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한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한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했나?

[정욱식의 '오, 평화'] 북한 성명을 복기해 보니…

북한의 소형 위성 발사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결의 채택 이후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은 3차 핵실험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보이고, 이에 대해 한·미·일 3국은 안보리 결의에 명시된 "중대한 조치"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안보리 결의 채택 이후 핵실험 준비와 함께 주목해야 할 대목은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의 종말을 공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1월 2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는 "우리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해진 조건에서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되기 전에는 조선반도 비핵화도 불가능하다는 최종 결론을 내리였다"며, "6자회담 9.19공동성명은 사멸되고 조선반도 비핵화는 종말을 고하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대화는 있어도 조선반도 비핵화를 론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라고 단언했다.

다음날 국방위원회도 이러한 입장을 거듭 확인하면서 "우리가 계속 발사하게 될 여러 가지 위성과 장거리 로케트도 우리가 진행할 높은 수준의 핵시험도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인 미국을 겨냥하게 된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며 위협성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2087호가 22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에서 안보리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AP=연합뉴스

그리고 25일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까지 나서 남한을 겨냥해 세 가지 입장을 밝혔다. 첫째는 "1992년에 채택된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완전 백지화, 전면 무효화를 선포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남조선괴뢰역적패당이 반공화국 적대 정책에 계속 매달리는 한 우리는 그 누구와도 절대로 상종하지 않을 것"이며, 셋째는 "남조선괴뢰역적패당이 유엔 '제재'에 직접적으로 가담하는 경우 강력한 물리적 대응조치가 취해지게 될 것"이라는 위협이다.

한반도 비핵화 물 건너갔나?

북한의 위협적인 언사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이번에는 몇 가지 점에서 예사롭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우선 하루 간격으로 '외무성-국방위-조평통'으로 이어진 릴레이 성명 자체가 이례적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북한의 불만과 분노를 보여주지만, 북한이 대외관계-국방정책-남북관계에서 대결적 자세를 강화하겠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내용도 심상치 않다. 우선 "조선반도 비핵화의 종말"을 선언했는데, 이는 적어도 언술 상으로는 김일성의 유훈이자 김정일도 약속한 기존 입장에서 단절을 의미한다. 김정일 시대에도 핵보유국으로서 지위를 노리는 발언은 즐겨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조선반도 비핵화"를 달성하는 수단으로서 화법에 머물러 있었다. 이에 반해 김정은 체제가 김정일의 대표적인 유훈으로 핵보유를 내세우고 개정 헌법에도 이를 명시한 데 이어 "조선반도 비핵화의 종말"을 선언하고 나섰다.

또한 "조선반도 비핵화"의 전제조건으로 "세계의 비핵화"를 내세운 것이나 "6자회담 9.19 공동성명의 사멸",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완전 백지화, 전면 무효화"를 선언한 것도 과거보다 훨씬 강도가 높아진 것이다.

그렇다면 협상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간 것일까? 북한의 초강경 입장은 안보리 결의에 대한 일시적인 반발일까, 아니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국가 전략적 선택일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대북정책은 어떻게 짜야 할까? 간단치 않은 문제들이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의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성명을 중심으로 과거 상황을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핵보유 선언에서 2차 북미관계 황금기까지

북한이 핵보유를 공식화한 시점은 2005년 2월 10일 외무성 성명이었다. 북한은 이 성명을 통해 2기 닻을 올린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특히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을 맹비난하면서 핵보유를 선언했다.

그리고 3월 31일에는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조선반도 비핵화에 관한 담화'를 발표했다. 요지는 "조선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남한에서 모든 미국 핵무기 철수 검증 ▲남한의 비핵화 검증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서 일체의 핵전쟁 연습 중지 ▲북한에 대한 미국의 핵위협 청산" 등이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당당한 핵무기 보유국이 된 지금에 와서 6자회담은 마땅히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으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명 자체는 강경하고도 까다로웠지만, 6개월 후에는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남한 내 미국 핵무기의 부재, 남한의 한반도 비핵화 약속 준수, 미국의 소극적 안전보장(핵무기 사용 및 사용 위협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 등 북한의 일부 요구가 포함되었지만, 북한이 주장한 핵군축 회담으로는 진행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경수로 문제에 대한 갈등과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인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북미 간의 대결은 또다시 첨예해졌다. 그 결과는 오늘날 익숙해진 패턴인 '북한의 로켓 발사→유엔 안보리의 대응→북한의 핵실험→유엔 안보리 결의 채택'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BDA 제재 등 부시의 대북 강경책이 바뀌지 않았다고 판단한 북한은 2006년 7월 4일 모두 7발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그러자 미국과 일본의 주도 아래 유엔 안보리는 대북 결의안 1695호를 통과시켜 북한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10월 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핵실험 계획을 발표했고, 6일 후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러면서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우리의 원칙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엔 안보리는 10월 14일 대북 규탄과 함께 강력한 제재 조항을 담은 결의안 1718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북한은 3일 후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이 결의안을 "단호히 규탄하며 전면 배격한다"고 선언하면서도 묘한 여운을 남겼다. "금후 미국의 동향을 주시할 것이며 그에 따라 해당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이라며 공을 미국으로 넘긴 것이다.

