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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과 에드워드 케네디, 노무현과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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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대중과 에드워드 케네디, 노무현과 오바마

[안병진의 '오바마와 미국'] 인생은 아름다웠고 역사는 발전했다

가슴 저리는 일이 계속되는 한 해 같다. '행동하는 양심'이라 할 거인의 서거가 다시 가슴을 아프게 한다. 한국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가 있었고, 미국에서는 지난 25일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별세했다.

한국에서 김대중 집안처럼 수없는 죽음의 고비와 명암의 풍랑을 극적으로 겪은 집안이 또 있을까? 고문으로 망가진 김홍일 전 의원의 몸을 차마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우리가 편안하게 민주주의의 혜택을 누릴 때, 그것이 어떤 토대위에서 만들어졌나를 직시하라고 온 몸으로 처절하게 증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 에드워드 케네디의 서거 소식이 전해진 26일 메사추세츠주 그의 집 입구에서 아이들이 애도의 피켓을 들고 있다. "테디, 우리 나라와 우리 동네, 우리 가족을 위해 일해줘서 고마워요" ⓒ로이터=뉴시스
미국에서는 케네디 집안처럼 비극적 암살과 불행한 사고, 그리고 극적인 명암의 기구한 인생을 겪은 집안이 또 있을까?

오늘날 미국인들은 극단적인 시장주의의 흐름 속에서도 메디케어(정부에서 관리하는 노인보험)라는 귀중한 안전망을 가진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심지어 일부 유권자들은 바로 그 메디케어 정부 프로그램 때문에 편안한 노년을 누리면서도 최근 건강보험 논쟁에서 정부는 '내 삶에 끼어들지 말라'고 소란을 피운다. 그러나 이 메디케어의 성취는 존 F. 케네디의 비극적 암살과 케네디 가문의 투쟁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다.

극적인 삶의 한 가운데 서 있던 두 거인은 위엄 있는 사자와 같은 이미지다. 놀랍게도 그들은 마키아벨리가 말한 '변덕스러운 시대의 여신'에 맞서 보다 인간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평범한 이들이 상상할 수 없는 투혼을 발휘해왔다.

김대중 의원의 100만 명이 모인 집회에서 보여줬던 그 쩌렁쩌렁한 사자후는 당시 군부독재를 사시나무처럼 떨게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자유주의자의 사자'(liberal's lion)라는 별칭을 받은 에드워드 케네디의 사자후는 미국을 근대 초기의 민주공화국 이전으로 퇴행시키고자 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들을 떨게 하고 자꾸만 유약해지려고 하는 민주주의자들의 혼을 회복시켜주었다.

노무현과 오바마…정치의 미래를 일구다

하지만 그들의 극적인 삶에도 명암은 있다. 1987년 당시 여권의 과학적인 전술 앞에서 보여줬던 양김의 아마추어적 분열은 분노를 일으켰다. 하지만 김대중은 이후 정권교체를 위한 과학적이고 필사적인 노력 끝에 한국 정치의 물꼬를 민주적으로 선회시키는데 성공했다.

비록 김대중이 신자유주의의 흐름에 지나치게 순응했지만, 당시 입으로는 진보를 외친 진보파들은 IMF 재협상을 외친 그의 놀라운 용기와 혜안 앞에서 그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는 결국 현실주의적 행보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마찬가지로 존 F. 케네디와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 이후 그 엄중한 역사적 책임을 이어 받은 에드워드 케네디가 어처구니없는 스캔들로 대통령의 꿈을 접어야 했던 사건을 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후 대통령보다 더 대통령다운 상원의 거인으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빌 클린턴 대통령의 야심찬 의료보험 개혁이 대실패로 끝나 모두가 좌절하고 있을 때에도 에드워드만은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초당적으로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해가며 결국 점진주의적 방식으로 어린이 건강보험 프로그램(SCHIP)이라는 훌륭한 성취를 이루어냈다.

당시 미국에서 딸을 키웠던 필자로서는 그의 서거 소식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그때 우리가 그에게 얼마나 고마워했는지에 대한 기억부터 떠올랐다.

