 거진에 있는 측정소에서 핵실험을 할 때 나오는 제논이 평소보다 8배 이상 검출됐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별거 아니라고 덮었다는 겁니다.
<조선일보>가 보도한 거니까 또 반북소동을 벌이려는 저의가 있다, 의미가 없다고 할 일은 아닙니다. 안보면에서는 상당히 의미가 있을 수 있는 보도입니다. 실제로 북한이 핵과 관련해 뭔가를 했을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북한한테 얼마나 많은 틈새시간을 줬습니까. 6자회담은 2년 가까이 못 열리고 있고 특히 오바마 정부 출범해서는 한 번도 못 열었어요.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이 북한에서 쫓겨난 지도 오래됐습니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4월 5일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고 5월 25일에는 2차 핵실험을 하니까 오바마 정부도 이명박 정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회담을 할 수는 없다'면서 1874호 대북제재에 주력하면서 6자회담을 안 열었어요. 그 틈새시간에 북한이 아무 일도 안하면서 손 놓고 있었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천안함 사고도 마찬가지예요. 천안함의 진실에 대해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기술적인 증거를 가지고 문제를 제기해도 정부가 대꾸를 안 해버리면 사회 이슈화가 안 되고, 그렇게 되면 시간이 지나면서 우선순위가 밀리고 잊혀져 버리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천안함 잔치'를 벌이고 6자회담이 사실상 무기한 지연되는 틈새시간에, 과거의 사례를 볼 때, 북한은 다음 번 협상에서 고지를 점하고 대가를 키울 수 있는 카드를 개발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이명박 정부는 지금 무슨 철학을 가지고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속담에 '손가락 곪는 줄만 알고 염통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있고, 서양 속담에도 '프라이팬이 뜨겁다고 뛰다가 불 속에 빠진다는' 말이 있어요. 이렇게 나가다가는 진짜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말입니다. 그때 가서 그것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탓이라고 할 겁니까? 지금 이 정부가 들어선지 거의 2년 반이 흘렀어요.
'백일몽' 황장엽도 북한 붕괴론 포기했는데…
우리 정부의 본심은 분명 북핵을 관리만 하면 된다는 게 아닐 겁니다. 핵무기 제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를 위해 우리 정부가 어떤 정책을 얘기하는가?
공식적으로는 6자회담을 통한 협상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은 하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은 협상 대가만 챙기고 비핵화는 안할 터인즉 6자회담 해봐야 소용없다, 압박과 제재로 북한을 붕괴시키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는 북한 붕괴 유도론, 6자회담 무용론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아요.
정부 정책에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외부 전문가들이나 정책 결정의 축선 상에 있는 참모들이 '회담 해봐야 소용없다. 북한은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6자회담 무용론을 얘기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중국이 있는 한 북한은 절대 붕괴되지 않을 거라는 말은 요즘 황장엽 씨까지 하고 다닙니다.
물론 나는 황장엽 씨 얘기를 별로 신뢰하지는 않아요. 그 분이 1997년 남쪽으로 내려온 후에 했던 얘기들 때문입니다. 그해 가을로 기억하는데, 당시 안기부가 주선한 황장엽 간담회에 나도 참석을 했어요. 막상 가보니까 주로 연세가 높고 보수성향인 분들이 주류를 이루더군요. 돌아가신 분이지만 반공검사로 유명한 오제도 검사, 반탁반공의 이철승 전 의원 등등 한 20명 가까이 모였는데, 황장엽 씨랑 같이 왔던 김덕홍 씨가 재미있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김정일을 몰아내야 한다. 우리 형님(황장엽) 이름으로 인민군 장령(장군)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김정일을 쫓아내는 거사를 하면 우리가 올라가서 우리 형님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를 세우고 난 후 남북이 협력해서 통일로 가면 된다.'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황장엽 씨도 끄덕끄덕 하고 앉아 있었고, 거기에 참석했던 분들 대부분이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런 거다, 그런 걸 도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참 연세는 높지만 사고는 천진난만한 분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북한이 어떤 사회인데요. 3선 감시 체제가 민초들한테까지 적용되는 통제사회예요. 더구나 남쪽으로 넘어간 '배신자'(북의 황장엽 호칭)한테서 인민군 장군들에게 편지가 오면 가만 놔두겠습니까? 그렇게 허술한 사회입니까? 북한을 욕할 때는 지독한 통제사회, 독재국가라고 하면서 대책을 세울 때 보면 구멍이 숭숭 뚫린 사회라서 그냥 우리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라처럼 생각하는 거지요.
