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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의 문화부, 예술을 겁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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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의 문화부, 예술을 겁탈하다

[진중권 칼럼] 이것이 문화인가, 야만인가?

진중권 씨는 오직 1학기에 '현대 사상의 지평'만을 강의했고 2학기 강의는 하지도 않았음에도 연봉 4000만 원을 그대로 받은 것. 이에 한예종 측은 "진중권 씨가 UAT 통섭 과정 전반에 대한 이론적 연구와 '예술과 놀이 랩'의 초기 워크숍에 미학적 검토에 대한 자문을 했기에 연봉이 높았다"고 해명했지만,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고 1학기에 강의 하나 하면서 연봉 4000만 원을 받은 전례가 있냐"는 질문에도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진중권 씨는 러시아 기호학 관련 석사학위가 최종 학력이므로, 대체 왜 이런 비전문가가 '현대 사상의 지평'을 강의했느냐는 의혹도 받고 있다.(<빅뉴스>, 2009년 3월 26일)

이론 없는 예술?

듣자 하니 인터넷 낭인들이 나의 객원교수 자격을 문제 삼는 모양이다. 처음에는 문화부에서도 나의 객원 자격은 문제 삼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 걸, 학교에 가서 처분서를 열람해 보니, 그 부분까지도 슬쩍 시비를 걸어놓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를 통해 이번 문화부 감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인터넷 낭인들이 창작한 허접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되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넷 낭인들과 문화부 감사실의 입장은 한 마디로 이렇게 요약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왜 실기만 가르치지 이론 교육을 시키느냐?'

감사를 하면서 한예종의 설치령도 제대로 안 읽은 모양이다. 설치령 제2조 1항은 "예술실기 및 예술이론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대학 과정에 상당하는 교육 과정"에 대해 언급한다. 또 교칙 제2조에서도 "예술실기와 이론을 교수하여 예술영재 및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 것을 한예종의 목표로 규정하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변모가 부랴부랴 이런 변명을 내놓는다.

예술영재교육과 예술실기교육으로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데 예술이론이 무슨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한예종 설치령은 대통령령이므로 언제든지 개정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설치령 2조를 개정하여 예술이론을 제외하는 게 합리적이다. (<빅뉴스>, 2009년 4월 16일)

한 마디로 열쇠가 구멍에 맞지 않으니, 이참에 집을 다시 짓자는 식이다.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데 예술이론이 무슨 도움이 되냐"는 무식한 소리를 어떻게 저렇게 버젓이 할 수 있을까? 허접한 미술사 책을 건성으로만 읽었어도, 중세의 장인이 근대의 예술가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원근법 덕분이었다는 사실을 알 게다. 도대체 21세기 대한민국의 예술가들을 르네상스 이전 중세의 기능공으로 되돌려놓는 데에서, 이들의 정신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 볼 수 있다. 생각이 낡아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500년을 거슬러 르네상스 이전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이건 보수도 아니라, 그냥 망발이요, 주책이다.

미국의 줄리어드나 커티스 음대 등 세계적인 음악학교들의 경우 교과 과정에서 이론의 비중이 우리보다 훨씬 높다고 한다. 내가 공부를 했던 독일의 경우, 과거의 HdK(예술학교)들이 1990년대 중반부터 대거 UdK(예술대학)로 이름을 바꾸었다. 실기를 전공하든, 이론을 전공하든, 독일의 예술대학생들은 졸업하려면 논문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왜 전통적으로 실기에 치중했던 예술학교마저 점점 더 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한 마디로 그것은 예술의 성격 자체가 그 동안 변했기 때문이다.

