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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코리아가 달라졌어요

[기자의 눈] 김정일의 MB 초청 논란이 오바마에게 보낸 신호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다고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가 밝혔고, 이에 대해 청와대가 시인도 부인도 아닌 해명을 했다. 의미가 적지 않은 논란이다.

美 "도발국면에서 유화국면으로 들어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 국방부의 고위 당국자가 한국 정부와 상의도 없이 그러한 사실을 밝힌 것은 지난 14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의 한국, 일본, 슬로바키아 순방 계획을 설명하는 자리에서였다.

이 당국자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다음 단계에 일어날 일이 무엇이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우리는 아주 최근에야 북한의 도발국면(provocation phase)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사람들은 이런 것(도발)이 우리 행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일어난다고들 한다"면서 "이제 (북한의) 그런 활동은 끝나고 우리는 갑자기 유화국면(charm phase)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 이명박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초청했으며,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평양을 갔다"며 "북한은 '미국과 대화를 할 수 있다면 6자회담에 복귀하겠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김 위원장의 초청이 언제,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았다.

靑 "미국의 오해"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8일 "이 대통령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지난 한중 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의 진전이 이뤄지면 남북 정상회담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눴다"며 "북한은 지난 8월 조문사절단을 보냈을 때 이 대통령 면담에서도 비슷한 뜻을 전했고, 그동안 여러 경로로 남북관계 개선을 원한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정보 공유 차원에서 미 행정부 쪽에 전달했는데 미국 내부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똑 부러지게 말하진 않았지만, 김 위원장이 이 대통령을 초청했다는 사실은 부인했고, 북한이 남북 정상간 만남의 필요성을 말한 사실은 어느 정도 시인한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해 왔다"면서 "그러나 만남을 위한 만남은 안 되며 정략적ㆍ정치적ㆍ전술적 고려를 깔고 진정성 없이 만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최소한 남북 정상회담 문제에 관한 한, 이같이 일관된 원칙과 대의에 입각해 대응해 나갈 것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말한다"면서 "정상회담을 포함한 남북대화에 열린 자세로 대응하되, 원칙에 어긋나거나 정략적 계산을 갖고 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애매한 문제들

짚어 볼 대목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미국이 한국에 어떤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실수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예컨데 이런 메시지다. '북핵 문제가 어느 정도 진전되면 북미 정상회담을 할 생각이니, 남북 정상회담부터 하라.' 그러나 이건 과잉 해석이다. 미 국방부 당국자의 말은 기자의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에서, 한반도 정세를 일별하면서 나온 것에 불과했다.

둘째, 한미간의 소통이 또 잘못됐다고 볼 수 있지만, 이것도 근거가 부족하다. 한미 외교채널을 통해 넘어간 정보를 미 행정부 내에서 전달ㆍ공유하는 과정에서 부풀려졌을 가능성이 더 높다.

미 국방부가 브리핑을 수정하지 않은 사실을 한미 혼선의 근거로 제시하는 시각이 있지만, 미국은 원래 그런 거 수정 잘 안 한다. 일례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명기한 국방부의 몇 가지 자료는 파문이 일었지만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작년에 미 지명위원회가 독도(리앙쿠르 락스) 영유권을 '미지정 지역'으로 바꿨다가 한국의 항의로 되돌렸던 일은 매우 희귀한 사례다.

셋째, 청와대가 거짓말을 했다? 북한 조문단 방문 직후 일부 언론은 조문단이 정상회담을 제안했다고 보도했지만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해명자료를 통해 "정상회담 관련 사항은 일체 거론된 바 없다"고 부인했다. 따라서 이번 일로 청와대의 당시 부인이 거짓이었다고 볼 여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당시 조문단은 남북 정상간의 대화 필요성을 우회적으로 말했을 뿐, 이 대통령에게 평양 방문을 초청했거나 본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제안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의 당시 해명을 거짓말로 보는 건 무리인 것이다. 이제 와서 "북한이 비슷한 뜻을 전했다"고 말을 조금 바꾸었음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청와대는 별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다.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오바마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렇게 볼 때 이번 일은 그저 그런 해프닝에 불과할 수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의 말대로 미국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나온 문제일 공산이 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미 국방부 당국자의 말이 나온 후 한국은 외교채널을 통해 정확한 사실을 다시 설명하고 한국의 입장을 전달했을 터인데, 그 과정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가 이명박 정부의 생각을 분명히 확인했다는, 꽤 큰 의미가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알게 된 것은 바로 핵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남북 정상회담을 하지 않겠다는 '핵-남북관계' 연계론적 입장이다. 다시 말해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를 활성화했던 과거 정부하고는 다르게 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걸 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할까? 우선 마음이 답답할 것이다. 북핵 협상에서 남북의 소통이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걸 알고 있는데, 한국이 그걸 안 하겠다고 나오니 답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오바마는 대통령 지망생 시절이던 2007년 <포린 어페어즈> 기고문을 통해 드러냈던 한국에 대한 인식도 바꿀 것이다. 그는 기고문에서 "미국(부시 행정부)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과소평가해 왔다"고 말했는데, 지금의 한국은 당시의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됐을 것이다.

그것은 곧 미국의 북핵 해결 전략도 다시 짤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 변화의 방향은 한국이 북핵 협상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 나는 쪽일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남북 정상회담을 비핵화에 대한 '시혜' 정도로 여기는 이명박 정부의 시각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전에는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번 일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이 다 맞다고 쳐도 이런 상황만큼은 피해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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