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식은 "나는 섬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것 같다"는 그의 또 다른 자조와 연결시켜 해석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또렷해진다. 노무현은 대통령이라는 정치권력의 최정점에 오르는데는 성공했으나, 곧 자신이, 자신을 추종하기는커녕 인정조차 하지 않으려는 경제권력, 문화권력, 교육권력, 종교권력, 사법권력, 언론권력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하게 포박된 상태임을 느끼게 된 것이다.
나는 노 대통령이 말한 시장이란, 재벌같은 경제단위들이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그런 경제적 의미의 시장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모든 권력들을 아우르는 '수구기득권 복합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확신한다.
"이제 권력은 조선일보로 넘어갔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등장함으로써 잠시 정치권력 쪽에 균열이 생겼던 이 '수구기득권 복합체'가 다시 완벽하게 복원됐다. 복원되는 과정에서 아주 기이한 현상이 하나 발생했다. 언론권력이, 좁혀 말하자면 조·중·동, 다시 더 좁혀 말하자면 <조선일보>가 이 '수구기득권 복합체'의 중심으로 등장한 것이다. 노무현식 어법으로 바꾼다면 "이제 권력은 <조선일보>로 넘어간 것"이다.
사실 여러 권력들 중에서 경계를 넘나들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권력은 정치권력과 언론권력 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덕분에 가문 대대로 수구의 이념과 행동양식들을 고스란히 물려 받은 조·중·동은 막 선출된 햇병아리 이명박 정권의 가이드견 혹은 보호견을 자임하면서 정치 권력의 머리꼭대기에서 놀게 된 것이다.
인수위 시절이던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조선일보 출판기념식에 찾아 가 방우영 회장에게 90도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던 일, 지난해 촛불시위 때 <조선일보>가 1면 톱으로 "청와대만 지킬거냐"며 벌컥 화를 내자 깜짝 놀란 문화부장관이 즉각 조선일보사에 사죄 방문하고 서울시 의회 앞까지 경찰방어선을 전진시킨 일 등 두 개의 에피소드만으로도 이 시대 언론권력의 우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데 부족함이 없다. 이들의 힘은 각각의 영역 속에 흩어져 있는 수구세력들에게 공동의 길을 가리켜 주며 자신감과 결속력을 높여 주는 역량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명박 정부의 '조·중·동에 상납해야 내가 산다'는 절박함
조·중·동은 이제 아주 큰 것 하나로 그 댓가를 받고 싶어 한다. 조·중·동의 언론 장사는 두 가지 형태로 전개된다. 자신들이 확보한 독자에 대한 접근권을 광고주에게 팔아서 얻는 광고수입을 기본으로 하되 수구기득권세력의 보호견, 혹은 가이드견을 자임하는 댓가로 정치권력, 자본권력 등으로부터 특혜광고, 사업협찬 등의 명목으로 일종의 보호세를 받아 내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의 속성 상 지금처럼 정파지임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노골적인 왜곡보도를 일삼는 한 독자는 계속 떨어지게 마련이며 그에 따라 광고수입도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자본권력이 조·중·동과 한 통속이라지만 광고효과가 떨어지는 매체에 계속 광고를 내지는 말라는 것이 그들이 신봉하는 자본의 논리이기 때문이다. 조·중·동으로서는 그들의 떨어진 독자와 떨어진 광고수입과 떨어진 영향력을 보충할 수 있는 큰 것 한 건, 즉 종합편성 방송채널을 획득함으로써 크게 악화된 수익성을 보전하고 그들의 언론권력을 더욱 단단히 다질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방송장악의 내용이 같다고 해서 그 음모의 주체를 이명박 정권으로 보느냐 조·중·동으로 보느냐 는 문제제기를 무가치하다고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관점에 따라 이 미디어법 싸움의 전개과정과 결말의 예측이 달라질 것이고 그에 따라 투쟁의 목표와 강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단순한 방송장악이라면 이미 끝난 얘기다. 지금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이라곤 문화방송(MBC) 하나 뿐인데 이마저도 8월 방문진 이사진 개편을 통해 저차원적이나마 KBS 수준의 장악을 얼마든지 추진할 수 있다. 조·중·동에게 큰 것 하나 상납해야 내가 산다는 절박함이 없고서야 이렇게 다 끝난 방송장악을, 더구나 대다수 국민이 반대하는 미디어법에 악착같이 매달릴 일이 없는 것이다.
방송장악 저지는 '수구기득권복합체' 흔들기다
그러므로 나는 이명박 청와대의 배후조종 아래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갈 데까지 갈 것이라고 본다. 조·중·동은 지금 큰 기대 속에 이명박 정권의 성의와 능력을 냉정하게 가늠해 보고 있다. 그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는 순간 '수구기득권 복합체' 내부에서는 엄청난 균열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뜻있고 용기있는 언론종사자들의 투쟁이 더 큰 역사적 의미를 갖는 지점, 야당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걸고 싸울 가치가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어찌 보면 이 싸움은 방어가 아니라 공격일 수도 있다.
※연재 '미디어악법 물렀거라'는 <프레시안>과 언론광장의 공동 기획으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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