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계간지 <미래와 희망> 최근호(3호)에 실린 글이다. 편집자
2010년 7월 10일 오후 베이징 서우두(首都) 국제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탄 김 박사는 캠핀스키호텔로 가는 동안 차창에 스치는 도심 광경에 마음이 아팠다. 개혁·개방 초기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평양은 뭘 하느라 세상 변화와 담을 쌓고 있나? 그는 분노도, 연민도 아닌 감정에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북한이 변화에 관심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외부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한국의 산업화와 경제발전, 대기업들의 성공신화에 관심을 보인 적은 여러 번이었다. 한국과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전략을 연구해온 한국개발연구원의 김 박사는 김 위원장의 그러한 발언이 나올 때마다 안테나를 세웠다. 그런 발언은 늘 그때뿐이었고, 극적인 정책 전환은 없었다.
김 박사는 그래도 '북한 개발시대의 도래'에 대한 기대를 잃지 않았다. 그가 베이징창구를 통해 조선사회과학원 주체경제학연구소의 리 실장을 베이징으로 불러낸 것도 기대감 때문이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이래 리 실장과는 대여섯 차례 만나 북한의 산업화전략에 관해 협의했고 공동정책연구를 제안해왔던 터였다. 연구원에서 출장계획서를 낼 때마다 영 체면이 서지 않던 그였다. 지난 3월 24일 정부는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에 체계적으로 전수하기 위한 '한국판 경제개발비법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고 이에 따라 연구원도 그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고, 김 박사도 과제수행팀에서 북한에 경제개발비법을 전수한다는 계획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리 실장과의 대화에서 약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바람은 갖고 있었다.
소통(疏通)과 교감(交感)이 중요시되는 이 시대에 남남(南南)대화도 어려운데 남북(南北)대화라니....대화란 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법. 호텔에 도착한 김 박사는 이런 생각을 하며 여장을 풀고 1층 라운지 커피숍으로 내려갔다. 리 실장은 늘 그러하듯이 낯선 청년과 함께 있었다. 북의 경제전문가가 단독으로 한국 정책연구기관 관계자를 만난다는 것은 그들 체제의 속성상 상정하기 어렵다. 청년은 아마도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기관원일 게다. 부드러운 인상을 주는 청년은 두 경제학자가 담소를 하는 동안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언제나 비슷한 의례적인 인사에 이어 김 박사가 다짜고짜 물었다.
"선군경제노선은 정책변화의 결정체"
김 박사 요사이 김정일 위원장께서 산업현장에 대한 현지지도를 부쩍 늘리는 것 같고, 여러 가지 변화를 준비하는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리 실장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장군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경제강국 건설을 위해선 우리 일군들이 변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지 않았습니까?
김 박사 위원장님이 아무리 변화를 강조해도 당과 내각 간부들이나 산업현장 책임자들이 별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은데....
리 실장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2000년대 이후 여러 부문에서 정책을 변화시켜왔고,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은 정책 변화의 결정체라 할 수 있습니다.
김 박사 선군경제노선은 국방공업의 우선적 발전을 추구하는 보수적이고 퇴행적인 정책으로 보이는데, 이런 노선으로 경제발전이 정말 가능할까요?
리 실장 우리 선군경제노선은 '고난의 행군'이라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국가적 위기상황을 이겨낸 뒤 경제정상화 및 단번도약으로 강성대국의 대열에 진입하기 위한 국가전략입니다. 김 선생이 생각하듯이 국방공업만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이 아닙니다. 국방공업의 우선적 발전과 농업·경공업의 동시발전을 추구하는 것이지요.
김 박사 아니, 우선적 발전과 동시발전의 병행이 그리 말처럼 쉽게 되나요? 국가예산과 자원은 한정되어 있는데 그 배분 순위에서 농업과 경공업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북이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 개발 등에 엄청난 국가예산을 쏟아붓는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일 아닙니까? 선군경제노선에서 벗어나 민생을 돌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요?
리 실장 올해 우리 당기관지 등의 신년공동사설에서 강조했듯이 공화국의 경제방침은 인민생활 향상에 있고 올 상반기에 이 부문에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민생활 향상도 선군경제노선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국방공업을 앞세우면서 첨단 과학기술을 산업현장에 적용하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고 중공업 분야에서 신속한 정상화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을 극복하고 경제회복기에 들어선 것은 인민군대가 생산현장에서 과업을 전투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김 박사 물론 비상한 시기에, 비상한 방법으로 경제를 정상화하자니 군대의 동원이 필요했겠지만, 동원방식만으론 경제효율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쯤은 리 선생도 잘 알지 않습니까?
