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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판 노무현, 로제 살랑그로를 생각한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1930년대 프랑스 우익 닮은 21세기 한국 우익"

'우익 언론' : (프랑스에서) '우익 언론'은 오랫동안 사악한 집단의 대명사였다. 음모와 공작, 비밀 돈거래를 하는 집단,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는 (나치와) 협력한 불명예스러운 '부역 언론'을 상기시킨다. 적어도 좌파에서 보는 우익 언론상(像)이다. 해방 후에는 좀 더 듣기 좋은 표현으로 '보수' 언론 또는 '리버럴'언론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스스로 우익신문이라고 부르는 언론이 있다면 그것은 보수 보다 더 과격한 극우언론으로 간주된다.

'우익과 언론' : 우익은 언론을 불신한다. 우익은 집권을 하건 야당 처지에 있건 자신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순간 언론을 두려워한다. 이 말이 놀랍게 들릴지 모르나 놀라울 게 하나도 없다. 기존질서를 옹호하는 집단이 무질서의 불씨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신문이 바로 이런 불씨이다. 독재 하에서나 민주주의 하에서나 자유사회에서나 비밀사회에서나 언론은 시민들에게 사람들이 감추고자 하는 것을 알려주고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려고 한다. 우익은 이런 언론을 두려워한다.

위에 소개한 '우익언론', '우익과 언론'은 프랑스의 보수운동과 사상을 역사적으로 조사 분석한 고전으로 알려진 장 프랑수아 시리넬리 교수의 3부작 <프랑스 우익의 역사> 제2권 제4장 언론 편에 소개된 구절이다. 보수는 "자신이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순간 언론을 두려워한다"는 관찰은 프랑스뿐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의 보수 진영에도 해당되는 진리를 간파한 명언이라는 생각이다. 미국의 부시 정권, 프랑스의 사르코지 정권,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정권, 한국의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보수 정권의 언론 정책을 이해하고 분석하는데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언론의 행태에 있어서도 프랑스 제3공화국 특히 1930년대의 우익(보수) 언론의 행태를 보면 한국의 우익 언론의 행태와 흡사한 점이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익은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는 순간 언론을 두려워한다

내가 프랑스의 우익언론-보수보다는 극우에 가깝다는 의미에서 우익언론이란 표현을 쓴다-과 한국의 우익언론(조·중·동)을 비교해서 보게 된 것은 인민전선의 레옹 블룸 정권을 적대시한 프랑스 우익 언론과 노무현 정권을 다루는 조·중·동의 행태에 유사점이 있다는 것을 간파하면서 부터였다. 우선 프랑스의 우익언론의 행태가 어떠했는지부터 살펴보자.

1936년 4월 총선에 승리한 좌파 연합의 인민전선 정권(공산당은 불참)의 레옹 블룸 총리는 역사상 최초로 유급 휴가(바캉스)제를 도입하고 휴가를 떠나는 노동자 가족에게는 기차표를 40% 할인해 주는 특전을 주는 등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단축하고 임금을 7~15% 인상해 주고 단체교섭권을 포함한 노동 3권을 공식으로 인정해서 서민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우익 신문과 잡지는 레옹 블룸 정권을 좌익 정권이라 해서 공산당 정권처럼 적대시하고 사사건건 비판하고 공격했다. 반란 선동에 가까운 기사를 서슴지 않고 실었다. 나중에 비시 정권은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게 1940년 패배한 원인이 레옹 블룸의 복지정책 때문이었다는 웃지 못할 "명언"을 남기기까지 했다. 레옹 블룸 정부는 공정한 민주 선거로 당선된 정권인데도 우익과 우익 언론은 좌익이 집권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우익적인 것은 무조건 좋고 지지하며 좌파적인 것, 진보적인 것은 따져볼 것도 없이 비난 대상이었다. 레옹 블룸 정권은 우파의 공격에 밀려 결국 1년 2개월만에 퇴진했다. 우파의 공격을 방어해 줄 좌파 언론이 거의 부재했던 것도 퇴진당하게 된 주요 원인으로 보인다. 미디어의 다양성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재인식하게 한다.

흔히 제3공화국은 신문의 황금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에 '언론 남용의 시대'이기도 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신문의 부패가 만연하고 정치 분야에서는 좌파 인사에 대한 난폭한 인신공격과 언어폭력을 자행됐다. 레옹 블룸 정권은 언론 황금시대의 피해자였고 장래가 촉망되던 그 정권의 내무장관 로제 살랑그로(Roger Salengro,1890-1936)는 우익 언론 남용에 목숨을 빼앗긴 희생자였다. 그는 프랑스판 노무현이었다.

▲ 레옹 블룸 정권의 내무장관 로제 살랑그로는 우익 언론 남용에 목숨을 빼앗긴 희생자였다. 그는 프랑스판 노무현이었다. 왼쪽에서 두번째 팔짱을 끼고 있는 사람이 로제 살랑그로.

