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등으로 인문학에 대한 대학생들의 무관심이 심해지는 가운데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인문학의 위기 타개를 촉구하는 '인문학 선언'을 발표했다.
고려대학교 문과대 교수들은 15일 '자유ㆍ정의ㆍ진리 : 시장 근본주의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열린 연속기획 심포지엄에 앞서 문과대 교수 121명 전원의 서명을 받아 발표한 선언문에서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으로 인문학의 존립 근거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백주년기념삼성관에서 열린 이날 심포지엄은 고려대 문과대 설립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것이다.
이들의 선언을 시작으로 연세대 등 다른 사립대학 인문학 전공 교수들도 '인문학 위기'를 경고하는 선언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들은 이날 선언문에서 "인문정신이 경시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기존의 사회운영 원리와 도덕의 해체,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인문학은 기술변화가 가져올 사회적·문화적 파장에 대해서 성찰하고 과학적 탐구의 윤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광 문과대 학장은 "그동안 인문학의 위기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글이 산발적으로 발표됐지만 인문학 전공 교수들 전체가 한 목소리로 위기타개를 촉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이번 선언의 의미를 설명했다.
조 학장은 "지하수는 지표에서 보이지 않지만 생물의 생존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지하수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인문학이 빈사상태에 빠지면 우리 사회의 문화와 문명의 발전은 기약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교수들은 대부분 인문학이 위기상황을 맞고 있다는 것과 인문학의 의의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마땅한 타개책이 안 보인다며 답답해 했다.
최호철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인문학의 위기를 해소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사회와 학계의 관심을 호소하고 인문학 연구자들의 책임의식을 불러일으키려는 학문적 선언일 뿐"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발표된 선언문 전문이다.
우리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설립 60주년을 맞이하여 인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바람직한 미래 건설을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이 선언을 통해 우리는 인문학의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고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함으로써 학문 후속세대들이 인문학의 도약과 발전에 적극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은 시대를 초월하여 가꾸어 가야 할 소중한 문화자산이다. 그러나 무차별적 시장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그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특히 대학의 상업화로 말미암아 연구활동과 교육행위마저도 단지 계량적 평가의 대상과 상업적 생산물로 변질되고 있다. 우리 인문학자들은 이러한 시대상황의 구조적 변화가 갖는 공동체적 함의를 감지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
또한 복잡다기한 사회현실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참신한 학제간 연구방법론의 개발에 소홀했으며,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수요가 반영되도록 인문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세계화의 급류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충돌을 해소하고 평화적 공존과 문화적 다양성에 입각한 국제사회의 건설을 위해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인문정신이 필요하다.
인문정신이 경시된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기존의 사회운영 원리와 도덕의 해체, 생명 경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인문학은 기술변화가 가져올 사회적·문화적 파장에 대해서 성찰하고 과학적 탐구의 윤리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이와 같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인문학자들은 잘못된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정신과 더불어 풍요로운 삶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창조정신을 고양해야 한다.
아울러 인문학의 쇠퇴가 지식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문학의 존립을 위협하는 현재의 열악한 환경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도 인문학의 독자성을 존중하고, 자생적인 인문학의 발전을 위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6년 9월 15일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교수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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