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언급한 대로 미국 사회는 보수화되어 있다. (☞관련 기사 보기: 보수 언론이 보수 권력을 만든다) 언론학자들은 언론의 판세도 보수언론이 리버럴 언론보다 우세하다고 본다. 미국이 보수화된 것은 보수주의자들이 그들의 세력을 조직화하고 보수 철학을 체계화하는 싱크탱크를 은밀하게 운영하면서 미디어를 정권 쟁취와 이념 전파의 도구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언론 윤리는 오간 데 없어졌다. 많은 언론인과 언론학자들이 보수언론의 이러한 탈선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행위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세력은 그들의 정권 유지와 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언론을 정상으로 되돌릴 의사가 없어 보인다.
1974년 2월22일, 미국 조지아 주의 애틀란타에서는 "미국혁명군" 소속이라는 남자가 일간 <애틀란타 컨스티튜션(Atlanta Constitution)> 의 편집인을 납치하고 몸값으로 700만 달러를 요구한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정치적 납치사건이었고, 체포된 범인은 "리버럴 신문의 지나친 편파보도를 막는 데 쓰려고" 몸값으로 700만 달러를 요구했다고 밝혀 미국 언론에 충격을 줬다. 이때는 리버럴 신문을 대표하는 <워싱턴 포스트>가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해 공화당의 닉슨 대통령이 곤경에 처해 있을 때였다. 리버럴 신문에 대한 보수 세력의 불만이 촉발시킨 사건이었던 셈. 동시에 자기들의 이익에 반하는 보도는 용납하지 못하는 보수 세력의 언론관을 극명하게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반세기 가까이 계속되는 보수세력의 '리버럴 공격'
1964년 대선, 공화당의 골드워터 후보가 민주당의 존슨에게 참패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리버럴 언론이 건재하는 한 선거로 정권을 잡기는 어렵다고 판단하고 리버럴 언론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는 한편 보수 세력 만회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우선 리버럴 미디어의 신뢰를 허무는 것이 첫번째 공격이었다. '편파보도' 의혹을 제기하는 것. 미디어는 어떤 것이든 허점이 없을 수 없기 때문에 얼마든지 트집을 잡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그 점을 놓지지 않았고 이러한 공세는 반세기 가까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은 사회가 보수화돼 오히려 우익이 리버럴(좌파)보다 우세해졌다. 맥퍼슨 교수는 보수주의자들은 떳떳이 자기들을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는데 리버럴은 스스로를 좌파나 리버럴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1세기 전에 유행하던 표현인 '진보주의자'라고 말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미디어 판도가 전반적으로 보수 세력에 유리해졌음을 보여준다. 그런데도 보수주의자들은 아직도 리버럴 언론의 편파 보도를 따진다.
왜 그러는가? 여론을 계속 지배하려는 보수주의자들의 계산을 엿볼 수 있다. 보수주의자들의 속셈을 간파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덜(Michael Sandel)은 이미 20년 전에 이런 말을 했다.
"리버럴은 그들이 반대하는 것을 옹호하거나 -예를 들어 포르노- 인기가 없는 주장을 변호하는 데 자부심을 느끼는 습관이 있다(볼테르를 존경해서?)… 보수주의자들은 이것을 간파하고 리버럴의 입장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왜곡해서 이용한다.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본인이 낙태를 하겠다는 사람으로, 학교 내 기도를 반대하는 사람은 기도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으로, 공산주의자도 그 권리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고 변호하는 사람은 공산주의 사상 자체를 지지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어) 비난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이 객관적인 보도를 하고 균형 잡힌 논평을 하려고 노력하는 리버럴 언론을 비난하는 것도 비슷한 의도로 볼 수 있다. 말을 무기로 해서 싸우는 "언어 전쟁"에서 항상 보수주의자들은 리버럴을 공격하는 데 한 수 더 앞서왔다.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의 리버럴한 언론들이 '편견(bias)'에 치우쳤다고 공격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기자들은 전반적으로 스스로를 중도에 속한다고 자평하고 있다. '수월 저널리즘 프로젝트(PEJ)'가 2006년 조사한 바에 의하면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생각하는 기자는 아주 적고 대다수의 기자는 스스로를 중도나 온건 리버럴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많은 기자들이 저널리즘을 사회개혁을 실현하는데 기여하는 수단으로 보고 이 직업을 택하기 때문에 기자는 약간 왼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향'이 보도에 드러나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언론감시단체 '보도의 공정과 정확((FAIR)'이 자주 지적하고 있듯, 리버럴 편견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보수 편견도 존재한다. 실제로 보도의 편파성의 책임은 기자보다는 발행인이나 광고주에게 있는데, 역사적으로 신문발행인은 대부분 공화당원이었고 이들은 미국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뉴딜정책을 실시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했었다. 보수주의자들은 리버럴한 언론에게 '편파성'을 문제삼지만, 실제로는 보수주의자들의 편파성이 더 문제가 되는 상황이 초래되고 있는 셈이다.
