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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없는 오바마, 부시와 닮거나 그보다 못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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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정책 없는 오바마, 부시와 닮거나 그보다 못하거나

김창수 '통일맞이' 집행위원이 이번주부터 '한반도 브리핑'의 새로운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김창수 위원은 노무현 정부 당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행정관으로 근무한 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전문위원을 지냈습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있던 김 위원은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 2008년 12월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회의 장면. 이 회의를 끝으로 6자회담은 1년이 넘도록 다시 열리지 않고 있다. 그 사이 몇 나라 수석대표들의 얼굴도 바뀌었다. ⓒ연합뉴스

길어지는 샅바싸움

작년 12월 8일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한을 방문한 이후 북미대화와 6자회담이 병행해서 재개될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뜸 들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 지금까지 다된 밥에 재 뿌리는 경우도 여러 차례 보았다. 뜸 들이는 기간이 길어지는 것을 결코 마음 편하게 지켜볼 수 없는 이유이다.

보즈워스 방북 이후에만 하더라도 올해 2월 14일이 한국 설날, 중국 춘절이므로 그 이전에 한 차례의 추가적인 북미접촉을 한 후에 6자회담이 재개될 것으로 대체로 예상했다. 그러나 대화의 가닥이 아직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한미연합사령부는 '키리졸브/독수리 군사연습(KR/FE 2010)'을 3월 8일부터 18일까지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6자회담 재개 시기는 연초에 예상 보다 더 늦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4월 12일과 13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40여개 각국 정상들이 참가하는 '핵안보 정상회의'(Nuclear Security Summit)가 열린다. 5월 3일부터 28일까지는 뉴욕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 평가회의가 이어진다.

6자회담 재개 시기가 늦어진다면 두 회의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전환점이 마련될 가능성도 더욱 낮아질 것이다. 게다가 지금 미국과 중국은 위안화 환율, 보호무역, 달라이 라마, 대만 무기 판매, 구글 등의 문제에서 사사건건 충돌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이란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으면 외교적 고립이 불가피하다"는 강성 발언을 쏟아 놓았다.

중국은 '할 일은 한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입장이다. 이란 핵문제뿐만 아니라 핵안보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어깃장을 놓을 수 있다. 미중 갈등이 심해져서 중국이 핵안보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 이 회의에서 북핵 문제 해결의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물거품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미 양국이 북핵 문제라도 성과를 내야한다고 접근할 수도 있겠으나 뚜렷한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과 중국 사이를 오가는 바쁜 걸음만 보일 뿐이다.

강화된 협상카드 마주하는 미국의 고민

북한과 미국이 샅바싸움을 길게 하는 것은 보즈워스 방북 이후에도 미국 내부에서 북한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irreversible dismantlement)의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기 때문이다.

미 국가정보국(DNI)은 지난 2일 상원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연례 안보위협 보고서(Annual Threat Assessment)'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문보기) DNI는 북한이 최근 펼치는 대화공세에 대해서는 "핵과 미사일 능력으로 유리해진 협상 포지션을 활용하기 위한 의도"라고 보았다.

특히 작년 10월 원자바오 중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핵보유국 지위를 유지하면서 협상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 조야에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문이 확산되고 있었다. 김정일 위원장의 이 발언으로 북한의 핵 포기 의사에 대한 미국 정부의 의문이 더 커졌다는 것이 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가정보국의 보고서는 이런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북한의 대화공세는 핵 포기의 대가를 더 많이 얻기 위한 것인데, 이에 대한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 이 보고서에 담겨 있는 미국 정부의 깊은 고민거리이다. 한미 양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미국 정부가 북한과 협상을 기피하면 북한의 핵 저장고를 늘려서 결국 북한의 협상 수단만 증대시켜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 우려는 이미 현실화되어 미국 정부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계속되는 대화공세 때문에 미국 정부는 과거처럼 북한의 핵 확산을 막는 범위에서 북한에 대한 무시정책을 쓰기에도 난처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기 전에 북한에 대한 제재 완화 조치를 취하는 것은 북한의 잘못에 보상한다는 여론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이런 혼돈 상태에서 북한 문제는 미국의 정책결정의 우선순위에서 또 밀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는데 북핵 문제 대한 창조적 해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경제 제재 해제와 평화협정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6자회담 복귀가 우선이라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식의 원초적인 논쟁만이 있을 뿐이다.