그래서 그 후에는 황장엽 씨처럼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말하는 사람의 얘기는 못 믿겠다는 의심을 가졌지만, 올 들어서 황장엽 암살조가 붙잡혔다는 얘기가 나올 때였나, 그때쯤에 황장엽 씨가 중국 때문에 북한은 안 무너진다고 했어요. 이 정부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북한의 붕괴 유도가 가장 빠른 핵문제 해결 방법이라고 말하는 게 황장엽 씨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된다는 겁니다.
▲ 지난 4월 워싱턴 핵안보 정상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숙의하는 장면 ⓒ청와대 |
다시 등장한 '정권 교체론'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 오바마 정부 사람들한테서까지 나오고 있어요. 최근 국방부 우주정책 담당 부차관보에 임명된 그레고리 슐티라는 사람이 올 7~8월호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을 보면 그런 얘기가 나와요.
우리로 치면 국장급 정도니까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고위층은 아니지만, 그러나 때로는 부차관보가 막강할 때도 있어요. 부시 정부 시절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부차관보는 국무부의 제임스 켈리 차관보보다 더 셌습니다.
그 슐티라는 사람의 글을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회담을 통해서는 북핵 해결 못 한다.' 6자회담 무용론이죠. 그리고 하는 말이 이렇습니다.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으면 대외적인 위신이 올라가고 영향력도 커진다. 안보도 확실해진다. 그것이 국제사회로부터 가해지는 가벼운 제재나 불확실한 보상보다 북한에게는 훨씬 중요하다. 그러니 회담으로 핵보유 야욕을 단념시키기에는 늦었다."
그러면서 대책이랍시고 한다는 말이 "북한으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도록 하려면 내부 정치의 변화를 간접적으로 지원해 정권 교체를 유도하는 쪽으로 외교 정책과 제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요즘 미국 조야의 대북정책 제안 수준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건 단어를 연결한 문장으로는 성립할지 모르지만 정책으로는 성립되지 않는 말입니다. 이 사람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IAEA 주재 미국 대사를 지냈다는데, 그랬다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실질적으로 리드하는 미국의 관리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면 순진하다고 봐야할지, 아니면 정책적으로 전혀 의미가 없는 이런 얘기를 늘어놓으면서 실은 북한이 핵을 몇 개 가지고 있어도 미국으로서는 나쁘지 않으니까 비핵화에 힘쓰지 않아도 된다는 음흉한 저의가 있는 건지...
북한 내부의 정치적 변화를, 그것도 간접적으로 지원해서 정권 교체를 유도한다는 게 되는 얘깁니까? 간접적으로 어떻게 지원해 줍니까? 북한 내부의 경제·사회적 변화가 먼저 선행돼야 정치변화가 될 수 있다는 사회체제 변화 단계론에 입각해서 보더라도 그런 변화를 유도하려면 인게이지먼트(개입, 관여, 포용)가 필요합니다. 접촉, 교류, 왕래, 협력, 무역 이런 게 필요하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걸 다 끊고 변화를 간접 지원해서 정권 교체를 유도한다? 황장엽 이름으로 편지를 보내서 북한 장성들이 일어나도록 하자는 것만큼이나 허황된 얘기예요.
