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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북한과 베이징의 북한, 진짜는 어느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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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의 북한과 베이징의 북한, 진짜는 어느쪽?

[한반도 브리핑] '사악하고 미친 북한' 패러다임의 부활

10년 전 영국 워릭(Warwick)대학의 헤이즐 스미스(Hazel Smith) 교수는 권위 있는 국제관계학 학술지 <인터내셔널 어페어즈>(nternational Affairs) 76호(2000년 1월 발행)에 "Bad, Mad, Sad or Rational Actor? Why the 'Securitization' Paradigm Makes for Poor Policy Analysis of North Korea"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스미스 교수는 북한에 대한 연구 패러다임이 연구자들의 성향에 맞추어져 (securitization) 있어 북한의 현실을 왜곡하고 정확한 북한 연구가 나올 수 없음을 지적했다.

스미스 교수는 'bad'(사악)와 'mad'(미친)가 기존 북한 연구의 패러다임을 이루는 두 가지 축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bad'는 북한 정권을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이며 'mad'는 북한 정권이 정신이 나아가서 미쳐있기 때문에 북한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하다는(unknowable and unpredictable)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패러다임에 의거한 북한 연구의 공통적인 결론은 북한 정권의 전복(顚覆, regime eradication)만이 북한 문제의 해결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 교수의 핵심 논지는 북한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고 북한 연구의 패러다임의 두 축을 이루고 있는 'bad'와 'mad'는 서로 같이 양립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의 사악한(bad) 행동은 정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택한 것이다. 그래서 북한 정권이 나쁘고 타도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북한 정권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합리성'(rationality)을 가진 집단으로 보아야 논리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즉 합리성은 갖고 있지만 그것을 추구함에 있어서 사악한 방법을 택하고 있기 때문에 타도와 전복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정권이 정신 나간 '미친'(mad) 정권, 그래서 알 수 없고 예측 불가능한 집단이라면 합리성에 바탕을 둔 정권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북한 정권을 규정하는 패러다임의 양축인 'bad'와 'mad'는 논리적으로 양립될 수가 없다. 스미스 교수가 비판한 북한 연구의 기존 패러다임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 지난 14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반북단체 행사에 등장한 김정일 위원장 규탄 현수막. ⓒ뉴시스

투명 잠수함 아니면 불가능한 침투

천안함 사건의 배후로 북한이 유력시 되고 있다. 아직 확실한 물증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주류 언론들은 북한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있다. 이들은 북한이 작년 11월 대청해전에 대한 복수로 잠수함을 몰래 보내 한국의 초계함에 어뢰를 쏘고 달아났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 정권은 분명 사악하고 미친 정권임이 분명하다. 단지 '복수'를 위해 성공 확률이 극히 작고 만약 성공했다고 해도 위험 부담이 엄청난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다음과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매우 성공하기 어려운 일임을 알 수 있다. 어뢰를 안정적으로 발사하기 위해서는 로미오급(1700톤)이나 위스키급(1350톤) 잠수함과 같은 비교적 작지 않은 크기의 중형 잠수함을 침투시켜야 한다. 그러나 백령도 연안 바다는 수심이 25미터에서 최대 40미터밖에 되지 않아 중형급 잠수함이 발각되지 않고 침투하기 매우 어렵다. 이뿐만이 아니다.

