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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으로 정보 질서 장악…그게 되겠습니까?"

[정세현의 정세토크] 정보의 이데올로기성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요즘 미디어법 문제로 여야 공방이 날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미디어법을 통과시켜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언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전시킨다고 하던가요? 그런 식으로 좋게 포장되고 있지만, 사실 그건 소위 정보 질서에 관한 문제로 봐야 합니다.

미디어법은 정부가 국내 정보 질서를 장악하기 위한 시도라고 할까, 정보를 정부 입맛에 맞게 독점적으로 공급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국내 정치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지만, 국제 정치에서 정보 질서라는 게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는 걸 공부해 봤기 때문에 미디어법 논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중소 분쟁 심할 때도 신화통신은 타스통신을 베꼈다

1970년대까지 국제 정치학에서 국제 질서라고 하면 대체로 군사 질서, 경제 질서, 외교 질서를 말했습니다. 정보 질서라는 말은 별로 안 했어요. 그런데 80년대 초가 되니까 소위 비동맹국가들을 중심으로, 그리고 과거 대국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이 모여서 국제 정보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는 논의와 운동을 시작하더군요.

그런 걸 보면서, 국제 정보 질서라는 말을 처음 들었는데 그게 얼마나 대단하기에 저러는가, 공부를 좀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마침 그때 KBS가 세계적인 추세로 새롭게 나타는 국제 정보 질서 재편과 관련해서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에다가 2년짜리 연구 프로젝트를 줬어요. 나는 그 중에서 북한과 관련된 부분을 맡아서 연구하게 됐는데, 그러면서 그 추세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 동서 냉전이 마지막 장으로 접어들 무렵이던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왼쪽)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오른쪽)이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을 양대 정점으로 하는 국제 정보 질서가 버티고 있던 시절이었다.

재미있는 현상이 발견됐어요. 80년대가 되면 냉전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지만 중국이 개방개혁을 막 시작하고 미국과 수교를 하면서 세계로 나오던 시점이었습니다. 소련도, 아직은 고르바초프가 나오기 전이지만, 사회주의권에서의 리더십이 약간 흔들리는 시점이었어요.

그런 때에, 냉전 시대가 분명했던 70년대까지 소련과 미국의 영향 하에 있었던 작은 나라들, 중간급 나라들이 어떤 정보 유통 체계 속에서 국제 문제와 이념 문제를 국민들한테 어떻게 설명하고 교육했는지를 좀 들여다봤습니다.

그렇게 보니까 확연히 갈렸습니다. 중국이 개혁개방하기 전인 70년대까지는, 중소 분쟁이 아무리 심각했어도 중국의 신화통신은 국제 소식을 보도할 때 미국의 AP나 UPI, 영국의 로이터, 불란서의 AFP를 절대로 인용하지 않아요. 소련의 타스통신만 베낍니다.

유고슬라비아 같은 경우도…사실 유고는 티토 시절에 가장 먼저 스탈린한테 도전했고, 그래서 유고와 소련은 정치·외교·군사·경제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었지만, 그래도 유고의 국영 탄유그통신도 타스통신을 기본적인 정보 소스로 삼았습니다.

한편, 과거 불란서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전부 AFP를 베낍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거나 아프리카의 영어 사용 국가들은 로이터를 베끼고…미국 영향권 하에 있는 나라들은 AP나 UPI 같은 거, 지금은 UPI가 별로 활동을 안 하던데 그거 왜 그렇게 됐어요? 하여튼 미국 걸 베끼고.

이렇게 70년대 중후반까지는 정보 유통 경로의 폐쇄성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그러다가 80년대로 넘어오고 중국이 세계로 나오고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면서부터 그런 경향이 조금씩 줄어들어요.

같은 사건에 대해 AP, UPI, 타스, 로이터, AFP가 어떻게 보도 하는가? 처음에 사건을 전하는 팩트는 대체로 비슷합니다. 그러나 강조점이 조금씩 다르죠. 부연설명을 하면서 살짝 물고를 틀기도 하고, 결국 독자들의 시각을 한정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하더라 이겁니다.

그런 걸 확인하니까 국제 정보 질서 재편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를 알겠더라고요. 이건 군사 질서나 경제 질서, 외교 질서보다 더 무서워요.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정점에 있으면서 한미동맹, 미일동맹, 나토 등등이 있는데, 사실 그건 눈에 잘 보이죠. 패거리가 딱 갈리니까.

