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소극장 뒷면 서쪽 벽면을 트면 기둥 하나만큼의 여유가 생기고 외관상으로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안을 내었으나 이 자리는 엘리베이터와 닥트(전깃줄 배선 등이 모인 자리) 시설이 있어 공사가 매우 어렵다는 의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엄덕문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하려면 나는 한다'고 했었지만 2009년에는 '그렇게 하면 공사가 엉망진창이 된다고 다들 그러니 지금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겠다' 하고 말았다.
2003년부터 서울시에서 개축공사를 했는데 엄&이건축은 비용 문제로 입찰에 선정되지 못했다. 리모델링되면서 대극장 좌석수는 3,022석이 되고 권옥연 변종하 디자인의 원 무대막은 사라졌다. 로비도 변해서 흰 대리석 기둥 전체에 붉은 색이 입혀지고 천장은 청사초롱 조명을 떼고 번쩍이는 알미늄 판으로 마감됐다. 그러나 붉은색 기둥은 이후 다시 원래의 대리석 기둥으로 환원됐다. 소극장은 내부가 완전히 변경돼 세 개의 공연장으로 나뉘어졌다. 이 건물이 애초에 지녔던 고전적 느낌은 사라졌다.
▲ 김찬식의 청동조각과 대극장 전면 벽에 부조된 조각 비천상. 천하대장군 둘이 합창하는 형상이고 비천상은 섬세한 선의 운용이 아름답다. 천하대장군 조각과 비천상사이는 원래 조경공간으로 설계됐다. ⓒ하지권 |
2007년에는 국제회의실이 체임버홀 공연장이 되면서 회랑 왼쪽 외벽을 뚫어 출입구를 내고 외부와 바로 연결되는 돌계단을 설치했다. 공연장이 되면서 많은 사람의 안전을 위해 기존의 내부 계단 만으론 안되니까 건물바깥으로 계단을 낸 것. 하지만 건물 외벽 소극장으로 향한 원래의 돌계단에 체임버홀 계단이 더해지면서 가건물에 새 출입구 등 많은 구조물이 뒤섞여 여기는 원래 모습을 잃었다. 마무리공사가 섬세하지 못해 난간의 세부구조조차 기본틀과 짝도 못 맞춘 시공이다.
엄덕문 씨는 뒤늦게 이 사실을 접했다.
"회랑 전면을 뚫다니, 설마 그럴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네요. 이 건물은 전체를 관통하는 나름대로의 리듬이 있어 그 조화를 깨서는 안돼요. 세종문화회관의 파괴입니다. 당연히 원 설계자와 상의해가면서 했어야 합니다. 속상한 걸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세종회관이 예술의 전당과 경쟁하려고 공연장을 자꾸 늘리는데, 예술의 전당은 처음부터 공연장을 모아놓은 것이고 세종회관은 국제회의실의 필요성도 감안해 그 나름의 용도와 품위에 맞춰 건축된 것입니다. 수지타산을 생각해 전체를 공연장으로 운영한다지만 원래 용도대로 여기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같은 국제회의를 했다면 일개 호텔에서 하는 것보다 더 국가적 위신도 서고 폼이 날 것이라고 뉴스 보면서 줄곧 생각했습니다. 한국인의 자존심이기도 한겁니다.
저작권이란 걸 생각해 주었어야 합니다. 내게 아무 정보도 주지 않은 거에요. 아무리 건축주가 자기 맘대로라고 해도 대한민국 건축의 무지한 환경이 창피합니다."
그 위에 소극장은 노천 테라스에 세워진 검정색 가건물로 전면이 아주 가려졌다. 돌계단으로 산뜻하게 올라가던 동선은 콘테이너 박스같은 가건물 속으로 들어간 뒤 건물안 로비가 된다. 아래층에도 여기저기 돌기둥 색깔을 변조하거나 기둥사이를 막은 가건물이 있고 대극장 전면의 비천상과 계단의 천하대장군 조각 사이에도 가건물이 있다. 원래는 조경으로 메꾸어질 자리였다.
▲ 세종소극장 노천테라스 위 아래에는 가건물이 건물 전면을 모두 가린채 들어섰다. 회랑 벽면에 새로 생긴 출입구와 계단까지 있어 이 부근은 원래 모습과 달라졌다. ⓒ하지권 |
세종문화회관 건축은 근대판 문화재처럼 여겨진다. 건물 자체는 그 안에서 이뤄지는 공연문화와 또 다른, 독립적인 가치를 갖는다. 이런 아름다움은 아무 때나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소중히 여겨야할 문화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건물의 세부는 많은 예술가들의 합작이기도 하다.
"이 건물은 원형 그대로가 제일 무난하고 보기 좋았어요. 지금 소극장 주변은 이것 저것 덧붙여진 구조물들이 남루해 보여 무척 놀랐습니다. 소극장 무대는 소리가 잘 나온다고 창 하는 분들이 좋아했는데." 라고 한 작가가 말했다.
오로지 수지타산을 앞세워 이렇게 변형시키고 뒤틀어 놓는다면, 건축의 본래 아름다움은 희생돼도 괜찮다는 것인가? 광화문, 국가적 상징이기도 한 이 거리에서 모처럼 만들어가진 단 하나 뛰어난 현대 건축의 아름다움과 기품을 간직하고 즐길 권리도 없단 말인가.
