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년이 다 돼가고 있고, 개성공단 출입이 어려워진 게 벌써 7개월이 지났는데요, 그건 이명박 정부가 지난 10년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규정하고, '퍼주기' 대신 '제대로 된 남북관계'를 정립하겠다고 하면서 나타난 현상이잖아요. 이 정부는 과거 10년간의 남북관계가 잘못됐다면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게 과연 사실인가.
통일부는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정부 실세나 여당 국회의원들, 보수 야당은 김대중 정부 이후 10년 간 햇볕정책의 결과 돌아온 것은 핵무기와 미사일 밖에 없다고 한다잖아요? 북한이 그 돈으로 미사일을 만들고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건데, 그동안 여기저기서 짤막짤막하게 반박을 했지만 오늘 다시 한 번 제대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정책의 공과를 놓고 변호하자는 차원이 아녜요. 남북관계를 보는데 있어서 시각을 잘못 가질 경우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하고, 여론을 얼마나 왜곡해서, 결과적으로 정책 결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지 따져 보자는 차원에서 하는 말입니다.
10년간 北으로 간 현금 '탈탈 털어' 1조 원, 10억 불
우선, 햇볕정책 10년 동안 북으로 간 돈 액수에 대해, 보수언론은 말할 것도 없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도 수 조 원의 현금이 갔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보수야당에서도 그러고...그런데 그건 우선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얘기입니다. 과장이에요.
수 조 원이라면 최소 20억 불이 넘어야 하는데, 일단 남북협력기금 즉, 국민들이 낸 세금이 현금으로 넘어간 건 없습니다. 쌀과 비료를 사서 보낸 돈은 남북협력기금인데 그건 전부 현물로 갔습니다. 그 액수는 국회 상임위에 정확히 보고됐고, 언론도 그 숫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햇볕정책 기간 동안 이른바 대북지원이라고 비료나 쌀이 가기 시작한 건 1999년부턴데, 초기에는 몇 백 만 불 정도였고 많을 때가 5000억 원 정도, 달러로 환산하면 연 5억 불 어치가 갔습니다. 근데 그건 다 현물로 보내는 거고, 수송비는 우리 해운회사가 받으니까 실제로는 많을 때 연 4억 불 어치 현물이 갔다고 보면 됩니다.
2006년부터는 지원이 끊어졌으니까, 99년부터 2005년까지 6~7년 동안 정말 넉넉히 잡아서 총 20억 불 어치 현물이 갔습니다.
2000년 정상회담과 관련해서 돈이 간 문제는 2003년 대북송금 특검에서 결론이 났고 보도도 됐습니다. 전부 현대 돈이었고, 현대가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급진전될 경우를 대비해서 소위 7대 대북사업을 독점 개발하는 권리를 보장받으려고 선수금으로 4억5000만 불을 줬다고 특검이 발표했습니다. 정부는 일부 액수의 달러 환전과 반출에 편의를 제공했다는 거였죠.
또 현대아산이 작년 7월 12일부로 금강산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98년 11월 18일 이후 금강산 관광 대금으로 북쪽에 준 돈이 10여 년 간 총 4억8600만 불입니다. 이것도 물론 세금은 아니죠. 금강산을 보고 싶은 국민들이 관광 대금으로 낸 거니까.
개성공단에 투자하느라고 북한에 돈을 갖다 바쳤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너무 악의적인 얘기입니다. 왜냐면 개성공단 개발은 인건비와 공장부지 땅값 압박 때문에 중국으로 베트남으로 나가는 우리 중소기업들이 싼 노동력과 싼 땅값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건 전부 현물로 갔어요. 야산을 깎고, 평지를 만들고, 하수도 시설을 하고, 도로를 만들고 등등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공단을 만든 건데, 거기 1단계 100만평에 7329억 원, 미화로 7억329만 불이 들어갔습니다. 복잡하니까 환율은 1000대 1로 계산합시다.