오바마, 시험대에 올라

이렇게 혼돈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북한과 미국이 대화를 시작한 1988년 이래로 보기 드문 현상이다. 과거 현안이 분명한 상황에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책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1994년 1차 핵 위기 때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으로 전격적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1998년 대포동 미사일로 알려진 광명성 1호 발사 때는 페리보고서를 통해 정책적인 접근으로 해법을 모색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에는 미국 내부의 정치 요인으로 곧바로 2.13 합의를 했다.

따라서 지금 상황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역량을 과거시기와 비교하는 시험대에 올려놓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후보 시절 북한과도 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오바마 정부의 인수위 시절에는 100일 이내에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조속히 마치고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제안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는 아직도 대북정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01년에 출범한 부시 정부도 5개월가량의 재검토 기간을 거쳐 대북정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핵, 미사일, 재래식 무기 등의 위협 해소와 인도적 지원, 제재 조치 완화, 북미관계 정상화를 연결시키는 구상이었다. 물론 집행 과정에서 제대로 이행되지는 않았다.

오바마 정부가 대북정책의 기본 가이드라인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출범 직전부터 이어진 북한의 강경책 때문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북한 내부 사정 때문에 기다리면 된다고 오판한 것도 한 몫 했다.

▲ 부시 행정부도 비록 이행되지 않긴 했지만 취임 반년 만에 대북정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는 1년이 지나도록 대북정책의 기본 가이드라인조차 발표하지 못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외교적 지혜 없었던 북한

대북정책의 가닥을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 시간은 흐르고, 이제 상황이 복잡해진 상태에서 다른 현안들에 우선순위를 내주고 있다.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연이어 취한 강경 조치를 당황스럽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북정책을 수립할 노력이 없이 강경한 맞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대북정책의 기조를 잡는 시간을 잃게 만들어버렸다. 94년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이어 세 번씩이나 북한의 핵을 구입할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인식이 대북정책의 부재를 초래했다.

물론 북한과 미국의 상호관계 속에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보는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은 과거 부시 정부가 출범할 때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할 때도 초반에는 지켜보았다. 그러나 오마바 정부에 대해서는 출범하기도 전부터 엄포를 놓기 시작했다. 지금 시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이런 조치는 당시의 일반적인 분석이었던 '관심끌기용'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판을 크게 해서 크게 해결하겠다,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 종이조각 합의를 넘어서겠다는 차원에서 볼 수 있다. 이는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의 목표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조치가 미국의 강경 여론을 형성하는 원인이 되면서 협상도 대결도 아닌 지금처럼 애매한 상태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핵 없는 세계'를 위해 야심찬 프라하선언을 하는 날 새벽에 로켓을 발사하거나,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2006년)은 호기일 수는 있지만 외교에서 필요한 지혜는 아니다.

북한의 패를 읽은 미국의 선택은?

지난 15일 북한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앞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미간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하는 상황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이런 의도에 대해 오바마 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북한이 2012년 강성대국 건설을 목표로 경제 건설에 매진하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북한이 쥐고 있는 패를 절반은 공개한 것이나 다름없다. 북한의 중기적인 목표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협상에서 상대의 패를 읽은 것은 일반적으로 유리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북한의 패를 읽었고 북한이 2012년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기다리면 북한이 다급해질 것이라고 해석할 것인가, 대화와 협상을 통해 2012년까지 비핵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할 것인가?

미국은 북한에 대해 인도나 파키스탄과 같은 핵보유국 지위를 보장해 줄 수 없다. 동북아로 핵이 확산되는 것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핵 수출만 막고 핵 보유는 묵인하는 상태로 관리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것은 핵 수출이라는 더 큰 카드를 북한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플루토늄 핵무기를 비롯해 농축우라늄 핵무기까지 완전한 비핵화를 이루는 것이 미국의 목표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관계정상화, 평화협정 체결, 경제지원까지 포함하는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 대북정책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미국 정부의 자성이 필요하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한국의 보수 세력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수혈을 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을 증대시켜서 협상카드를 수혈해준 것은 부시 정부였다. 지금까지 보여준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은 강경대응은 있었지만, 그것은 효과적이지도 않고 실효성도 없는 무기력한 것이었다. 자칫하면 부시 정부와 결과적으로 비슷하다는 비판에 부딪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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