리 실장 김 선생이 말하는 경제효율이란 것이 노동과 생산설비·원자재·자본을 투입하는데 있어서 효과성을 높이자는 것 아닙니까? 우리도 각 경제단위에서의 과학적 경영과 경제적 효과성을 중시합니다만, 동원방식이라고 해서 경제적 효과성이 떨어진다고 말해선 곤란합니다. 생산설비가 노후하고 원자재가 부족한 조건에서 노동력이라도 집약적으로 동원하지 않고서는 생산정상화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70일 전투 같은 동원방식을 수행하는 것이지요.
김 박사는 잠시 말문을 닫았다. 북한 경제당국으로서는 외부 '수혈' 없이는 생산설비의 노후화와 원자재 부족이라는 원초적 난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노동집약적 동원방식을 통해 그나마 현존하는 설비라도 만가동해야 하는 그네들의 처지를 알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북이 의존할 수 있는 지원세력은 중국 밖에 없는 실정이었고, 중국과의 경제협력도 제한적이니 그들로서도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그해의 신년사가 자본주의나라들과의 경제교류·협력의 필요성을 지적한 바 있듯이 북이 살 길은 자본주의시장과의 교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그해 신년사는 '혁명적 경제전략' 아래 농업·경공업·무역 제일주의를 실천할 것을 강조했었다. 무역 확대 없이는 '부족의 경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 박사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오갈 때 리 실장이 말을 이어갔다.
"남측 정부 기대 접어, 6.15 지지정부 등장해야"
리 실장 공화국 경제가 90년대부터 어려움에 빠진 것은 소련·동유럽에서 사회주의정권이 붕괴되어 우호적이던 사회주의시장이 없어진 조건에서 제국주의자들이 공화국에 대한 고립·압살책동을 계속했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수령님 서거 이후 연속적인 자연재해까지 겹쳐 우리는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겁니다. 지금은 위기에서 벗어나 2012년까지 경제강국을 건설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모든 인민들이 강성대국 건설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습니다.
김 박사 경제강국 건설의 목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경제는 단번도약이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 아닙니까? 인프라 부족, 산업설비 노후화, 원자재 부족 등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산업구조가 전반적으로 전력 과소비형인데다 전력· 석탄 생산량의 하락으로 20년간 고생해오지 않았습니까? 산업화에 제대로 나서려면 지금부터라도 도로망 확충, 항만건설, 수출기지 조성 등을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합니다.
리 실장 우리도 남측이나 중국의 경제성장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지를 충분히 연구했고, 자본주의시장에 적극 진출하는 방안도 만들어놓았습니다. 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제국주의자들의 공화국에 대한 경제봉쇄가 날로 강화되는 조건에서 외부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동포애와 민족단결의 견지에서 볼 때 이명박 정권의 우리에 대한 적대적 태도는 심히 유감입니다.
김 박사 한국 정부는 비핵화와 대외개방을 전제로 대규모 대북 경제지원을 고려했었고 북한이 국민소득 3천 달러 수준으로 발전할 수 있게 돕겠다는 '비핵·개방 3000' 프로그램을 갖고 있습니다. 이 정책에는 진정성이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개발을 지원하려는 정책의지가 있는 겁니다. 다만 북한이 핵무기와 장거리미사일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 입장에서도 국민들에게 대북 경제지원을 설득하기 어려운 것 아닙니까?
리 실장 우리는 남측 보수정권의 대북 지원에 그 어떤 환상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남조선당국이 6.15공동선언의 기본으로 돌아오지 않는 한 우리와 교류협력할 의사가 있다고 보기 어렵지요. 우리는 남측의 협력이 없는 조건에서 스스로 경제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으며, 중국·러시아와 동남아국가들, 유럽연합 등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중입니다. 아직은 미미하지만 머지않아 성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합니다. 우리는 특히 미국의 대북 적대시정책을 끝장내는데 주력하고 있고, 조미관계 정상화에서 성과를 거둘 때라야 자본주의시장과의 교류협력을 확대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리라고 봅니다.
