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주류 언론이 '보수'의 성공을 방조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주류 언론이 '보수'의 성공을 방조했다

[장행훈의 '광야의 외침'] 미국은 어떻게 보수화되었는가 ③

지금까지 우리는 맥퍼슨 교수의 저서 미국 <보수의 굴기와 언론-'우익의 등장과 언론의 역할> 을 통해 미국의 보수 세력이 어떻게 우익의 인프라를 조직·강화·확대하고 리버럴 미디어를 공격하는 한편 보수 저널리스트를 양성하고 보수 미디어를 구축하는데 막대한 자금과 노력을 경주했는지 살펴보았다. 보수 세력의 모든 조직은 공화당의 집권과 미디어 장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배후에는 이들이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행동 통일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수 철학을 구축하고 그 전략을 제시하는 싱크탱크들이 활동하고 있다. 우익 세력이 미국 사회를 보수화 하는데는 이 같은 체계적인 언론장악 전략과 행동이 부단하게 작용했다.

▲ 제임즈 브라이언 맥퍼슨(James Brian McPherson)교수가 2008년에 펴낸 <미국 보수 세력의 굴기와 언론(Conservative Resurgence and the Press)>ⓒ프레시안
<보수의 굴기와 언론>은 민주화 20년에 갑자기 사회가 보수화되고 민주주의가 2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는 한국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그렇다면 우익 세력이 이렇게 사회를 보수화 하고 언론과 정권을 장악할 때 주류 언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맥퍼슨 교수의 진단에 의하면 유감스럽게도 주류 미디어는 보수 세력의 작전을 전연 감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들 자신이 언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언론으로서 신뢰를 떨어트리고 그 결과 보수가 언론을 장악하는데 본의 아니게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언론학자들 역시 지나간 현상의 분석은 잘 했지만 보수 세력이 미국 여론을 조종하는 언론판도의 변화가 진행될 때 그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이 보수화 책임의 절반은 저야 한다는 말이 되겠다.

주류 미디어, 보수의 언론장악 감지 못해

한편 보수화 운동을 오래 관찰하고 명쾌한 분석을 제시한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언론인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는 "리버럴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자만하고 있는 사이 우익은 보수운동 구축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간파하고 경탄할 만큼 열심히 자기들의 과업을 해냈다"고 보수화의 원인을 진단했다. 도덕적 우월감에 도취된 리버럴(좌파)과 주류 언론이 자기들을 공격하기 위해서 보수 세력이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보수의 공작을 깨달았다는 비판이다.

주류 미디어의 가장 큰 잘못은 한 마디로 언론의 기본 사명과 역할을 소홀히 한 것이었다. 미디어가 기업의 이익을 올리는데 열을 올리다 언론의 역할을 등한히 한 것이다. 특히 대기업이 미디어를 지배하게 되면서 뉴스 미디어까지도 뉴스보다 비즈니스(사업)를 더 중시하게 됐다. 1983년 50개 그룹이 1700 개의 뉴스 매체를 지배하던 미국의 미디어 판도는 2005년에는 6개의 대기업 그룹이 지배하는 독과점 판도로 바뀌었다. 이러한 매체 집중 상황에서 소수의 대기업 소유주가 언론의 뉴스 내용을 결정했다. 미디어 조직은 사주나 주주들이 기대하는 이익을 올리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가네트 센터 저널(Gannet Center Journal)이 이미 1987년에 지적한 바와 같이 "미국에서 뉴스는 항상 하나의 상품이었다. 그(뉴스) 행태는 기업과 기술이 요구하는 지침을 따라야 했다.(…) 이익 동기는 당연한 것이다. (…)미국은 항상 자본주의 경제와 문화 속에서 살아왔다."

보수의 주장 선전해주는 리버럴 미디어

대기업의 언론 지배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언론과 보수 싱크탱크와의 관계이다. 맥퍼슨 교수는 주류 미디어들이 헤리티지재단이나 카토(CATO) 연구소와 같은 보수 싱크탱크가 작성한 보고서를 조직의 성격을 밝히지 않은 채 그대로 기사화하고 있는 사실을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카토 연구소는 헤리티지재단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영향력 있는 보수 싱크탱크로 사회보장의 민영화를 주장하고 환경보호운동을 경시하면서 경제성장을 앞세우는 보수 싱크탱크이다.

그런데 주류 미디어가 이러한 보수 연구소가 내놓는, 근거가 의심스럽고 권위 있는 어떤 학술지에도 발표할 수 없는 그런 보고서를 마치 진지한 과학적 연구 결과처럼 계속 기사화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보도 태도가 주류 미디어를 보수화하고 사회의 보수화로 이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주류 언론이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선전해 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이 삼성경제연구소나 기타 재벌 경제연구소의 보고를 아무 비판 없이 자주 인용 보도함으로써 부지부식 간에 재벌의 입장을 선전해 주고 재벌의 세계관에 여론이 친화감을 갖게끔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유사한 예라고 볼 수 있다. 보수 싱크탱크나 재벌이 막대한 돈을 들려 연구소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 아니겠는가?

