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3일(현지시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등 5개 금융관련기관은 공동성명을 통해 "정부의 구제금융안은 은행이 민간의 손에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전제를 바탕으로 한다"면서 국유화에 대한 우려를 불식하려고 애를 썼다.
▲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 . ⓒ로이터=뉴시스 |
이날 뉴욕증시는 다우 지수가 11년전 수준인 7100선에 턱걸이할 정도로 폭락하는 등 국유화에 대한 우려가 확산됐다.
일찌감치 월가의 주요 은행들은 국유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해온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Banking on the Brink'라는 제목의 <뉴욕타임스> 칼럼(원문보기)을 통해 "오바마 행정부가 왜 국유화를 미적거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장기적인 국유화도 아닌 일시적 국유화는 현 상황에서 지극히 미국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이 글의 주요 내용이다.
시장자유를 강력히 옹호해온 앨런 그린스펀 전 FRB 의장조차 이렇게 말했다. "신속하고 차분한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일부 은행들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할 할 수 있다."
그 말에 나도 동의한다. 국유화가 불가피한 배경으로 3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일부 주요 은행들은 정부가 구제에 나서리라는 투자자의 기대가 없다면 벌써 파산했을 정도로 부실하다. 두번째, 은행들은 구제되어야만 한다.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은 전세계 금융시스템을 거의 붕괴시킬 정도로 타격을 주었다. 씨티그룹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같은 훨씬 더 큰 은행들을 파산하도록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다.
세번째, 은행들은 구제되어야 하지만, 미국 정부가 은행 주주들에게 막대한 선물을 준다는 것은 재정적, 정치적 여건상 불가능하다.
"씨티와 BoA, 신용 공급 기능 이미 상실"
씨티그룹과 BoA 두 은행이 향후 몇 년에 걸쳐 수백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할 것이라는 추정은 상당한 근거가 있다. 그들의 순자산은 이런 손실을 감당할 정도로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파산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정부가 뒤를 받쳐주면서 채무를 보증할 것을 암묵적으로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은행은 신용을 공급할 기능을 상실한 좀비은행들이다.
이들 은행이 좀비 상태를 탈피하려면 더 많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민간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추가로 끌어들일 수 없다. 따라서 정부가 필요한 자금을 공급해야만 한다.
문제는 이 은행들의 시장가치는 회생에 필요한 자금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씨티그룹과 BoA의 시가총액은 합쳐도 300억 달러가 못된다. 그나마도 정부가 주주들에게 지원금을 하사할 것이라는 기대에 크게 의존한 가치다.
정부가 가장 중요한 돈을 대고 있다면, 그 대가로 정부가 소유권을 가져야만 한다. 국유화가 미국적이지 않은 것인가? 아니다. 사과 파이처럼 미국적인 것이다. 최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1주에 2개꼴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고 있는 은행들을 접수해 왔다.
FDIC가 은행을 접수하면 부실자산을 처리하고 정상화시킨 뒤 민간 투자자에게 재매각한다. 일시적인 국유화 조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바로 그런 과정이다. 중소은행처럼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기는 마찬가지인 대형은행들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예비 민영화라고 할 일시적 국유화, 왜 꾸물거리나"
그런데도 왜 오바마 행정부는 국유화의 대안이라며, 은행 주주들에게 막대한 자금을 퍼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정책을 계속 꺼내고 있는지 정말 의문이다.
부실자산으로 초래되는 손실에 대해 정부가 보장한다는 초기의 정책은 주주들에게 좋은 일이지만, 납세자들의 부담을 늘리는 일이다.
이번에는 '민관 합동 기금'을 마련해 부실자산을 매입하겠다는 정책이 나왔다. 하지만 이 방식은 매입 가격보다 자산 가격이 상승하면 이득을 투자자들이 가져가고, 손실이 나면 정부가 떠안는 방식이다.
그냥 국유화하면 되는 것 아닌가? 좀비은행들을 껴안고 계속 갈수록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다.
정부가 국유화한다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유하겠다는 목표를 동반하는 것도 아니다. FDIC가 중소은행들을 처리하듯, 대형은행들도 가능한 한 빨리 민간으로 돌려질 것이다. 국유화라기보다는 '예비 민영화'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할 만한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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