김 박사 그래도 북한의 경제재건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이 함께 민족경제공동체를 만들어나가면 정치적 화해와 군사적 긴장완화, 평화체제 수립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고 통일과정을 촉진시킬 겁니다.이렇게 할 때 북한의 산업화와 주민생활 향상에도 좋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니 경제공동체 수립을 위한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하면 좋겠습니다.
리 실장 좋은 말씀이지만 이명박 정권의 태도를 보면 경제공동체 수립은 언감생심입니다. 남조선에서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정권이 들어서면 그때서야 경제지원과 협력이 실질적으로 이뤄질 것이고 쌍방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2012년에 경제강국을 건설하려는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남측의 협력에 대한 기대를 이미 접었습니다.
리 실장의 완강한 어투에 한국에 대한 불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대화를 이어갈 여지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 김 박사는 북한 사정에 관한 이야기나 나누자는 생각이 들었으나 북측 해당화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식사를 하자고 제의했다. 일행은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고 식사 자리에선 늘 그렇듯 술잔이 돌면서 분위기가 곧 편안해졌다.
리 실장과 동행한 청년은 식당에서 접대원 동무들에게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등 사뭇 즐거워했다. 리 실장과 청년은 김 박사에게 잡담을 곁들이며 서울사정을 이것저것 물었다. 이들의 궁금증은 지방선거 이후 정치상황과 대기업들의 최신동향에 집중됐다. 김 박사는 신문에서 읽은 정도로 답변했지만 리 실장과 청년은 흥미로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튿날 오후 3시, 인근의 힐튼호텔에서 만나기로 하고 자리를 파했다. 7월 11일의 만남에서 김 박사는 북한의 경제사정과 정책변화에 대해 집중적으로 묻기로 했다.
"상품유통? 자본주의적 현상 나타나면 싹을 자를 것"
김 박사 리 선생, 지난해 12월 단행된 화폐개혁에 따른 혼란과 식량난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사정이 좀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다시 위기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만.
리 실장 공화국이 식량, 에너지, 소비재 등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이지만, 남조선당국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도로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화폐교환의 후유증에 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지만 6~7개월 경과하면서 제대로 정착되고 있습니다. 일부 책임일군들이 화폐교환의 사전준비에 만전을 기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를 총화하면서 개선대책이 잘 마련됐습니다.
김 박사 화폐개혁을 단행한 목적이 무엇인가요? 치솟는 물가를 잡으면서 '시장세력'을 약화시키고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화폐개혁을 단행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리 실장 화폐교환은 '원'의 교환가치를 제대로 반영한 경제관리를 정착시키려는 것이 첫째 목표였고, 대외경제교류가 늘어나는 조건에서 환율조종도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선생의 지적과는 달리 공화국에 '시장세력'이 존재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영상점의 상품을 빼돌려 시장에서 유통시키거나 매점매석 등으로 상당한 이익을 본 불법적인 장사꾼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들은 화폐교환 조치에 의해 타격을 입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미국달러 등 외화를 지나치게 많이 보유한 일부 사람들이 손해를 본 것은 사실입니다. 식량사정도 일시적인 어려움을 겪었으나 형편이 점점 나아지고 있습니다.
김 박사 생필품과 식량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면....,주민생활을 향상시키겠다고 한 북한당국의 금년도 경제정책이 성과를 거둔 건가요? 경공업과 농업분야에 대한 예산을 실제로 늘렸고, 또 그에 따른 효과가 어느 정도 나타났다고 보아도 무방한가요?
리 실장 그렇습니다. 누차 말씀드리지만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은 국방공업의 우선적 발전과 경공업·농업의 동시적 발전을 추구합니다. 인민생활에 직결되는 경공업과 농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금년도 경제정책의 주요 과제일 뿐 아니라 앞으로도 이 부문은 중시될 겁니다.
김 박사 금년도 신년공동사설이 '상품유통에서 사회주의 원칙 견지'를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상품유통에서 사회주의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 현상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요? 시장의 활성화에 따라 자본주의적 현상이 점증하고 있음을 북한 당국도 인정하고 이를 경계하는 게 아닙니까?