그런데 정보 질서는 겉으로는 잘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군사 질서나 경제 질서, 외교 질서보다도 권력 강국들의 이념이나 이익을 훨씬 더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강국들의 이익을 영속시키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컨대 같은 사건을 놓고 타스가 얘기하는 걸 보면, 역시 사회주의는 좋고 자본주의는 나쁘다는 시각이 반드시 들어갑니다. 중국으로서는 개방을 시작했다고 해도 그런 대목에 있어서는 타스를 베껴야 했어요.

지금은 그런 경향이 많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중국적인 것, 사회주의적인 것을 말하는데 있어서는 자기 체제나 정책의 우월성을 인민들한테 설명해야 하니까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의 단점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자기네 것을 좋게 얘기하고 그랬습니다.

학문과 보도의 이데올로기성 직시해야

그런 현상을 보면서 70년대 말에 통일원 장관을 지내신 대학 때 은사님의 말씀, 학문에도 이데올로기성이 있다는 말씀이 새삼 화~악 마음에 와 닿는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무슨 말인지 잘 몰랐고, 너무 국수주의적인 것 같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결국은 그 말씀이 틀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국제 정치학이란 학문은 미국에서 생겨난 학문입니다. 과거에는 외교사 같은 걸로 역사학으로나 다루고 말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국제 정치적 위상이 올라가고, 그걸 계속 유지하기 위한 뒷받침 차원에서 국제 정치학이 빨리 발전했습니다. 대학에서도 독립된 학과로 가르치고, 학문으로서도 제법 대접을 받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제 정치학은 기본적으로 미국적인 가치와 관점을 정당화·합리화·미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걸 잘 가려가면서 공부해야 한다는 말씀을 그 교수님이 하셨습니다. 국제 정치학 하는 사람들은 항상 '내 나라'와 '남의 나라'를 구분하는 냉혹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하셨었습니다.

사회과학의 경우 국가성, 현장성, 심지어는 이데올로기성도 있다는 것도 강조되곤 했지요. 예컨대 막스 베버가 정립한 사회학 이론도 기본적으로 독일적이라는 거지요. 독일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독일의 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만 다른 나라의 현상을 설명할 때는 안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또, 객관적으로 보이는 학문에도 그런 국가성, 현장성이 있기 때문에 이론의 모양새를 갖춘 이데올로기성에 대해서도 항상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그런 연후에 이론도 공부하고, 또 그런 생각을 가지고 정세를 분석하고 전망해야지, 근사한 이론이니까 무조건 모방하고 아무데나 적용하려고 하면 자기네 문제를 설명하는데 별 도움이 안 될 수 있다는 거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남의 나라 국가 이익에나 기여하는 수도 있다는 겁니다.

80년대 초에 국제 정보 질서에 관한 연구를 하다 보니까 '그 말씀이 바로 이런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그렇다면 언론 보도 또한 사실을 보도한다고 곧이곧대로 믿을 게 아니라 그 기사 속에 이데올로기나 복선은 없는지, 특정 언론사의 보도 성향을 반드시 주의하고 비켜가야 할 부분은 없는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남북문제만 해도 저는 우리 매체들의 보도 내용을 비교하는 것은 물론이고 미국, 중국, 러시아의 보도도 항상 대조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미국 언론들도 뉴욕타임스에서부터 월스트리트저널까지 성향이 다 다르잖아요. 월스트리트저널이나 폭스뉴스 같은 걸 보면 북한은 제재 때문에 곧 망할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매체를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오바마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미국의 언론들은 다 다르게 보도합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이것저것을 비교해서 봐야 합니다.

오바마 대북 정책 보도, 구시대적 행태 못 벗어나

80년대 초에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나 비동맹국가들이 국제 정보 질서의 재편 문제를 제기한 후에, 중국의 개혁개방도 심화되고, 소련에서도 80년대 중반부터 개방개혁이 시작되었죠.

사실 고르바초프가 했던 글라스노스트라는 말은 흔히 개방이라고 해석하는데 원래 뜻은 '정보 공개'랍니다. 고르바초프가 나오기 전에는 당과 정부가 모든 정보를 장악하고 국민들한테는 조금씩만 알려 주면서 이대로만 믿고 따라오라는 식으로 했는데, 고르바초프는 그렇게 해서는 러시아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개혁이라는 것은 정보를 공유하는 조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글라스노스트가 먼저 오고 페레스트로이카 즉, 구조 조정이 나중에 온 겁니다.