프랑스 판 노무현, 로제 살랑그로(Roger Salengro)

살랑그로를 자살로 몬 것은 우익 주간지 <그렝고와르(Gringoire)>였다. 1928년 창간돼 애국 지상주의와 친 나치즘 노선을 취한 이 잡지는 이태리의 무솔리니와 스페인의 프랑코를 극찬하고 영국을 반대했으며 소련을 증오했다. 반(反)유태주의 반(反) 마르크스주의를 부추겼다. 사회주의자를 싫어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사회주의 정권의 각료인 살랑그로가 <그렝고와르>의 조준선에 들어온 것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30년대 초 발행부수가 65만 부까지 오른 위력있는 매체가 그를 집요한 인신공격 표적으로 삼은 것이었다. 살랑그로는 나이 20대에 북부 대도시 릴(Lille) 시장에 당선되고 1928년부터 하원의원에 연속 당선된 유망한 젊은 정치인이었다. 그는 1936년 인민정부가 들어선 후 혼란한 사회 위기를 잘 수습해서 정치력을 드러냈다. 바로 그런 능력 때문에 극우 언론은 그 해 여름부터 그를 조준해서 맹렬한 공격캠페인을 가동했다.

우익 언론은 살랑그로가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중 탈영해서 적군 진영으로 탈출한 혐의로 프랑스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대서특필했다. 뜬금없이 21년 전의 일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러나 살랑그로의 요청으로 재향군인 대표들이 그의 병역서류를 조사한 결과 그는 전쟁 중 지휘관이 허락을 받아 자기 소속 부대를 찾아 나섰다가 포로가 된 일로 군법회의에 회부된 일은 있었지만 무죄판결을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렝고와르는 살랑그로에 대한 탈영 혐의를 물고 늘어지면서 인신공격을 그치지 않았다. 그 결과 살랑그로 사건이 하원에서까지 상정돼 정치문제화 됐지만 하원은 압도적 다수로 그에 대한 고발 제안을 각하하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무혐의 결정이 내려진지 얼마 후 살랑그로는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 조사 결과 자살로 판명됐다. 지나친 인신공격으로 충격을 받아 자살한 것으로 추정됐다. 미테랑 대통령 아래서 청빈한 정치인으로 알려진 베레고보아 총리가 금전 관계 의혹으로 신문의 인신공격을 받고 그 충격으로 자살한 사건과 함께 20세기 프랑스 정치사에서 언론이 정치지도자를 자살로 몬 2대 스캔들로 간주되고 있는 사건이다.

미테랑 대통령이 베레고보아 총리의 자살 소식을 듣고 무고한 총리를 자살로 몬 언론을 "개들"이라고 혹평한 것은 유명한 이야기이다. 역시 언론사에 남을 명예롭지 못한 기록이다. 한국의 우익 언론이 "좌파" 노무현을 비자금 혐의로 연일 난타해서 그를 자살로 몬 것과 성격을 같이 하는 언론의 '범죄' 행위들이다. <그렝고와르>의 편집 책임자진들이 나중에 나치와 부역하고 그래서 해방 후 모두 숙청되거나 처벌 대상에 올랐다는 것을 부기해 두고 싶다.

우익 언론은 보수의 제2 중대?

프랑스 우익언론은 정치적 전환기에 변화에 적응하면서 우익 세력 지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우익 정당이 권력을 잃었을 때는 정당의 역할을 대행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1930년대의 프랑스 우익 언론은 우익이 정권을 잃고 조직이 이완됐을 때 신문이나 잡지의 글을 통해 레옹 블룸 정권을 공격해서 정권 약화와 퇴진을 촉진하는 한편 방향을 잃은 우익 정권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집권 좌익 정권을 공격할 전략을 제시했다. 19세기와 20세기 전체를 통해서 일부 영향력 있는 신문 잡지의 편집 간부들은 우익 내 제2권력의 역할을 했다. 그래서 <프랑스 우익의 역사>는 우익 언론이 우익 세력의 제2권력으로 그 역할이 우익의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바로 이 같은 행동이 우익언론의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우익언론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너무 파당적이고 게재되는 글의 수준은 높은 편이지만 복수심과 증오로 차있으며 편파성이 한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행태를 "프랑스 우익 정치문화 저널리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건전한 저널리즘의 탈선이며 수치스러운 저널리즘이라고 <우익의 역사>는 비판한다.

가장 극우적인 신문이라는 <악숑 프랑세즈 (Action francaise)>는 거의 반란을 선동하는 것 같은 내용의 기사를 서슴지 않고 실었다. 2004년 총선 이후 한국 보수 신문에 게재된 의견광고에서도 "적색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국가 안전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군을 믿는다", "국군은 헌법과 국가의 체제와 자유를 파괴하려는 그 어떤 위헌적 명령도 거부한다"는 등 무엇을 암시하는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 표현의 광고를 자주 볼 수 있었다. 1930년대 프랑스 우익 신문을 연상시키는 광고들이었다. 21세기의 한국 보수가 아직도 프랑스의 1930년대 보수를 흉내 내고 있는 것 같아 한심스러웠다.

한편 1930년대 우익언론은 보수가 집권할 때는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역대 정부가 짜 놓은 계획에 맞춰 국민을 상대로 한 '세뇌'작업에 참여했다. <프랑스 우익의 역사>는 프랑스 언론이 일반 독자 또는 국민이 신문에 갖고 있던 신뢰를 크게 떨어트린 큰 원인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 이명박 정권 아래서 조·중·동으로 지칭되는 한국의 우익 언론이 이 점에서 프랑스 1930년대 우익 언론과 아주 흡사한 과오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는 국민이 많을 것이라 본다. 조·중·동은 한번 잃은 독자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된다는 것을 알고 깊은 자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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