리 실장 물론 자본주의적 현상이 나타날 경우 그 싹을 자르기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만, 사설에서 '상품유통에서 사회주의 원칙 견지'라고 한 것은 그 맥락을 잘 읽어내야 합니다. 국영상점에서 상품을 정상적으로 공급하는 게 첫째 과제이고, 사회주의의 과도기적 특성에 맞게 상품화폐관계를 잘 타산해 상품가격을 정하는 것이 둘째 과제입니다. 사회주의 원칙이란 것은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기초한 집단주의 경제운영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과도기적 특성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우리 경제학자들은 계획경제 원칙과 상품화폐관계의 올바른 이용을 배합할 것을 강조해왔습니다. 경제일군들 가운데 가격과 수익성, 시장 같은 경제공간(수단)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익숙치 못한 경우가 아직 있어 일군들의 실력향상을 위한 강습을 광범위하게 조직하고 있지만....
이 대목에서 리 실장은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졌다. 북한 체제의 성격상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자면 실력 있는 간부들이 많아야겠는데 여의치 않은 게 분명했다. 김정일 위원장이 각종 담화와 문헌에서 실력제일주의를 강조하고 경제부문의 세대교체도 진행했지만, 간부들의 경험 부족과 낮은 업무능력, 변화를 이끌만한 혁신적 사고의 부재는 경제재건의 걸림돌이었다.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김 박사는 민족경제공동체 형성과정에서 인프라 및 공장설비, 자원과 기술지원도 중요하지만 기업경영교육과 공장기술교육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다. 리 실장이 말을 이어갔다.
북의 경제개혁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개혁 개방 잣대로만 분석하는 것 답답"
리 실장 남측의 일부 전문가들이 『로동신문』『근로자』『경제연구』등을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 채 이 소리, 저 소리 하는 걸 보면 답답합니다. 우리 당기관지와 『경제연구』등을 잘 읽어보면 정책방향을 거의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결론나지 않은 채 토론 중인 사안은 공개하지 않고, 공개하더라도 사실정보는 생략한 채 큰 방향만 제시합니다만.
김 박사 그게 문제입니다. 북한의 경제사정을 들여다보면서 깊이 있게 분석하고 싶어도 북이 출간한 문헌에선 구체성을 찾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우리 경제학자들이 탈북자들의 정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지요. 『경제연구』는 쉽게 입수할 수 있지만 당 정책논설지인 『근로자』는 최근들어 국내외를 막론하고 찾아보기가 정말 어렵습니다만.
리 실장 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의 흡수통일론자들이 우리 정보를 악용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해 각종 정보자료의 외부유출을 통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화국의 각종 문헌과 정책자료를 개혁·개방의 잣대로 분석하고 변화 징후만 강조하는 시각도 못마땅합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대외시장 확대, 대외무역 적극화 등을 강조하거나 국가개발은행 출범 혹은 라선지구 개방확대 등의 조치를 취하면 곧바로 '대외개방'에 착수했다고 보고, 경제조직사업의 개선을 촉구하면 '경제개혁'의 징후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군시대의 경제건설노선이라는 방향을 무시해서는 백날 가도 우리 경제정책을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김 박사 한국의 경제전문가들도 북의 선군경제노선은 알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2003년 8.23담화를 통해 체계화한 이 노선은 국방공업에 대한 투자와 노동력·설비·자재·전력 등을 우선적으로 보장하자는 것, 국방공업과 중공업의 기반에 맞게 경공업과 농업에 대한 투자를 증대시켜 주민생활을 향상시키자는 것 아닙니까? 나는 선군경제노선 하에서도 국가기업 이득금의 증대, 기업관리의 과학화·합리화 등 실리주의를 관철하겠다는 방향과, 경제와 과학기술의 일체화를 중시하는 대목에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리 실장 선생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의 지향을 어느 정도 이해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만 국방공업 우선전략이 중공업의 발전을 추동하고 경공업·농업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 특히 경제 전반의 현대화·정보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남조선의 보수적 경제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국방공업 우선전략이 군사력 강화에만 주력하고 인민생활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니란 얘기입니다. 현대화·정보화의 측면에서 국방공업에서 이룩한 성과가 민간경제부문에 이미 파급되고 있습니다.
