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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의 '자제'와 박근혜의 '담대함'이 만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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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김정은의 '자제'와 박근혜의 '담대함'이 만나야 한다

[정욱식의 '오, 평화'] 남북한 정상에게 호소한다

결국 파국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마는가? 핵실험을 둘러싸고 국제사회와 북한이 위험천만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고 있는 북한의 발표와 풍계리 핵실험장의 준비 수준을 볼 때, 3차 핵실험은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또다시 한반도에 전쟁 위기의 먹구름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극적인 반전의 가능성은 아예 없는 것일까? '외교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할 때, 외교를 통해 북한의 위험한 선택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정녕 없을까?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하는 부분은 있다. 북한이 핵실험 계획과 관련해 아직까진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와는 분명 다른 것이다. 1차 핵실험 6일 전에 발표된 외무성 성명에서는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시험을 한다"고 했었다. 2차 핵실험 20여 일 전에도 "핵시험을 하겠다"는 단정적인 표현을 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런 직설적인 표현이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북한이 이미 여러 차례 내놓은 다소 모호한 표현들을 핵실험 계획 발표와 동일시한 것으로 보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핵실험 강행 징후를 극대화하면서도 '전략적 모호성'의 여지를 남겨둬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외교 전술의 일환일까? 혹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과유불급(過猶不及)'

북한의 속내에 대한 평가는 억측의 영역에 속할 수밖에 없지만, 김 위원장이 자제력을 발휘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아무리 북한이 국제적 제재와 고립에 익숙해 있다고 하지만, 핵실험 강행 시 부과될 수위는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는 김정은 체제가 가장 중시한다는 경제발전 계획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대외적 위기를 고조시켜 대내적 궁핍함을 무마하려는 시도도 한계에 도달할 수 있다.

▲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주재한 당 중앙군사위원회 확대회의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한이 미국과의 담판을 원한다면, 핵실험 강행보다 자제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이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물론 북한 입장에서 1차 핵실험 직후처럼 3차 핵실험도 미국의 대북정책을 전환시킬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는 그렇지 않았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가져온 직접적인 원인은 북한의 핵실험이 아니라 미국이 이라크 전쟁의 수렁에 빠지고 네오콘이 줄줄이 쫓겨나 크리스토퍼 힐 등 협상파들이 기지개를 펼 수 있었던 데에 있었다.

오히려 북한의 3차 핵실험 강행은 6자회담의 단절을 가져온 2차 핵실험 때보다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미국 내에서는 비관론이 팽배해졌고 이에 따라 스티븐 보스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 등 협상파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고 한-미-일 3각 동맹 추진파가 주도권을 잡은 바 있다.

1기 때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하에 허송세월을 보낸 오바마 행정부는 2기 들어 미국 정계의 대표적인 대화파인 존 케리와 척 헤이글을 외교와 국방정책의 수장으로 앉혔다. 전통적으로 미국 대통령이 2기에는 업적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북한은 3차 핵실험 징후만으로도 이미 한반도 문제 해결과 이를 위한 대화의 시급성을 각인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핵실험 강행은 과유불급의 우를 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핵실험 강행 시 미국의 대북정책 운신 폭을 더욱 좁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의 근거는 남북관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미 1기 때 충분히 입증된 것처럼 오바마 행정부는 자신의 대북정책 핵심 변수를 한국의 대북정책 및 남북관계로 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은 출범을 앞둔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경한 방향으로 몰고 갈 것이다. 남북관계 정상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남한의 대북 제재 참여와 북한의 반발이 악순환을 그리면서 남북관계의 위기가 똬리를 틀게 될 것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전향적이고 실질적인 북미대화에 나서기란 더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북한 지도부에게 자제를 강력히 호소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핵실험 강행으로 초래될 전략적 불신의 격화와 대결의 상시화가 한반도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영원히 봉쇄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정전협정 60주년을 맞이하면서 한국과 국제사회 일각에서는 평화협정 논의에 본격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었다. 미국의 일부 전문가와 싱크탱크에서도 이런 요구를 내놓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역사적 기회는 또다시 유실될 우려가 크다.

'조미 적대관계의 종식',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대체'는 '조선반도 비핵화'와 함께 고(故)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유훈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이러한 미완의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핵문제에 대해 보다 유연하고 전향적인 입장을 가져야 하고 그 출발점은 바로 핵실험 자제에 있다.

