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파업 기간 동안 김재철 사장은 노조 집행부를 업무 방해 혐의로 민·형사 고소하고 법원에 출근 저지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 외에 별다른 대응을 못하고 있다. 사실상 사장이 파업을 방치하고 있는 셈이다.
김 사장의 '무대응'은 파업을 장기화하는 것 외에도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다. 파업 초반 "황희만 부사장 퇴진,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고소 이행"에 중점을 뒀던 구호는 중반을 넘어가며 "김재철 사장 퇴진"으로 확산됐다.
지금은 '김재철 불신임 국면'…직능별 기명 성명 속출
지금의 MBC 파업 상황은 한마디로 '김재철 불신임 국면'이다. 지난 3일 MBC 기자 252명이 기명으로 김재철 사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낸 데 이어서, 6일에는 MBC PD 261명이 같은 내용의 기명 성명을 냈다. 이 성명에는 전체 기자 346명 중 72퍼센트 이상이, PD 292명 중 89.7퍼센트가 참가했다.
7일 중에는 기술인협회가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촉구하는 기명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MBC 노조에 따르면 이미 87퍼센트 이상의 회원이 기명 성명에 동의했다. MBC 내 다른 직능단체도 비슷한 내용의 성명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레시안(최형락) |
각 사원이 불이익을 감수하고 실명으로 내는 기명 성명은 보통의 노동조합에서 강력한 투쟁 수단으로 사용하는 '불신임 투표'보다 한단계 높은 것. 기명 성명은 노동조합 차원이 아닌,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이름을 공개한다는 점에서 불신임 투표보다 더 강한 의지를 표명한다고 볼 수 있다.
기명 성명에 참여한 면면도 이런 흐름을 반영한다. 가령 기자의 기명 성명에는 신경민 전 <뉴스데스크> 앵커, 최명길 선임기자, 이우호 논설위원 등 황희만 부사장의 선배, 동기도 대거 참여했다. PD의 기명 성명에도 황 부사장의 입사 동기인 81사번 3명이 동의했다. 김재철 사장, 황희만 부사장 등 일부 경영진을 제외한 MBC 거의 모든 사원이 김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셈.
이는 김 사장이 파업을 방치하는 데 따른 반발의 성격이 크다. PD협회는 7일 낸 성명에서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파행을 겪고 PD들이 자신의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해 참담해 하고 있건만, 사장은 아파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의 일터 MBC가 말라 죽어가고 있는데도, 강 건너 불구경처럼 즐기고 있을 뿐"이라고 분노를 표했다.
"벼랑 끝에 몰린 김재철…지방선거 앞두고 숨죽이기?"
한 MBC 관계자는 "김재철 사장은 벼랑 끝에 몰린 듯하다"고 말했다. MBC 내부의 반발 여론은 높지만, 황희만 부사장 퇴진이나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 고소 등은 모두 청와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행하기 쉽지 않다는 것.
김재철 사장이 황 부사장을 퇴진 시킬 가능성은 극히 낮다. MBC의 한 관계자는 "김재철 사장이 이른바 '큰집'에서 '조인트'를 까인 것도 황희만 당시 보도본부장을 김 사장이 해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파업 사태의 핵심이 된 황 부사장은 내부의 '자진 사퇴' 요구에 "내가 자진 사퇴하면 김재철 사장에게 부담이 되기 때문에 사퇴할 수 없다"고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재철 사장뿐 아니라 한나라당이나 청와대,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침묵하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YTN이 구본홍 전 사장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일 때만 해도 방통위나 문광부에서 '방송 재허가' 문제까지 들어 노조를 압박했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이다. 예전 미디어 관련 법 반대 파업에 강한 비난 사설을 쏟아냈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 언론도 MBC 노조 파업에 대한 별다른 비판이 없다.
MBC 노조는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슈화시키지 않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근행 위원장은 "지방선거 전에 MBC 파업이 눈길을 끌지 못하도록 침묵하고 있는 것"이라고 봤다. 같은 맥락에서 MBC 노조는 5월 중에 공권력 투입 등도 없으리라고 보고 있다. MBC 경영진은 최대한 마찰음을 내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다.
"김재철이 파업 장기화를 유도하고 있다?"
그러나 MBC 노조 역시 고민이 많다. 날이 갈수록 MBC 내부 여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지만, 무한정 파업을 이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김 사장이 황 부사장을 선임하면서 "MBC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고 해석한 것처럼 김 사장이 "MBC 파업의 장기화를 유도하고 있다"고 해석되는 상황에서 끝없는 파업만 이어갈 수도 없다.
MBC 내부에서도 파업 장기화에 따른 결방 사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9>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 스페셜 방송도 한 달째다. 이대로라면 파업을 종료해도 정상적인 방송 체제로 돌아가는데 상당 시간이 소요되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7일에는 12일째 단식을 이어가던 이근행 위원장이 병원에 실려갔다. MBC 노조 관계자는 "장기 파업과 창사 최대 규모의 기명 성명, 단식 등 사실 노조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다했다"며 "상식적인 수준이라면 이정도 수준에서 해법이 나왔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MBC 노조가 섣불리 파업을 풀고 복귀하기도 어렵다. 파업을 풀 명분도 없고, 김재철 사장이 MBC 사장으로서의 권한을 갖고 있는 한 파업 이후 보복성 인사 전횡이나 방송 개입 등의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예상치 못한 시점에 노조 집행부의 결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하나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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