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의 역사적 압승으로 일본 총선이 막을 내리면서 승리를 이끈 공신들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민주당의 간판이자 자민당 공격의 선봉장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대표였다면 민주당 선거운동을 총연출.감독한 무대 뒤의 주인공은 킹 메이커, 선거의 귀재, 정치 9단이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대표대행이다.
역시 대표대행으로 하토야마를 측면에서 지원한 간 나오토(管直人) 대표대행, 민주당의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당 간사장도 선거전에 심혈을 쏟았다.
이들은 앞으로도 당과 내각에서 요직을 맡아 민주당 정권의 기둥을 이룰 전망이다.
◇ 막후 연출자 오자와
오자와 없는 민주당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당 내에서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이번 선거에서의 대승으로 당 내에서 오자와 계파는 중의원과 참의원을 합해 120명에 달한다는 보도도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선거의 달인인 오자와는 이번 선거에서 정책공약, 선거전략, 후보공천, 후보 자금지원 등 선거 전반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하토야마 대표가 총리에 취임할 수 있게 된 것도 오자와의 선택이다.
지난 5월 정치자금 문제로 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하지 않았다면 이번 선거의 주역은 그였을 것이고 총리 자리 역시 그의 몫이었을 것이다. 집권 자민당이 워낙 인기가 없어 당시에 선거를 했어도 민주당이 승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총리 일보 직전에서 정치자금 문제에 발목이 잡혀 사임하면서 후계자로 간 나오토 대신 하토야마를 밀어 대표에 당선시켰다.
하토야마에게 오자와는 정치적 동반자이자 은인인 셈이다. 향후 하토야마 정권에서 오자와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오자와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권모술수와 흑막정치, 계파정치의 전문가라고 비판한다. 반면 관료정치 혁파, 세습정치 청산, 자민당 1당 지배 타파를 통한 양당정치 실현 등의 정치 목표를 위해 싸워온 신념의 정치가라는 평가도 공존한다.
오자와의 정치이력은 현란하다. 마음만 먹으면 새 정당 간판을 세웠고, 고비마다 킹 메이커 역할도 했지만 정권의 꽃인 총리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는 약관 27세에 중의원이었던 부친이 갑자기 사망하면서 선거구를 물려받아 정계에 발을 디딘 후 이미 40대에 일본 정계를 좌지우지하는 실력자로 성장했다.
일본 정계의 파벌 영수였던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총리의 총애를 받으면서 힘을 키워 최대 계파인 다케시타파(竹下派)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1989년에는 당 간사장에 올랐다.
다케시타파의 황태자였던 40대 후반의 오자와는 1991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내각 출범 직전, 고희를 넘긴 미야자와를 포함한 3명의 당 총재후보를 간사장인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면접을 봤던 일화로 유명하다. 당 원로들이 머리를 숙일 정도로 그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1993년 오자와의 정치인생에 큰 변화가 온다. 당내 권력투쟁에서 밀리면서 자민당을 탈당한 것이다.선거구제 개편 등 개혁법안 처리를 싸고 당론에 반대, 내각 불신임안에 동참하면서 반란자가 됐다.
이 정변 직후 총선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얻지 못하면서 오자와가 말을 갈아탄 신생당 등 8개 정파의 비자민 연립정권이 들어섰다. 이 연립정권의 막후 실력자 역시 오자와였다.
이후 신진당을 만들었다가 해산하고 1998년 1월 자유당을 창당해 당수가 됐으며 자민당.공명당과 연립정권을 구성하기도했으나 정권 운영을 둘러싼 갈등으로 2000년 4월 연립정권에서 이탈한다.
결국 민주당을 이끌고 있던 하토야마와 의기투합해 2003년 9월 자유당을 해체하고 민주당과 합당하면서 이번 정권교체의 토대를 만들었다.
◇ 간 대표대행, 오카다 간사장도 역할
간 나오토 대표대행과 오카다 카쓰야 간사장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오자와에 비해서는 무게가 떨어지지만 민주당 내에서 일정한 지분을 갖고 있는 실력자들이다.
이들은 하토야마 대표와 함께 전국의 선거구를 누비며 격전지 중심으로 후보들의 유세를 지원했다.
변리사 출신으로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다 1980년 사회민주연합 후보로 중의원에 당선돼 정계에 진출한 간 대표대행은 1996년 민주당 결성때 하토야마와 손을 잡았지만 이후 하토야마, 오자와 등과 당권을 놓고 대립관계를 유지해왔다.
1998년 민주당의 당권을 잡았지만 다음해 당내 선거에서 패배 하토야마에게 대표직을 내줬으며, 2002년 12월 다시 당 대표가 됐으나 2004년 5월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사건이 터지면서 백의종군해야 했다. 이후 2005년과 2006년 연이어 당권에 도전했으나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와 오자와에 잇따라 패해 대표대행에 만족해야 했다.
도쿄대 법대 출신의 오카다 간사장은 깨끗한 이미지 때문에 당내 소장파 의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차세대 주자다. 1990년 통상산업성 관료에서 민자당 의원이 됐으나 1998년 민주당으로 말을 갈아탔다.
세습의원이 아닌데다 의정활동에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 지지층을 넓혀 지난 봄 한 언론이 실시한 총리 적합도 조사에서 3위(6.8%)를 기록, 당시 당 대표였던 오자와(6%)를 앞섰다.
오카다는 간사장으로 있던 2004년 5월 국민연금 미납 문제로 사임한 당시 간 나오토 대표 후임으로 대표에 취임해 2004년 참의원 선거에서 선전했으나 다음해 9월 중의원 선거에서 의석이 줄어들면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올해 5월 오자와 대표가 선거자금 문제로 사퇴하고 하토야마 체제가 되면서 간사장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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