보수의 뉴스 소스가 사회를 보수화 한다

뉴스에 이용하는 소스, 기사의 프레임 그리고 홍보 의존 역시 모두 주류 미디어를 보수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 중에서도 뉴스 소스의 문제는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기자는 취재를 위해 정부기관을 출입하게 되며 출입처에서 기사거리(정보)를 제공하는 정책결정자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제공되는 정보 내용은 이들이 생각하는 틀에 실려 전달되기 마련이다. 뉴스 소스는 언론학자들이 말하는 뉴스의 틀을 만드는 사람(news shaper)이다. 뉴스 소스는 정보 제공자로 기자에게 아주 필요한 사람이지만 출입처의 입장과 이해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한 부서에 오래 출입하다 보면 기자가 뉴스 소스와 가까워져 이들의 생각을 그대로 전달하는 전도벨트가 되기 쉽다. 보수 정권 하에서 그렇게 될 위험은 더욱 커진다.

보수 싱크탱크 '전문가'의 말을 기사화할 때 그 위험은 더욱 커진다. 그러므로 싱크탱크의 성격과 보고서의 작성 의도가 무엇인지 기사에서 밝혀야 한다. 싱크탱크는 언론을 통해 그들의 주장을 널리 알리는 효과를 노리기 때문이다. 한 원로 언론인에 말을 빌리면, 수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이던, 싱크탱크가 제시하는 구상과 해결안이 언론 보도를 통해 실현되는 비율이 점점 그 높아지고 있다고 맥퍼슨 교수는 전한다. 주류 미디어가 싱크탱크의 '작전'에 넘어가고 있다는 암시로 보인다.

공화당 정권 넘어가도 미디어 독점 쉽지 않을 것

맥퍼슨 교수는 저서에서 미국 사회의 보수화에 보수 조직과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는 것을 상세히 분석하고 지난 반세기에 걸친 우익 세력의 보수화 기획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보수 세력은 언론을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로 이용했고 비민주적인 방법을 사용하는데 개의치 않았으며 이러한 행동은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극히 우려할 현상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2008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오바가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를 누르고 백악관의 주인이 됨으로써 공화당의 영구 집권 야심은 일단 좌절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수 세력의 리버럴 미디어에 대한 공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보수 세력의 미디어 장악 행진은 앞으로도 중단되지 않고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과 거대 미디어 그룹이 90년대 이후 세 차례나 연방통신위원회(FCC)를 통해 미디어 소유 제한의 완화, 바꿔 말하면 대기업의 미디어 독과점 확대를 시도했다. 마지막 시도는 2007년이었다.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던 1996년, 민주당의 클린턴이 대통령이었지만 공화당과 거대 미디어 그룹은 통신법(Telecommunication Act)를 제정해서 라디오의 소유 제한을 확 풀었다. 그 결과 클리어 채널(Clear Channel) 한 회사가 1200 개의 라디오 채널을 장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것은 미국 국민들에게 미디어 독과점의 폐해를 새롭게 인식시키는 계기가 됐다. 이러한 거국적인 경각심은 그 후 두 차례에 걸친 공화당과 미디어 그룹의 미디어 장악 시도를 좌절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은 소수 그룹의 미디어 지배를 반대한다. 앞으로 정권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넘어간다 하더라도 보수가 더 이상 언론지배를 확장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미디어 독점에 대한 미국 국민의 저항, 언론 개혁에 대한 미국 국민의 의지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운동의 조직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고 잘 운영되고 있다.

보수와의 문화투쟁은 장기전이다

맥퍼슨 교수의 책에서 우리에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간단히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한국 상황에도 적용되는 교훈이다.

신자유주의(극우 보수주의) 세력은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 시장원리 자본주의를 원리대로 적용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해야 하며 도덕적으로는 기독교 보수파의 교리를 절대적으로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자기들의 생각에 반대하는 리버럴(자유주의자)의 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선 여론을 보수화하기 위해 언론을 장악하고 싱크탱크를 조직해서 이론적 조직적으로 보수 세력을 확대하는 운동을 벌인다. 언론은 신문이나 잡지보다는 방송을 이용한다.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것은 보수에 불리하다. 따라서 신문이나 잡지보다는 뉴스와 논평 의견을 뒤섞어 대중 선동에 알맞는 방송의 토크쇼가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다.

보수 세력은 리버럴 공격에는 반공산주의와 기독교 가치를 무기로 사용하다. 공산주의에 대한 싸움이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보다 더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리버럴 언론이 편파보도 한다고 공격한다. 보수는 객관 보도와 균형 보도의 언론윤리를 부인한다. 보수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것은 편파보도라고 비난한다. 보수 세력은 사회적으로 부유층이 많으므로 경영이 어려운 미디어에 자금을 지원해서 보수 미디어로 "식민지화"하기도 한다.

리버럴 지성인이나 언론은 그 동안 자기들이 도덕적으로 보수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만하고 보수의 공격에 안일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이제 보수의 작전이 여론에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이 드러난 이상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선 보수의 생크탱크에 대적할 리버럴 싱크탱크를 조직해서 이론적으로 보수의 전략에 반격할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그리고 언론은 전통 언론윤리를 충실히 준수해서 대중의 신뢰를 얻고 그 신뢰의 바탕 위에서 보수의 비민주적·비윤리적이고 부자 중심 기득권층 중심의 개인주의를 비판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부단히 전개해야 한다. 보수 언론도 비판해야 한다. 이것은 문화 투쟁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전개해 나갈 장기전으로 생각하고 추진해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