숫자가 나와 골치 아프겠지만 알 건 알아야 하니까 자세히 봅시다. 개성공단 1단계 7329억 원 중에서 정부의 남북협력기금은 2033억 원 들어갔습니다. 그건 정부가 현대에 준 돈이 아니라 토지공사에 넘겨줘서 집행해 나간 겁니다. 그리고 토지공사 자체로 1051억 원을 썼고, 한전이 전기 공급하는 차원에서 투자한 돈이 480억 원이죠. 송전시설, 전봇대 같은 거 세우는데 들어갔습니다. 또 KT가 통신시설 갖추느라고 84억 원. 그리고 민간이 자기 공장을 짓기 위해 쓴 돈이 3681억 원...이렇게 도합 7329억 원, 미화로 7억329만 불이 됩니다. 이거 다 우리 중소기업들을 위해 현물로 나간 겁니다. |
개성공단 관련해서 준정부라고 할 토지공사가 북한에 현금으로 준 게 유일하게 토지임차료 1600만 불인데요...이번에 5억 불로 올려달라는 바로 그 1600만 불이 현금으로 갔는데, 토지공사가 300만 불은 현물로, 1300만 불은 현금으로 선대납 했다가 나중에 공단 분양하면서 입주기업들로부터 다 환수했습니다. 수익자부담으로 한 거죠.
세금은 아니지만 어쨌든 돈이 가긴 간 건데 우리 중소기업들이 저지대, 저임금으로 사업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해서 50년 동안 독점적으로 임대하는 조건으로 낸 셈입니다.
그리고 개성공단 임금이 2004년 38만 불로 시작해서 금년 5월 말까지 총 6500만 불 올라갔습니다. 이건 그냥 준 게 아니라 노동력을 제공한 대가를 준 거죠. 5년 반 동안 1인당 월 50~60불 짜리 노동력의 대가가 모인 겁니다.
이렇게 해서 햇볕정책 기간 동안 남북관계 개선과 안보불안 저하에 들어간 돈이, 현대아산이 쓴 돈까지 모조리 다 합해서 총 37억3000불 정도, 우리 돈으로 3조7000억 원이 됩니다. 그 중에서 현금만 따지면 현대가 준 사업 선수금과 금강산 관광 대가, 개성공단 노동 대가 다 털어서 약 10억 불 즉, 1조 원입니다.
▲ 관광객들이 판문점 내 통일전망대에 설치된 북한 미사일 현황판을 보고 있다. ⓒ뉴시스 |
미사일 발사로 올해 쓴 돈만 1조 원
반면, 북한이 올해 미사일을 18발 가까이 쏜 것에 대해 이번에 연합뉴스가 계산을 했는데, 한 3억4000만 불 들어간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그리고 올 4월 발사한 광명성 2호를 만드는데 2억5000만 불, 5월 핵실험에 3~4억 불 들어갔다고 계산했어요. 금년에만 총 9~10억 달러가 든 거죠. 많이 썼습니다.
그런데 북한은 93년 5월 이미 중거리 미사일을 쐈고, 98년 8월 31일 중거리 미사일을 또 쐈습니다. 이 미사일 발사는 대미 협상용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사일 수출을 위한 쇼의 성격도 강합니다. 해마다 하는 한미 군사훈련도 사실은 미국이 신형 무기 들고 나와서 성능 보여주면 우리 국방부가 신무기 구매계획을 세우고 예산 신청을 하는 거잖아요.
북한이 98년 중거리 미사일을 쏘고 나니까 미국이 99년부터 미사일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이 미사일 수출 중단과 시험발사 중지를 요구하니까 북은 '우리가 미사일로 연간 10억 불 정도를 벌고 있는데 그걸 못하게 하려면 보상하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미국은 10억 불은 너무 많고 5억 불 정도는 인정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서 미사일 발사를 중지시켜요. 그게 조명록-올브라이트가 2000년 10월 발표한 조미 공동코뮈니케의 '미사일 발사 유예' 조항 합의의 배경입니다.
미사일 발사를 유예시키고 수출하지 않는 조건으로 연간 5억 불 정도 인정하되, 돈을 바로 줄 수 없으니 1차적으로 3년간 10억 불 상당의 식량 제공부터 한다는 거였습니다.
이건 미국이 해마다 5억 불 정도만 북한에 보상하면 그걸로 되겠다는 계산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미국도 90년대 말에 이미 북한이 연간 5~10억 불을 무기 수출로 벌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미사일 발사 유예를 하다가 다시 발사하기 시작한 게 2003년입니다. 부시 정부 들어서 대북 압박정책이 시작되면서 조미공동코뮈니케가 이행되지 않으니까 다시 쏘기 시작한 거죠. 그걸 달리 말하면 미사일 수출을 다시 시작했다는 겁니다.
