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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이시여, 다시 피어 오르는 불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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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님'이시여, 다시 피어 오르는 불꽃으로

[DJ를 기억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님', 아니 그보다 더 친숙하게 많은 이들이 부르던 "김대중 선생님".
'님'을 처음 만난 것은 박정희 독재정치가 1인 영구지배로 가려던 길에 마지막 있었던 제 7대 대통령 선거의 유세장이었습니다.

이 땅의 많은 청년 학생들과 양심적이요 진보적인 인사들은 미,일, 중,소에 의한 4대국 남북교차승인, 향토예비군페지, 대중경제론을 내세우고 독재에 찌들어 삶이 무너져 내려져 앉고 있던 절대 다수의 서민들과 민주 양심세력의 권익을 위해 그해 선거 유세의 가는 길 마다에서 '님'의 승리를 위해 함께 뛰었습니다.

남산 야외유세장에 말그대로 발디딜 틈도 없이, 송곳을 세을 여지도 없이 빡빡하게 들어찬 수십만의 대중의 물결은 박정희 후보 유세장에 동원된 사람들을 서너배 이상이나 상회할 지경이었습니다.

'님'은 이 선거에서 민주 양심세력이 지면 '1인 총통지배의 음모가 이 땅을 집어 삼키게 된다'고 온 국민들에게 설파하고 강력하게 절규하셨습니다.

'님'의 선견지명은 그대로 정곡을 찌른 것이었습니다.
'님'은 망명의 길을 떠나셨고, 1인 독재의 영구화에 저항으로 맞섰던 양심적 인사들과 수 많은 젊은이들은(저도 그 중의 한 사람이지만) 독재의 칼날에 끌려 들어가 중형에 중형을 거듭 받고 무덤 같은 감옥에서 하 많은 그 세월, 청춘을 고스란히 묻어야 했습니다.

칠흑 같이 어두웠던 유신독재 기간,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한 '대통령선거'는 국민의 주권 행사라는 무대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박정희독재체제의 적자를 자임하고 나선 전두환 신군부세력이 몰락의 접경에까지 이른 87년 6월 항쟁의 그 날에 이르도록 대통령을 자기 손으로 선출할 권리를 빼앗긴 국민들이 겪은 '인고(忍苦)의 세월은 모든 민주 양심세력이 '님'과 더불어 함께 한 날이었고, '님'은 때로는 납치되어 수장될 뻔 했고, 때로는 사형수로서 생사가 갈리는 지경 속에서도 인동초(忍冬草)로서 우리 곁을 지켜왔습니다.

'님'이 신군부세력에 의해 '독거(獨居)된 그 사동은 몇 개월 앞서 신군부세력에의 오랏줄에 묶여 사형, 무기등 중형을 받고 '독거"된 저희들의 사동과 지척지간이었습니다.

십 수년전에 세상을 떠나신 문익환 목사님, 아까운 나이에 그 뒤를 이어 떠나신 김승훈 신부님과 더불어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님'은 용납될 수 없는 반체제사범이라는 너울을 뒤집어 쓴 그 시대 투옥된 양심세력의 등불이셨습니다.

1988년 '님'이 앞장서 잡으신 여소야대의 국면이 찾아오자. 그때까지 15척 담장에 가려 푸른 하늘을 쳐다볼 수도 없던 수많은 무기수들마저 석방되어 .'님'과 상봉하는 날을 맞이했습니다.

여의도백화점 건물의 당사 집무실에서 저희를 맞아주신 '님'에게 저희를 대신하여 어머니의 회갑연에까지 축하분을 보내주신 첫인사를 드리니, '님'은 집도 절도 없었던 저희들에게 때로는 결혼을 축하하고, 때로는 쉴 자리라도 잡으라고 물심양면으로 성원을 아끼지 않으셨던 것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해마다 열리었던 5.18광주민중항쟁 기념행사가 '님'이 앞장서 돌려주신 '지원금'을 합하여 성사되곤 했던 여러 해를 겪으면서, 때로는 문익한 목사님 장례식에서 추모사를 해주시던 .'님'을 만나기도 했으나, '제도권정치'를 성원하며 일정한 거리에 있던 저희들이 '님'과 가까이 만나게 된 것은 남북 사이에 정상회담이 열리고, '6.15공동선언'을 가져온 때로부터였습니다.

