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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권 붕괴론은 무책임한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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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정권 붕괴론은 무책임한 발상"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34> 한 보수적 美 지식인의 북한위기론

미국의 국제문제 평론가 로버트 카플란(Robert D. Kaplan)은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난 2002년 캠프데이비드 별장에서 읽고 크게 감명 받았다는 『타타르로 가는 길』의 저자다. 부시 대통령의 대외정책 구상에 나침반 역할을 한다는 평가가 있을 만큼 보수적인 성향의 인물이다.

카플란이 지난 7월 한국을 다녀간 뒤 북한 정권 붕괴에 관한 긴 분석기사를 썼다. 그가 편집장으로 일하는 미국의 영향력 있는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10월호에서다. '북한이 붕괴할 때'(When North Korea Falls)라는 제목을 단 이 글에서 카플란은 미국이 지금처럼 북한 정권의 붕괴를 노리고 압박을 계속한 끝에 북한 정권이 무너질 경우를 전망한다.

카플란은 "북한 정권이 미사일 위용을 과시하려는 것은 오히려 북한 체제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표시"라고 주장하면서 북한의 현체제가 급작스레 붕괴할 가능성을 내다봤다. 이 글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7단계로 나눈 북한붕괴론이다.

자원이 고갈되면서(제1단계), 사회기반시설을 유지하기 어렵게 되고(제2단계), 중앙정부의 통제가 무너지면서 지방 당 관료와 군벌이 득세하고(제3단계), 그들에 대한 김정일의 견제가 행해지고(제4단계), 이어 중앙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제5단계), 북한체제 분열상(제6단계), 그리고 새 지도력의 등장(제7단계)이다. 카플란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제4단계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중국 한국 미국의 지원 덕에 그 위기를 넘겼고, 지금 북한은 제3단계로 되돌아온 상태다.

"북한의 연착륙을 꾀해야"
▲ 미국 부시행정부의 북한위협론과 체제붕괴론은 미국 내 보수파들로부터도 비판을 받는다. 2006년 조선노동당 창당 60년을 맞아 벌어진 평양 아리랑 축전 행사의 한 장면. ⓒ김재명

카플란은 부시 대통령에게 영향을 미치는 보수적인 국제문제전문가이지만, 부시의 대북 강공책에는 매우 비판적이다. 지난 9월11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카플란은 "부시 미 대통령과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 그리고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네오콘)들이 북한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꾀하는 것은 무책임한 짓"이라고 질타했다. 카플란의 요점은 미국의 북한정권 붕괴론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카플란은 "북한 미사일 기술 같은 특정 분야와 관련해 부시행정부가 대북 강경책을 쓰는 것은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전제를 달면서도, 미국의 대북정책이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북한의 붕괴를 촉발시키려고 꾀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 북한 정권이 급작스레 붕괴할 경우 단기적으로는 수많은 주민들에게 지금까지보다 더 큰 고통을 안겨줄 것"이라는 얘기다. 카플란의 요점은 북한 정권이 끝나길 바라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망하는 것은 바라지 않고, 가능하다면 북한의 연착륙(soft landing)을 꾀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북 선제공격론에 대해서도 카플란은 반대한다. 북한 정권이 붕괴한다면 인도적 차원의 구조활동을 위해서라는 조건 아래서 군 투입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북한 정권을 전복하는 물리적 수단으로서 군사개입이 이뤄져선 안 된다"는 주장을 폈다. 미 강경파들의 주장과는 달리, 카플란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미국 안보에 위협적인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다. "북한 미사일 개발이나 대량살상무기 개발능력이 미국에 실제적인 위협을 제기하는 정도까지 간다면, 미국이 대북 공격을 정당화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그 지점에 이르지는 않았다"

카플란이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세계지배 패권 상실이다. 지금 미국이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문제 등 대외정책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들이 쌓여 있는 마당에 북한정권 붕괴를 꾀하다가 미국은 세계지배 패권(global hegemony)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고 걱정한다.

