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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의 민족주의와 근대의 민족주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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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의 민족주의와 근대의 민족주의 (1)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72> 민족주의의 근대주의적 해석 비판 ⑧

* 독자 여러분들에게 새해를 맞아 만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민족주의 문제는 원래 약 10회 기고를 예정했었으나 근대주의 비판에 관심 있는 일부 독자들의 요청에 따라 분량을 더 늘이기로 작정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들 때문에 빨리 쓸 수 없어 지금까지 지연되었습니다. 이점에 대해 독자 여러분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이 글은 앞으로 7-8회 더 연장될 것입니다. 계속 애독 바랍니다.- 필자

근대주의자들은 전근대의 민족주의를 부인한다

지금까지 민족과 민족주의가 전근대에 어떤 형태로 나타났는지 그리고 그것이 프랑스혁명 이후에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간단히 살펴보았다. 민족주의가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오며 이념적으로나 형태, 성격, 범위 면에서 상당한 변화가 나타나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근대주의자들은 전근대와 근대의 민족주의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것처럼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근대에 어떤 형태의 민족의식이나, 또 민족주의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겔너는 1983년의 <민족과 민족주의>에서는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으나 전근대의 경험을 경시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자 사후인 1997년에 나온 책인 <민족주의>에서는 '민족은 배꼽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제목을 가진 장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1997년의 책은 민족주의를 주제로 한 수필 수준의 작은 책으로 1995년에 죽기 전에 거의 원고가 완성된 것이다. 학문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

그는 이 문제가 문화의 연속성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고 문화가 역사적 분수령을 넘어 지속성을 갖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그것은 옳은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그는 문화가 어떤 때는 매우 빨리 변화하며 또 그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문화는 지속하기도 하고 달라지기도 하므로 일반적인 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떤 민족은 진정한 고대의 배꼽을 가지고 있고 어떤 민족은 민족주의적 선전에 의해 배꼽을 발명했으며 어떤 민족의 경우에는 아예 배꼽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일부 민족의 경우 이렇게 과거와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 하나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다.

그것은 문화적 동질성과 고도문화가 발전하는 것은 근대의 산업/과학 세계에서뿐이라고 과거의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족주의도 근대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태도의 변화는 농업사회와 산업사회를 완전히 단절시킨 이전의 태도와는 좀 다른 것이다. 그래서 그가 근대주의적 해석을 처음 시작한 사람이므로 나중에 보겠지만 민족주의 논의에서 상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근대주의에 속하는 대표적인 인물의 하나로 <민족주의와 국가>(1982>를 쓴 존 브릴리도 마찬가지이다. 그도 근대 초에 민족적 저항운동이 있었음은 인정하나 그것은 충분히 민족주의적이 아니라고 본다. 민족의 이념이 종교나 군주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민족이 모든 정당성, 합법성의 근원이 되고, 법적인 평등과 시민으로서의 개인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위에 서 있는 민족의 특수한 이념과 그런 형태의 민족주의는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홉스봄도 전근대 시대에도 민족이나 민족주의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원(原)민족(proto-nation), 또 원민족주의라고 부르며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이 문제에 한 장을 할애했다. 상당히 큰 비중을 두는 셈이다.

그는 원민족적 결속이 있는 곳에서 그것이 민족주의의 과제를 쉽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원민족 공동체 속에 내재해 있는 기존의 상징이나 감정이 근대의 민족주의나 근대국가에 의해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 이전은 말할 것도 없으나 17, 18세기에, 민족이 일반인에게 미치는 호소력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면 우선 전근대의 민족의식이나 민족적 충성심이 어느 정도나 사회적으로 받아 들여졌는지 증거를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그는 양자가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원민족이나 원민족주의로는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만드는 데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도 프랑스혁명 때나 그 비슷한 시기에 비로소 민족주의와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근대주의자들은 전근대의 민족감정이나 의식, 민족주의를 기본적으로 근대의 것과는 차단하고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 그렇게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근대주의의 개념적 기준

근대주의자들은 근대 민족주의는 그것이 명확한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전근대의 것과 구분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근대주의자들의 의견도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몇 가지 공통된 요소는 이야기할 수 있다.

그것은 프랑스혁명 때에 나타나는 민족주권, 민족자결권의 개념과, 그에 의해 성립하는 다른 민족과 구분되는 특별한 성격을 가진 민족을 전제로 한다. 필립 고스키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제시하고 있다.

1) 민족주권이 중요한 것은 이제 민족의 구심점이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민족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주권 하에서 민족의 모든 구성원은 평등한 관계 속에 있다. 그러므로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등 자기희생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근대 민족주의는 사회적인 범위에서 모든 민족구성원의 참여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것은 전근대의 민족의식이 귀족이나 지식인 등 일부 엘리트 집단이나, 도시나 특정 지역 같은 작은 정치단위에 제한되었던 것과 다르다.

2) 민족자결의 원리는 모든 민족이 그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정치적 자율성을 가 져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세의 지배를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3) 근대적 민족주의가 되려면 민족의식이나 민족감정이 정치적 운동을 일으킬 정도로 충분히 민족주의적이어야 한다. 전근대의 경우에는 아직 그런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 시기의 민족의식은 아직 종교나 왕에게 종속되어 강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강력한 대중적인 정치적 힘을 동반한 법적, 정서적 원리로서의 민족주의 는 프랑스혁명 이전에는 없었으며 민족이 그 근대적인 형태를 가지게 된 것도 혁명기의 프랑스에서부터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근대주의가 매우 단순하고 명료한 개념 규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어느 역사적 현상에나 적용하기가 편리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기준에 맞지 않은 현상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런 엄격한 기준을 근대의 민족주의 현상들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 이후에 프랑스에서조차 민족주권의 개념은 충분히 관철되지 못했다. 또 세속적이 아닌 민족주의, 왕권과 결합한 민족주의를 근대의 많은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개념의 문제이다. 민족과 민족주의를 좁은 개념으로 규정하느냐 보다 넓은 개념으로 규정하느냐의 문제이다. 그런데 이렇게 좁은 개념으로 규정하면 편리하기는 하나 그것이 민족이나 민족주의의 생성이나 발전의 전체 과정 가운데 일부를 부당하게 저평가하거나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게 되면 그것들의 본래적인 의미나 성격을 잘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넓은 개념을 사용해도 문제는 있다. 그러면 민족과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전연 알 수 없게 만들 가능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적절한 개념을 사용하느냐가 관건이 된다. 결국 우리는 이 개념을 역사과정 속에서 다시 검토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중세와 근대초의 몇 가지 예를 들어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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