현대 예술을 조금이라도 공부했다면, 특히 모더니즘 이후 예술에서 이론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게다. 미학자 아도르노는 일찍이 예술과 철학의 상호보족성을 지적한 바 있다. 멀리 갈 것 없이, 현대의 전설이 된 뒤샹의 작품 '샘'(1917)을 보자. 그 변기는 그냥 시장에서 사 온 건데, 거기에 많은 '실기'가 필요했을까? 미니멀리스트들의 상당수도 아이디어만 내고 작품의 제작은 그냥 철공소에 맡겼다. 개념예술은 아예 예술가의 머릿속의 관념만으로도 예술이 된다고 주장한다. 팝 아트는 어떤가? 20세기 후반의 아이콘 앤디 워홀의 경우, 자신은 작품을 직접 만들지 않고 직원들에게 시킨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작품이 완성되면 한 번 보기는 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과학과 예술, 기술과 예술이 디지털 컨버전스 속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시대에, 어떻게 예술의 본질이 이론 없는 기능이라는 무식한 소리를 버젓이 늘어놓을 수 있는지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얼마 전에 우리 나라에 다녀간 미디어 아티스트 크리스타 조머러와 로랑 미뇨노가 만드는 인터랙티브 작품만 떠올려 보라. 거기에는 복잡계이론과 인공생명이론이 바탕에 깔려 있지 않은가? 미래의 예술실천("미학적 컴퓨팅")이 어떤 형태를 띠게 될지, <레오나르도>의 발행자 로저 F 말리나는 이렇게 분류한다.

1. 하나의 분과에서 얻어진 관념이나 개념을 다른 분과로 옮겨 놓는 것.
2.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개념을 보완해줄 과학자나 기술자와 공동으로 작업하는 것
3.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들이 공동 프로젝트를 위해 한 팀이 되어 작업하는 것.
4. 상이한 프로젝트에서 일하는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들이 컨소시엄을 이루어 기술적 플랫폼에 접근이 가능하도록 공동 출자하는 것.
5. 과학과 기술에서 잘 훈련된 예술가들이 그들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개발하는 것. (Roger F. Malina, A Forty-Year Perspective on Aesthetic Computing in the Leonard Journal in : Paul A. Fishwick (edit.) Aesthetic Coputing. MIT Press Cambridge 2006)


이런 시대에 "전문예술인을 양성하는데 예술이론이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묻는 이들을 상대해야 하는 게 대한민국 사회에 사는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정신적 피곤함이다. 논쟁도 웬만해야 하지, 저런 식으로 초절정 울트라 무식을 자랑하는 이들을 어떻게 논리로 설득할 수 있을까? 무식함의 악덕을 용감함의 미덕으로 실천하는 인터넷 낭인들이 그 처참한 교양 수준으로 이렇게 마구 한국 예술의 미래를 농단하고, 그 요란한 장단에 맞춰 유인촌의 문화부가 함께 덩더쿵 선무당의 칼춤을 추는 것이 현재 이 나라 예술계의 상황이다. 이게 문화인가, 야만인가?

▲ 무식함의 악덕을 용감함의 미덕으로 실천하는 인터넷 낭인들이 그 처참한 교양 수준으로 이렇게 마구 한국 예술의 미래를 농단하고, 그 요란한 장단에 맞춰 유인촌의 문화부가 함께 덩더쿵 선무당의 칼춤을 추는 것이 현재 이 나라 예술계의 상황이다. ⓒ프레시안

객원교수 채용이 규정 위반?

아마도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 인미협과 문화부의 입장인 것 같다. 그러니 2학기 강의를 안 했으니, 급료의 절반을 토해놓으라는 얘기를 했던 것이리라. "우리가 볼 때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채용하는 것이 한예종 학칙상 맞다." 도대체 이들은 한예종의 규정조차 제대로 안 읽은 않은 모양이다. 한예종의 객원교수 채용 규정은 객원교수의 임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제7조(임무) 객원교수의 임무는 다음 각호의 1과 같다.

1. 강의 및 실기 지도(실습 포함)
2. 특별강의 및 세미나
3. 학생실기 및 연구지도
4. 본교 전임교수와 공동연구
5. 본교가 지정하는 연구과제 수행.


한예종의 채용 규정은 이렇게 객원교수의 임무를 다섯 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 하나만 만족시키면, 객원교수의 임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기. 그런데 그 다섯 가지 중에서 나는 1. 강의를 했고, 2. 특별강의 및 세미나를 했고, 4. 한예종 전임교수와 공동연구를 했으며, 5. 한예종이 지정하는 연구과제를 수행하여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다섯 가지 중에서 네 가지 임무나 충족시켰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것일까?

도대체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학칙(?)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변 학사와 유인촌의 머리? 변 학사야 잘 몰라서 그랬다 치고, 문화부의 감사관들은 어떻게 자기들이 감사하는 기관의 학칙이나 규정조차 안 읽어 보지 않고 감사를 하고, 심지어 처분까지 날릴 수 있었을까? 이 웃지 못 할 사태는, 변 학사가 미리 써놓은 시나리오에 억지로 감사결과를 뜯어 맞추다 보니 발생한 희대의 해프닝으로 판단된다. 억지로 뜯어 맞추는 것은 좋은데, 그러려면 아무리 억지스러워도 논리 비슷한 것은 들이대야 하지 않았을까? 그 논리가 무엇이었을까?

