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음 글은 지난 해 11월 창간한 계간지 <미래와 희망>의 창간호 권두언이다. <미래와 희망>은 다중(多衆)과의 소통을 통해 지구촌의 미래와 한반도의 미래를 모색하겠다는 취지 아래 창간됐으며, 특히 정치ㆍ경제적 관점이 아닌 문화적 관점에서 우리의 삶과 생명의 관계가 어떻게 왜곡되어 왔으며, 현재 어떻게 억압받고 있고, 그래서 미래의 세계와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프레시안>은 지난 6월초 발간된 <미래와 희망> 3호를 시작으로 이 계간지에 수록된 몇몇 글들을 소개할 예정이다. 편집자
<미래와 희망>을 창간하며
<미래와 희망>은 21세기 진보운동의 새로운 목소리를 담아낼 작은 그릇이 되기로 자임하면서 창간되었다. 새 문제들을 제기하고, 이에 관련한 여러 담론들을 생산적으로 담아나가겠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누가 당신들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했느냐?"고 질문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당신들이 그렇게 커다란 일을 담당할 수 있는 재능이 있느냐?"고 힐책할 수도 있다. 물론, 그 어느 누구도 우리들에게 그런 역할을 하도록 부여하지 않았으며, 우리 자신들도 진보운동의 목소리를 제기하고 그것들을 생산적으로 담아낼 충분한 역량을 가졌다고 장담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조선시대에서 대한제국으로 전환되었던 시대처럼, 1945년부터 1950년대까지 이어진 해방정국의 전환기처럼, 오늘 이 시점이 한국사회와 그리고 이 세계가 새로운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는 인식을 깊이하고 있기 때문에,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그 누구로부터 역할을 부여받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리라고 보아 자임하고 나선것이다.
<미래와 희망>이 추구하는 것은 다중多衆, multitude과의 소통이다. 지난 20세기의 진보운동도 다중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였지만, 그 근본은 선각자들이나 지식인들의 계몽운동에 치우쳤다. 그러나 인터넷 네트워크나 도시적 삶의 다원적 관계로 특징지어지는 21세기의 이 시점에는 삶과 생명에 대한 자기책임성이 무엇보다도 두드러진다. 사회와 국가는 개개인들의 생명과 삶의 생산적 관계에 책임을 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이를 파괴하는 성향마저 보인다. 따라서 개개인이 다중 속에서 맺어나가는 삶의 생산성과 새로운 관계 형성은 21세기 진보운동의 과제이면서 동시에 자산이다. 그래서 <미래와 희망>은 그 어떤 기존의 이론이나 도그마에서 벗어나 21세기라는 역사적 시간과 지구촌 속의 한반도라는 지리적 공간 안에서 생산적 삶과 생성적 생명의 관계를 추구하는 다중과 대화하고, 그 삶과 생명의 관계를 질적으로 고양시키려는 다중의 노력에 동참하려 한다. 우리가 여기서 보는 21세기 한국사회의 다중은 '효순이·미선이 추모제', ' 월드컵의 붉은 악마', '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 미친 소·미친 교육 반대'를 위하여 촛불을 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다.
<미래와 희망>이 추구하는 다중과의 소통은 이론이나 도그마에 치우쳤던 과거의 자세를 버리고 구체적인 삶과 생명의 관계가 이루어지는 특별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의 지식을 추구하는 것에서 드러내고자 한다. '미래와 희망'이라는 제호 또한 그러한 특별한 시간과 공간, 즉 오늘날의 지구촌 세계가 맞이하는 시대정신과 동아시아의 한반도 지역이라는 지리적 공간의 특수성을 반영하는'지구촌의 미래'와 '한반도의 희망'을 함축하고 있다. 개인에게든 집단에게든 현재라는 시간은 과거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미래를 형성하는 사건들의 연속인 역사적 순간이지 이미 규정되어버린 과거의 지속이 아니다. 지구촌 세계는 그렇게 변화하고 있고 그렇게 변화해왔다. 지역이라는 공간 또한 마찬가지이다. 개인적 삶에 대해서든 집단적 삶에 대해서든 지역이라는 하나의 공간은 끊임없이 또 다른지역과의 역동적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의 지역이 다른 지역에 수동적으로 종속되는 것이 아니다. 지역과 지역의 관계가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지 지역이 이미 규정된 전체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지금 그렇게 존재하고 있으며 그렇게 존재해 나가야 한다.
