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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미국, 도전하는 중국ㆍ일본, 기다리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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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미국, 도전하는 중국ㆍ일본, 기다리는 한국

[한반도 브리핑] '복잡계' 동북아서 한미동맹 올인은 '위험한 도박'

오래간만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로부터 전화가 와서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난 여름 자메이카로 가족과 같이 휴가를 갔던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사는 이야기로 이어졌는데 지금 미국 경제 상황이 뉴스로 전해 듣는 것과 비교가 안될 만큼 어렵다는 말을 했다.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야기된 미국의 경제 위기는 현재 '공황'(depression) 상황까지 치닫고 있다고 한다.

이 친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실업률은 미국의 실업률(약 10.2%)보다 많은 12~14%에 달하고 있는데 이것이 공식적인 통계이니 현실적으로는 20%에 가까울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경제 문제는 심각한 신용경색(credit crunch)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은행들은 BIS 기준을 맞추기 위해 '서브프라임'으로 대변되는 방만한 경영에서 대출 및 신용카드 이자율을 22%까지 올리면서 신용대출을 극도로 제한하거나 이미 대출된 돈을 대출 기간을 갱신해주지 않고 거둬들이는 식의 신용경색적 경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재산의 상당 부분을 잃은(asset deflation) 서민(중산층)들은 극심한 신용경색이라는 상황에서 대출이자 또는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파산하고 있다고 한다. 소규모 사업(retail business)이나 대출을 받아 시작한 사업들이 심각한 자금 압박을 받고 있거나 파산되면서 실업은 끝이 보이지 않게 늘어나고 경제 회생이라는 빛은 암흑에 묻혀 버리고 있다고 했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도 미국의 초기 경제회생을 위한 구호 패키지(economic recovery package)가 결국 경제 위기를 일으킨 월스트리트 소재의 대형 금융권에 집중되었고 일자리 늘리기에 투자되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 회생은 요원하다며 현재 미국의 경제 정책을 질책했다.

미국의 주가지수는 경제 위기 전의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으나, 일자리가 자꾸 줄어드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주가지수 역시 버블처럼 터져 버릴 수 있는 것이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거대하게 성장한 중국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난달 17일 중국에서 자금성을 방문해 경내를 바라보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 ⓒthe White House

중국과 일본이 입증한 미국 헤게모니의 위기

그 친구는 필자와 비슷한 시기인 1980년대 초반 미국으로 건너갔는데 약 30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은 피부에 와서 닿을 만큼 변했다고 했다. 국제정치에서도 미국의 위상은 눈에 보이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동북아 3개국 방문에서도 상징적으로 나타났지만, 이제 미국은 세계를 자신의 의지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헤게모니 국가로서의 위상을 잃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 늘 부각시켰던 '인권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서는 거론조차 되지 못했고, 미국은 중국을 결코 봉쇄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는 상황까지 연출되었다. 미국 경제를 구조하는 자금을 대고 있는 중국(미국 정부 채권의 약 1조억 달러를 가지고 있다)을 결코 자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본도 이러한 틈을 그냥 좌시하지 않았다. 미일동맹에는 변화가 없겠지만, 이제부터는 아시아 중시 외교 그리고 신자유주의/고전주의 경제정책(미국이 늘 일본을 압박하는 수단이었다)에서 탈피하는 정책을 쓰겠다고 천명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보다 평등한 미일관계를 원한다며 오키나와 기지 이전 문제를 순순히 들어주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동양인이 많이 있는 하와이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겠지만, 일왕을 만난 자리에서 90도로 깍듯이 인사한 것은 히로히토(裕仁) 일왕이 약 65년 전 미 해군 미주리 함대에서 미국의 맥아더 장군에게 90도로 인사했던 것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미국의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매우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한다는 일본의 정책 기조에 대해 예전과 같은 미일관계가 지속된다는 확약으로 보기 어렵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보통국가'가 되기 원한다. 이것은 헌법 9조를 바꾸고 자신의 의지대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패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어찌 보면 일본으로서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맞게 됐고, 결코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문제는 일본이 자신이 앞으로 추진할 독자적인, 혹은 보다 독립적인 외교 정책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도 공식적으로 거론하고 있지만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나 고이즈미(小泉純一郞) 총리 시절 매듭짓지 못한 식민 지배(전쟁) 보상 문제 등을 해결하면서 북일관계 정상화 방향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중일관계 정상화가 중미관계 정상화보다 앞섰듯이 상황에 따라서는 미국보다 먼저 북한과 관계정상화를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 오는 8일 평양을 방문해 담판을 벌일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와 성김 북핵 특사 ⓒ뉴시스

여유 없는 미국, 북한과 대타협 돌파구 모색할 듯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특사 자격으로 오는 8일 북한을 공식 방문한다. 보즈워스의 방북을 앞두고 열린 한 세미나에서 정부 당국자들은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별로 생산적인 방문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소 안일한 정세관에 기초한 전망으로 분석된다.

