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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의 KBS, '대한뉘우스'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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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순의 KBS, '대한뉘우스'가 돌아왔다

[2009 위기의 KBS 해부]<2>시사보도 프로그램, 어디로 가려나

"KBS,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KBS는 권력의 방송 장악 논란의 한복판에 있어왔다. 이병순 사장은 취임하면서 '관제 사장' 논란을 촉발시킨데 이어 내부에서는 '탐사보도팀 사실상 해체' 등 조직의 경직화, 자율성 약화 등의 비판이, KBS 바깥에서는 정권 홍보성 시사보도프로그램 논란, 막장 프로그램 논란 등이 일어왔다. 또 KBS 노동조합 등 KBS 구성원에 대해선 공영방송 KBS를 지킬 의지가 있느나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러한 논란은 '국민의 방송'이라는 칭호를 얻어온 KBS가 '공영방송'으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로 집약된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가 과연 제기능을 하고 있느냐는 것. 이에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와 <프레시안>은 '2009 위기의 KBS 해부'라는 주제로 KBS를 진단, 감시하는 기획을 진행한다. 지난 23일전규찬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소장의 "'우물 안 개구리' KBS의 죽음을 애도함"을 시작으로 미디어문화센터의 학자들이 KBS의 프로그램, 조직 구조, 수신료 문제 등을 집중 파헤칠 예정이다. 두번째 필자는 이광석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외래교수가 이어받는다. 이 기획이 공영방송 논의 지평을 넓히고 더 나아가 KBS 내부의 논의도 끌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지난 해 10월 중순경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병순 사장은 이상한 말을 했다. 그는 공영방송 KBS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기계적인 중립주의' 혹은 '기계적인 공정성'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정성이나 중립성에 대한 주장만큼 현실에서 편향되고 치우쳐 사용되는 논리가 없다. 세상에 가치 편향이 없는 보도라는 것이 가능한가? 공정이니 중립이란 공허한 말잔치는, 탐사 보도를 기초로 사건의 진실에 좀 더 근접했을 때만이 그 적정값을 얻는다.

그는 '기계적'이란 요상한 수사까지 덧붙였다. 덩치나 혹은 맷집에 상관없이 똑같이, 그리고 상황의 맥락을 거두절미한 기계적 중립의 논리야말로 편파의 근원이다. 필자가 보기에 '기계적'이란 말은, 군사 독재시절에도 보기 힘든 지난해 8월 8일 KBS 경찰 난입쇼에 맞섰던 KBS 사원행동 기자들과 PD들을 중징계한 것과 같은 상황을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다시 11월, '기계적 중립주의'를 위해 KBS 간판 시사프로그램 <시사투나잇>은 문을 닫았다. '기계적인 공정성'을 위해, 조중동 보수신문과의 '기계적 중립'을 위해 <미디어포커스> 또한 사라졌다.

결국 '기계적'이라 함은 바로 관제 폭력의 정당성을 기리기 위해 고안된 수사학의 정치이고, 중립과 공정성이란 이 허구의 껍질 속에 감쳐둔 관제화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게 KBS의 간판 시사프로그램들이 역사 속으로 줄줄이 사라지거나 다른 이름으로 거세됐다. 공영 방송 KBS의 철학 그리고 중립, 공정성의 가치는 사망 신고를 했다. 그리고, 화면 밖에선, 마지막 사라지는 방송의 엔딩 크레딧을 보며 담당 PD들, 기자들, 앵커들은 비통함의 눈물을 흘렸다.