"한국은 중국과 같은 입장"

그런 논의의 한가운데는 중국이 있다. 카플란은 미국이 북한 붕괴를 꾀하면서 군사적으로 개입하다가 중국을 비롯한 북한 주변국과 갈등을 일으킬 가능성을 걱정한다. 그는 북한붕괴로 동북아 힘의 균형이 무너질 경우 승자는 중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렇지만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그는 중국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로 북한 난민들이 중국으로 넘쳐나는 상황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국도 마찬가지다. 카플란은 '물질적으로 번성하는 안정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국 사람들은 통일독일의 사례로 미뤄 '북한과의 통일이 한국 경제에 어떤 압력을 가할지를 알기 때문에' 북한붕괴를 바라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카플란은 미국이 일방주의적 대북강공책을 밀어붙인다면 "그 반작용으로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의 북한 옥죄기가 도를 더해가는 마당에 카플란의 주장은 귀 기울여볼 만하다. <애틀랜틱 먼슬리> 10월호에 실린 '북한이 붕괴할 때'도 RAF 인터뷰와 같은 맥락의 주장을 담고 있다. 아래는 그 요지다.

본문보기 http://www.theatlantic.com/doc/prem/200610/kaplan-korea

북한이 붕괴한다면

미군 장교들 사이에서 북한은 KFR로 통한다. KFR은 김씨 가족 체제(Kim Family Regime)의 약자다. 미 언론과 정책입안자들 손에 악마(demon)로 이미지가 굳어져버린 북한 체제는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북한정권의 창립자 김일성은 음산한 스탈린주의 독재자였을 뿐만 아니라 탈북자들이 말하듯이 항일 게릴라 지도자였다. 그 아들 김정일도 미국 영화에서 그려졌듯이 철없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는 신중한 운영자로 커나갔다. 만일 다른 환경에서 그가 자랐다면, 성공적인 할리우드 영화제작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120만 북한군이 점점 더 비무장지대 가까이에 배치되는 상황에서 한반도는 이라크 다음으로 미군의 잠재적인 악몽이 될 가능성이 늘 있다. 1980년엔 북한군사력의 40%가 평양과 비무장지대 사이에 주둔했었다. 2003년까지 그 비율은 70%로 바뀌었다. 미군 병사들은 "한국엔 평화로운 때가 없다"는 말들을 주고받는다. 전세계에 걸쳐 배치되는 미군 병사들에게 한국은 가장 불길한 지역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북한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 정권의 붕괴는 한국으로 하여금 경제적 희생을 치르도록 만들겠지만, 한국사람 가운데 그런 희생을 치를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을 먹여 살리는 것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따라서 북한정권의 연착륙(soft landing)은 워싱턴이 아니라 베이징에 달렸다.

북한 정권이 미사일 위용을 과시하려는 것은 오히려 북한 체제의 허약함을 드러내는 표시다. 미국이 어떻게 공격해올 것인가로 김정일이 밤에 잠을 잘 못 이룰 것이라는 미국의 널리 퍼진 생각과는 반대로, 그가 밤에 잠을 잘 못 이룬다면 그것은 중국 때문이다. 그는 중국이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에 커다란 관심을 지닌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 붕괴의 7단계

김정일이 신중하게 북한을 끌어가려 함에도 불구하고, 전체주의 체제의 북한은 붕괴 직전에 이른 모습이다. 북한의 미사일 실험과 벼랑끝 핵정책(nuclear brinksmanship)은 미국에게 실제 위협이 무엇인지를 헷갈리게 만든다. 실제 위협이란 다름 아닌 북한의 파국적인 붕괴다. 북한이 약해지면 약해질수록, 북한은 더 위험해진다. 태평양에 주둔하는 미군의 가장 큰 관심은 북한이 붕괴될 경우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인가이다. 북한의 붕괴는 7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단계: 자원이 고갈된다
△제2단계: 지원고갈 때문에 사회기반시설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
△제3단계: 중앙정부의 통제가 무너져 널리 퍼지고, 지방 당 관료와 군벌이 통제하는 독자적인 영지가 나타난다.
△제4단계: 지방 당 관료와 군벌의 세력이 커졌다고 판단한 김정일이 이들을 누르려 한다.
△제5단계: 중앙정부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이 일어난다.
△제6단계: 북한 체제가 분열상을 보인다
△제7단계: 새로운 국가적 지도력(national leadership)이 나타난다.

