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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당한 기득세력의 야만회귀(野蠻回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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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 당한 기득세력의 야만회귀(野蠻回歸)

[윤재석의 '갑론을박'] '사법 파동'이 아니라 '사법 스캔들'이다

결국 3권 분립이라는 지엄한 가치, 쉽게 말해 사법부의 독립성이라는 교과서적 가치가 여지없이 무너진 참담함을 온 국민이 목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군색하고도 모호한 입장을 보이던 대법원이, 억지춘향 격으로 촛불집회 재판과 관련한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당시 서울지방법원장)의 부당 간여 의혹 진상 조사를 결정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대한민국 사법부는 이미 회복불능의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셈이다.

누가 사법부를 만신창이로?

▲ 신영철 대법관은 지난 6일 "법대로 하자고 한 것일 뿐, 압력이라고 하면 동의하기 어렵다"며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뉴시스
대저 민주사회의 첨단을 달린다는 나라에서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한 걸까?

우선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신영철 대법관의 발언이 '감동적'이다. 신 대법관은 지난 6일 저녁 '촛불 재판 개입'과 관련해 담당 판사에게 수 차례 이메일을 보낸 것에 대해 "법대로 하자고 한 것일 뿐, 압력이라고 하면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자진사퇴 의사 여부질문에 "사퇴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판사들에게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적절하냐는 질문에 "나는 이메일을 잘 활용하고, 그런 일에 익숙한 사람"이라며 하지만 당시 판사들에게 보냈던 이메일은 모두 삭제해 현재 갖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이메일을 잘 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면 중요한 이메일을 모두 삭제했다는 발언도 발언이지만, 그렇게 하면 받은 이의 메일창고에서도 자동 삭제될 줄 알았던 모양인가?

행인지 불행인지, 신 대법관은 이메일 뿐 아니라 전반적인 소통에 능한 사람인가 보다. 작년 말엔 전교조 사이트에 북한 관련 게시물을 올려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교조 교사 사건을 맡은 판사에게 전화를 걸어 "선고를 연기하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촛불재판과 관련, "사회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에 발을 들여놓지 않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며 조속한 판결을 주문한 것과 정반대되는 대목에서 신 대법관(당시 담당법원장)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금과옥조(金科玉條), 일선 판사에만 해당?

그의 이메일 중엔 멋진 작품도 있다. 작년 8월14일 판사들에게 보냈다는 '무제' 라는 이메일이 바로 그것.

"판사는 법정 언행도 매우 주의하여야 한다. 실속도 없이 가십거리나 제공하는, 또 그로 인하여 당해 사건은 물론 관련사건과 다른 판사가 담당하는 사건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언행은 삼가야 한다."

<경향신문> 10일자 보도에 따르면 신 대법관은 대면 소통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사법개혁을 위해 나섰던 과거 사법파동에 대해서까지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며 판사들을 다그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신 대법관의 말에 압력을 느껴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피고인의 위헌신청을 기각하고 벌금 700만원을 선고한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 판사는 "신 대법관이 수 차례 판사들을 부르고 이메일을 통해 위헌신청을 기각해줄 것을 사실상 주문하는 상황해서 위헌신청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며 "법률의 위헌성을 제대로 가려보지 못한 채 결국 양형으로 타협한 셈이 됐다"고 자책했다.

또 다른 판사는 "신 대법관이 과거 사법파동 관련, '우리 사법부 역사에 여러 번의 사법파동이 있었는데 결국 우리 사법부의 독립과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됐느냐. 나는 그렇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것은 박재영 판사를 여러 차례 호출한 것으로도 드러난다. 이 같은 신 대법관의 행보는 그에게 과연 사법부의 독립성 확립을 위한 의지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나는 바담 풍 해도 너는 바람 풍 해라"는 논조인가!

'사법 파동' 아닌 '사법 스캔들'

이번 사태를 제4차 사법파동으로 명명하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파동은 파동이지만, 제4차란 수식어는 걸맞지 않은 것 같다.

제1차 사법파동과 제2차 사법파동은 모두 정부(1차는 검찰, 2차는 대통령의 사법부 길들이기 성격)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견제 세력과의 투쟁에서 비롯됐다. 제3차 사법파동의 경우 대법원의 사법부 개혁방안에 대해 서울민사지법 소장판사 40명이 반성과 개혁 촉구 요구에서 비롯됐다. 따라서 앞의 세 차례 파동은 궁극적으로 사법부를 지키기 위한 건설적 몸부림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그야말로 낯부끄러운 사법 스캔들에 가까운 사건이다. 따라서 제4차 사법파동으로 부르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것도 '정권에 대한 알아서 기기' 내지 '과잉충성(?)' 성격의 행보에서 기인한 스캔들을 말이다.