말을 무기로 쓰는 "언어전쟁"
레이건의 대통령 당선은 보수 정부의 공식 복귀선언이었다. 레이건은 다양한 보수 세력을 하나로 체계화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레이건이 자리를 떠날 때는 보수 세력의 조직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자리의 후보를 대부분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당선시키고 반대하는 정치인을 압박하고 굴복시킬 수 있을 만큼 강해졌다.
보수 세력의 힘의 원천은, 보수 칼럼니스트 조지 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여론과 보수주의의 가치를 일치시키는데 머리를 굴리는 치밀한 싱크탱크와 관련 연구조직이다. 이들 싱크탱크나 조직의 이름은 신문 기사나 텔레비전 회면에 가끔 소개되는 일이 있지만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그들이 실제로 관여하는 조직의 운영이나 활동에 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1960년까지 미국에는 제대로 된 우익조직이 거의 없었다. 1962년 "자유를 위한 젊은 미국인"(Young Americans for Freedom)이라는 조직이 창설될 때 1만8000 명이 메디슨 스퀘어에 집결해서 대대적인 언론의 각광을 받았다. 그래서 YAF가 설립된 날을 미국 보수운동의 탄생일로 보기도 한다. 그 이후에 1964년에 설립돼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되고 가장 큰 보수 로비 단체라고 불리는 보수주의 연맹(ACU)이 등장했다. ACU는 1974년부터 연례 보수정치행동대회(Conservative Political Action conference)를 개최하고 있는데 이 대회에는 전현직 공화당출신 대통령이 참석하는 등 미국보수의 세를 과시하는 축제가 됐다.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대학간 개인주의회(Intercollegiate Society of Individualists)'-후에 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로 개명-도 주목할 만한 보수 조직이다. '행동단체'는 아니지만 ISI는 수백 명의 미래 활동가들에게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 철학에 관한 확고한 기반을 닦아주고 있다. 그 회원들은 추후에 레이건 행정부를 포함해서 여러 정부조직에서 근무하고 헤리티지 재단, 필라델피아회, 클레어모트 연구소, 토마스 아퀴나스대학 같은 보수 조직을 창설하는데 역할을 했다.
각 곳에 '보수주의자'를 공급하는 싱크탱크들
보수 싱크탱크 중에서 가장 언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단체가 헤리티지재단(Heritage Foundation)이다. 쿠어스 맥주회사 사주인 조셉 쿠어스의 재정 지원으로 폴 웨이리치(Paul Weyrich)와 에드윈 풀너(Edwin Feulner)가 1973년 설립한 헤리티지 재단은 보수주의 공공정책을 수립하고 증진하는 사명을 추구하는 싱크탱크이다. 한 비평가의 표현을 빌리면 이 재단은 "미디어를 흡수하는데 전념하는 모든 싱크탱크의 모체"로 연간 수백 만 달러를 미디어와 정부 관련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재단은 수많은 전문가를 언론매체에 공급하고 신디케이트에 가입한 칼럼니스트와 라디오 토크쇼 진행자를 확보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자체 텔레비전과 라디오 방송국을 거느리고 보수 언론인과 블로거를 교육하는 양성캠프도 운영하고 있다. 보수 싱크탱크의 기함인 헤리티지재단이 한국 뉴라이트들이 좌파라고 규탄한 김대중 정부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보수 언론과 관련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조직으로서 1979년 설립된 '리더십 연구소(Leadership Institute)'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레이건의 참모를 지냈고 오랫동안 공화당 핵심 인물로 활약하고 있는 모톤 블랙웰(Morton Blackwell)이 비영리회사로 설립한 리더십 연구소는 그 목적을 "정치와 정부 및 미디어 분야에 보수주의자를 찾아 훈련하고 배치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연구소가 개최하는 수십 가지의 워크숍과 세미나에는 5만3000 명이 참여한다고 홍보하는데 많은 프로그램이 미디어와 관련된 프로그램이다.