그렇게 상황이 바뀌고 시간이 흐르면서 타스통신도 이제는 '사회주의적 진실'을 독점적으로 보도하는 뉴스 공급자로서의 절대적인 지위를 잃어버리게 됐습니다. 요즘은 이타르타스통신으로 바뀌었지요.

▲ 유고슬라비아 시절 탄유그통신 로고.
그러면서 신화통신이나 이타르타스통신이나 비중도 비슷하게 됐습니다. 과거에는 완전히 피라미드였어요. 타스 밑에 신화, 탄유그…이런 식으로.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타스를 직접 베끼기도 했지만 신화나 탄유그를 베끼면서 미국과 남쪽을 비판하고 그랬습니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니까 조선중앙통신도 남쪽의 보도를 바로 인용해서 비판하는데, 탈냉전이 되고 국제사회가 다극화하고, 5대 통신사 중심의 피라미드형 국제 정보 질서가 무너지면서 그렇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남북관계에 대해서도 남한과 북한의 보도를 비교하는 건 기본이고, 중국과 미국은 어떻게 보도하는지, 미국에서도 보수와 진보는 어떻게 다르게 쓰는지를 비교해야 합니다. 중국이라도 당국자 얘기 다르고 학자들 얘기 다르니까 골고루 봐야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부 언론들은 아직도 과거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무조건 미국의 보도만 진실이라고 믿고 국민들한테 그대로 전달하면서 오바마의 대북 정책이 계속 강성으로만 나갈 것처럼 인식시켜 주고, 북한은 곧 붕괴할 것처럼 보도하는데…헌재에서 미디어법이 어떻게 결론날지 모르지만, 설사 미디어법을 강행하려는 쪽에 유리하게 결론이 나더라도, 지금은 인터넷 시대라서 정부 주도의 정보 질서에 국민들이 끌려갈 지 의문입니다.

더군다나 요즘엔 UCC 같은 것까지 있어서 종이신문에 나오지 않는 얘기들이 60~70년대 '카더라방송'이나 '유비(유언비어)통신'보다 훨씬 더 체계적이고 광범위하게 전달됩니다. 60~70년대 정부가 정보를 장악하고 국민들은 가르쳐주는 대로 믿어야 했던 때하고는 완전히 달라요.

미디어법 아무리 밀어붙여도 뜻대로 안 될 것

국제 정보 질서란 게 한 때는 나라들과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린 적이 있었습니다. 냉전시대에는 그게 기능했고 또 그렇게 해도 큰 문제가 없었어요. 한국 같은 경우 어떻게 보면 미국이 가르쳐주는 대로 따라가는 게 사는 길인 때도 있었습니다. 소련이나 공산주의, 북한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적대의식만 가지면 되고….

북한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타스통신과 신화통신이 얘기하는 걸 보도하면서 인민들을 몰고 가면 됐겠죠. 그런데 지금은 안 그렇죠. 러시아나 중국도 다원화된 시대에 자기네 국가 이익 중심으로 보도하는데 북한이 그대로 받아쓰진 않습니다.

AP, UPI, 로이터, AFP, 타스 5대 왕국 체제가 깨지면서, 이제 언론 보도는 국가 이익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걸 반드시 염두에 두고 기사를 읽어야 합니다.

예컨대 서방 언론매체들이 이슬람권 문제를 보도할 때는 이슬람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다 들어가죠. 또 미국 언론들이 한때는 중국을 비판하다가도 요즘 경제적으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게 되니까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가 덜 나오는 겁니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미국이 아프간-파키스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러시아와 손을 잡아야 하니까, 러시아가 문제를 좀 일으킨다고 해도 기사가 유연하게 나가게 돼있어요. 언론 보도라는 게 그만큼 정치성이 강한 것입니다.

그런 사실을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우리 사회에서 냉전 때에나 있었던 정보 질서 장악 시도가 살아나는 건 시대에 맞지 않습니다.

국제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강대국 중심의 피라미드형 국제 정보 질서가 깨졌듯, 경제력이 커지고 민주화가 되면서 개인과 시민사회의 식견이 높아졌고 목소리도 커졌는데 정보 질서를 옛날처럼 획일적으로 수립하려는 게 되겠습니까?

아무리 해도 잘 안될 것 같지 않아요? 한계가 있을 겁니다. 저항은 커지고.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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