리 실장은 선군경제노선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냈다. 그 자신이 사회과학원 주체경제학연구소에 직책을 가지고 있으니 선군경제노선의 이론화와 체계화에 참여했을 게 분명했다. 국방공업 우선전략이 중공업·경공업·농업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누누이 강조하는 리 실장의 설명을 들으면서도 김 박사는 제한된 정부예산을 국방공업에 과도하게 투입하면 민간경제부문의 예산부족을 초래하고 경제구조를 기형화할 것이라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선군경제노선이 장기화하면 재건의 기회는 줄어들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에 반해 리 실장은 선군경제노선을 경제강국의 문을 여는 열쇠로 인식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인식 차이는 남북관계의 골만큼이나 깊었다. 김 박사는 북한이 진행하는 경제관리개선에서 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집단주의 경제일 뿐, 경제 개혁과 거리 멀어"
김 박사 김정일 위원장께서 2001년의 10.3담화에서 경제관리개선을 강조하면서 사회주의원칙 고수와 실리 획득을 동시에 강조한 바 있습니다. 이 무렵부터 북의 경제관료들과 학자들도 사회주의원칙과 실리를 함께 중시하기 시작한 걸로 압니다. 경제관리개선에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개혁에는 반대하고 있는데, 아무튼 개선의 방향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리 실장 공화국에서는 사회주의원칙을 지키면서 변화된 환경과 조건에 맞게 경제관리 체계와 방법을 개선하는 것을 사활적인 과제로 인식합니다. 김 선생의 질문과 관련해 우리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경제관리의 해결방안을 설명해보겠습니다. 무엇보다 국가의 계획적 경제관리 원칙과 중앙집권적·통일적 지도를 확고히 보장하면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높이 발양시키는 원칙을 구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 경제는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에 기초한 집단주의 경제입니다. 집단주의 경제에서는 계획적 경제관리의 실현이 중요하며 중앙집권적 지도가 반드시 관철돼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래 단위의 창발성을 무시해선 안 되기 때문에 양자 간의 배합을 중시해왔습니다.
김 박사 『근로자』『경제연구』등을 보면 2000년대 중반부터 국가 지도관리와 계획화사업의 범위를 축소하고 기업의 독자성을 확대하자는 논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기업의 독자성과 관련하여, 국영기업의 경영전략과 기업전략이 중요하다는 논설도 있습니다만.
리 실장 개별 공장·기업소들이 경영전략과 기업전략을 수립하면서 계획경제의 테두리를 지킨다면 얼마든지 독자성을 부여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국가기업소는 '상대적 독자성'을 갖는 것이지 기업소가 경영활동을 제 마음대로 하는 절대적인 독자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경제관리의 개선에서 또 하나 중요한 방향은 경제와 과학기술을 하나로 결합하자는 것입니다. 21세기는 과학기술혁명의 시대인만큼 발전된 과학기술을 산업현장에서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세계적 수준에 도달한 과학기술분야를 생산현장에 과감하게 도입하자는 겁니다.
김 박사 북한이 경제관리 개선을 강조할 때면 늘 노동관리 개선과제가 실과 바늘처럼 따라다니는데 노동을 합리적으로 조직하자거나 노동생활기풍을 확립하자는 얘기는 근로자들의 일탈현상이 광범위하게 나타나기 때문이겠지요?
리 실장 그렇습니다. 일부의 일탈 현상이 노동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사실입니다. 산업현장에서 이탈해 종합시장이나 장마당에 돌아다니며 장사에 나서는 근로자가 많아서는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공장, 기업소, 탄광, 건설현장 등 각종 산업현장에서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지킴으로써 놀고먹는 인력을 없애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근로자들에게 480분 주간 노동시간을 준수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경제관리의 개선에서 또 다른 한 가지 방향은 상품가격과 생활비를 합리적으로 개정하고 시장공간을 올바로 이용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입니다. 시장관련 조치와 관련해 남측에선 시장경제를 전제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 조치는 경제개혁과는 거리가 멉니다.
생각의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는 법. 허나 모든 논의과정이 그렇듯이 마음을 열고 대화하다보면 차이를 넘어 이해의 문으로 들어서는 동화(同化, assimilation)의 순간이 어느덧 찾아오기 마련이다. 김 박사와 리 실장의 대화도 언젠가 이런 단계에 다다를 것이다. 지금은, 같은 것을 추구하되 같지 않은 것은 남겨 두고(求同存異), 차이와 다양성의 공존을 인정하면서 조화를 꾀하되 같게 만들려고 강요하지는 않는(和而不同) 자세가 필요한 게 아닐까. 김 박사는 그 순간, 아직은 생각의 차이를 더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북측의 시장도입은 시장경제의 시작인가
김 박사 우리는 북한의 시장관련 조치에 관심이 큽니다. 여타의 경제관리 개선조치들은 개혁의 범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지요. 2002년의 7.1조치는 상품가격과 생활비를 개정하고 시장을 활용하려는 대표적인 정책사례인데, 가격과 수익성, 시장 등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은 시장 확대가 불가피한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요?