'님'의 임기 중반에 남과 북 사이에 '6.15공동선언'이 이루어졌기에. '우리 민족끼리'라는 정신이 남쪽 사회에도 소통될 수 있었으며, 이를 계승한 노무현 정부시기에 와서는 처음으로 북녘 땅에서 치루어지는 '6.15민족공동행사'에 대표단의 한 사람으로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해 6.15공동선언 기념일을 맞이하는 자리를 거쳐, 12월에 노벨평화상 수상을 기념하는 자리에서와 올해의 6.15공동선언을 기념하는 날을 맞이하는 자리에서 '님'은 "피를 토하는 심경으로 국민 여러분께 말씀드린다"면서 국민들이 깨어날 것을 외쳤고, 깨어나서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라고 절규하셨습니다.

지난해 12월의 자리와는 달리 휠체어에 앉으신 채로 저희의 손목을 잡아주시며, 정 깊은 시선의 눈 빛으로 인사드리던 그날의 만남이 마지막 공식행사에서의 만남이 될 줄 어찌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뜻하지 않게 노무현 전 대통령님을 먼저 보내시고서 한반도의 평화 체제를 내오는 길에서 중국지도자들까지 방문하고 오셨던 '님'께서 '마지막 피한방울까지 짜내어 조국과 민족 앞에 바치겠다'고 하시던 말씀 그대로의 사태를 이렇게 빨리 접하게 될 줄이야 어찌 꿈에라도 차마 짐작하지 못했던 아둔함을 이제 소리쳐 후회합니다.

'님'께서 먼저 보내신 노무현 전 대통령님에게 "내 몸의 절반을 잃은 것 같다'고 하시던 말씀의 참의미가 이렇게도 빨리 반추되어 돌아올 줄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님'의 말씀, 하나 하나 마다 결코 '빈 말씀'이 하나라도 없음을 이제 저희들은 더욱 절실하게 깨달으며, 결코 '님'을 보내고 싶지 않은 심경으로 가득차, 발을 동동 구르며, 망연히 '님'의 눈길을 바라보며 하루동안을 그대로 서 있다가 분연히 일어나 '님'께서 주신 말씀을 새겨 보고자 무딘 붓을 들게 되었습니다.

"행동하지 않은 양심은 악의 편이다'
직장에서 마을에서 그도 저도 어려우면
"담벼락에 대고 소리라도 질러라"
"투표장에서 선택은 마음대로 행사할 수 있는 게 아니냐?"

'님'과 함께 어려위진 민생을 생각하며 도시락 하나로 수백명이 함께 했던 그 자리들에서, 평소보다 훨씬 가라 앉은 음성으로 절박한 3대위기를 지적하시며, 민주주의와 인권,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에의 길을 열어가셨고, 또 앞으로도 그 길을 변함없이 저희들의 선두에 서서 열어 나가실 '님'을 결코 보내드리고 싶지 않은 심경으로 뼈속까지 스며드는 육친에의 정을 담아 어쩔 수 없이 외칩니다.

'님"을 그냥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8.15의 공간에서 조국의 현실에 눈을 뜨고,
독재 정치의 벽 앞에서 제2의 8.15를 이루고자 선구자적인 통일 방안을 외치시며.
적대 세력에게도 화합과 포용의 악수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권의 창달과 민주주의를 세우는 길이
바로 민주주의민족통일 국민연합을 주창해 나선 1970년대 말이래
일관되게 남북의 화해와 평화 통일에의 길에 열정을 다 바치는 길임을 증명해 보이신 '님'이시여.
'님'은 이제 타오른 커다란 '불꽃'으로 남았습니다.
한점의 '님'의 '불꽃'은 온 광야를 가득 채워 더 큰 '불꽃'으로 타오를 것입니다.

'님'이시여
'님'이 못다 이룬 6.15의 '불꽃'이 되어
4.19도 5.18도 6.10도 넘어
6.15 시대를 열어가는
못다 이룬 '불꽃'이 되어
거침없이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못다 이룬 6.15와 8.15를 꽃 피우기 위해
또 다시 활활 타오르려는 '불꽃'으로 되어
이제 다시 온 광야를 밝히려는
타오르는 "님'의 '불꽃'으로 다시 피어 올라 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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