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관은 남이 쓴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영광스러운 법이며 직접 써보면 그다지 즐겁지 않다. 신께서 내게 주신 책무를 이행하고 신의 영광을 드높이며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야 한다는 양심의 명령이 없었다면 나도 이 왕관을 누구에게든 주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백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날까지만 살아서 통치할 생각이다. 나보다 더 강하고 현명한 군주는 과거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백성을 사랑하는 군주는 이제까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녀가 이곳에 묻힌 다음 그녀의 무덤 앞을 지나쳤을 신하들은 후임인 제임스 1세와의 갈등을 겪느라 지쳐서 이런 말들을 남겼을 것이다. '다시 그녀와 알현실에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그녀의 이름이 내뿜은 광명은 절대 망각에 묻히지 않는다. 그녀가 남기고 간 행복의 기억이 모두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에'
'그녀가 남기고 간 행복의 기억이 모두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말만큼 죽은 왕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한 부분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어느 날 걸리버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누구든 맘에 드는 자를 불러서 하룻동안 시중을 들게 하거나 질문에 대답하게 할 수 있는 섬에 도착했는데 처음에 알렉산더 대왕을 부르자 그는 자신은 독살되지 않았고 다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열병으로 죽었다고 대답했다. 그 다음엔 걸리버는 시저와 부루투스를 불렀는데 그 둘은 놀랍게도 너무나 서로 잘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죽임을 당한 자와 죽인 자가 서로 연민으로 가득차 바라보는 장면은 애국심 ,굳건한 정신, 완전한 덕, 용맹의 표상으로 보였다. 시저는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의 모든 위대함도 결코 자신을 죽인 부루투스의 행위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걸리버는 이번엔 열 대여섯명의 영국 국왕들을 여덞이나 아홉 세대 이전의 조상들과 함께 불렀는데 결과는 비통했다. 왜냐하면 왕관을 쓴 행렬 대신에 깡패 두명, 아첨꾼 세명, 성직자 한명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걸리버는 너무 놀라서 차라리 영국의 중류층 농민이나 몇 명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단순한 예절과 음식, 공정한 거래, 진정한 자유정신, 나라를 위한 용기와 사랑은 그들에게서나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걸리버는 말했다.
그래도 지금 나란히 붙어있는 엘리자베스와 메리 스튜어트의 무덤을 보노라면 다른 무엇보다도 공간의 운명이란 걸 생각할 수밖에 없다. 왕들의 운명, 경쟁자의 운명, 동시대인의 운명,체스판 말의 운명, 바둑의 운명. 그리고 결국 우리의 운명은 거인들(가짜 거인 포함)의 어깨위에 서야 한다는 것.거인의 어깨 너머로 그 위에 올라타서 세계를 보는 것, 그것이 이 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어두운 황금빛 메시지일수도 있다
▲ 엘리자베스 1세. '그녀가 남기고 간 행복의 기억이 모두의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있다'는 말만큼 죽은 왕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는 말이 또 있을까? |
웨스트 민스터 사원은 많은 무덤들 때문에 상상의 보물 지도란 제목을 단 팝업북 같기도 하고 꺼내도 꺼내도 계속 나오는 러시아 인형 마뜨로쉬카 같기도 한데 특히 시인의 묘역은 그 하나하나가 왕조별, 역사별, 새로운, 별난, 진지한, 앞서간, 욕먹는 등 온갖 각도의 당대의 영웅 전설, 재야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보물 지도들이다.
시인의 묘역에 처음 묻힌 사람은 캔터베리 이야기의 <제프리 초서>이다. 그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두루 여행한 여행가이자 시인.급사이자 국왕의 친구,그런데도 귀족은 아닌 사람, 포도주 상인의 아들, 건설현장 감독이자 세관 감사관으로 살았다. 사는 동안 그는 에드워드 3세, 리처드 2세, 헨리 4세 등 세 명의 왕을 모셨고 시티와 왕궁 사이의 갈등을 목격했고 혁명적인 유랑 성직자 존 볼이 블랙히스에 모인 군중에게 '아담이 밭을 갈고 이브가 물레를 돌릴 적에 그때 누가 젠틀맨이었는가?'라고 급진적인 발언을 하는 것도 보았고 그때 농민 봉기군들이 당시 열네살이었던 소년왕을 믿었다가 결국은 두목격인 와트 타일러와 잭 스트로우가 잡히면서 진압되는 것도 보았다.그렇지만 그 질문. 누가 과연 태어날 때부터 젠틀맨이었는가는 영원토록 초서와 동시대 영국인들의 머리 속에 남아 빙빙 맴돌았을 것이다. 초서는 무너져 가는 자기 세계를 슬퍼할 줄도 알았고 그 세계를 자기 방식으로 즐길 줄도 알았다. 그의 저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무덤가에서 읽기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잠깐 속삭여 주고 싶다.
