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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화폐개혁, 과연 '대혼란' 불러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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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화폐개혁, 과연 '대혼란' 불러왔나?

[한반도 브리핑] 이명박 정부 대북 정보 판단의 근거를 묻는다

올해 초 "연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본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BBC> 인터뷰 이후 남북 정상회담 연내 개최설이 기정사실처럼 확산됐다.

그러나 그 후 정리된 정부의 공식입장은 "정상회담을 의제로 진행 중인 남북접촉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최근에는 북한이 받기 어려운 '북핵 문제의 뚜렷한 진전',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 해결'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정부의 변화된 기류에는 북한 내부 정세에 대한 잘못된 판단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대남 정책 난맥상?
▲ 23일 국회 정보위에 나온 원세훈 국정원장 ⓒ연합뉴스

지난 23일 원세훈 국정원장은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안보고를 통해 예민한 내용들을 공개했다. 그중 주목되는 내용은 두 가지다. 첫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유훈을 관철하지 못했다는 자탄 등 현안 해결에 대한 초조감을 많이 피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북한 내부 정책추진의 난맥상이 심화되지 않을까 전망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북한이 지난해 화폐개혁 이후 현재 총체적 후유증에 직면해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며 이 문제로 주민과 당국간 갈등도 발생하는 등 문제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내용이다.

이같은 발언은 '북한의 대남 강온 전략이 치밀한 전략에 따른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 의사결정이 오락가락한 데 원인이 있다'거나 '화폐개혁 이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물가가 오르고 주민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일부 공식 확인한 셈이다.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고위당국자들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주했다는 점에서 특별히 '의도성'이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러한 분석과 판단이 얼마나 현실을 반영하고 있느냐는 정확성과 이 분석이 정부의 대북정책에 그대로 반영될 때 나타날 수 있는 후유증이다.

우선 북한 내부에 대남정책을 둘러싸고 강온 갈등이 나타나고 있고, 이것이 북한 정책 정책에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은 올해 북한의 대남정책 흐름과 동떨어진 판단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조차도 "북한 사회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중심으로 정상적으로 움직여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올해 개성·금강산 문제 논의를 중심으로 대화기조를 유지하면서 남북 정상회담을 타진하는 한편, 안보 및 체제와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무력시위 등을 통해 강경입장을 보여 왔다.

북한의 대화 요구와 NLL지 역에 대한 포격이라는 상반된 신호는 북한 지도부 내부의 분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화에 소극적인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전형적인 전술인 것이다. 특히 일부 북측의 관계자들은 올해 상반기까지 미국과 한국 정부의 '전략적 인내'로 인해 북미·남북관계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질 경우 하반기부터는 대남 강경노선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예고하고 있다.

기존 경제난까지 화폐개혁 후유증으로 몰아붙이나

둘째 화폐개혁 이후 나타나고 있는 북한 내부의 혼란에 대한 분석은 부분적인 현상을 너무 과도하게 평가하고 있는 듯하다.

북한의 화폐개혁은 '시장 영역'의 축소와 계획경제의 정상화, 재정 확충, 해외자본의 유치 등 다양한 목적으로 단행됐다. 또 1946년 토지개혁, 2002년 사회주의 경제관리개선 조치(7.1조치)에 비견될 정도로 북한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큰 사안이다. 그런 만큼 아무리 준비를 꼼꼼히 했다고 하더라도 일정 기간 혼란이 발생할 수 있고, 그에 대한 추가조치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 말 북한 내각의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은 "7.1 조치 이후 많은 부정적 요소가 발생했던 경험을 기초로 화폐개혁 이후 발생할 파장에 대해 많은 준비를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다만 '2010년 중앙 물자공급 사업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일부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북한의 경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경제흐름과 화폐개혁 이후 나타나고 있는 부분적인 동향을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북한 경제는 전반적으로 상승곡선을 타고 있다. 김정일 위원장은 지난해 공장과 기업소 시찰 등 경제부문에 대한 67회의 현지지도를 통해 원산청년발전소, 성진제강연합기업소, 김책제철연합기업소 등 전기·금속공업을 정상화하는데 성과를 냈다. 올해 들어서도 흥남제련소, 락원기계련합기업소, 2.8비날론연합기업소 등을 현지지도해 북의 '전략적 기업소'의 현대화와 정상가동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북한은 유엔의 대북제재 이후 북한이 주력 사업 분야로 설정한 광산, 관광, IT분야에 국가적 투자를 하고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 화폐개혁 이후 급속한 물가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안정적인 식량 공급, 올해 농사에 필요한 비료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계속되어온 이 같은 어려움 때문에 북한 사회가 '대혼란'에 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보당국이 언급한 주민-당국 갈등 현상은 대단히 제한된 현상으로 보인다.

