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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지진, 신자유주의 허상 드러내"

[심층분석]크루그먼 "신자유주의 완화하면서 칠레 발전했다"

지난달 27일 규모 8.8의 지진이 강타한 칠레에서 5일 현재 사망자가 800명이 넘어섰다. 수백 명의 실종자들을 감안할 때 1000명이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칠레 지진이 규모 7.0의 아이티 지진보다 강도가 1000배 가까이 강한데, 사망자는 수백분의 1에 불과한 가장 큰 이유를 칠레의 '완벽한 지진 대비'에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지진 발생 후 정작 쓰나미 경고는 하지 않아 사망자의 3분의 2를 쓰나미 희생자로 만든 칠레 정부의 수준을 감안하면 '완벽한 대비'라는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남미의 일본'이라고 불리는 칠레의 지진 대비를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는 세계 최빈국 아이티와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진의 진원지와 진앙지에서도 사실 아이티와 칠레는 크게 달랐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칠레의 지진 사망자에 초점을 맞춘 보도들은 정작 칠레에서 눈여겨볼 지점들을 흐리게 만들 위험이 있다.

지진으로 드러난 '신자유주의의 허상'

이를 반영하듯, 칠레 대지진에서 정작 초점을 맞춰야 할 점은 '지진보다 더 무서운 빈부격차'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진이 일상생활이라는 칠레에서도 이번 지진은 1960년 규모 9.5의 지진 이후 최대의 참사다. 하지만 이번 칠레 사태는 당시와 달리 지진은 천재지변이지만 지진의 피해는 '빈부의 차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사회 양극화' 문제를 극명하게 드러냈다는 것이다.

현지 르포들에 따르면, 지진의 집중적인 피해를 받은 곳은 '칠레의 아이티'라는 조롱을 받는 빈민촌들이고, 부촌은 칠레가 자랑하는 '내진설계' 등 엄격한 건축 법규 덕분에 타격을 덜 받고 신속히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또한 지진으로 혼란한 상황에서 서로 돕는 이웃이 되기는커녕 약탈과 방화가 기승을 부리자 "지진보다 약탈 등 범죄가 더 무섭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런 르포들은 지진 참사를 그저 '자연재해'와 '인도주의'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는 기사들과 달리 충격을 안겨준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2일 미국의 권위있는 정치평론사이트 <살롱닷컴>에 게재된 'The Chicago boys and the Chilean earthquake'라는 칼럼은 주목할 만하다.

'시카고 보이'는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파가 배출한 칠레의 경제학자들을 가리킨다. 밀턴 프리드먼(2006년 사망)이 창시한 시카고 학파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며 미국발 금융위기 발생 이전까지 30년 동안 세계 경제학계를 지배했다.

1970년 4월 세계에서 처음으로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 정권을 수립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국영화 정책을 실시하자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아우구스티노 피노체트가 쿠데타로 아옌데를 축출했다. '시카고 보이'들은 피노체트에 의해 등용돼 신자유주의 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칠레는 지난 1월 11일 남미 국가로는 처음으로 '선진국 모임'이라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1번째 회원국이 됐다.

하지만 이 칼럼은 지진 사태로 드러난 OECD 회원국 칠레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하고 있다. 다음은 이 글(☞원문보기)의 주요내용이다.<편집자>

밀턴 프리드먼이 칠레의 수호신?

브렛 스티븐스는 <월스트리트저널>에서 "지난달 28일 새벽 칠레에 지진이 덮쳤을 때 분명 밀턴 프리드먼의 혼령이 보호의 손길을 내밀며 배회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프리드먼 덕분에 칠레는 다른 곳이었다면 대참사가 되었을 비극을 견뎌냈다"고도 썼다.

스티븐스의 논리는 간단하다. 1973년 피노체트 장군은 미국이 지원한 쿠데타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아옌데를 축출하고 집권했다. 그 이후 프리드먼를 대부로 하는 '시카고 보이'들은 급진적인 자유시장 정책을 수립했다. 이때부터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견고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스티븐스는 부유한 나라들은 내진설계 등 강화된 건물 법규를 시행할 여유가 생기고, 따라서 프리드먼이 많은 생명을 구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정부의 건축 규제 정책에 좌우되는 사안을 프리드먼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억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지난 1960년 규모 9.5의 지진에 따른 참사 이후 강화된 강력한 건축 법규가 이번 지진 피해를 줄인 보다 중요한 요인이 아닐까 생각할 것이다.