그런데 주님,! 이런 일을 떠올릴 때면
재미있게 놀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요
그 당시에도 내 마음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내가 마음대로 놀던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져요
하지만 세상에 나이 때문에 모든게 엉망이 돼버렸어요
나이를 먹자 아름다움과 생기를 잃어버리게 되었답니다
안녕! 아름다움과 생기는 악마와 함께 사라져버려라…
(초서의 배스 여인의 이야기)
아름다움과 생기는 악마와 함께 사라져 버려라라고 말하는 입술은 얼마나 빨갛게 마르지 않고 싱싱한가?
그 밖에 놓치지 말아야 할 무덤은 세익스피어(그의 비문은 템페스트의 위풍당당 왕이자 마법사인 프로스페로의 이야기이다),리빙스턴, 뉴턴 (그의 무덤 주위엔 영화 다빈치 코드에서처럼 행성이 돌고 있다.1680년 혜성의 경로가 표시된 천구,프리즘을 가지고 노는 천사 같은 소년, 태양과 행성의 무게를 다는 소년,인류를 빛낸 위대한 이가 여기에 존재했었다는 라틴어 비문), 다윈, 윌리스, 무명용사의 묘 등인데 영화 다빈치 코드 마지막 장면 때문인지 뉴턴의 무덤이 인기 1위의 무덤이다. 1727년에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던, 살아생전 행동반경 150마일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던, 책상에 앉아서 연필을 굴려서 조수간만의 시간을 맞췄던 천재 뉴턴에 관한한 내가 아는 제일 멋진 해석은 이렇다. 볼테르의 말이다
'우리에게 바다의 조석을 일으키는 것이 달의 압력이지만 영국인들에게는 중력 때문에 바다가 달을 향해 끌린다는 것이다 ..데카르트 학파에게 빛은 공기 중에 존재하지만 뉴턴 학파에게 빛은 태양으로부터 6분 30초 만에 오는 것이다'
나는 만유인력이란 말을 처음 들은 뒤로 언제나 '끌어당긴다'는 단어의 신비로움에서 헤어나지 못해온 듯 같다. 워즈워드의 말대로 그는 사상의 낯선 바다를 홀로 항해했다. 뉴턴은 자기 자신을 바닷가에서 생경하고 유달리 예쁜 조개껍질을 주워들고 유심히 바라보는 어느 날의 소년으로 표현했다. 뉴턴이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 있는 자기 방에 덧문을 닫아걸고 덧문에 지름 4분의 일인치의 둥근 구멍을 낸 다음에 구멍을 통해 가느다란 햇빛이 어두운 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다가 반대편 벽에 비치는 햇빛이 둥글지 않고 기다란 직사각형인 것에 놀라는 장면은 나에게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그는 태양빛은 각기 다른 굴절 각도와 다른 성향을 지닌 혼란스러운 광선들의 집합체라고 표현했는데 무한한 색채들이 무색의 빛 안에 내재되어 있다는 그의 설명은 묘하게도 나에게는 어떤 매너리즘도 거부하게 만드는 힘을 준다. 나는 가끔 속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리치는 상상을 한다. 저 안에 무한한 색채가 있다. 우리는 색채와 빛으로 둘러 싸여 있다. 나의 눈 역시 빛과 색채로 가득하기만을.
