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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X'보다 '대마불사'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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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X'보다 '대마불사'가 더 무섭다

캔조스키 "초대형 금융업체들은 반드시 해체돼야"

최근 지구 종말을 다룬 할리우드 재난영화 <2012>가 국내 개봉했다. 이 영화의 내용은 일종의 '지구 종말론'까지 확산시켜 미국의 나사(항공우주국)가 이 영화에서처럼 행성X가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발표까지 할 정도다.

또한 일각에서는 2012년 전에 비명횡사할 사람들도 많은데, 자기 자신의 종말부터 걱정하라고 핀잔을 주기도 한다. 나아가 정말 현실적으로 걱정할 것은 천재지변에 의한 지구 종말론보다 인간의 탐욕이 부를 파국적 재앙이라고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인재(人災)에 대해서는 대중들의 관심은 기괴할 정도로 적다. 그래서인지 현재 진행형인 글로벌 경제위기는 지난해말 미국의 파산과 함께 세계 경제 종말을 부를 정도로 심각한 순간이 있었다는 사실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 영화 <2012>.

"2008년 9월18일, 미국 경제 멸망할 뻔"

그나마 이 사실이 공개라도 된 것은 미국 하원 금융위원회에서 자본시장 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폴 캔조스키(Paul Kanjorski) 민주당 의원의 폭로성 발언 덕분이다.

캔조스키의 이같은 발언은 제도권 언론에서 일부러 보도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을 만큼 철저히 외면당했으나, 영국의 <라이브리크닷컴>을 통해 뒤늦게 빛을 보았다.

캔조스키 의원이 미국 의회 방송 <C-SPAN>과 인터뷰한 내용을 동영상(동영상 보기)으로 생생하게 보여준 것이다.

이 인터뷰에서 캔조스키 의원은 리먼브라더스가 파산보호를 신청한 지 사흘째 되던 2008년 9월18일은 '미국 경제 멸망의 날'이 될 뻔했다고 폭로했다.

그가 최근 대마불사'급 대형 금융업체들을 강력하게 통제하고 해체까지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연방금융감독당국에 부여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바로 지난해 9월15일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직접 목도한 충격적 사건 때문이다. 대공황 때처럼 '뱅크런'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것이다.

▲ 폴 캔조스키 민주당 의원.
미 재무부, 천문학적 자금 유출 강제 차단

캔조스키 의원은 "연방준비제도(Fed)가 의원들에게 밝히기를, 지난해 9월18일 목요일 오전 11시 미국에서 전자거래로 불과 한 두 시간 만에 5500억 달러(당시 환율로 약 640조 원)에 이르는 자금이 MMA(증권사의 MMF에 대응하는 은행의 초단기 자금) 계좌에서 유출된 것을 알았다고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급해지자 미 재무부는 1500억 달러를 시장에 긴급 투입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자금 유출이 엄청난 규모로 지속됐기 때문이다. 캔조스키 의원에 따르면, 결국 재무부는 모든 MMA 계좌를 폐쇄하고 각 계좌마다 25만 달러씩 보증을 해줬다. 미국 정부가 시장에 개입을 한 것이다. 하지만 재무부는 자신들이 개입을 하지 않았다면 이날 오후 2시쯤 5조5000억 달러(약 640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자금이 미국에서 빠져 나갔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자신들이 개입하지 않았으면 이같은 천문학적인 뱅크런으로 인해 미국 경제가 붕괴되고, 24시간 내에 전 세계 경제가 무너졌을 것이라고 재무부는 추정했다는 것이다.

미국 의회의 자본시장 소위원회 위원장이 의회 방송을 통해 제기한 이처럼 충격적 발언이 보도 가치가 없었던 것일까. 하지만 캔조스키 의원은 제도권 언론의 외면에 굴하지 않고 정치블로그로 세계 1위의 영향력을 지닌 <허핑턴포스트>에 최근 '대마불사의 종말(The End of 'Too Big to Fail')' 이라는 글을 기고해 리먼브라더스 파산 같은 사태를 근본적으로 막을 대책을 역설했다.

