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성에서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 유모 씨에 관해 입을 열었다. 3월 30일 억류 첫날 관련 사실을 통보한 후 33일 만의 첫 언급이다. 유 씨에게 간첩죄를 적용할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 사태의 장기화를 예고하는 내용이었다.
"南 당국·보수언론 이렇게 나오면 사태 더 엄중해져"
북한에서 개성공단을 총괄하는 조선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1일 남측이 북한의 유 씨 억류에 불법성이 있다고 지적하는데 대해 "남조선 당국과 보수세력이 계속 이렇게 나오는 경우 사태는 더욱 엄중해지며 개성공업지구 사업에도 이로울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총국 대변인은 <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같이 말하고 유 씨가 "개성공업지구에 들어와 우리의 존엄 높은 체제를 악의에 차서 헐뜯으면서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해당 법에 저촉되는 엄중한 행위를 감행하였다"며 "해당 기관에서는 현재 조사를 계속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개성공업지구 출입사업부는 지난달 30일 유 씨 억류 직후 보낸 대남 통지문에선 "(유 씨가 정치체제를 비난하고 북측 여성 종업원을 변질·타락시켜 탈북을 책동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남측 정부는 북한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지구 출입 및 체류에 관한 합의서'를 위반한 것이라고 말해 왔다. 이 합의서에는 남측 인원이 북측의 법질서를 위반했을 경우 경고, 범칙금 부과, 추방 등 세 가지 조치를 취하고, '남과 북이 합의하는 엄중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쌍방이 별도로 합의해 처리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총국 대변인은 "남조선 당국과 보수언론들은 사건의 본질을 알지도 못"하고 있고, "이것은 사태의 진상을 왜곡하여 북남관계와 개성공업지구 사업에 장애가 조성된 책임을 우리에게 넘겨씌우기 위한 파렴치한 망발이고 모략"이라고 주장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진정에 사전 포석 의도도
총국 대변인의 이날 발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사건의 본질"이 "공화국의 자주권을 침해하고 해당 법에 저촉되는 엄중한 행위"였다는 대목.
이는 북측이 인식하는 유 씨의 혐의는 남북이 합의해 처리키로 한 '엄중한 위반행위'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며, 그에게 간첩죄 등 중대 혐의를 적용하겠다는 뜻을 함축한 말로 풀이된다.
이는 지난 21일 개성접촉에서 남측에 시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측은 당시 유 씨 문제는 그날 접촉과 무관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대남 통지문에서는 "남측 당국이 개성공업지구를 우리를 반대하는 노략 기지로 삼고 있는데 대해 유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유 씨를 간첩죄 등으로 처리할 수 있고, 남측 당국도 간첩 행위에 연루되어 있다는 주장을 할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었다.
특히 총국 대변인은 이날 북한의 보위부를 일컫는 것으로 보이는 "해당 기관"에서 "조사를 계속 심화하고 있다"고 말해 사태 장기화를 예고했다.
북한은 3월 17일 북중 접경지대에서 체포한 미국 여기자들을 39일간 조사한 뒤 지난 24일 재판에 회부하기로 결정했다. 북측이 유 씨 조사에서도 그 선례를 따른다면 조사 종료까지 약 1주일 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총국 대변인의 이날 발언이 단순한 '경과 발표'가 아니라, 남측 당국과 보수언론들을 향한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이는 우선 사태 악화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기 위한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남측이 유엔 인권이사회에 이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국제적 이슈를 만들 경우 보다 강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그 책임은 남측에 있다고 할 명분을 쌓는 것으로 풀이된다.
총국 대변인이 말을 마무리하면서 "남조선 당국과 보수언론들이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며 무분별하게 날뛴다면 그로부터 초래되는 후과는 전적으로 그들 자신이 지게 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고민 깊어지는 정부 "억류는 개성공단 본질 문제"
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정부는 우리 근로자 억류 문제가 개성공단의 본질적인 문제이며, 공단의 모든 기업과 모든 근로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공단 전체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부대변인은 이 문제가 "앞으로 개성공단이 안정적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중대한 사안"이라며 "북한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문제 해결의 적극적인 자세로 나와야 하고 근로자를 즉각 석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는 앞으로도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근로자의 즉각 석방을 계속 요구하고, 개성에 근무하는 국민의 신변 안전이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보장되고 실효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이 문제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놓고 최선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유 씨 문제를 개성공단 전반의 문제와 사실상 연계시킨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북한이 이날 강경 조치를 암시함에 따라 지난 21일 개성접촉에서 나온 임금·토지사용료 인상 요구에 정부가 어떤 입장을 취할지 주목된다. 정부는 내주 쯤 북측에 접촉을 제의할 것으로 알려졌는데, 유 씨 문제의 추이에 따라 늦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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