백령도 연안 바다는 어장이기 때문에 어선들이 쳐놓은 어망들이 촘촘히 곳곳에 놓여 있어 잠수함의 항로의 큰 장애가 된다. 또한 이곳은 바로 북방한계선(NLL)과 접하고 있어 해군에서 늘 철저하고 특별한 감시 수색하고 있는 지역이며, 특히 사건 당일은 한국군과 미군의 독수리 훈련이 그 지역을 포함한 지역에서 실시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장애물과 삼엄한 감시망을 뚫고 중형급 잠수함을 비밀리에 침투시키고 '임무'를 완수한다는 것은 북한이 사전에 어망의 쳐진 곳을 알고 있었고, 소나 레이더(sonar radar)에 걸리지 않을 투명 잠수함 같은 것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군사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려고 한다면 적의 허(虛)를 노려야 하는데 북한은 성공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엄청나게 위험한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한·미가 대규모 군사 훈련을 수행하는 상황에서 만약 남쪽 영해로 침투한 북한의 잠수함이 발각되었다면 그대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정권이 미친 정권이고 합리성에 기반을 둔 정권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경제 개발 원하면서 군사적 충돌 시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항간에는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 목적과 이유를 후계 문제에 두고, 중국에 김정은을 소개하고 '허락'을 받기 위해서라는 추측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방중의 가장 중요한 목적과 이유는 북·중간에 경제협력으로 알려지고 있다. 경제협력의 주 안건은 중국의 동북 4성 개발과 북한의 신의주, 하중도, 라선(라진·선봉), 청진 등의 개발을 연계하는 것이다. 이는 소강사회를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과 강성대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 모두에 사활이 걸린 정도로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번 방중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북한과 중국 모두 자신들의 경제발전을 위해 협력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북·중 모두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에 무엇이 더 중요했을까? 잠수함을 남한 영해에 침투시켜 천안함와 같은 군함을 어뢰로 공격해 대청해전의 패배를 복수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이제 강성대국의 마지막 남은 고지라고 하는 경제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는 것일까?

북한의 통치자인 김정일이 직접 중국을 방문해 경제협력을 논의하고 합의했다는 사실로 보아 후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북한이 운(運)에 맡길 수밖에 없고, 또 실패하면 엄청난 후폭풍을 맞을 수밖에 없는 복수극을 먼저 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할 수가 없다.

아니 성공한다고 북한이 자신하고 있었다고 해도 북한에 의심이 갈 수밖에 없고 또 경제 개발을 하기 위해서 군사적 충돌을 최대한 피해야 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천안함 폭발과 같은 엄청난 군사적 모험을 감행한다는 것은 북한이 확실히 미친 정권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는 일이다.

전면전을 원하나

이런 측면에서 스미스 교수의 10년 전 비판은 불행하게도 아직도 유효하다. 북한 정권은 사악한 동시에 미친 정권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단지 북한 정권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데 있지 않다. 북한 정권이 사악하며 동시에 미친 정권이기 때문에 이런 시각에 바탕을 둔 북한 연구와 분석의 결론은 늘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거나 바꾸어야 하는 것에 맞추어 진다. 문제는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거나 바꾸는 수단은 스미스 교수가 지적했듯 전면적인 전쟁(full-scale war)으로 이어지는 무력 이외에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진행되는 조사를 통해 만약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응분의 조치를 취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북한의 소행으로 판별되지 않고 사건은 미궁으로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과의 관계는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지 오래이며 더욱 우려스러운 일은 이번 사건을 통해 남·북간은 무력충돌의 기운으로 달아오르고 있다는 현실이다.

스미스는 자신의 논문 마지막 구절에 '사악하고 미친' 패러다임에 입각해 북한을 바라보고 연구하는 입장이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사태로 전개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적하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났을 경우 한반도에 살지 않거나 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만이 기존의 패러다임을 고집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현 상황은 한반도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패러다임에 입각해 북한을 보고 있는 실정이다.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의 의미를 고려할 때 특히 안타까운 일이다. 북·중간의 경제협력은 바야흐로 동북아시아의 본격적인 개발의 서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북아 개발은 중국과 북한만의 협력으로 이루어 질 수 없다. 한국을 포함한 다른 동북아 국가들의 긴밀한 협력이 실현되었을 때 가능하다.

또한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개발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된다. 한반도 평화 없이 동북아 개발은 어불성설이다.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관계가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면 우리민족 모두에 매우 불행한 일이 될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민족의 안녕과 미래를 위해 북한을 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은 지양되어야 하며 천안함 사건의 수사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환경에서 이루지고 현명한 대처가 따르기를 간절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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