제가 변호사와 여러 전문가들에게 상의해보니, 애초에 진중권씨가 한예종 객원교수로 채용된 것 자체가 학칙 위반이라는 의견이 절대적입니다. (빅뉴스 2009/04/11)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혹시 저들이 저 채용규정 7조를 오해한 게 아닐까? 거기에는 '각호의 1'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혹시 변 학사께서 '각호의 1'이라는 표현 속의 '1'을 넘버링으로 착각하여, 거기에 열거된 다섯 가지 항목 중에서 오직 "1. 강의 및 실기 지도"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 게 아닐까? 그래서 "객원교수는 오직 강의를 목적으로 계약하는 것"이고, 강의를 안 했으니 급료의 절반을 내놓으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강변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만약에 그렇다면, 세상에, 이거야말로 포복절도할 해프닝이 아닐 수 없다.

법령에서 '각호의 1'이라는 것은 넘버링을 말하는 게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네이버 지식 in'만 검색해 보자. 예를 들어, 경찰관 임용 결격사유에 관한 법령인 <경찰공무원법 제7조 제2항>은 다음과 같다.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경찰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다.

1.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
2.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3. 파산자로서 복권되지 아니한 자
4.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를 받은 자
5. 자격정지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선고유예 기간 중에 있는 자
6. 징계에 의하여 파면 또는 해임의 처분을 받은 자


여기서 '각호의 1'이라는 것은 '이 여섯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해당되면'이라는 뜻이다. 반면 '각호에'라는 표현은 각호 전부를 가리킬 때에 사용된다. 가령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3조 제2항>을 예로 들면,

② 계도문에는 법 제20조제2항 내지 제4항의 규정에 의한 신상 등의 공개대상자에 대한 다음 각호에 해당하는 사항이 포함되어야 한다.

1. 성명(한글 및 한자로 표기하되, 외국인의 경우 한글과 알파벳 또는 한자로 표기한다)
2. 연령 및 생년월일
3. 직업(확정판결문에 기재된 것을 기준으로 한다)
4. 주소(확정판결문에 기재된 것을 기준으로 시 · 군 · 구까지만 포함한다)
5. 범죄사실의 요지


여기서는 '각호에'라고 하였으므로,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할 때에는 위의 다섯 가지 모두를 다 밝혀야 한다는 얘기다. 논리학의 용어와 기호를 빌어 말하면, '각호의 1'은 OR(∨), '각호에'는 AND(∧)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법률의 전문가를 자처하시는 변 학사께서 이것도 몰랐던 것일까? (사실 이 외에 다른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변 학사야 그렇다 치고, 문제는 문화부의 감사관들이다. 공무원인 그들이 법령집 용어가 갖는 이 상식적 의미를 몰랐다면, 어쩔 수 없이 그들의 공무원 자격 자체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콤비로 코미디를 하세요, 코미디를….

객원교수의 자격이 없다?

진중권 씨가 담당한 교과목은 '현대 사상의 지평'입니다. 실기전문가도 아니면서, 주로 프랑스 철학을 강의했다는 '현대 사상의 지평'을 위한 진중권 씨의 특수경력이 대체 뭡니까? 설사 독일 철학을 강의했다 해도, 박사 과정 수료 제도가 없는 독일의 특성 상, 진중권씨는 그냥 미학 관련 독일 유학 실패자일 뿐입니다. 대체 무슨 경력으로 현대사상을 강의합니까? 게시판에 잡글을 많이 썼다는 것 말고, 강의를 위한 특수경력이 하나라도 있나요? 아니면 본인이 자랑하는 TV 출연 많이 한 겁니까? (<빅뉴스>, 2009년 4월 11일)

그게 그렇게 궁금했다면, 기사로 싸지르기 전에 일단 나한테 물어볼 일이다. 내가 자기처럼 그 동안 인터넷에 놀기만 한 줄 아는가 보다. 어느 대학에서나 그러하듯이 한예종에서도 나를 채용할 때 근거로 삼은 것은 두 가지, 교직 활동과 저술 활동이다. 교원 채용 시에 이 두 가지 활동은 경력으로 환산되어 교수에 대한 처우의 수준을 결정하는 자료로 사용된다. 한예종 측에서 고용 시에 작성한 '객원교수 경력 환산 자료'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는 나의 교직 및 저술의 경력이 '전임교수 연구 실적물 심사 기준'에 따라 '몇 년 몇 월'이라는 수치로까지 환산되어 있다. 객원교수 임용의 근거는 이렇게 명확히 문서로 기록되어 있다. 이제 객원 임용의 근거가 된 두 가지 경력을 살펴보자.