시사보도 위기의 시대, '대한뉘우스'의 시대

이명박 정권 1년, KBS 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시사보도 위기의 시기였다. 상황 추이로 보자면 그 반역의 세월은 앞으로 더 길어질 듯 보인다. '낙하산 인사' 구본홍 YTN 사장을 통한 시사 보도채널 방송 장악기도, '광우병' 파동 이후 아직까지 검찰의 재수사 표적이 되고 있는 MBC <PD수첩>, 시사평론가 정관용 씨의 방송 하차 등 열거하기 부끄러울 정도로 언론 위기와 정론의 상실 시대다. 성역 없는 비판과 올곧은 진실을 밝히는 시사프로그램들이 가을 방송 개편이란 명목으로 사라지고, 또 다른 이름을 달고 순한 양들이 되어 등장했다. 말랑말랑하고 기이한 '시사 멜로' 프로그램들이 생겨나고, 기존에 연명하던 것들 또한 그 비슷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지난해 있었던 비상식의 반역들이 가져온 효과는, 이미 여러 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최근 KBS <뉴스9>에서 용산 참사 보도를 의도적으로 희석한 것이나 보신각 타종행사 생중계를 조작한 것 등은 그 시작에 불과했다. KBS의 <시사기획 쌈>같은 프로그램들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달 말 방영된 '대통령 취임 1년-남은 4년의 길'은 확실히 '대한뉘우스'의 부활이었다. 그 험했던 시절 '대한뉘우스'와 '땡전뉴스'의 불쾌감이,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그대로 전해진다면 이는 뭐가 한참 잘못된 꼴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KBS 보도제작국의 권순범 탐사보도팀장은 현 정부에 너무 우호적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국민의 방송이자 공영방송인 KBS에 맞게 중립적인 방송이었다"고 답했다 한다. 역시 KBS 이병순 사장처럼 '기계적' 중립주의에 충실하다. 이런 정황이면 KBS에 국민의 방송이나 공영방송의 명패를 주는 것도 심히 부담스럽다.


▲ KBS <시사기획 쌈>이 지난 24일 방영한 '대통령 취임 1년-남은 4년의 길' 프로그램 화면. 정권 홍보 방송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KBS

KBS 시사보도프로그램이 살 길

KBS 시사프로그램의 위기는, 실지 현재 대한민국 언론의 위기이자 표현의 자유의 참담한 현주소이기도 하다. 허나, KBS 시사 프로그램의 연성화 경향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심각한 문제로 꾸준히 문제 제기됐었다. <취재파일4321>은 여전히, 종부세의 쟁점을 회피하고 부자들의 고통을 다루거나, 용산 참사를 외면하면서 철거민의 애환을 주제로 다룬다. 비슷한 시점에, <추적 60분>은 강호순 특집을 부각시키면서 용산 참사도 미네르바도 없는 기이한 사회 고발 프로그램의 역할을 다했다. <뉴스 9>과 <시사기획 쌈>은 그 방법의 타당성에 의문을 불러왔던 이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 상승과 관련된 여론조사로 비판을 받았다. <시사 투나잇>을 대체했던 <생방송 시사 360>은, 첫 방송부터 '미네르바'와 관련된 사실 관계 왜곡으로 누리꾼들의 원성을 샀다. 시사와 보도의 알맹이 없는, 깍지들의 향연이다.

해외의 소위 권위 있는 BBC의 <파노라마>와 <쟁점(Hardtalk)>이나 미국 CBS의 <60분>과 똑같은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KBS에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시민들의 고단한 삶을 만져주고 권력 남용의 끈을 끊고 사회 진보의 명제를 함께 고민하도록 돕는, 그런 '공영방송'에서 생산되는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바랄 뿐이다. 이러한 보도 철학과 비전이 KBS 방송사 내에 유지될 수 없다면, 공공의 주파수를 반납하고 방송을 접어야 한다. 아니면 한나라당의 시나리오대로 관제와 관영 방송의 길을 받아들여 연명하는 법도 있겠다.

KBS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이렇듯 21세기 신권위주의형 '대한뉘우스'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진정 KBS 시사보도가 공영 방송이란 이름을 걸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아야 한다. 용산 참사의 화염 속에 죽임당한 이들의 목소리를 뉴스를 통해 프레이밍하는 내부 현실을 자성해야 한다. 미디어 관련법 개정 처리 시한의 '100일' 간 유예가, 타협의 미덕이 아닌 시간벌기와 힘빼기의 불온한 정치 술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와 권력의 논리가 미디어 산업 경쟁과 대민 방송 서비스 질 제고의 빈약한 논리로 둔갑하는 정황도 알려야 한다. 정론을 향한 내부의 자성 없인 밖의 개혁 또한 어렵다는 점을 깊게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KBS 시사보도 프로그램이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을 막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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