연구소 소개서를 보면 미디어의 성공과 공공정책 성공 간에는 분명한 경계가 없다. 두 분야는 서로 보완하는 관계에 있다고 설명한다. 연구소는 자기들이 운영하는 2일 코스의 방송저널리즘 학교를 "저널리즘에서 일하고 싶은 보수주의자들에게 원 스톱 풀 서비스 세미나"라고 선전하고 있다. 미디어 관점에서 가장 흥미로운 프로그램의 하나는 2일 코스 학생신문 발행학교(Students Publications School)로 참가자들에게 "당신 자신의 독자적인 보수 대학신문을 만들거나 현재의 대학신문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한 보수 전문가에 의하면 이 프로그램은 2003년 한 해만도 21개의 신문 창간을 지원했으며 약 1백 명의 연구소 졸업생이 TV매체에서 언론인으로 일하고 있다.
'분노와 공포의 토크쇼'
보수 세력이 그들의 조직을 정비하는데 는 20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출발은 1955년 리차드 비게리(Richard Viguerie)가 시작한 직접메일(direct mail)이었다. 직접메일은 추후 상세히 설명하겠지만 보수주의를 미국인에게 "팔고" 선전하는데 성공했다. 비게리를 "보수주의 핀매의 대부"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접메일은 받는 사람이 보수주의에 관해서 알고 믿게 하고 동조해서 돈을 기부하고 정치과정에 참여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해 새로운 보수 투표자와 활동가를 양산해 냈다.
직접메일의 한 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항상 "공포 분노 전술"을 응용하는 것이다. 분노와 공포감에 호소하는 이 전술은 나중에 라디오 토크쇼에서도 똑같이 활용된다. 분노 정치는 보수운동의 핵심 요소였다. 사람은 어떤 문제를 지지하는 것보다 반대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느낀다는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평가들은 이 전술이 정직하지 못하고 공정하지 못한 방법이라고 비판한다. 보수주의자들은 합리적인 논리 대신 대중의 격분을 자극할 문제를 제기해서 그것을 보수정책과 연계시키는 전술을 사용해서 대중을 동원한다. '문화적 분노가 정치적 경제적 목적 달성에 동원"된다고 보수문제 전문가인 토마스 프랭크는 평한다. 공격대상을 갖게 되면 그것을 타도하기 위해서 생각을 같이 하는 조직에 가입하거나 후원금을 보내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 보수 세력이 "좌파"를 공격하는데 사용하는 수법과 아주 흡사하다.
분노 전술은 리버럴에도 적용될 수 있으나 그 효과가 보수주의자들에게 적용하는 것 보다 덜하다. 분노의 회수나 강도가 리버럴보다는 보수주의자가 2배 더 많거나 강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리버럴은 정치에서 보수 진영에 비해 훨씬 불리하다. 보수주의자들은 무엇을 반대하고 중지시키고자 할 때 정치에 투신하는 반면 리버럴은 무엇을 지지할 때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 더구나 보수주의자들이 노리는 분노 공포 작전의 목적은 민주주의 개선에 있지 않고 더 많은 우익 투표자를 투표장으로 나오게 하는데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방법은 90년대 이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보수의 토크쇼에서 그대로 적용된다. 토크쇼 등장 이후 미국 정치가 극단의 양극화를 보이고 있는 이유를 진지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결론으로 미국 보수는 리버럴을 제압하는 조직과 미디어를 구축하고 개발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자만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 수단은 공정하지 못했고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었다. 특히 언론을 정치의 도구나 무기로 이용한 것은 하나의 죄악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이처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보수 세력의 집념에도 불구하고 2006년의 선거에서 공화당은 상하 양원을 민주당에 넘겨주어야 했고 2년 뒤 미국 국민은 역사상 최초로 흑인 민주당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조직과 언론 장악의 위력이 한계에 이르지 않았나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사건들이다. 우리도 정권 장악만을 기준으로 보수의 비민주적인 언론장악 수법을 배우려 할 것이 아니라 문제점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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