먼저 교직 경력. 나는 몇 년 전부터 여러 대학에서 Art & Technology 관련 연구와 강의를 수행해 왔다. 먼저 2006년 이후 KAIST Culture Technology 대학원에서 대우교수 혹은 겸직교수로 재직했다. 2007년에는 서강대 영상대학원에서 같은 분야의 겸임교수를 지냈다. 중앙대에서는 2003년 이후 겸임교수로 독어독문과와 문화연구학과에서 미디어 예술, 미디어 미학, 미디어 철학을 강의해 왔다. 연대 커뮤니케이션학과와 성대의 신방과에서도 미디어 철학을 강의한 바 있고, 대학 밖의 아카데미와 온라인으로 미디어 미학과 예술에 관한 강의도 했다. 이 모든 경력의 증명은 채용 당시에 서류로 제출한 바 있다.

UAT 사업과의 관련에 관해 말하자면, 대단히 미안하지만, 인문학자 중에서 이 분야에 오래 전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해 온 사람은 내가 거의 유일하다. 내가 석사논문의 주제로 삼은 유리 로트만은 기호학과 정보이론을 예술론에 적용한 최초의 학자들 중의 한 사람이다. 그를 통해 정보미학과 생성미학의 창시자인 막스 벤제를 알게 되었고, 그와 관련한 리서치를 하던 중에 일본 최초의 컴퓨터 예술가인 카와노 히로시의 존재를 접하게 되었다. 내가 컴퓨터 예술에 관한 카와노 히로시의 책을 번역한 것이 1992년, 그러니까 무려 17년 전의 일이다. 내 기억에 따르면 당시는 PC가 XT에서 막 AT로 넘어가던 시절이었고, 컴퓨터가 아직 계산기나 타자기로나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나는 이미 컴퓨터가 영상의 제작, 즉 예술의 창작에 사용될 가능성을 미리 짐작하고, 일본에서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카와노 히로시를 발견했고, 팔리지 않을 거라고 난색을 표명하는 출판사를 설득해 그의 책을 번역 출판하는 데에 성공했다. 최근 컴퓨터가 영상매체로 자리 잡으면서, 컴퓨터라는 계산기로 그림을 그리겠다는 발상을 처음으로 했던 예술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본의 타마 미대에서는 초기 컴퓨터 생성 예술에 대한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열었고, 이 전시회는 오스트리아와 독일로 순회를 떠났다. 독일에서는 2007년에야 초기 컴퓨터 그래픽에 관한 연구서가 나왔고, 2008년에는 미국의 MIT에서도 비슷한 책이 나온다고 들었다.

한예종에서 나를 채용하는 데에 또 다른 근거가 된 것은 저술경력이었다. 그 동안 미학과 예술학 부분에서 내가 쓴 저서들에 관한 증명도 물론 채용 당시에 근거자료로 제출한 바 있다. 내가 그 동안 어떤 책을 써 왔고, 그 책들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어땠을까? 인터넷으로 대충 검색해 정리해 보았다.

<미학 오디세이>

- 서울대 '권장도서 100권'
-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90년대를 빛낸 100권의 책' 선정 (2004년) <KBS 책을 말하다>로 방영
- 동아일보 선정 '열아홉 살의 필독서 50권' (2005년)
- 한국일보 선정 '우리 시대의 명저 50' (2007년)
- KAIST 독서마일리지 '추천도서 100권' (2007년)

<폭력과 상스러움>

- 제43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사회과학부문 (2002년)
- 국민일보 문화부 선정 올해의 책 (2002년)

<현대미학강의>

-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10월의 읽을 만한 책' 선정 (2003년)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 KBS <TV 책을 말하다> 선정 '올해의 10권의 책' (2005년)
-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 (2005년)