2004년엔 6자회담이 굴러가고 있어서 좀 쉬었고...2005년에 1발 쏘고, 2006년엔 3월과 7월에 총 9발을 쐈고, 2007년에 7발, 2008년에 18발, 금년에 18발 쐈습니다. 이렇게 93년 이후 총 50발 정도를 쐈어요. 햇볕정책 이후지만 미국의 대북압박이 심하던 시절에 쏜 거를 보태면 48발이죠. 돈으로 환산하면 총 14~15억 불 정도를 미사일 시험에 썼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만큼 쓰면 그 몇 배가 남는 장사가 되니까 쏜 거 아니겠어요? 핵문제로 미국을 압박할 일이 있을 때는 물론이고 특별히 그럴 일이 없을 때도 쏜 것은 장사속도 있다는 거지요. 쏠 때에는 이란 등 구매 희망국에서 사람들이 와있었다고 하잖아요?
이건 북한이 계속 미사일 장사를 했다는 뜻입니다. 현대가 보낸 돈 같은 걸 다 써버린 뒤에도 이런 장사는 계속됐어요. 돈이란 건 한 번 들어가면 곧바로 여기저기 쓰이지, 3~4년간 꼬깃꼬깃 접어서 깊숙이 넣어 두었다가 미사일 쏠 때 꺼내 쓴다는 건 비현실적인 얘기입니다.
민수경제/군수경제 엄격 구분…군수경제 자체의 재생산 능력 엄청나
더욱 중요한 건요...북한의 경우에...스탈린식 경제의 특성이기도 한데, 소위 인민경제와 군수경제가 완전히 쪼개져 있어서 서로 절대 넘나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특성을 잘 보여주는 얘기가 있죠. 소련은 80년대에 이미 사람을 달에 착륙 시킬 정도의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 대 초까지 모스크바 최고급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느려빠진 것은 물론이고 어떤 층에서 멈추면 바닥하고 높이를 맞추지 못할 정도로 형편없었다고 해요. 민수용 기술과 군수기술의 연계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특징이 가장 강한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에는 군수경제만 전담하는 제2경제위원회가 따로 있습니다. 거기서 미사일을 개발해 돈을 만들고, 그걸로 핵도 개발합니다. 그런데 금강산 관광 때문에 9억3000만 불 정도를 받은 기관은 민경련(조선민족경제협력연합회)이나 아태(아태평화위원회)란 말예요. 민수경제 쪽이라고. 그건 자기네 인민경제에 투자하기 위해 돈을 받아썼죠.
그와 관련해서 JETRO(일본무역진흥공사) 같은 데서 이미 분석이 나왔는데요, 금강산 관광 등으로 현금이 들어가는 시절 북한이 중국에서 원자재 등을 사들여가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겁니다. 아무리 가까운 중국이지만 북한이 외상으로 절대 살 수 없는 원자재나 기술을 들여오는데 민경련이나 아태 쪽에서 간 돈을 썼다는 얘기가 됩니다. 인민경제를 통해 번 돈을 인민경제를 위해 쓰는 거죠.
사실이 이런데도 불구하고 햇볕정책 때문에 수 조 원이 북한에 들어갔고, 그걸로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했다고 하는 건 맞지 않습니다. 정치선동이라고 치부하면 그뿐이지만, 억지가 심한 거죠.
그래도 계속 그렇게 우긴다면...북한이 93년에 쏜 미사일은 누구 돈으로 쏜 겁니까? 노태우 정부 때인 89년부터 남북 경협이란 게 아주 약소한 액수로 시작했는데, 그 돈 모아서 쐈다고 할 겁니까?
그리고 98년 쏜 사거리 1650km 미사일은 누구 돈으로 만들고 쐈다고 할 겁니까? 김영삼 정부가 95년 6월부터 가을까지 쌀 15만 톤을 보낸 적은 있는데 그걸로 쐈다고 할 겁니까? 98년 6월이면, 그때는 김대중 정부에서도 정책적으로는 햇볕을 추구했지만 실제로 대북 지원을 하지 않았을 때입니다. 쌀이 됐건 비료가 됐던 하나도 안 갔을 때입니다.
