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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 도시' 된 아이티, 한국에 손을 내민 이유는?

[신음하는 아이티] <7·끝> 포르토프랭스의 한인들 - 한국동서발전

"아이티에 각종 구호와 지원은 인근 국가들이 많이 해주고 있으니까 우리는 남들이 하는 걸 따라 하지 말고 전력이나 도로 같은 기간산업을 지원해야 한다. 그 어떤 구호 활동보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대지진이 있기 전까지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 아이티. 그곳에 한국의 발전(發電) 회사가 진출해 발전소를 짓고 있다는 것은 의외였다. 발전소 건설 사업을 현지에서 책임지고 있는 한국동서발전 오태환 차장은 한국이 아이티에 특색 있게 할 수 있는 지원은 바로 '전력'이라고 강조했다.

오 차장과 같은 생각들이 모아져 한국동서발전은 지난 20일 아이티에 전력 설비 피해 진단팀을 급파했다. 동서발전 직원 4명과 한전 직원 2명으로 구성된 진단팀은 23일부터 7일간 현지에 머물며 전력 설비 피해 상황을 조사하고 있다. 또한 가능한 선에서 임시 복구 작업도 하고 있다.

전담팀이 방문하는 곳은 동서발전이 짓고 있는 발전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들은 포르토프랭스에 있는 3개 발전소와 9개 변전소, 11개 송전라인, 9개 배전망을 두루 돌아다니며 지진으로 인해 아이티의 전력 설비가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진단팀이 파견된 것은 무엇보다 아이티의 요청 때문이었다. 아이티 정부는 지난 18일 도미니카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와 동서발전의 지원을 원한다는 뜻을 전했다. 동서발전 관계자는 "이번 피해 진단 작업은 무상 원조 방식"이라며 "정부 관계 부처와 협의 후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요청이 들어온 지 하루만에 파견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포르토프랭스는 전력 시설이 열악해 지진이 있기 전에도 전체 전력 수요량의 20%만이 공급됐다. 부족한 전기는 각 건물에 마련된 자가발전기를 돌려 충당했다. 지진이 난 후에 포르토프랭스가 암흑 도시가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 E-POWER 발전소 부지의 모습. 이곳에 캠프를 차린 119 구조대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멀리 보이는 기둥은 기초파일링 작업에 쓰인다. ⓒ프레시안

아이티 정부가 유독 한국을 지목해 전력 복구 지원을 요청한 것은 동서발전이 포르토프랭의 시티 솔레이 인근에 30MW짜리 화력발전소를 짓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동서발전은 작년 7월부터 'E-POWER'라는 이름의 디젤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본 아이티 정부가 한국 전력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는 게 동서발전의 설명이다.

현지에서 만난 오태환 차장은 "건설을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계획대로 일을 진행한다는 이미지를 아이티 사람들에게 분명히 심어줬다고 생각한다"며 "지진이 났더라도 약속을 지킨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추가 비용을 들어서라도 설비를 계속 들여오고 공기 내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진 발생 후 아이티 전력청이 복구 계획을 짜는 데에도 자문을 하고 있다.

동서발전은 현재 지분 참여 방식으로 발전소를 짓고 있다. 또한 준공 후 15년 동안 'BOO 방식'(Build-Operate-Ownership. 민간 주도로 소요자금을 조달해 건설한 뒤 소유권을 가지고 운영하는 방식)으로 발전소를 운영하고 보수할 예정이다.

동서발전이 전액을 투자하기보다 현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아이티의 '전력 기득권 세력'을 감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가발전기 수입·판매 업체 등 발전 설비가 늘어나면 타격을 받는 이들의 견제를 막으려면 현지인들을 참여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이티 정부는 이 발전소가 정상 가동되면 전력을 구매하고 보증하겠다고 약속했다.

건설 과정에서 소소한 갈등이 없는 건 아니다. 현재 작업중인 기초파일링(지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말뚝을 박는 것)에 대한 현지인들의 몰이해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생전 처음 보는 건설 방식에 '왜 박나' '그러다가 문제 생기는 것 아닌가' 걱정하고 때론 반대했다. 그러나 실제 작업 과정을 지켜본 아이티인들은 마음을 고쳐먹게 됐고, 무엇보다 이번 지진에도 발전소 부지가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은 걸 보면서 신뢰를 보내고 있다고 오 차장은 말했다.

건설 현장에 피해가 없고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다 보니 이곳은 지금 한국 정부 구조대의 캠프로 활용되고 있다. 중앙 119 구조대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 적십자 등에서 파견된 구호요원들은 여기서 먹고 자면서 낮에는 밖에 나가 활동을 한다. 미군 보명 100여 명의 임시숙영지로도 사용되어 치안도 확실하다. 건설 현장 관계자들은 시내의 혼란한 상황이 조속히 정리되어 건설 작업이 재개되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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