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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을 위한 과학적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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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을 위한 과학적 변명

<사이언티픽아메리칸> "인간은 타고난 초자연주의자"

미국발 금융위기로 전세계가 동시에 경기침체에 빠지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지자 요즘 경제현상에 어떤 배후가 있다는 음모론이 각광을 받고 있다.

<화폐전쟁>, <달러>는 상당수의 경제학자들도 관심을 보일 만큼 역사적 기록들에 상상력을 보탠 음모론적 분석으로 현재의 경제위기를 설명해 베스트셀러가 된 화제의 책들이다.

<화폐전쟁>을 감수한 박한진씨는 "이 내용을 진실게임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팩션(faction)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고 말한다. 팩션은 사실에 허구를 더한 개념으로 역사적 사실과 실존 인물의 이야기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각색실화를 뜻한다.
▲ 음모론적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화된 <천사와 악마>.

그는 팩션의 원조를 <삼국지>로 들면서 "이 책의 기본 바탕인 음모론도 진위 여부를 규명하려 들기보다는 팩션으로 받아들여 하나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대한다면 세계를 조망하는 보다 폭넓은 시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제도권 학자들이나 언론들은 '음모론'을 가급적 무시한다. 사실이나 과학적 근거를 중시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모론'을 백안시하는 부류는 기득권적이며 보수적인 시각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단편적 사실만으로는 의미를 부여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고, 과학적 근거를 갖추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기존질서를 뒤흔들만한 진실은 근거를 찾기 위한 노력을 지속하거나 발표하기 힘들 정도로 항상 역사적으로 탄압받았다.

크루그먼이 음모론적 시각을 갖게 된 이유

특히 경제현상에 대한 음모론적 분석을 무시하는 이들은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당대 최고의 권위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가 <대폭로>라는 저서에서, 왜 자신이 경제현상을 음모론적 시각에서 분석하게 됐는지 밝힌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크루그먼 교수는 이 책에서 레이건 정부 이후 미국의 경제 현실은 단순히 경제적 법칙에 따른 것이 아니라 우파가 장악한 공화당 세력에 의해 정치적으로 규정됐다는 통계적 근거를 발견하면서, 자신도 '음모론적 시각'으로 경제현상을 분석할 필요성을 깨닫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크루그먼 교수도 당초 경제가 정치적 현실을 규정하는 것으로 인식해, 경제문제는 경제적인 이론으로만 분석하는 학자였다. 하지만 레이건 정부 이후 미국의 소득 불평등이 급격히 커졌고 이에 따라 부자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우파가 득세했다는 통념과 달리, 무거운 세금에 반발한 부자들과 이를 부추기는 이데올로그들이 우파 세력을 결집시키면서 경제정책이 급속히 변하게 됐다는 통계적 근거를 발견하면서, 크루그먼 교수는 정치적 세력이라는 요소를 고려한 경제분석가로 바뀌게 됐다.

그의 이런 시각은 <뉴욕타임스> 고정 칼럼니스트로 지난 2000년 1월부터 양적, 질적으로 왕성한 칼럼 집필의 밑바탕이 됐다.

유형적 지식은 모두 참이라고 믿는 쪽으로 진화

음모론과 관련해, 객관적인 근거롤 댈 수 없는 어떤 실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고 믿는 성향은 진화의 산물이라는 과학적 근거도 제기됐다.

미국의 저명한 과학잡지 <사이언티픽아메리칸>의 최근 보도(☞원문보기)에 따르면, 어떤 힘과 의도를 가진 존재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믿는 성향은 원래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거나 우연한 현상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일정한 유형(패턴)을 찾아내려는 인간의 속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구석기 시대 인간들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날씨, 과실나무,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사냥감 동물, 맹수들에 대해 에측할 수 있는 패턴을 발견하는 것은 필수적인 지식이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발견한 유형적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낼 수 있는 '거짓말 탐지기'가 우리 뇌에서 진화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두 가지 오류가 발생한다. 유형적 지식이 참이 아닌데도 참이라고 믿는 오류와 유형적 지식이 참인데도 참이 아니라고 믿는 오류다.

그런데 진화론적으로 볼 때 어느 쪽 오류를 택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용할까. 참이 아닌데도 참이라고 믿는 오류다. 예를 들어 수풀 속에 어떤 소리가 나는 것이 들렸다면, 이것이 그저 바람에 의한 소리라고 생각하는 원시인과 맹수가 도사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원시인 중 후자가 생존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신중하게 판단할 겨를이 없는 상황에서 두 가지 오류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목숨이 달렸다면 더욱 그렇다.

진화론의 핵심인 자연선택설에 따르면, 유형적 지식은 모두 참이라고 믿는 쪽으로 동물들이 진화했다는 것이다.

모든 현상에는 의도를 가진 존재가 있다고 추론

그런데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는 수준이 아니라 의도를 가진 행태를 보이는 인간은 어떤 패턴을 인지했을 경우 그 배후에 의도를 가진 존재가 있는 것으로 추론하는 능력과 성향을 갖게 됐다.

모든 현상을 우연으로 보는 것과 정반대에 위치하는 이런 성향은 영적 존재를 상정하는 모든 인식의 바탕이 된다.

특히 모든 현상에 의도를 가진 존재가 있다고 보는 성향은 음모론의 출발점이다. 음모론은 주로 정치적, 경제적 현상의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빌더버그, 로스차일드, 록펠러, 일루미나티(최근 개봉한 영화 <천사와 악마>에 등장) 등 음모론의 주역이 되는 존재들은 무수히 많다. 하지만 이 잡지는 "경제위기를 정부가 구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도 일종의 초능력적 존재를 상정하는 성향을 반영한 것이라고 꼬집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적인 권능을 지닌 '예언된 자'로 추앙하는 행태도 이런 성향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슈퍼센스'가 내재돼 있어

인식 메커니즘에 대한 최근 신경과학적 연구로도 인간은 패턴을 발견하고 이 패턴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설정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태양이 생각할 능력이 있고 자기들을 따라다닌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 때문에 아이들은 태양을 그릴 때 종종 미소 띤 얼굴을 그려 넣는다.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들 중 3분의 1은 기증자의 인격이 장기와 함께 이식됐다고 믿는다. 생식기를 닮은 식품들(예를 들어 바나나, 굴)은 종종 성적 능력을 증진시키는 효능이 있다고 믿어진다.

이러한 인지과학적 연구 결과를 정리한 신간 <슈퍼센스(Super Sense)>의 저자 브리스톨대 심리학과 교수 브루스 후드는 "교양과 지적 능력이 뛰어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움직이는 어떤 유형, 세력, 에너지, 실체적 존재들이 있다는 강력한 느낌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경험들은 신뢰할 만한 증거들에 의해 입증되지 않다는 점에서 초자연적이며 비과학적 경험"이라면서 "이런 경험이 현실적이라고 믿으려는 성향이나 감각을 슈퍼센스라고 한다"고 강조했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초자연주의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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