서상하 엄이건축 부회장이 세종문화회관 재공사에 대한 원 설계회사의 입장을 말했다.
"개축으로 필요한 공연장을 확보하고 현대적 분위기를 강조한 것이겠지만 청사초롱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중요한 이미지를 주는 요소였습니다. 소극장 지붕위에 건물을 더 올리겠다는 안만큼은 결사적으로 막았습니다. 외벽을 헐어 출구를 낸 것은 많은 관객의 안전을 위한 출구확보라는 점에선 이해는 가지만 우리 모르게 공사가 돼서 손쓸 수도 없었습니다. 알았으면 모양을 만들어 제시한다든가 해서 도울 수 있었을 거예요. 요컨대 원 설계자의 의도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가건물이 건물의 본 모습을 해칩니다. 천하대장군 조각 뒤의 가건물에는 폭포와 연못이 흐르게 할 자리였어요. 기둥사이 여백도 자연스럽게 남겨두어 건물의 개방감을 확보해야 합니다. 건축자재도 똑같은 것을 구하는 성의를 보였어야 합니다.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은 건축이 원래 가졌던 흐름이 엉켜버린듯 합니다. "
건물이 배처럼 떠있는 개념으로 건설됐다는 사실은 흥미로웠다. 1200장의 세종회관 설계도면은 세종문화회관에, 몇 장은 엄&이건축사무소에 보관돼 있다. 서상하 씨가 도면을 꺼내 보이면서 말한다. 그 또한 이 건물을 처음 지을 때부터 참여했다.
"지금은 주변에 지하철에 빌딩들이 많이 들어서서 지하수가 5m 훨씬 아래로 내려갔을 거예요. 최근 안전진단을 했는데 세종회관은 여전히 안전합니다."
많은 이들이 오늘도 세종회관 앞을 지난다. 계단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있는 사람들, 전시장을 드나드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처마 끝에는 북악산 능선이 걸렸다. 조금 건너면 광화문 비각이 광화문과 짝을 이룬다. 모두의 사랑을 받는 풍경이며 장소이다.
▲ 엄&이건축 서상하 부회장이 세종문화회관 건설 당시의 설계도면을 보고 설명하고 있다. ⓒ 하지권 |
세종문회회관이 있어 광화문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대사관건물의 철골상자같은 살벌한 입구를 떠올려보면 이 건물이 얼마나 평화로운 기운을 머금고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이 건물이 구차해지는 걸 보고 싶지 않다. 서울의 광화문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그럴 것이다. 많은 이들의 눈길과 애정이 쌓인 자리는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곳은 세종회관이 자리잡는 최상의 자리이기도 했다. 엄덕문 선생의 건축론이 나왔다.
"광화문 앞은 전통적으로 관아건축이 들어서는 곳으로 그 나름의 위상이 있어요. 점잖은 시아버지라면 두루마기도 입고 갓도 쓰고 그래야 되는 것처럼 이쪽 건물은 품위를 갖춰 정장을 해야 돼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갖춰야 할 것은 갖춰야지 날라리 베레모 같은 건축은 안 어울립니다.
건축은 어디든 그곳의 정서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는 겁니다. 코르비지에를 위시한 현대건축이 국제적으로 유행해서 아프리카 미국 남미 아시아 모두 두부모 자른듯 똑같은 건물일색으로 획일화 되었지만 거기에 자기특유의 칼러가 없으면 멋이 붙질 않아요. 같은 서울이라도 동대문 밖에서는 사람을 찾을 때 '여보게에-- 있나아---' 하는 어조가 있잖아요. 사투리 없이 표준말만 있어도 매력이 없습니다. 경상도 전라도엔 감나무가 많듯 그런게 끼어야 정서가 살고 생활에 멋이 붙어요.
난 서양건축을 배웠지만 지역칼라도 정서도 없으면서 모던, 모던 하는 데 질렸습니다. 후기 모더니즘이 제창된 것도 옛 원칙의 소중함을 아주 잃어버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유럽 중세건축의 돔은 지금 용도가 없는 공간이긴 해도 돔을 만들어 넣는 현대 서양건축이 나옵니다. 우리도 계승할 건축적 자산이 많습니다. 난 그걸 열심히 연구합니다. 제가 설계한 건물엔 완자무늬, 격자무늬, 추녀, 기둥, 창문 같은 고건축에서 따온 것들이 들어갑니다. 한국은 아직도 근대건축이 기승부리는 국적없는 건축이고 건축의 식민지 같아요."
건축의 표절에 대해서도 그는 비판을 했다. 리틀엔젤스예술회관이 설계자인 그에게 의논도 없이 건물 왼쪽에 똑같은 쌍둥이 건물을 세웠다. 누가 했는지 알려고 들지도 않았다. 건축문화의 부재, 그저 '건축쟁이'가 지은 건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양심도 없는 거에요. 내 판권을 지키기 위해 고발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고발하면 벌금 물어야 할테니 그럼 또 불쌍해지니까. 하지만 이런 무지한 건축문화는 바뀌어야 해요. 그런 걸 생각하면 한국사회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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