'신성함에 가까운 정신력과 독특한 수학 원리로 행성들의 항로와 혜성의 진로, 바다의 조수, 광선의 차이를 탐구해 과거 어느 학자도 상상하지 못했던 다채로운 자산을 이룩한 아이작 뉴턴 경 여기 누워 있도다'가 그의 비문인데 뉴턴과 찰스 다윈으로 이어지는 웨스트 민스터사원의 그 공간을 나는 인류 머리통의 장엄한 코너라 부르고 싶다. 팬스를 훌쩍 넘어가는 무거운 야구공의 spin을 보는 기분 같다고나 할까? (다윈이 국교회 사원 안에 안치되는 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는 좀 더 따져 볼 일이겠지만)
▲ 아이작 뉴턴의 무덤. 무덤 주위엔 행성이 돌고 있다 |
좀처럼 런던과 케임브리지를 떠나지 않았던 뉴턴과는 달리 칼라하리 사막을 넘은 최초의 백인, 은가미 호수를 본 최초의 백인, 아프리카 대륙을 횡단한 최초의 백인으로 추앙받는 이가 바로 뉴턴 앞바닥에 누워있다. 그는 미이라가 되어서 아프리카에서 실려 왔다. 선교사이자 최초의 국경없는 의사, 개인적인 NGO, 여행가, 탐험가 ,어느 정도 평화주의자, 더 많이 박애주의자, 황금으로 넘치는 엘도라도 말고 사랑으로 넘치는 문화적 엘도라도를 꿈꾼 철인,바로 리빙스턴이다.
나는 중앙아프리카, 배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강어귀에서 심각한 표정을 한 허름한 옷차림의 리빙스턴을 찾아내고 몇날 며칠 관찰했다. 그는 노예 무역에 관한 소문을 조사해보란 말을 하기도 하고, 빅토리아 시대 탐험의 성배라고 할 수 있는 나일강의 진짜 수원을 조사하러 나가기도 하고, 그저 할 일 없다는 듯이 정글 속을 터벅터벅 걷기도 하고, 어느 추장의 열병 걸린 갓난아이를 돌봐주기도 하고, 상심에 사로잡힌 열두살 미소년의 마음 속의 고통을 들여다보기도 하고,말라리아를 걱정하며 식이 요법을 개발하기도 하고, 진정한 복음은 백만번의 설교에 있는게 아니라 그들에게 단 한번만이라도 자유 무역의 길을 열어주는게 아닌가 생각하기도 하고,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 목화를 길러 보면 좋지 않을까 평원의 흙냄새를 코로 맡아보기도 하고 어느 날은 그저 깊은 정글의 바람 앞에서 셔츠를 열고 손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그리고 어느 날은 빅토리아 폭포라 명명하게 될 폭포를 발견하기도 한다. 강으로 곧바로 흘러가지 않고 계곡에 부딪힌 뒤 다시 하늘로 솟구쳐 물기둥이 되는 물줄기를 가진 폭포. 그 모습이 마치 연기 기둥 같아 보이는 폭포. 햇빛과 부딪힌 물방울들이 영원한 무지개를 만드는 폭포.
폭포를 발견한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부서지면서 같은 방향으로 떨어지는 물줄기의 눈같이 새하얀 얇은 면은 각각 그 거품의 핵에서..방출되는 마치 한 방향으로 떨어지는 무수한 작은 혜성들 같다.... 나는 그의 등 뒤에서 경외감에 사로잡힌 고귀하고 고독한 영혼인 리빙스턴에게 짐바브웨 말인 쇼나어로 부드럽게 속삭인다. '빅토리아 폭포의 현지어 이름은 '모시오아투나'예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영원히 솟아오르는 연기' 라는 뜻이에요. 낮엔 쌍무지개가 걸리고 보름달이 뜨는 밤엔 달무지개가 걸리는 폭포에요. 난 그이야기를 듣고 난 뒤 언제나 달무지개가 폭포에 걸려 오묘한 빛을 내는 태곳적 짐바브웨의 밤에 대한 꿈을 꾸기를 멈추질 않았어요.' 그리고 더 속삭인다. 당신은 어느 날 한 밤중에 뭐에 홀린 듯, 무슨 부름을 받은 듯 호수가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거예요. 먼 훗날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어스름 빛 아래 당신의 유언이 적힐 거예요. 당신은 이렇게 말할 거예요. '내가 쓸쓸이 덧붙일 수 있는 것은 세계의 이 오랜 폐단을 고치는 일에 이바지 할 ....모든 이에게 하늘의 귀한 은총이 내리길 비는 일이 전부다' 맞아요.당신은 쓸쓸히 죽어갈 거예요. 아프리카 사람들의 운명은 앞으로 오랫동안 더 한층 가혹해질거니까요. 