보즈워스의 공식 직함은 미 국무부 소속의 대북정책 특별대표(U.S. Special Representative for North Korea Policy)이다. 그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처럼 실질적인 외교를 수행하지 않지만, '특별 대표'라는 직함이 말해주듯 아시아 외교에서 북한을 따로 떼어내 정책을 수립해야 할 정도로 북한 문제가 미국 외교에서 중요한 과제가 됐음을 함의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즈워스의 방북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보즈워스는 미국을 대표해 북한에 전하는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갈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19일 큰 틀에서 밝혔듯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논의, 경제 지원 등을 하겠다는 뜻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금까지 북한이 원하던 것들을 미국이 현실화시켜 주겠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오바마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지금까지 혼선 없이 일관되게 진행되어 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에 와서 보즈워스의 방북 날짜를 공식 발표했고, 몇 시간 후 클린턴 국무장관은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보즈워스가 가져 갈 메시지를 공식적으로 밝혔다.

이것은 미국이 북한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committment)를 공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아울러 북한과 양자회담을 통해 문제 해결의 기초뿐만이 아니라 핵심까지 잡겠다는 것으로 해석되는 부분이다.

보즈워스 방북 이후 바야흐로 북미는 양자회담을 통해 주고 받는 협상(negotiation)을 할 것이며, 이 협상 속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사항들이 논의되고 결정될 것이다. 특히 이 협상은 밀고 당기는 일렬(series)의 협상보다는 양자가 일괄 타결하는 방식(a single round)이 될 가능성이 높다.

거듭 말하지만 미국은 현재 패권국의 지위가 흔들리는 상황이며 오바마의 동북아 방문에서도 확인되었듯, 동북아 국가들의 이해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협상에서의 레버리지는 시간이 갈수록 취약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런 틈을 중국과 일본도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는 기회로 잡고 있다.

보즈워스 특사의 방북 이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하는 등 북미관계가 파국으로 가지만 않는다면(현재로서는 그럴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북미관계는 급물살을 탈 것이다. 미국은 이미 북한에게 줄(quid) 큰 틀의 메시지를 던졌다. 북한이 이것을 긍정적으로 받는다면(quo) 북미관계에서 주고받기(quid pro quo)가 성립되며, 북핵 문제는 새로운 동북아시아 시대를 여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삼전도의 굴욕, 흘러간 역사가 아니다

우리는 이 협상 과정에서 북한과 미국이 무엇을 주고받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핵을 완전히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나 경제지원 뿐만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 정착에 따른 핵우산 철폐를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그들이 생각하고 또 믿고 있는 한반도의 '근본 문제'인 주한미군 문제도 연계시킬 것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주한미군은 자신들을 겨냥하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철수 등의 옵션이 결코 해가 되지 않는다고 여길 것이다. 중국이 공개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늘 바라는 사항 중의 하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작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베이징에 있을 때에도 "한미동맹은 역사적인 유물"이라고 말했었다.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의 철수 요구는 한국 정부가 외교의 핵심으로 삼고 있는 한미동맹의 현상유지(status quo)를 매우 크게 요동치게(fluctuation)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서울에 와서 굳건한 한미동맹을 강조했지만,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동맹은 고정불변한 정책이 아니며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부합하고 또 협상 속에서 받을 것이 있다면 바꿀 수 있는 것(quid)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질서가 흔들리고 해체되고 있는 현실에서 한미동맹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는 주식 투자의 기본 원칙을 무시하고 한 곳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행위와 같다. 그것은 도박이며 성공가능성이 결코 높지 않다. 현실이라는 복잡계에는 미래의 확실성을 위협하는 요동이 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나라가 망했어도 숭명배청(崇明排淸)라는 안일한 정세관과 소중화(小中華)라는 사대적 정체성을 가지고 청에 대항하다 머리에 피가 맺히도록 사죄한 인조 시대 삼전도의 치욕은 너무 오래된 일이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역사다.

역사의 교훈을 현실에 적용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의 몫이다. 미래에 대한 다양한 준비가 절실히, 그리고 긴급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시간이 별로 없다. 기다리는 것은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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