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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명박정부 마음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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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이명박정부 마음대로 '비비디 바비디 부~'?

[2009 위기의 KBS 해부] BBC와 KBS의 정치경제학 Ⅱ

공영방송은 역사적으로 항상 '뜨거운 감자'였다. 지금과 달리 공영방송의 경쟁자들이 부재하거나 소수였던 역사에서 공영방송은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공영방송과의 협력과 동맹,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았다. 정권이 바뀌고 방송환경이 변화할 때마다 공영방송의 개혁 논쟁이 반복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다.

신문, 상업방송, 유료방송과 통신기업 등 공영방송의 다양한 경쟁자나 정치집단들은 공영방송을 통제할 수 있는 정책과 규제 행위들에 개입하거나 영향력을 미쳐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가깝게 하려 한다. 때문에 다른 집단들과의 거리두기는 공영방송의 운영 원리의 하나로 자리잡고, 독립성과 자율성, 공정성과 균형성이 요구된다.

영국에서 BBC가 방송법이 아닌 칙허장과 협정서로 규제되는 가장 큰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실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방송법 하의 규제보다는 여왕이 부여하는 칙허장은 그 자체로 특별한 상징성과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의 방송통신위원회에 해당하는 Ofcom이 매우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BBC를 직접 규제할 수 없도록 만든 것도 공영방송의 특수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항상 누군가로부터 공격받는 공영방송의 운명

방송의 잘 다듬어진 뉴스와 시사 프로그램은 풍부한 판단력을 갖춘 시민과 민주주의를 뒷받침한다(민주주의에 관한 흥미로운 글 중에 하나는 <경향신문>에 실린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의 것인데, 이를 한 번씩 읽어보기를 제안한다). 그래서 선진국들의 방송 관련법에는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의 '높은 질'과 폭넓은 관점과 의견의 재현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방송이 '정치적이고 경제적으로 논쟁적인 문제'나 중요한 '공공정책'을 둘러싼 문제를 다룰 때, 특별하고 세심한 불편부당성의 태도나 시각과 의견의 다양성은 한층 더 강조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해당 프로그램들에 촘촘한 규제나 심의조항들을 적용한다는 것은 아니다.

방송이 '정치, 경제적으로 논쟁적인 문제'나 '공공 정책'의 문제들에 아무리 불편부당한 시각과 태도를 견지한다 하더라도, 분명 누군가는 불만을 가지게 되고 이 불만으로부터 방송의 공정성이나 불편부당성의 논쟁은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논쟁은 다양한 정치세력과 집단들 사이에 강렬한 갈등과 대립을 유발하면서 방송에 대한 통제나 규제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방송의 공정성이나 불편부당성의 논쟁이 원만하게 해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누가, 왜, 무슨 목적으로' 방송의 공정성을 문제삼고, 이러한 문제제기를 통해 방송을 자신의 통제력 하에 놓이게 하는 정략적 방식들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 덜 피곤한 일이다. 독재시절에 야권과 시민사회, 민주언론운동세력이 방송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던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그 반대편에 있었던 사람들이 방송의 공정성을 문제 삼았고, 지금은 '50년 지켜온 권력과 자원'들을 '10년 동안 잠시 뺏겼다'고 믿고 있는 그 사람들이 방송의 공정성을 문제 삼고 있다(신문과 방송, 통신영역에서 일정 정도의 통제와 규제력이 작동하게 되면, 이들이 방송의 공정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누가 봐도 명확하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문제없고 자신에게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면 문제되는 것이 방송이며, 이들의 방송 공정성의 판단기준은 정확히 이에 일치한다.

▲ BBC와 KBS의 로고.
BBC는 다를까? 그리 다르지 않다. 2000년대 노동당 정부에서 BBC는 토리(Tory)에 의해 '좌파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었고, BBC 사장이었던 다이크(Dyke)는 "천박하고 무례하며 난폭한 멍청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6년 칙허장 갱신을 앞두고 BBC의 디지털 팽창주의(디지털 전환, 온라인과 지역 미디어 서비스 확장을 주도하고자 했던 BBC의 정책을 두고 비판하는 표현임)와 'BBC의 지배'를 막겠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을 이해할 수 있다.

반면, 노동당 정부도 자기들을 불편하게 하는 BBC의 보도와 프로그램을 비난하면서 프로그램 제작자들에 대해 인격 모욕에 가까운 언사들을 숨기지 않았다. 여기에 종교 집단이나 다양한 사회 집단들까지 포함하면 방송이 평화롭고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은 것이 좋다. 한국의 경우 80년이 넘는 방송 역사에서 공영방송의 절대적인 위치와 영향력을 생각해 보면, 공영방송을 둘러싼 정파 게임은 더더욱 결코 사라질 수 없다.

KBS의 현실, 미래는 있는가?

KBS 사태, 더 나아가 공영방송 사태를 이해하는 데 어려운 이론들을 들이댈 필요가 없다. 집권세력 연합체가 KBS를 인적, 물질적으로 지배하고 동시에 뉴스나 시사 등 핵심 프로그램들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확대 유지하려는 정파적 의지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이론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이사회, 사장, 경영진과 뉴스의 데스크진, 시사 프로그램의 윗선 PD들을 잘 조직해 놓으면 '비비디 바비디 부, 생각대로'가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렇게 재정비된 KBS를 보고 있다.