캔조스키 의원은 이 글에서 "대마불사급 대형 금융업체들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면서 "너무 거대하고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파산하면 미국 경제시스템 전체를 위기로 몰고가는 금융업체들은, 당장은 자본이 충분하고 건전해 보여도 연방감독당국이 통제하고 해체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또한 그는 "탐욕스러운 금융가들의 위험한 도박이 실패했을 때 미국 납세자들이 구제해줘야 하는 일은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나아가 캔조스키 의원은 "월가는 요즘 납세자의 구제금융을 받아 다시 안정을 찾았고, 예전처럼 되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면서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2008년 9월 중순 이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볼커· 그린스펀· 리드도 '대마불사 해체' 지지 입장으로 전환

대마불사급 대형 금융업체들은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괴물'들을 탄생시킨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월가의 거물들도 동의하고 있다.

벤 버냉키에 앞서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을 역임한 폴 볼커와 앨런 그린스펀도 이제는 미국의 대형 금융업체들은 대마불사의 폐해를 낳지 않을 정도로 규모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

심지어 역사적인 합병을 성사시켜 세계 최대 금융그룹인 씨티그룹을 탄생시킨 존 리드 전 회장도 거대한 금융업체를 만든 것은 실책이라고 시인하고 있다. 씨티그룹 역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파산 위기를 모면한 전형적인 '대마불사'급 금융업체다.

최근 리드 전 회장은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선박에 구멍이 뚫려도 배 전체가 가라앉지 않도록 만드는 것처럼 금융산업도 그렇게 정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마불사급 대형 금융업체들이 사라져야 할 이유는 또 있다.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는 소수에 극도로 자원이 집중되는 폐해를 낳을 수 있다. 이런 상황은 극심한 빈부격차를 가져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캔조스키 의원은 "초대형 금융업체들 몇 개가 국가의 자본 대부분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직관적으로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서 '미국 국민들은 건전한 자원 분배 기능과는 관계없는 행태를 보여온 금융업체들을 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혈세가 투입된 것에 분노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들이 씨티그룹 같은 금융업체들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신용카드 대금에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고 꼬집었다.

캔조스키 의원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에서 거래되는 증권의 80%는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있는 금융업체들이 발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적절한 규제체제를 마련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제는 어떤 정부도 사전에 방지할 수 없는 또다른 파국을 맞을 위험에 노출된다.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대형금융업체들의 활동을 규제하고 이들 업체가 파산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면 '질서정연한 해체'를 유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캔조스키 의원은 "시스템 위기를 초래할 정도로 금융업체의 규모가 커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이왕 규제의 틀을 다시 짜는 작업을 한다면 이런 목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캔조스키 의원이 기대한대로 정치권의 합의가 나오려면 현실적으로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야 할 것이다.

정말 중요한 현안이라지만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려면 '섹스'라는 요소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LTCM 사태, 섹스가 빠져 외면 받았나

1999년 8월 헤지펀드 롱텀캐피탈 매니지먼트(LTCM) 파산 사태가 일어났을 때 이미 캔조스키 의원 스스로 이런 현실을 개탄한 바 있다.

지금으로 치자면 '리먼브라더스급 파산' 사건이었던 이 사건의 전말을 따지기 위해 미국 의회는 10월1일 Fed 의장 그린스펀을 불러 이례적으로 '공개' 청문회를 가졌다. 하지만 방송사 카메라는 단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국가부도 사태를 부를 정도로 전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사건에 대한 청문회가 제도권 언론의 외면을 받은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굳이 그 배경을 찾자면 당시 언론과 대중의 관심은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에 쏠려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의식한 캔조스키 의원은 그린스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론의 관심을 좀 더 끌기 위해 LTCM 사건에 섹스를 좀 가미할 순 없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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