이런 걸 대안이라고 내놓는 걸 보면 혹시 미국이 북핵폐기에는 뜻을 두지 않고 북핵 관리·통제 쪽으로 유도하면서 우리를 자기네 무기시장으로 묶어두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점을 국민들도 경각심을 가지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도 이렇게 하다가 북한이 핵무기를 가진 게 눈으로 확인됐을 경우, 그때 우리 국민들이 받게 될 충격과 안보의 공황 상황을 생각해야 합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지만 기다리다 보면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화되는 것 밖에 안 나온다 이겁니다. 뭘 기다린다는 겁니까? 북한의 붕괴? 핵 보유? 미적거릴 일이 아니에요. 북한에 틈새시간 안주기 위해서라도 6자회담을 우리가 먼저 열자고 해야 합니다.
금융제재 검토, 기억상실증 걸렸나?
또 <조선일보>가 걱정하는 상황을 촉진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가 요즘 돌아다니고 있어요. 우리 외교장관도 말한 건데, 대북금융제재 얘깁니다. 심지어 필립 크롤리 미 국무부 차관보까지 금융제재를 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얘기 했는데...<로이터> 통신이 소식통을 인용해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금 미국이 또 BDA 금융 제재 같은 걸 다시 구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부시 시절 미국의 네오콘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2005년 9월 BDA 제재를 걸었다가 결국 1차 핵실험이라는 모욕, 안보상의 중대한 위기를 자초했어요. 그건 단지 미국의 안보 문제가 아니라 미국의 정책적 판단의 수준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그렇게 하면 북한이 굴복할 거라고 믿었다는 그 판단 수준에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결국 제재 시작 1년 여 만에 북한은 핵실험으로 응수했고, 그에 놀란 미국이 결국 북한과 비공개 접촉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듬해(2007년) 2월에 2.13 합의를 만들었는데, 그거 다 북한이 해 달라는 거 해주면서 만든 겁니다. BDA에 동결된 돈도 결국 북한이 지정한 루트로 시키는 대로 송금을 완료하고 끝났어요.
그런 실패의 기록이 있는데 다시 6자회담 복귀를 촉진시킨다면서 금융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걸 보면 미국 관리들이 기억상실증 걸린 게 아닌가 싶어요. 실무자들은 아직도 그 때 그 사람들인데 말이에요.
보상은 없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할 수 없다는 게 수사로 끝나지 않고 정책으로 연결될 때, 그래서 북한의 핵 보유를 기정사실화했을 때 미국은 별로 문제될 건 없어요. 그런데 한국한테는 엄청난 재앙입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시기에 그렇게 됐다는 건 역사의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한쪽 다리가 길면 자르면 된다는 무대포 정신?
그레고리 슐티 차관보라는 사람이 또 이런 말도 했더라고요. '북한과 협상해서 6자회담 일정을 잡는 대신 북한의 미래에 관해 중국과 협의해서 대책을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
중국이 북한의 장래를 놓고 미국과 협의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나요? 미국은 무슨 오월동주(吳越同舟. 서로 미워하면서도 공통의 어려움이나 이해에 대해서는 협력하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를 생각하는 모양인데 절대로 그렇게는 안 될 겁니다.
요즘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면서 전쟁 당시 중공군이 참전할 때 모택동이 했던 말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들이 처음에는 한국전 참전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정권 수립 초반이고, 중국의 당시 능력으로 미국이란 거대 군사 강국과 맞서는 건 문제가 있다면서 반대했다는 거예요. 사실 주은래도 그런 불평을 했어요. 정권 수립 1년도 채 안 된 중국이 일어서는 걸 막기 위해서 소련이 중국의 개입이 불가피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하는데 그건 그냥 밀접한 관계라는 미약한 뜻을 가진 게 아닙니다. 앞마당, 입술,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북한의 장래에 대해 미국이 중국과 협의하자고 하면 중국이 '그래 우리 둘이 나눠 갖자'고 하면서 응하겠어요?
우리가 학생 시절에 <포린 어페어즈>라면 국제정치 분야에서 제일 권위 있는 잡지로 쳤었는데 이제는 이런 수준의 글도 실어 주네요. 한쪽 다리가 길면 자르면 된다는 식의 대책. 이뤄질 수 없는 상황을 전제로 해서 거기에 무슨 논리성만 부여하면 정책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문제가 정말 심각합니다.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한반도평화포럼 상임위원)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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