시간과 공간에 의해서 규정되는 지역과 세계라는 상호관계를 등한시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안으로는 대한민국이라는 국민국가의 틀 속에 갇혀 있었고, 밖으로는 미국이 마치도 세계의 전부인 듯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미래와 희망>의 창간호에 싣는 기획 1과 기획 2의 좌담과 글들은 지구촌 세계질서의 변화와 더불어 한반도의 동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이슬람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의 진보운동을 특집으로 게재하였다. 독자들의 면밀한 독서와 반론, 혹은 더 폭넓은 글이나 충고를 기대한다. 이와 더불어 "21세기 요동치는 한반도"는 현재의 시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대한민국과 한반도, 그리고 동시아의 문제를 진단하는 논쟁의 장으로 설정하였다. 이번 창간호에서 다루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점검"," 남북관계"," 세계경제 문제"," 4대강 사업 문제", 그리고 "2010 지방자치선거"는 현재의 우리를 검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삶의 미래와 희망"은 진보운동의 다양한 흐름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만든 장이다. 이번 창간호에 싣는 "교육운동"과"통일운동", 그리고"여성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은 한국사회 각각의 부문운동이 어떻게 우리의 삶과 생명의 관계를 새로운 미래와 희망으로 이끌고 나아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것이다.
<미래와 희망>은 기존 정치세력의 관점이나 현실적인 경제적 이익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방식이 공존하는 문화culture: 섭생 혹은 상생의 관점에서 이 변화하는 지구촌 세계의 미래와 한반도 지역의 희망을 노래하고자 한다. 이런 측면에서 "문화로 세상읽기"와 "미래와 희망 만들기"는 우리의 삶과 생명의 관계가 어떻게 왜곡되어 왔으며, 현재 어떻게 억압받고 있고, 그래서 미래의 세계와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창간호의 "문화로 세상읽기"를 구성하는 역사, 만화, 언론, 사회, 예술, 지식정보, 문학 및 영화는 문화를 통하여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읽는 <미래와 희망>의 지속적인 도구가 될 것이다. 이 중에서 김귀옥 교수의 역사 이야기와 설인호 작가의 만화, 그리고 강우성 교수의 영화평은 연재의 형식으로 계속 이어질 것이고, 다른 분야도 계속 연재할수 있는 필자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삶과 생명의 관계에 가장 밀접한 분야이기 때문에 많은 독자들의 새로운 의견이나 반론, 혹은 생산적인 새로운 글을 기대한다. 이와 더불어"미래와 희망 만들기"의 강진욱 기자가 게재하는 "시사세계"도 계속 이어지는 연재의 글이다.
수많은 주변의 사람들이"왜, 이 어려운 시대에 계간지를 창간해서 고통을 겪으려고 하느냐?"고 애정어린 충고와 걱정을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어려운 시대이니까 희망을 찾고자 하는 것이고, 현실의 고통이 없이 어떻게 미래를 만들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 분들의 충고와 걱정은 정말로 열심히 책을 만들어서 지구촌 세계의 새로운 미래를 만들고 있는 다양한 목소리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한반도 지역의 희망을 찾아서 진보운동이 서로 연대하는 길을 만들라는 재촉의 채찍이라 믿는다. 이러한 지구촌 세계의 미래와 한반도 지역의 희망 만들기에는 무엇보다도 독자들의 참여와 무한한 질책이 필요하다. 구한말과 일제 식민지 시대의 고통, 미군정과 한국전쟁 시대의 아픔, 그리고 독재정권과 파쇼정권 아래서의 신음으로 다져진,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우리의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경험이 <미래와 희망>의 편집진들과 필진, 그리고 독자들을 서로 다르면서도 같고, 서로 논쟁하면서도 조화를 함께 이루어나가는 "미래와 희망"의 생산적 다중으로 새롭게 엮어 주리라고 믿는다. 우리에게는 오직 <미래와 희망>을 우리 모두의 길이라고 보아 우리의 모든 힘을 모아 나가기로 다짐하는 일만이 남아있다.
2009년 11월 20일
장시기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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