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나선시가 특별시로 지정되었고, 지난 해 12월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나진시 현지지도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다롄의 창리(創立)그룹이 2008년 10월 나진항 1호 부두를 10년간 임차했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되었다. 그리고 1월 27일 나선경제무역지대법 5차 개정을 통해 외국투자자는 물론 '해외 조선 동포'에 대해서도 투자를 허용하는 법률을 채택했다.
어떻게 볼 것인가? 실패의 추억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변화하는 동북경제권의 현실에서 나진의 미래를 새롭게 평가해 볼 필요가 있다.
방천의 아픔과 나진의 재발견
▲ 나진-선봉 지역 지도 ⓒ연합뉴스 |
당시 우리 일행들은 참으로 궁금했다. 이왕 비를 세울 거면 두만강 철교 너머 동해 바다쪽으로 세우지 왜 이 애매한 위치인가? 그랬으면 중국도 동해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랬더니 우리를 안내했던 연변대학의 교수님 말씀. "원래는 저 바닷가에 세우면서 청나라 고관이 관리인에게 이 비를 목숨처럼 여기고 지켜라 그랬는데, 그 관리인이 명령을 지킨다고 그만 자기 집 안마당으로 비를 갖고 왔고, 그곳이 바로 이 위치라는 전설이 있다." 모두들 웃었다.
방천은 중국의 아픔이다. 1991년 8월 리펑(李鵬) 총리가 방천 초소를 시찰하면서 썼다는 국경선상(國境線上)이라는 시가 있다. "두만강은 동으로 흐르고/토자패 앞에서 길이 끊겠네/초소에 올라 창해를 바라보니/다시 한 번 옛일을 돌아보게 하네"
과거의 아픈 역사에 대한 통절함이 배어 있다. 1858년 러시아에 의해 광활한 연해주를 잃고, 1886년 러시아와의 국경협상을 통해 동쪽 변방의 경계선이 그려진 것에 대한 회한이다.
결국 방천의 애매한 위치는 1990년대 초반 두만강 개발계획의 지지부진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동해로 나아가는 출구를 확보하고자 했지만, 통행 대가를 요구하는 러시아와 북한의 이해관계에 가로막혔다. 물론 중국쪽 내륙 항구와 연결되는 해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두만강 하구의 방대한 토사도 준설해야 했다. 당시 그와 같은 대규모 공사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나진의 재발견은 순전히 중국의 변화 때문이다. 2002년 중국이 동북 진흥계획을 시작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교통물류망의 구축이었다. 중국은 과거 동해로 나아가는 출구로 두만강을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다. 훈춘에서 나진까지 93km의 육상운송을 선택했다. 중국 내부적으로 동북 3성을 잇는 동변도 철도와 연계하고, 육로를 통해 나진항으로 연결시키는 것이다. 동북지역의 철도, 도로, 해운이 결합된 복합 운송체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왜 동북 진흥계획은 교통물류를 중시하는가? 동북지역은 그동안 출해 통로가 없었다. 그래서 길림성이나 흑룡강성의 화물은 대부분 장춘-심양-대련-연해지역-남부로 이어지는 물류통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가장 발전된 경제특구지역을 지나야 하기에 비용도 많이 들고, 화물적체 현상으로 시간도 많이 들었다.
나진은 중국의 동해 출구가 되었다. 이제 동북지역은 태평양으로의 접근권이 확보되었다. 그리고 홍콩이나 동남아와의 물류 통로도 확보했다. 나진이 북중관계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이 과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왜 나진항인가?
20세기 초 나진항은 일제의 대륙침략 거점이었다. 일본의 서부지역에서 만주로 들어가는 최단 종단항이다. 나진은 1921년 개항했다. 1930년대 일본이 만주국을 세운 이후 나진항의 지정학적 가치는 더욱 높아졌다. 일본은 지금의 장춘과 도문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을 한반도의 북단까지 연장하는 계획을 세웠고, 철도의 끝 지점 항구를 나진으로 결정했다.
일본은 만주철도회사를 앞세워 나진을 전략적인 항만으로 개발했고, 동시에 배후도시를 건설했다. 그래서 나진은 조선 최초의 시가지 계획령에 의해 도시계획이 고시된 도시다. 동시에 조선 최초로 토지계획 정리지구 지정고시가 이루어진 도시이기도 하다. 현재 나진시의 중심 시가지는 1934년에 추진된 나진시 시가지 구역의 가로망 계획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20세기 초 나진은 해양세력이 대륙으로 진출하는 입구였다면, 21세기 나진항은 대륙이 해양으로 나가는 출구다. 러시아도 이미 나진항 3호 부두의 50년 사용권을 확보한 바 있다. 러시아 극동에도 자루비노, 포시에트, 나홋까 등의 항구가 있다. 그런데도 러시아가 나진항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수심이 깊고, 물이 맑으며, 나진만(灣)의 지형적 특징으로 조수의 높낮이가 0.2-0.3m에 불과하다. 천혜의 항구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소련은 극동해군의 작전 및 부동항으로의 기항을 위해 나진항을 1970년대 중반까지 군사항구로 사용하기도 했다. 당시 소련은 항내까지 16km의 표준궤와 광궤의 복합철로를 부설했다. 지금도 러시아가 나진항을 중요하게 고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록 낡았지만 항구까지 인입 철로가 있다는 점은 화물운송에서 별도로 환적할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 나진항 부두 전경 ⓒ연합뉴스 |
나진·선봉의 미래
나선 지역이 당분간 경제특구로 성공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배후 도시가 부족하고, 통신·전력·용수 등 공단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도 열악하다. 주위에 산업시설이 부족하기 때문에 가공연계망 형성에도 어려움이 있다. 앞으로 위탁가공이 활성화될 압록강 유역의 단동-신의주권과 차이가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핵문제를 비롯한 국제환경도 유리하지 않고, 북한의 경제정책 또한 본격적인 외자 유치에 미흡하다.
그러나 나선지역의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눈을 돌려 동북경제권의 물류거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발전가능성이 크다. 동북 진흥계획은 중국 중앙 정부의 의지가 실려 있기 때문에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훈춘이 동북지역의 내륙과 북한을 중계하는 도시로서 떠오르고 있고, 나진항은 동북의 발전 수준을 반영할 것이다.
중국의 동북지역에서 이 지역으로의 접근성이 확대되면, 중국의 관광객도 증가할 것이다. 지금도 중국쪽 권하를 넘어, 원정리를 거쳐 많은 관광객들이 나선 지역을 찾고 있다. 평생가도 바다를 구경하기 어려운 동북사람들에게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는 매력적인 관광지가 아닐 수 없다. 그곳에 비파도가 있고, 물개들의 서식지도 있다. 물론 카지노 시설을 갖춘 영황호텔 역시 중국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이다.
관광객이 늘어나면 도시의 풍경도 달라진다.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특구인 심천도 1980년대 초반 인구 3만 명의 어촌에 불과했다. 초기 숙박시설, 편의시설 중심으로 투자가 이루어진 것은 그곳이 홍콩의 관광지였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선 지역은 중국의 동북경제권 발전에 핵심적이다. 러시아도 극동 개발 과정에서 나선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다. 나선은 북-중-러 삼각협력의 중계거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특징을 갖고 있다. 과거의 시각으로 나선지역을 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동북경제권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 과정에서 나선이 물류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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