이제 8월이면 MBC의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들을 교체할 시기가 되는데, 이때 제대로 한번 판을 벌여놓으면 MBC도 KBS가 된다. 우리는 두 개의 KBS를 보게 될 것이다. YTN과 OBS의 접수의지는 두 말할 필요 있으랴! 나는 KBS가 민주당이나 민노당, 진보신당 등의 편이 되어주기를 전혀 기대하지도 또 그렇게 하지도 않을 집단이라고 생각하지만, 방송의 기능이 이렇게까지 소멸되는 것에 대해 지금의 집권세력이나 정치인 그리고 이에 연합하고 있는 우익정파신문과 학자들이 나중에 어떠한 책임을 지게 될지 참으로 궁금하다.

성격이나 정체성을 참으로 규정짓기 힘든 현재의 집권세력 연합체는 말과 미디어, 문화가 대중정치의 핵심 장소라는 점을 이미 오래전에 간파했다. 이명박 신화와 청계천, 뉴타운 신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미디어는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학계, 언론계, 예술 문화계를 통해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대 유지하려는 몸부림은 이러한 이전의 역사에서 비롯된다. 이들은 촛불에서 말과 의견의 흐름의 중요성을 경험했고, 이 경험은 청와대와 관료들이 한 통신회사의 홍보대사처럼 집단행동 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처칠의 지하 벙커를 연상케 하는 청와대 지하벙커(처칠의 지하벙커에는 BBC 방송국도 함께 있었다는 사실도 알아두자)를 짓고, 시장과 공사장을 오가며 끊임없이 누군가를 껴안고 격려하고 스킨십을 즐기며 찍는 사진들을 찍으며 히딩크를 모셨던 것처럼 WBC 야구대표팀을 모시고 피겨 여왕 '여나 킴'의 열여덟 딸기 같은 미소를 마주한다. 미디어의 효능을 맛보았기에 미디어에 대한 통제 의지는 더욱 강해지는 법. 이제 마지막 저항자들 몇 사람만 조용히 시키거나 감금하면 된다.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8일 남태평양 3개국 방문일정을 마치고 귀국하는 기내에서 제10차 라디오 연설을 녹음하고 있다. 이명박 신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미디어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뉴시스

대중매체와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들(대학, 학교, 교회, 그리고 전문가 협회 등)을 재정적, 정치적 지원을 통해 확고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이들을 '마우스 탱크'로 활용하면 된다. 영국에는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들을 보다 대중화된 형태로 대변하고 확장했던 'Clean-Up Television', '낙태반대운동', 'Festival of Light', '전국납세자행동단체협회', '전국자유협회', '전국자영업자연맹', '전국소상인동맹', '독립중도파의 소리' 등의 조직들, '경제문제연구소(Institute of Economic Affairs)', '인력서비스위원회(Manpower Services Commission)'와 같은 기업이나 정부의 연구기관들, 강력한 '국가 행정가 지식인', '사회적 다윈주의(social darwinism)'를 앞세운 사회공학의 학문들, 그리고 수많은 언론사들이 있었다다.

또 미국에는 '전국상업회의소', '전국제조인협회', '경영원탁회의(Business Roundtable)', '미국경영연구센터', '미국기업연구소', '전국경제연구소', '올린재단', '스케이프재단', '퓨 재단' 등이 대표적인 집단들이 있었다. 현재 우리에겐 어떤 조직들이 있을까? 그리고 이 조직은 KBS를 포함한 신문, 방송, 인터넷 언론들과 어떤 관련성이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들의 목소리와 견해, 시각과 주장들이 미디어의 주된 정보 소스와 자원으로 활용될 것이라는 점이다.

KBS의 '오래된 미래' 고작 민주주의의 쇠퇴인가

이렇게 자리 잡은 방송과 미디어는 도시의 엘리트와 중간계급의 생활양식과 문화를 더욱 강화하면서 포스트모던한 문화적, 지성적 실험들을 찬양하고 금융활동과 법률서비스, 다변화된 소비주의의 팽창에 기여할 것이다. 정부는 더욱 더 기업의 도구로 변질되고 정부의 운영은 점차 폐쇄된 밀실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민주적이고 대의적인 요소들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라이히(Reich)의 말처럼 신기술, 세계화, 탈규제화에 기반한 '슈퍼 자본주의(super capitalism)'의 승리의 이면에는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사람들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과 동시에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시민으로서의 능력을 퇴보시키는 과정이 있게 될 것이다.

만성적인 부패(박연차 리스트는 이 증거물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와 일부 계급의 독점적인 정치적 지배, 민주주의의 쇠퇴라는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는 미래라면 참으로 암담하다. 그런데 이 참담한 미래, 그런데 이전의 홍성일 씨의 표현처럼 '오래된 미래'의 노정에 우리의 공영방송 KBS가 발걸음을 씩씩하게 내딛고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오래된 미래'의 대오에서 벗어나 방송과 미디어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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