그러니까...북한이 핵실험을 하고 미사일을 개발하는 건 제2경제위원회가 자기 능력을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가능해진 거라고 이해를 해야지, 남쪽에서 간 돈이 핵과 미사일로 돼서 돌아왔다고 말하는 건 북한 경제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모를 뿐만 아니라, 햇볕정책 이전 북한의 무기 수출 상황이나 무기 능력 발전에 대해 전혀 모르거나, 혹은 모르는 척 하고 일부러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 차원에서 말하는 겁니다. 국민을 오도하는 겁니다.
과거 공산주의를 했던 나라들은 이제 국민경제와 군수경제를 나누는 걸 다 포기했죠. 바꿨습니다. 소련은 무너지면서 군수산업을 민수로 전환했고, 중국도 바꿨습니다. 그런데 북한에는 군수산업이 아직도 별도의 불가침의 영역으로 돼있습니다.
또, 금년에 미사일을 쏘는데 든 돈 3억 불만 가지면 식량 100만 톤을 사다 먹을 수 있었다는 주장을 정부 당국자가 했더군요.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북한은 과거부터 식량을 사다 먹지 않았어요. 부족한 식량은 어차피 중국이나 소련 같은 데서 무상으로 지원받아 살아왔기 때문일 겁니다. WFP(세계식량계획)나 미국, 심지어 95년에는 일본에서도 받았어요. 인민경제에 대해서는 신경 안 쓰는 거예요. 들어오면 들어오고 안 들어오면 마는 거죠.
주머닛돈이 쌈짓돈이라는 건 북한의 경우 맞지 않습니다. 북한은 주머닛돈은 주머닛돈이고 쌈짓돈은 쌈짓돈입니다. 우리 식으로 터서 쓴다고 생각하면 사실과 다릅니다. 그걸 가지고 '저런 나쁜 놈들'이라고 도덕적으로 욕을 할 수는 있겠죠. 그렇지만 북한의 현실하고는 분명 다릅니다.
햇볕정책이 핵실험 불렀다고 말하는 美언론 봤나?
핵실험에 대해서는 2006년 1차 때 미국 언론들이 이미 답을 말해 줬습니다. 당시 부시 정부는 북한이 플루토늄이 아니라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HEU)을 가동하면서 핵개발을 한다고 압박했었습니다. 플루토늄 핵개발과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 개발은 종류가 다릅니다.
그런데 핵실험을 하고 1주일 정도 뒤인 10월 16일자 <뉴욕타임즈>는 익명을 요구하는 정보당국자의 증언을 토대로 북한 핵폭탄의 원료는 우라늄이 아니라 플루토늄이었다는 게 확인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클린턴 행정부 때 북미가 맺은 약속에 의해서 수조 속에 들어갔던 폐연료봉이 부시 정부의 잘못으로 밖으로 나와서 플루토늄 폭탄이 됐다는 겁니다.
엉뚱하게 HEU 문제를 만들어서 북한을 압박한 부시 정부가 북한으로 하여금 결국 핵실험을 하게 했다는 겁니다. 햇볕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실험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는 없어요. 말이 안 되니까 안 쓴 겁니다. 바로 전날 <워싱턴포스트>를 봐도 북한의 핵실험은 대미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지 사우스 코리아의 햇볕정책 때문에 그랬다는 얘기는 없었어요.
그러니까 핵이나 미사일 같은 국제문제가 나오면 미국 등 외국 언론도 좀 봐가면서 얘기하자 이겁니다. 국회의원쯤 되면, 본인이 하던지 보좌관을 시켜서라도 '오늘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에 노스 코리아 관련 기사 없나 봐라' 하면 될 거 아닙니까. 국제사회에서 핵이나 미사일 또는 북한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봐가면서 이전 정부나 상대를 공격하던지 언론플레이를 해야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아주 짧은 정보, 과학적이지도 않고 정치 선동 차원에서나 나온 얘기를 그대로 국회의원들이 옮겨 버리고 심지어 견강부회(牽强附會)까지 하고, 당 대표자급에서 얘기해 버리고 보수언론이 받아쓰면 국민들은 '아, 저 정도 사람이 하는 말이니까 맞겠지'하면서 믿어 버리는 겁니다. 사실과 전혀 다른 그림을 국민들이 머릿속에 그려 놓고 남북관계를 보게 되는 거죠.