리 실장 선생이 상품가격과 생활비의 개정 조치를 어떻게 이해할지는 스스로 판단할 문제이지만, 우리 인민경제대학의 전경남 총장의 논설을 소개할까 합니다. 전 총장님은 첫째로, 이 조치가 경제관리에서 상품화폐관계를 올바로 이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둘째로 실리 차원에서 재정금융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서였고, 셋째, 화폐에 의한 계산제도를 확립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제관리와 상품유통에서 가격공간(수단)을 적절히 활용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전 총장님은 상품에 대한 국정가격을 적절하게 결정하는 것과 이 결정과정에서 수요-공급의 '시장신호'를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지요.
김 박사 '시장신호'를 반영한 국정가격이라는건 이전의 가격결정방식과는 상당히 다르고, 시장가격의 중요성을 인정한 것으로 보아 북한 당국도 사실상 시장경제의 도입이 불가피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리 실장 우리의 경제체계 안에서 시장경제 부분은 비중이 높지 않고 어디까지나 보조적 공간으로 활용될 뿐입니다. 장군님께서는 지난 2005년 1월에 "국영기업을 기본으로 하고, 시장을 보조적인 공간으로 이용하여 공백을 메꾸는 방법으로 국영기업과 시장을 옳게 배합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일부 경제일군들이 장군님의 가르침을 잘못 이해해 시장경제로 넘어가는 것처럼 오해하는 폐단이 나타나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견해는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공화국에는 원자재와 중간재 시장인 사회주의물자교류시장과 소비품 공급망인 국영상점망, 지역시장 등이 있지만, 남측이 관심을 보이는 시장은 지역시장에 해당합니다.
김 박사 그 지역시장이 국영상점을 대신해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생필품을 공급하는 실제 시장 기능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곳에서 농산물과 부식류 등 식료품과 공업제품을 비롯한 모든 생필품을 판매하니까 시장이 활력을 띠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과거에 비해 중대한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
리 실장 남측 분들은 참 우리의 변화를 좋아하시는군요. 아무튼 지역시장에서는 상품 판매자들이 수입 및 시설물 이용에 따른 사용료를 내고 있으며, 이 자금으로 시장관리소를 운영하고 지방예산으로 융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국영상점에서 소비재를 제대로 공급하는 날이 오면 지역시장은 축소될 운명입니다. 시장은 언제나 '자본주의가 되살아나는 온상'이 될 수 있고, 지난번 화폐교환 때도 시장 축소를 염두에 두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시장을 활용하면서도 시장경제는 수용하지 않겠다는 북한 당국의 생각이 리 실장의 발언에서 거듭 확인됐다. 중국이 '시장사회주의'로 천지개벽의 경제발전을 이루었을지라도 북한은 '계획사회주의'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변용한 자신의 시장사회주의를 남들이 회색자본주의(Gray Capitalism)로 부르던, 다른 그 무엇으로 부르던 개의치 않고 정부가 시장을 주도적으로 관리·통제하는 경제시스템을 구축했고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해왔다.
북한 당국은 중국의 이러한 선택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슨 결과를 낳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고, 물질에 대한 정신의 우위와 인간의 자주성을 중시하는 주체사상이 변화의 수용이란 측면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 탄력적일 수 있음도 이해할 것이다. 그럼에도 시장경제를 도입하다가는 자칫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계획사회주의에 매달리게 하는 것이다. 북한이 계획사회주의로 경제강국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 박사는 만성적인 식량난과 아사자 발생에 대해 직설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협동농장의 운영에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우회하기로 했다.
김 박사 『로동신문』이 일부 협동농장에서 가족분조를 시범 운영해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도한 일이 있는데, 가족분조를 협동농장 전체로 확대한다는 소식은 아직 없습니다. 『우리 당의 선군시대 경제사상해설』(2005년 9월 출간)이란 북의 경제학 서적을 보면 협동농장에서 분조원 숫자를 축소하는 시험이 진행됐다는 설명이 나옵니다만, 협동농장의 관리방식에서 그 무슨 변화가 있기는 있는 건가요?