북한은 1990년대 중반 제4단계에 이르렀다고 추정된다. 그렇지만 중국과 한국의 재정지원과 미국의 식량지원으로 그 위기를 넘겼다. 지금 북한은 제3단계로 되돌아갔다.

김정일은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몰락에서 커다란 교훈을 배웠을 것이다. 그 교훈은 "군부를 완벽하게 장악하라"는 것이다. 루마니아의 경우 1987년 브라소프에서 노동자들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 루마니아 정부군은 그들을 진압했다. 2년 뒤 항가리 소수민족이 티미소아라에서 봉기했을 때, 루마니아 정부군은 차우세스쿠 정권에 등을 돌렸다.

북한 군부의 동향이 변수

현재 김정일은 북한군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모습이다. 북한군 병사 개개인의 탈북은 있어 왔지만, 부대 단위의 이탈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군사전문가들은 "북한군이 붕괴되지 않더라도 정권이 붕괴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북한 체제의 붕괴과정은 그 체제가 존속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북한체제가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가 붕괴 직전까지 몰리면,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만일 한반도에서 전쟁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끔찍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은 한반도 전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것과 같은 혼란을 막으려면 미국은 북한 군부와 접촉해야 한다. 만약 그들이 북한 붕괴 뒤의 새로운 군 체계에 흡수되지 않는다면, 이라크에서처럼 저항세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 군부와 가까운 관계를 맺어 온 중국이 북한군부와의 접촉 역할을 맡을 수 있을 것이다.

만약에 북한이 붕괴할 경우, 미국은 일방적으로 군대를 북한에 파병해선 안 된다. 북한에 외국군이 진주한다면, 유엔의 허락 아래 4개국(미국, 중국, 한국, 러시아) 군대가 파병되는 형식이 될 것이다. 일본은 군대를 보내지는 않고, 그 대신에 재정 부담을 일부 지게 될 것이다.

지리적으로 한반도에 가까운 일본은 한반도의 통일을 제일 두려워하는 국가다. 한국인의 반일감정으로 미뤄 북한정권이 무너질 때 일본군이 한반도에 개입할 것 같지는 않다. 일본과는 달리, 북한정권 붕괴는 궁극적으로 중국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서울의 지도력 아래 놓일 통일 한국은 중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가 될 것이다. 중국은 아울러 수천 명의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돌려보내, 중국이 두만강 지역을 경제적으로 지배하는 데 있어서 중국에 유리한 정치 환경을 만들어낼 것이다.

북한붕괴의 최대 수혜자는

북한 정권의 붕괴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힘의 균형을 이뤄온 아시아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정권 붕괴 뒤 한반도가 안정을 되찾으면, 통일한국의 적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이 될 것이다. 만약 미국이 지금처럼 일본을 감싸고 돈다면, 중국은 통일한국과 손을 잡고 일본, 그리고 일본의 우방인 미국에 맞서 팽팽한 긴장관계를 이어갈 것이다. 치안이 안정되고 번영하는 이라크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이로울 것인지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렇지만 통일한국의 경우, 중국에게 가장 이익이 돌아갈 것이다.

북한 정권 붕괴 뒤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탁통치(trusteeship) 아래 놓이면서 사실상 대한민국의 보호령(protectorate)이 되는 형태다. 남북한은 꽤 오랜 기간 동안 기능적으로 분리된다. 이는 남북한으로 하여금 혼란 없이 통일 한국을 준비해나갈 시간을 주는 셈이다.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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