요컨대, 햇볕정책으로 북한에 간 돈이 한 10억 불 정도 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제2경제위원회가 미사일 등 무기 수출로 벌어서 미사일 사거리도 계속 늘리고 핵실험도 벌써 두 번씩이나 한 겁니다.
그리고 또...우리 아니면 북한이 돈 얻어 쓸 데도 없고, 우리 아니면 굶어 죽는다는 착각을 해서도 안 됩니다. 북한은 중국과 기장무역(記帳貿易)을 하면서 나중에 빚을 탕감 받는 식으로 하고 있고, 동남아·아프리카와의 관계도 남남협력이라고 해서 우리와의 관계보다 훨씬 깊습니다. 못사는 나라들 끼리 자원 같은 걸 서로 싸게 팔고 사주는 외교를 오랫동안 해왔어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연초가 되면 동남아 쪽으로 해서 아프리카, 중동까지 쭉 한 바퀴 돌아오잖아요. 그런 나라들하고 적은 액수지만 교역을 통해서 자기네들이 필요한 걸 조달해 쓰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니면 북한이 못 산다고 하는 건 동네에 있는 쩨쩨한 부자가 흉년 들었을 때 쌀 한 가마니 달랑 내놓고 '내 덕에 다 먹고 산다'고 자랑하는 거나 마찬가지인 거예요. 규모가 작아서 그렇지 다 융통해서 씁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서 그쪽이 굶어 죽을 거라고 단정하는 건 성급한 얘깁니다.
물론 북한이 그렇게 근근이 버티고 있지만, 우리가 대북 영향력을 늘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생각은 별도로 해야 합니다.
北, 미국 내 협상론자 입지 좁히는 자충수 그만 둬라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보탭시다. 요즘 북측 관계자들이 프레시안 정세토크를 접한다는 얘기를 몇 군데에서 들어서 하는 말인데...북한도요, 최근 오바마 정부가 자기들한테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는 정세를 조성한 것에 대해 반성을 많이 해야 돼요.
내가 전에도 북한을 향해 '오바마의 부시화를 바라느냐'고 했었는데, 북한도 이제 이쯤에서 멈추고 그 동안의 득실을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 대해 과도한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나머지 이렇게 나가는 거라면, 이제 현실에 눈 뜰 필요가 있어요.
이번에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에 지명된 커트 캠벨이라는 사람은 국방부에서 비확산 전문가로 일한 사람입니다. 즉, 앞으로 굉장히 깐깐하게 북한을 상대할 거니까 거기에 무슨 뭐 '대결에는 대결로' '보복에는 더 큰 보복으로'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그런 사람을 어떻게 상대하고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돼요.
오바마 정부 내의 대북 협상론자들의 입지를 도와줄 수 있는 조치를 북한은 취할 필요가 있어요. 계속 이렇게 나가면 2012년 강성대국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절대로 이뤄질 수 없어요.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이 2300만이 굶고 있는데 무기만 들고 뭐, 뭐, 뭘 할 거요?
그리고 북한이 계속 그렇게 나가면 대북제재의 강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경제 지원은커녕 북한의 대외 경제 활동 자체가 여기저기서 통제될 거 아닙니까. 제재 계속되면 남남협력인들 제대로 되겠어요? 그러니 현명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어요.
오바마 출범 이후에 북한이 너무 세게 나갔는데, 초장에 길들이겠다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미국이란 나라가 북한이 생각하는 대로 그렇게 길들여지는 나라가 아니에요.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대미 초강수가 성과를 내고 있고 다 잘 돼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자기만족에 빠질지 모르지만, 그건 말 그대로 자기만족에 끝나고 결국 나중에 더 어려운 결과만 자초하게 됩니다. 솔직히 말해서 북한 이제 정신 좀 차려야 돼요. 계속 이렇게 나가서 얻을 게 없어요.
북한이 어느 정도 휴지기를 두고 냉각기를 스스로 설정하지 않으면 동아태 차관보 쪽의 대북정책라인 인사 문제가 정리되는 이번 여름 이후 가을부터 미국이 유연하게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게 만드는 결과를 자초하게 될 겁니다. 소위 출구를 막아 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누구 손해입니까?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
* '정세토크'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석좌교수)이 한반도 문제에 관해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격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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