하드파워로는 한계, 소프트파워 보여줘야

이상이 북한 지도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다면, 다음으론 한미 양국 정부에게 호소하고 싶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어느덧 대북 제재와 압박이 대북정책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최근의 예를 보더라도 그렇다. 작년 4월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와 유엔 안보리의 대북 규탄 의장성명 채택으로 파국의 조짐이 보였을 때, 북한은 핵실험 강행이 아니라 자제를 선택했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은 어떤 의미 있는 변화도 보여주질 못했다. 이번 유엔 안보리 결의 2087호 채택도 과잉대응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의장성명 수준에서 타협을 이뤘다면, 이후 상황을 관리·통제하기가 보다 수월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 징후가 짙어지고 있는 최근 상황에 대한 한미 양국의 대응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강력한 경제제재와 북핵 사용 징후시 선제타격론 등 군사적 경고만 있을 뿐, 북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만한 외교적 노력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드파워만으로 북한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충분히 입증된 터다. 오히려 북한을 궁지에 몰아 굴복시키려는 접근은 핵실험 강행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소프트파워를 발휘해 북한에 '명예로운 출구'를 열어줘 반전을 모색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이 절실한 때다.

한미 양국에 강력히 권고하고 싶은 '반전 카드'의 내용은 이렇다(아래 내용의 일부는 <경향신문>에 이미 기고한 바 있다. ☞ 바로가기). '북한이 핵실험을 자제하면 6자회담과 함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대체하기 위한 한반도 평화포럼을 조속히 개최할 의사가 있다'는 점을 북한에 전달하는 것이다. 남-북-미-중이 참여하기로 한 평화포럼은 6자회담의 9.19 공동성명의 합의 가운데 하나이자 북한이 줄곧 요구해온 사안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가 밝힌 한-미-중 3자 전략대화를 북한을 포함한 4자 대화로 제안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평화협정 논의 제안이 북한 지도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보는 근거는 이렇다. 우선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에 '명예로운 출구'를 제시하는 효과가 있다. 평화협정은 북한의 숙원이라는 점에서 논의에 착수하는 것만으로도 김정은 정권은 '다른 수단에 의한 체제 정당화'에 기여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고, 이는 핵실험에 대한 정치적 결단의 재고(再考)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러한 제안은 한미 양국이 북한과 상호 만족할 수 있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겠다는 의지를 전달하는 효과도 크다. 평화협정은 한미 양국이 북한을 적대시할 의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피포위의식이 강해지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평화협정 논의와 같은 정당한 제안은 묵살 당하고 위성 발사와 같은 정당한 주권 행사는 부정당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데에 있다. 이러한 북한의 인식에 동의 여부를 떠나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근본 전제는 역지사지에 있다는 점에서 한미 양국의 전향적이고도 담대한 태도가 요구된다.

이러한 필자의 권고에 대해 '그럼 북핵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평화협정에 대한 능동적인 태도야말로 북핵 해결의 유력한 방법이다. 우선 평화협정 논의는 당장 시급한 북한의 핵과 로켓 문제 관리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관리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북한의 핵과 로켓 능력 향상을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가져와 북핵이 사용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예방한다는 것이다.

북핵 해결에도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어낼 수 있다. 지금까지는 '비핵화가 먼저냐, 평화협정이 먼저냐'는 소모적인 논쟁이 주류를 이뤄왔다. 극적 반전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접근의 요체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서로 분리된 것이거나 시간적인 선후의 문제가 아니라 '융합'의 대상으로 보자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평화협정에 북한의 핵 폐기 대상, 방법, 시한을 명시하는 것을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6자회담을 통해서는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획기적인 신뢰구축 차원에서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하는 것과 유엔 안보리는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미국은 관계 정상화 논의에 착수하는 것을 맞바꾸는 대타협도 타진할 만하다. 이처럼 '평화협정 논의-비핵화 약속-대북제제 해제-북미 수교협상 개시'가 융합되고 선순환으로 맞물릴 때, 비로소 한반도의 대전환은 가능해질 수 있다.

▲ 박근혜(왼쪽) 대통령 당선인과 김정은(오른쪽) 국방위원회 제1국방위원장 ⓒ연합뉴스

문제는 마땅한 행위자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 정부가 하면 좋으련만 이명박 정부는 강경 일변도이다. 한미공조를 중시하는 미국 정부에게도 당분간 기대할 것은 별로 없다. 중국이 한미 양국과 사전 조율 없이 이러한 제안을 북한에 내놓기도 어렵다. 대안은 바로 박근혜 당선인이다. 당선인 신분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은 분명 있기 때문이다. 조속히 대북 특사를 파견하거나 '북한이 핵실험을 자제하면 상반기 내에 한반도 평화포럼을 열겠다'는 공개적인 약속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모쪼록 김정은 위원장의 자제력과 박근혜 당선인의 담대함이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정전 60주년, 북핵 발생 20년째가 되는 올해에 과거로의 더 위험해지는 후퇴가 아니라 미래로의 희망찬 전진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 소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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