리 실장 일부 협동농장에서 분조 규모를 15-20명에서 7-10명으로 축소해보았는데 생산과제 설정과 노동평가 측면에서는 장점이 있었다고 해요. 그러나 우리는 협동농장의 분조관리제에서도 집단주의적 요소를 중시합니다. 가족분조의 시범운영에 대해 말한다면, 일부에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지만 일부에선 성과가 과장되거나 농자재, 종자 등을 가족분조에 더 많이 주어 의도적으로 성과를 내게 한 사례도 나타났습니다. 가족분조가 중국의 '가족단위도급제'나 '개인포전도급제' 같은 형태로 변질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김 박사 중국에서는 가족생산청부제와 개인농제를 통해 농업개혁에 성공하고 식량문제를 해결했는데 북한이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요?
리 실장 우리는 농촌 노동력이 부족한 조건에서 농사철마다 모자란 일손을 해결하려고 군인들, 사무직종사자들,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동원해왔습니다. 중국에서 가족단위도급제와 개인포전도급제가 성공했다고 해서 이 제도가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은 농촌의 과잉인구를 연안도시의 공업노동력으로 재배치해 경제성장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우리는 농업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우리 농업전문가들은 농업에서 집단주의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고 있으며 가족단위도급제보다는 분조관리제가 우리에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리 실장의 설명은 협동농장의 분조관리제가 약간의 변화를 겪을 수는 있지만, 가족영농이나 개인농 형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대화가 길어지고 북측 학자 특유의 동어반복이 계속되면서 김 박사는 피로감을 느꼈으나 웃음과 여유를 잃지 않았다. 리 실장은 김 박사에게 자신의 의사를 더 분명하게 밝혀둬야겠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사회주의 원칙 포기 안해"
리 실장 우리 경제관리에서 사회주의원칙을 포기하면 가치법칙의 무제한적인 작용과 생산의 무정부성, 약육강식의 경쟁 등에 길을 열어 주게 됩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변질되고 말 겁니다. 정치도덕적 자극을 팽개치고 물질적 자극 일면으로 나가거나 사회주의분배원칙을 제대로 시행하지 않으면 근로자들이 돈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로 굴러 떨어지고 맙니다. 건전한 노동생활기풍과 도덕기풍도 마비될 겁니다. 사회주의적 소유의 원칙을 포기하면 '소유의 다양화'에 길을 열어 주어 사회주의의 기초를 허물어 버릴 겁니다. 사회주의원칙을 포기하면 개인주의원리가 되살아나 자본주의로의 복귀라는 우려할만한 결과를 초래할 뿐입니다. 이런데도 우리가 시장경제를 도입하겠습니까? 남조선당국과 남측 경제학자들이 이 점을 제대로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생산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와 계획경제를 끝까지 유지하려는 우리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김 박사 한국이 북에 시장경제를 확산시켜 흡수통일을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사회에서 일부 그런 의도를 갖고 있는 사회정치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정학적 현실은 흡수통일의 길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아무튼 선생과의 대화에서 북한이 생산수단의 사회주의적 소유와 계획경제, 그리고 집단주의적 경제운영을 고수할 것이란 점은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군경제노선에 따라 국방공업 우선전략을 견지할 것이라는 것도 확연히 드러났지만, 실리를 추구하고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여러 가지 조치들을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도 알게 됐습니다.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다. 긴 시간이 흘렀건만 신통하게도 청년은 자세를 흩트리지 않고 경청했다. 김 박사는 북한이 국제자본주의시장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변화의 폭과 깊이'가 과거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라며 자위했다. 그때 가면 리 실장도 자신의 견해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란 상상에 잠시 빠져들었다.
(국제경제교류를 확대하면서 일시적으로는 계획경제 수호의 의지를 보일 수 있겠지만 계획경제의 작동 범위는 불가피하게 줄어들겠지.... 사회간접자본이나 국가기간산업에 머물던 외자가 농업·경공업 분야로 확대하면서 큰 변화를 피할 길이 없을 게야.... 대외교류에서 큰 성과를 거두면 교류협력의 범위는 확대될 것이고, 결국에 가서는 경제구조의 조정과 개편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김 박사는 '무슨 일이든 시간이 필요하지' 하는 생각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리 실장도 웃어보였다.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했던 것(心心相印)인가,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 속생각은 달랐던 것(同床異夢)인가?
※ 이상은 남북의 경제전문가가 베이징에서 만나 북한 경제에 관한 대화를 나누는 상황을 상정해 작성한 '가상대화'이며, 리 실장의 발언 부분은 북한의 각종 경제논문과 논설들을 참고한 것입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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