비록 그들의 삶에는 명암이 있었지만, 이후의 정치에서는 밝음만을 물려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민주공화국으로의 이행이라는 측면에서 김대중 대통령 특유의 조심스러운 국정 운영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의 민주공화국으로의 본격적 행보는 왜 가능했을까?

▲ 에드워드 케네디(왼쪽)가 없었다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가능했을까? ⓒ로이터=뉴시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김대중 대통령이 새로운 정치인을 발굴하는데 강한 의지를 가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금은 대부분 잊어버렸지만 '노풍'의 출현과 지속적 유지는 김대중 대통령의 우호적 태도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었다. 한국의 개혁이나 진보파들에게는 그런 장기적 시야를 가진 거인이 있나?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빈약한 경력을 가졌던 애송이 버락 오바마의 바람은 어떻게 가능했나.

그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케네디가(家)의 용기 있는 지지였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에드워드 케네디의 지지 선언 이후 '대통령 오바마'는 그저 달콤한 꿈에서 실현 가능한 꿈으로 전화했었다.

반민주와 신자유주의의 좀비들은 사라질 것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소위 '3김 시대'는 막을 내렸고, 에드워드 케네디 이후 더 이상 거인이 존재하지 않는 케네디가의 시대도 막을 내렸다. 이제 미국에서 보다 진보적인 사회를 위해 사자후를 토하면서도 초당적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에드워드 케네디만큼의 거인은 오바마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의 진보 정당 대표들과 유사한 폴 웰스턴 상원의원이 그러한 초당적 존경의 인물로 존재했지만 그도 이미 유명을 달리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누가 진보적 꿈을 선도하면서도 보수진영마저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는 무게를 가지고 있을까 지극히 회의적이다.

더 유감스러운 것은 그들은 아직 민주공화국이 세워지거나 혹은 공고해지기도 전에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있고 경제적 토대가 부실해지고 있지만 이를 교정할 정치세력이나 거인의 잠재력을 가진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아쉬운 것은 거인의 잠재력을 가진 이들을 발굴해낼 거대한 온/오프 '대중적 바다'를 만드는 것에 대해 이해찬 전 총리를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치세력들이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시대정신은 진보의 꿈을 가지면서도 초당적인 국가에 대한 혼과 애국심을 가진 지도자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뀌고 있는데 정작 정치세력들은 아직도 이를 감지하지 못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거하기 직전 처절한 몸부림으로 마지막 한 방울의 에너지를 짜내며 이를 호소했다.

미국은 우리보다 앞서서 오바마라는 시대정신의 구현자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오바마는 구시대 막내가 아니라 새 정치 질서의 선구자로 당선되었지만 아직 그는 구시대의 유령들과 싸우다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폴 크루그먼 교수가 사용한 표현을 빌자면 '레이건 시대의 좀비'(이미 파산한 시장 근본주의자)들이 미국의 초당적 미래를 위해 너무도 소중한 건강의료보험 개혁조치를 단지 오바마를 파괴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의료보험 개혁이 위기에 처해있는 미국에서 의료보험 개혁의 아이콘인 에드워드 케네디의 빈자리는 너무도 크다. 악성 뇌종양을 앓은 케네디는 서거하기 직전까지 자신 죽음 후 의료보험 개혁이 파산하는 걸 막기 위해 마지막 처절한 몸부림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미국의 일부 논객들이 말하듯 에드워드 케네디의 서거로 이제 의료보험 개혁이 더 좌초할 것이라는 예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하게 동의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서거로 미국의 진보주의자들과 합리적 보수주의자들은 케네디의 국가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기억하며 힘을 모으리라고 본다.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지만 언젠가 그들은 의료보험 개혁을 완성시킬 것이다. 그 법안에 사인하는 날 아마 오바마 혹은 이를 성공시킨 그 다음 대통령은 케네디를 추억하며 눈물지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개혁 진영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역설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의 다양한 정치세력들 중에서 김대중 대통령 서거의 복합적 의미를 깊이 통찰하는 세력들이 미래를 주도할 것이다.

영화 박하사탕에는 과거 고문을 했던 형사가 화장실에서 만난 옛 피의자에게 '너는 정말 아직도 인생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느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그런 질문에 강하게 부인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두 거인의 서거와 그들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이제는 분명히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두 거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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