▲ 제어할 수 없이 확산되는 아고라의 담론, 그리고 그 담론에 동조하는 인파가 마치 2002한일월드컵의 열기를 증폭시킨 '붉은 악마들'처럼 광화문 일대를 메웠는데도, 정부 당국은 극보수 종이신문과 '명박산성'이라는 아날로그로 대처했다. ⓒ프레시안

'촛불 집회' 디지털 민주주의의 단면

여기서 문제의 발단이 된 촛불 집회에 대해 잠시 되돌아보자. 촛불 집회는 MBC의 광우병 위험 보도가 도화선이 되어서 두 달 가까이 지속된 대규모 의사표시다. MBC <PD수첩> 보도의 선정성과 과장보도 여부에 대한 논의는 방송통신심의의 결과에 따라 진행이 되었으니 일단 접어놓자.

사태의 원인은 미국에서조차 시판하지 않는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를 수용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었다. 촛불집회는 그에 대한 민중들의 저항이었고, 일부 다혈질의 젊은 엄마들은 아이를 태운 유모차까지 끌고 나왔다.

TV 보도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아고라'라는 이름의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제어할 수 없이 확산되는 아고라의 담론, 그리고 그 담론에 동조하는 인파가 마치 2002한일월드컵의 열기를 증폭시킨 '붉은 악마들'처럼 광화문 일대를 메웠는데도, 정부 당국은 극보수 종이신문과 '명박산성'이라는 아날로그로 대처했다.

아날로그의 시대착오적 디지털 부인

요즘 주말이면 다시 도심을 메우는 시위의 요인인 '용산 참사'에 대한 당국의 대처 역시 구태의연한 아날로그식 대응으로 인해 증폭된 것이다.

사고 현장에 경찰이 용역과 합동작전을 했음이 드러났음에도 (희생자를 포함한) 철거민 쪽에 귀책사유만 물으며 장례식장을 살벌한 분위기로 몰아가는 공권력(지금도 서울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을 드나드는 차량의 번호판은 경찰이 일일이 기록하고 있다), 거기에 강호순 연쇄살인 띄우기로 용산참사 담론을 덮자는 청와대 전 행정관의 과잉충성 이메일, 이에 대해 개인의 단순한 책임으로 돌린 권부의 빈약한 인식 등.

미디어법 강행도 디지털에 대한 공포

거기다 일단 100일 시한으로 휴전 상태에 들어가긴 했지만 정부 여당과 조중동이 죽기살기로 밀어붙이는 미디어 관련법 또한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적 행태가 아닌가. 점점 위축되는 아날로그 매체의 위상과 기득 보수세력의 입지를 방통 융합이라는 도구로 어떻게 해보려는 심사를 모르는 바 아니나, 거기에 '글로벌 미디어 그룹 태동' '일자리 창출' 등

어설픈 장밋빛 설계도로 민중을 호도하려니 무리가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다양성이 보장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제기된 담론이 견해 차이나 의견 충돌을 극복하고 새로운 결론을 도출해내는 아름다운 사회. 미디어법 추진이 저항을 받는 이유는 여론 편중, 여론 편식으로 아름다운 사회 건설이 지연되거나 아예 싹이 잘라질 것 같은 우려에서 기인한 것이다.

세상은 확실히 달라졌다. 디지털 시대다. 디지털이 파생한 부작용이 적지 않지만, 일부 세력이 정보를 독점하고 그들 의도대로 확산, 농단하는 시대는 분명 갔다. 지식과 정보 역시 일부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민초도 의사 표시를 확실히 할 수 있고, 무한 지식을 흡수할 수 있게 됐다. '허위 사실 유포 죄'로 체포된 '미네르바 박'의 전문성을 의심하는 행위는 아직도 '지식의 독점'이 가능하다고 착각하는 이들의 판단 착오다.

그렇다고 아날로그를 완전히 무시하자는 얘긴 아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상호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그런 풍토의 조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이번 '사법 스캔들'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와 상생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사건이다.

필자 이메일: blest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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