하지만 슬퍼하지 마세요. 당신이 죽은 뒤에 몇가지 좋은 일이 일어난답니다. 옛 노예시장은 사라질 거예요 .노예들이 째찍질 당하던 바로 그곳에 어쩌면 대학 같은게 생길수도 있지요. 지금 이 호수 근처에는 당신의 이름을 딴 리빙스턴이란 도시가 생길거예요. 그 도시는 선교사들의 낙원이 될거예요. 그 도시엔 150개나 되는 교회가 생길 거예요. 말라리아는 퇴치될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심장은 바오밥나무와 방울뱀의 보호 아래 이곳 아프리카에 남게 될거예요. 당신의 몸은 아프리카의 햇볕에 말려진 뒤에야 런던으로 가게 될거예요. 하지만 어느날 당신을 찾아온 떠벌이 속물 헨리 모턴 스탠리를 탕가니아 호수 근처 우지지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를 후계자로 삼는 일만은 이 아프리카를 위해서 하지 말기를…
▲ 데이비드 리빙스턴.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서 그리스도 같은 자기희생으로 치자면 리빙스턴 같은 복음주의자 노인을 아무도 따를 순 없을 것이다. |
웨스트 민스터 사원은 박물관도, 아이콘 수집관도 아니고, 마담 투소 밀랍 인형관도 아니고 다름 아닌 교회이다. 내가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갔을 때 그 공간 어디쯤에서 열릴 작은 예배를 알리는 안내 벽보를 읽었던 걸 기억한다. 그것은 영국에서 붙잡힌 어느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것이었던 걸로 기억에 남는다. 앞으로 어쩌면 이런 것도 가능할지 모르겠다. 영국의 어느 감옥에 갇혀있는 탈북자 출신 불법 체류자를 위한 기도.
오래전 런던의 어느 들판에 모여서 국왕의 알현을 요청하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분노하고 지친, 굶주린, 안식처가 필요한 현대판 순례자들이 다시 이 건물 앞에 이르러 오래된 무덤이나 스테인드 글래스의 빛 같은 것에 기대지 않고도 당대 사람들의 현명함 때문에 생긴 희망의 빛을 퍼 올릴 수 있다면 영국 국교회의 본산인 웨스트 민스터 사원은 영원할 것이다.
뜰에 나오니 근처의 회사원이나 학생인듯한 도시락족들의 점심 식사가 한창이었다. 카레, 노랗게 샤프란에 물들인 쌀, 마카로니같은 다국적 음식들이 다국적 연인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모습은 이 도시가 이젠 이민자들의 도시가 되었다는 말을 실감나게 한다. 인도계 아가씨와 영국계 청년이 도시락을 나눠 먹고 아프리카계 총각이 아시아계 아가씨와 청경채를 나눠먹는 오후의 대기 속으로 아찔한 꽃냄새,나무 냄새, 겨드랑이 냄새,다양한 억양의 영어와 알 수 없는 나라의 언어들이 뒤섞여 들어가는 가운데 나는 그만 어질어질, 한군데에 통 집중을 못하는 눈동자를 가진 현대판 배신의 마돈나로 바뀌어 웨스트 민스터 사원의 경건함을 순식간에 잊어버렸다.
그래도 빅벤을 바라보다 웨스트 민스터 사원을 다시 보니 뾰족한 첨탑 위로 헨리 7세의 기도하는 검은 손이 자꾸 떠오른다. 그는 무슨 기도를 올렸을가? 저 안의 무덤의 주인공들은 무슨 기도를 올렸을까? 그 대답을 찾아가는 것은 낭만적인 전설속의 위태롭고 어두운 비밀을 헤쳐 가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조금은 알고 나왔다고 생각한 저 안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든 삶도, 사실은 저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의 삶만큼이나 여전히 비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햇살 아래서는 지금 막 새로 만들어진 웃음과 소곤거림, 횡단보도의 껌벅거림, 뛰려고 내미는 다리의 근육만이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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