더구나 화폐개혁을 하면서 의도했던 재정 수입 확충은 일정한 성과를 얻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화폐개혁을 단행하면서 예고한 것처럼 모든 상점·식당들에서 외화 사용을 금지했다. 외화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고 개인이 가지고 있는 외화를 재정으로 흡수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최근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대북 지원단체의 한 관계자는 "전에는 유로나 달러로 결제하던 계산을 이제는 환전(1달러=북한돈 100원)이라는 시스템을 거쳐야 했다. 양각도 호텔이나 모든 상점에 환전을 담당하는 담당자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방식은 새로운 형식은 아니다. 2002년 7.1 조치가 실시된 직후 북한은 외화 사용을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외화교환 방식을 도입한 경험이 있다. 당시에는 달러를 북한돈으로 환전을 하면 '외화환전 영수증'을 발행하고, 북한돈을 쓸 때마다 사용내역을 기재하도록 했었다.

▲ 2002년 경 북한에서 사용된 '외화교환 령수증' ⓒ정창현
▲ 북한돈 사용 내역 기재 상황 ⓒ정창현

이 방식은 이후 환전의 번거로움 등 여러 요인으로 확대 시행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사용내용 기재만 빼고 외화환전을 통해 북한돈 만을 사용하는 방식을 정착시키려는 것으로 보인다. 형식적 측면만 보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결제시스템이다. 내부에서 유통되고 있는 달러를 통제하고, 이를 재정적으로 흡수하려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즉 화폐개혁 이후 북한 주민의 생활경제에 일부 혼선이 빗어지고 있지만 '대혼란'을 언급할 정도는 아니며, 화폐개혁을 하면서 달성하고자 했던 북한 당국의 일부 목표는 일정한 성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북한의 한 관계자는 "화폐개혁 이후 나타난 부정적 요소에 대해 남측에서 과도하게 부풀리고 있는데, 공화국(북)은 자본주의 사회와 달리 화폐가 차지하는 비중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화와 무력시위 교차되는 3월

다양한 경로로 입수되는 북한 관련 내용은 어떤 시각과 측면에서 분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북한 지도부의 혼선과 주민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확대 해석이 '원칙 있고 일관된 대북정책'을 내세운 우리 정부의 '기다리는 전략'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면 자칫 정보와 판단의 왜곡을 가져올 수도 있다.

더구나 남북 정상회담의 저지 또는 속도조절을 노렸거나 정상회담 의제 논의에서 북한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면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4일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우리는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대한 대응에 유래 없는 일치를 이뤄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초 워싱턴을 다녀온 김태효 청와대 전략비서관도 22일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면서 임기 내에 남북관계에 좋은 결과가 나오든 안 나오든 "어떤 평가를 받더라도 두렵지 않다"고 밝혔다. 남은 임기 3년 동안 대북 강경정책을 견지하겠다는 입장을 강력히 피력해 북한의 양보를 촉구한 셈이다.

그러나 국제공조를 통한 대북제재나 원칙 있는 대북정책 자체가 현재 대북정책의 핵심목표일 수는 없다.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에 진전이 없다면 그것은 실패한 정책일 뿐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의 이같은 정책이 북한 내부의 어려움을 과도하게 평가한 '아전인수식 정세판단'에 기초한 것이라면 앞으로 북한 행보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대응을 기대하기는 더욱 난망할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북중 협력이 강화되면서 유엔의 대북 제재는 사실상 '솜방망이'가 됐다. 6자회담 재개와 남북대화에 적극적인 북한의 태도는 제재와 압박에 대한 굴복이 아니라 올해 어떻게든 평화협정 논의를 구체화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판단하는 것이 맞다.

3월 초에는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3월 8~18일에는 연례 한미 '키 리졸브' 연습이 실시된다. 북한은 이미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이 연습을 강행할 경우 "강력한 군사적 대응으로 맞받아 나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지난해 3월 9일부터 시작된 연습 기간 내내 남북간 군통신망을 끊고, 개성공단 육로통행도 3차례 차단한 바 있다. 올해도 북한의 반발 수위가 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3월에는 또다시 대화와 무력시위가 교차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정부는 쌀·비료 지원에 대해 '인도적 지원'이 아닌 '전략적 지원'이라고 규정하면서 핵문제와 연계시키고 있다. 국제정세와 남북관계를 고려해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것이다. 2월 초 일부 여권의 고위인사들이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6자회담 재개의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고 발언한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그러나 정부의 의지와 상관없이 6자회담은 4월 초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때 가서 쌀과 비료를 지원할 경우 그것은 '전략적 지원'이 아니라 상황에 끌려가는 대북지원에 그치게 될 것이다. 쌀·비료 지원이 북한을 움직이게 하는 '전략적 수단'이라면 6자회담 재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고,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성을 유지하고 있는 지금이 그 수단을 쓸 적기가 아닐까?

'전략적 인내"를 강조하며 대북정책 부재를 드러내고 있는 한국과 미국 정부에 대한 답답함보다 북한이 언제까지 '전략적 인내'를 하며 남북대화 기조를 유지할 지가 더 우려된다. 지난해 북한의 2차 핵실험으로 조성됐던 것보다 더 심각한 위기상황이 도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수 있는 시한도 이제 6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주관적인 정세인식에서 벗어나 남북대화에 돌파구를 여는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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