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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화해·협력 10년 결실 부정하면 역사적 심판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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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길] "화해·협력 10년 결실 부정하면 역사적 심판만 남는다"

[6.15 공동선언 10주년 연속 인터뷰]<4>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한국 근현대사 연구의 거목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6.15 공동선언이 채택되던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6.15 선언으로 한반도의 새 시대가 열린 역사의 현장에서 느꼈던 감회, 그 후로 펼쳐진 화해·협력의 흐름에 대한 역사적 의미에 대해 들어봤다.

강만길 명예교수는 "모든 정권은 결국 역사적 평가를 받게 마련"이라며 그 평가의 잣대는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통일 정책을 얼마나 진전시켰는가 하는 점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느 한 정권 아래서 인권과 언론 자유가 축소되거나 후퇴하고 평화·통일 정책이 침체한다면 그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자명해지기 마련"이라며 "정권 담당자는 항상 역사 앞에 서는 자세를 견지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편집자>


▲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 ⓒ프레시안 자료사진

프레시안 : 6.15 공동선언의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강만길 : 첫째 6.25 전쟁 후 적이 되었던 우리땅 남북 주민들을 다시 화해·협력하는 동족으로 환원시켰다는 점이다. 둘째 적이 동족이 됨으로서 민족의 통일이 시작되었고 따라서 개성공단 건설과 철도 연결 등 국토의 통일이 뒤이었다.

셋째, 종래 대립되어 오기만 했던 남쪽의 연합제 통일방안과 북쪽의 연방제 통일방안이 6.15 선언으로 공통점을 수립함으로서 장차 국가 통일의 길이 일단 열렸다. 넷째 6.15 선언으로 베트남식 전쟁통일과 독일식 흡수통일이 아닌 한반도식의 옳은 의미의 평화통일인 '협상통일'이 시작되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분단 과정이 38선 획정으로 인한 국토 분단과 남북에 두개의 국가가 성립된 국가 분단, 그리고 6.25 전쟁으로 인한 민족 분단이 이루어지는 순서였다면, 통일 과정은 6.15 선언으로 인한 민족통일과 철도 연결 및 개성공단 조성과 남북 인적교류의 활성화로 인한 국토통일이 추진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차 국가통일이 이루어지는 순으로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프레시안 : 6.15 선언이 가져온 변화는 무엇인가?

강만길 : 6.25 전쟁 후 계속 적이었던 북녘 주민이 6.15 선언으로 동족으로 환원함으로서 각 부문에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각 분야에서 '퍼주기'가 아닌 원조와 협력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참다운 의미의 동족의식이 강화된 점이 중요하다.

그리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관계에 한정됨으로서 고수되게 마련이던 종래의 대북 상호주의가 6. 15 선언으로 극복되어 간 점 등을 들 수 있다.

프레시안 : 6.15 선언 현장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과 지금의 감회는?

강만길 : 6.25 전쟁을 집적 겪은 세대로서 남쪽 대통령이 총칼로 무장한 인민 군대를 사열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그 때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다시 전쟁 우려가 운운되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가 결코 평면적으로 되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은 확실하다. 지난 10년 동안을 통해 남북 민족 구성원 사이에 쌓여진 화해·협력 노선이 일시적 정치 노선이나 정책 방향에 의해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6.15 후 10년간 정세 부침의 요인은?

강만길 : 남북이 전쟁통일이나 흡수통일이 아닌 '협상통일'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우리땅을 둘러싼 지정학적 조건이 냉전 시대와는 다르게 바뀌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한미관계와 한일관계, 조(북)중관계가 냉전시대에 비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냉전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미·일 관계는 여전히 긴밀하고 조중관계 역시 여전히 긴밀하며 조러관계도 크게 변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난 냉전 체제 아래서 조성되었던 긴밀한 한-미-일 관계와 조-중-러 관계 보다 탈냉전 시대에는 남북관계가 더 긴밀해지는 점이 중요할 것이다. 전쟁통일과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길이 거기에 있다 할 것이다.

프레시안 : 30% 이상의 보수세력이 6.15 선언을 부정하는 이유는?

강만길 : 역사의 진행에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21세기의 탈냉전 시대 및 남북 화해 시대에도 20세기 냉전시대적 사고에 한정된 부분이나 남북대결시대적 사고에 한정된 부분은 상당 기간 남아있게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역사 진행이 훨씬 빨라지겠지만. 그러나 뒤처지는 부분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 진행에 따라오게 마련이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강만길 : 역사가 직진만 하지는 않는다. 그랬다면 인간의 역사가 아직 여기에 있겠는가? 독재시대와 같이 역사 진행이 꽉꽉 막힐 때도 있고, 정권 담당층의 성향 여하에 따라 지그재그로 갈 때도 있게 마련이다.

막힘이 심할 때는 혁명 등으로 그 막힘이 터지게 마련이며 역사가 지그재그로 갈 때는 그 각도가 넓어야 함이 중요하다. 지그재그의 각도가 좁아지면 극우정권이나 극좌정권이 되게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함으로서 파탄이 오게 마련이다.

우리의 전체 공화주의 역사를 통해서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이 진전되었던 앞선 10년을 부정하면 할수록 역사 진행은 더디게 될 것이며, 그에 따른 역사적 심판도 엄해지기 마련일 것이다.

프레시안 :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사건이 터져서 북풍이 거세게 불었다.

강만길 : 여러 가지 말들이 들리지만 천안함 사건이 일어날 때 마침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그 전후사정을 잘 몰라서 언급하기가 어렵다. 다만 그 많은 젊은 죽음에 대해서는 역사가 반드시 그 진실된 원인을 가려낼 것이다. 그리고 그 아까운 죽음이 정략적으로 이용된다면 역시 훗날의 역사가 엄하게 심판할 것이다.

6.15 선언은 지난 20세기 역사, 즉 그 전반기는 타민족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반기는 민족이 분단되어 상잔하던 역사를 청산하고 21세기의 세계사적 흐름에 발맞추어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가는 하나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정권은 결국 역사적 평가를 받게 마련이며, 역사가 공화주의 시대의 각 정권을 평가하는 잣대는 정치-경제-사회-문화면의 민주주의를 얼마나 발전시켰는가 하는 점과, 지구상 유일의 분단민족사회로서 평화·통일 정책을 얼마나 진전시켰는가 하는 점에 있다.

어느 한 정권 아래서 인권과 언론 자유가 축소되거나 후퇴하고 평화·통일 정책이 침체한다면 그 정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자명해지기 마련이다. 정권 담당자들이 이 점을 명심해주기 바랄 뿐이다. 정권 담당자는 항상 역사 앞에 서는 자세를 견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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