아이티는 240년 동안 지난 1월 같은 강력한 지진을 경험하지 않았다. 건축 법규는 강력한 지진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지역에서 보다 엄격해지는 경향이 있다.

피노체트와 공모한 시카고 학파

<월스트리트저널>에게 지진은 자유시장 근본주의를 밀어부칠 또다른 기회일 뿐이다. 프리드먼의 커다란 오점 중 하나는 피노체트 정부와 연계다. 피노체트 집권 17년 동안 2000~3000명이 살해되고, 수십 만명의 시민들이 체포됐다. 언론과 각종 시민의 자유는 강력하게 통제됐다.

프리드먼의 제자들은 시카고 보이들과 공모해 칠레 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선도 역할을 했다는 과거를 지워버리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흔적을 지우기는 어렵다.

경제성장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이 민주적으로 표현하는 염원을 짓밟아버리고 테러에 의한 독재가 필요하다면 정말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일까?

하지만 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시카고 학파의 경제정책이 칠레가 현재 누리는 경제적 번영에 얼마나 많이 기여했느냐는 의문이다. 칠레의 국내총생산(GDP)의 20%는 광산업에서 나온다. 특히 칠레 산업의 꽃이라고 할 구리 산업은 코델코라는 국영기업에 의해 완전히 독점돼 있다는 사실은 크게 주목할 가치가 있다.

칠레의 번영, 과연 신자유주의 정책 덕분인가

시카고 학파 경제학이 내세우는 남미의 모델이 가장 중요한 경제자원을 국가가 통제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라.

또한 칠레는 세계에서 최악의 소득 불평등 국가이며, 피노체트의 집권을 종식한 국민투표 이후 소득 격차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기 시작했을 뿐이다. 칠레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는 것도 세금 인상과 사회보장 지출을 늘리는 것이다.

현재 일부 비판적인 목격자들은 아이티와 비교할 정도로 칠레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소식들은 칠레의 소득 격차 해소는 완결하기 쉽지 않은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득 격차가 심한 체제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특히 큰 재난이 닥치면 더욱 그렇다. 그것이 칠레가 주는 진정한 교훈일 것이다. 또한 미국에 거주하는 시카고 보이들이 곰곰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교훈이기도 하다.


"시카고 보이의 경제적 성취는 환상"

3일(현지시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Fantasies of the Chicago Boys'라는 블로그에서 시카고 보이들이 이뤄냈다는 경제발전이나 연금제도는 환상이라고 꼬집었다.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칠레의 연금제도는 한 때 세계가 주목할 만한 이상적인 제도로 선전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빛좋은 개살구'라는 것이 드러나 지금은 칠레 국민도 증오하는 제도가 되었다.

칠레가 지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사망자가 적은 것은 밀턴 프리드먼이 옳았다는 증거라는 주장에 대해 크루그먼 교수는 프리드먼의 과거 인터뷰 발언을 제시하며 반박했다. 프리드먼은 건축 법규를 선호하는 편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는 원하지 않는 비용을 강요한다는 의미에서 프리드먼은 '정부 지출의 한 형태'라고 불렀다.

이어 크루그먼 교수는 피노체트 정권 하에서 칠레의 경제정책이 거두었다는 업적은 환상이라고 일축했다. 자유시장주의자들이 칠레를 개방해 경제호황을 이뤘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크루그먼 교수는 칠레의 1인당 GDP 변천을 보여주는 도표(하단 참조)를 제시하며 실제로 진행된 칠레의 경제변화를 설명했다. 크루그먼 교수에 따르면, 칠레는 1970년대 초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아옌데 정부의 실정과 쿠데타 등에 따른 혼란 탓도 있다. 이후 칠레는 대대적인 자본 유입에 힘입어 경제가 회복됐지만 대부분 원상복귀 수준이었다.

다시 1980년대초에 큰 위기가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부채 위기에 속하는 것이지만 칠레는 다른 주요 경제국들에 비해 훨씬 큰 타격을 받았다. 칠레가 1970년대초에 비해 확실하게 앞서나가게 된 것은 강경한 시장주의 정책들이 뚜렷하게 완화된 1980년대말이 되어서다.
▲ ⓒTotal Economy Datab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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