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위기는 없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사장 허상만)이 25~30일을 '인문 주간'으로 선포하고 25일 전국 80개 인문대학장단이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하는 성명서를 낸 가운데, 한 중견 역사학자가 "인문학의 위기는 없고, 그 학문에 기대어 삶을 꾸려가는 인문학자의 위기가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펼쳐 눈길을 끈다.
숭실대 기독교학과 박정신 교수(한국근현대사 전공)는 2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인문학 위기 담론 형성에 앞장서는 일단의 인문학자들이 학진(학술진흥재단) 안팎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수주해 왔던 사람들은 아닌지 의심스럽다"면서 '인문학 위기'를 언급하는 모습을 "비인문학적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대학교수들이 현재 조선시대 양반들이 하던 생각을 답습하고 있다"며 "학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부하는 사람도 많지만, 학문을 사회 진출과 권력에 이르는 과정으로 보는 사람 또한 많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학생들과 뒹굴고 토론하고 학문 연구에 전적으로 매진할 수 있는 사람만이 대학에서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미국에서 23년을 공부하고 교수생활을 했지만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소개하고 "인문학 과목이 폐강되고, 박사 학위를 받고 자리를 잡지 못하는 연구자들이 많다는 이유만으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인문학에 의존한 '생계'의 문제가 인문학의 본질적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인문학이라는 학문체계에 대해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학문으로 역사적으로 혁명ㆍ전쟁ㆍ평화의 시기를 번갈아 거치며 영역을 점차 넓혀가고 심화시켰다"고 설명한 뒤 "인문학의 가장 큰 덕목은 자기성찰인데 우리의 인문학자들은 성찰은 커녕 연구비 부족과 자리 부족 등 지엽적 문제만 갖고 문제를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나아가 "한국 대학사회는 인문학자들이 자기성찰과는 거리가 먼 '비 인문학적' 방식으로 교수를 뽑아 왔다"며 학연ㆍ지연 등의 연줄에 사로잡힌 한국의 고질적인 대학교수 채용 관행에 대해서도 강하게 성토했다.
박 교수는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연구성과를 무시하고 끌어주는 모습"에 답답함을 토로하며 "제도권 인문학자들뿐 아니라 이른바 '재야 학자'라고 불리는 비제도권 학자들까지도 강단에 들어서지 못해 안절부절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최근 고려대 문과대 교수들의 '인문학 위기' 선언 등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에 대해 "어리광도 아니고 10년에 한 번씩 '위기'라고 문제 삼고 떼 쓰는 것이 문제"라며 "본질로 돌아가 자기성찰적 자세로 인문학을 반성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터뷰 말미에 박 교수는 "우리의 인문학이 모든 잘못된 관행과 불합리한 연줄 등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과연 했었는가"라고 반문하며 인문학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리와 돈'이 아니라 "인문학적 상상력과 자기성찰적 자세"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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