<서양미술사 I>

- 문화체육관광부 추천 도서 (2008년)


<서양미술사I>이 유인촌 장관 산하의 문화부에서 2008년의 '추천 도서'로 꼽힌 것이 매우 이채롭다. 미학과 예술학 분야에서 내가 쓴 책들은 여러 대학과 대학원에서 교재나 참고 문헌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놀이와 예술 상상력>도 2005년 문화관광부 추천 도서로 꼽힌 바 있다. 도대체 미학을 전공해서 여러 권의 저서를 내고, 그 저서가 대학에서 교재나 참고 문헌으로 널리 활용되고, 심지어 자신들도 두 번이나 추천한 예술이론서를 쓴 사람이 예술학교 객원교수의 자격이 없다는 것은 또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이것으로 부족하다면, 내 책에 대한 학계의 평가를 알아보자. 국립C대학교 영문과 O 교수는 내가 쓴 미학 서적 두 권에 대한 논문을 싣고, <이론과 이론기계-들뢰즈에서 진중권까지>라며 특별히 내 이름을 부제로 적어 넣기도 했다.

1부 이론에서 이론-기계로
들뢰즈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 유목주의와 자율주의의 비판적 검토
근대와 근대문학의 자명성을 의심하기 - 가라타니 고진 읽기
세속의 지성과 망명자의 시선 - 에드워드 사이드의 사유와 정치론을 중심으로
재현미학에서 존재미학으로 - 진중권의 미학서 두 권 읽기


매우 황송하게도 들뢰즈, 가라타니 고진, 애드워드 사이드와 나란히 진중권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S대 독문과의 A 교수는 내가 쓴 두 권의 미학서에 자극을 받아 <숭고의 미학>이라는 책을 저술하기도 했다. 그 책의 서문을 인용한다.

"진중권 선생으로부터 증정 받은 <앙겔루스노부스>와 <현대미학강의>에 풍부하고도 유려하게 서술되어 있는 '숭고의 미학'의 역사와 현재성을 호흡하듯 읽어 내려가며 초심의 열정이 점차로 되살아났다. 거기에 이미 상당 부분 정리된 글을, 손질해서 책으로 내놓지 않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의 협업에 대한 직무유기라고 만날 때마다 격려와 질책을 술안주로 내놓는 진 선생의 덕담이 조금씩 마음을 움직였다." (10쪽)

서울대 미학과를 주축으로 하여 한국의 미학 연구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한 <미학대계>의 리뷰를 쓰는 일도 내게로 돌아왔다. 서울대출판부에서 내게 직접 연락해 2008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이 책의 리뷰를 당부한 것도 아마 미학 분야에서 나의 업적에 대한 일정한 평가를 반영한 것일 게다. 그 리뷰는 <경향신문>에 실린 바 있다.

도저히 참기 힘든 것은, 인미협에서 주제넘게 나의 학술 활동에까지 시비를 걸었다는 점이다.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흘러 나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용감함의 근원은 무식함에 있는 듯하다. 그들이 그토록 시비를 걸었던 <컴퓨터 예술의 탄생>(2008)이라는 책을 보자. 우연히 인터넷을 뒤지다가 서울 소재 S대학에서 HCI(Human-Computer Interface)를 연구하는 J교수가 이 책에 관해 언급한 글을 발견했다.

"우리 대학교 미디어학부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지만, 기술과 예술의 융합에 관심이 많습니다. 언젠가 이런 주제로 책도 꼭 한번 써보고 싶네요. 기술적인 이야기가 중간 중간에 있어서 저는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HCI를 전공하는 교수가 "꼭 한번 써보고 싶"다고 하는 책이 연구 업적으로서 의심스럽다고 말하는 예술 전문가(?)는 도대체 누구신가, 혹시 변 학사? (인미협 기사에 인용되는 이른바 '전문가들'은 왜 거의 모두 익명으로 표기되어야만 하는지, 그것도 의문이다.) 문화예술에 관해서는 백치나 다름없는 무식한 자들이 팔에 완장을 차고 손에 죽창을 들고 돌아다니며 이 나라의 문화예술을 제멋대로 농단한다. 이 웃지 못 할 코미디가 유인촌 문화부 1년이 이 사회에 만들어낸 초현실적 살풍경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예술은 문화부의 손에 이렇게 겁탈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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