공을 넘겨받은 부시 행정부는 당시 사면초가에 몰려 있었다. 이라크 사태는 날로 악화되고 있었고 이란 역시 핵카드를 꺼내 들어 미국과 정면대결도 불사한다는 태세였다. 부시가 소속된 공화당은 11월 7일 중간선거에서 참패했고 그 책임을 지고 네오콘들이 대거 물러났다. 그리고 부시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극적으로 전환해 북한과 직접 대화에 착수했다. 예상치 못했던, 그러나 2000년에 이어 '2차 북미관계 황금기'로 불릴 만한 상황도 도래했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불렀던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도 하지 못했던 테러지원국 해제를 단행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위험한 패턴으로 후퇴

북미관계와 6자회담이 급진전되고 있던 2008년에 한국에선 이명박 정부가 등장했고, 뒤이어 2009년에는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했다. 이러한 한미 양국의 정권 교체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불안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수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위험한 패턴의 확대재생산'이었다.

북한 외무성은 2009년 4월 5일 발사한 광명성 2호에 대해 유엔 안보리가 의장성명을 채택해 비난하고 나서자, 잇달아 성명을 발표하면서 강경 입장을 분명히 했다. 4월 14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서는 "6자회담이 더는 필요 없게 되었다"며, "우리의 자위적 핵억제력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 북한이 지난 2009년 4월 29일 2차 핵실험을 예고하는 외무성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4월 29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두 가지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했다. 하나는 "자위적 조치들"로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시험"을 하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수로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그 첫 공정으로서 핵연료를 자체로 생산 보장하기 위한 기술 개발을 지체 없이 시작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빈말을 할 줄 모른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5월 23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의 2차 핵실험에 대응해 대북 결의안을 채택하자 북한 외무성도 6월 13일 성명을 발표해 두 가지 대응조치를 천명했다. 하나는 "새로 추출되는 플루토니움 전량을 무기화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핵연료 보장을 위한 우라니움 농축 기술 개발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어 시험단계에 들어섰다"며 우라늄 농축 작업 착수를 공식화한 것이다. 뒤이어 9월 3일에는 유엔 주재 북한 대표가 안보리 의장에게 서한을 보내 "폐연료봉의 재처리가 마감 단계에서 마무리되고 있으며 추출된 플루토니움이 무기화되고" 있고, "우라니움 농축 시험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결속단계에 들어섰다"고 밝혔다.

2009년에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착수와 플루토늄 재처리를 강조했다면, 2010년에는 새로운 에너지원 개발과 핵 억제력 강화를 강조하고 나섰다. 5월 12일자 북한의 <로동신문>은 "수많은 과학기술적 문제들을 100% 자체의 힘으로 해결함으로써 마침내 핵융합반응에 성공"했다며, "우리 식의 독특한 열핵반응장치가 설계·제작되고 핵융합반응과 관련한 기초연구가 끝났으며 열핵기술을 우리 힘으로 완성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과학기술 역량이 마련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냉전 시대 미국이 대북 핵공격을 계획했었다는 미국 비밀 해제 문서가 공개되자, 북한 외무성은 6월 28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역사적 사실은 핵에는 핵으로 대응하는 길밖에 없다는 우리의 결단이 천만번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며 미국의 적대시 정책에 대처해 "핵 억제력을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더욱 강화해나가야 할 필요성을 강조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7월 5일자 <로동신문> 역시 이러한 입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핵 억제력을 새롭게 발전된 방법으로 보다 튼튼히 해나갈 수 있는 응당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새로운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2010년 북한의 성명에서 특기할 만한 또 하나의 특징은 평화협정 논의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월 11일자 외무성 대변인 성명에서는 "평화체제를 론의하기 앞서 비핵화를 진척시키는 방식은 실패로 끝난 것"이라며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조미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조선반도 비핵화를 빠른 속도로 적극 추동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4월 21일 외무성 비망록을 비롯한 각종 성명을 통해 거듭 강조되었다. 동시에 북한은 6자회담을 조속히 재개하자는 입장도 개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천안함 침몰의 여파로 대화의 문은 굳게 잠기고 말았다.

최후통첩 암시한 2012년

2009~2010년 전면적 대결 상태와 2011년 교착 상태를 지나 2012년 한반도 정세는 북미 간의 2.29 합의가 나오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듯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낡은 패턴의 반복이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광명성 3호 발사를 강행했고, 유엔 안보리는 또다시 의장성명을 채택해 대북 규탄과 함께 추가적인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시 강력한 제재가 뒤따를 것임을 예고했다.

이에 북한은 4월 18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안보리 의장성명을 규탄·배격하는 한편, "자주적인 우주리용권리를 계속 행사"하고 "2.29 조미합의에 우리도 더 이상 구속되지 않을것"이라고 천명했다. 3차 핵실험을 경고한 대목으로 읽혔다. 그러나 곧바로 북한은 핵실험할 계획이 없다면서도 최후통첩성 발언을 내놓았다.

북한은 8월 31일 외무성 비망록을 통해 지난 60여 년간의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면서 핵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새로운 국방전략을 실현할 때까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은 무력 증강을 합리화할 구실로 써먹기 위하여 우리 공화국을 적으로 남겨두려 할 것"이고, "미국의 새 국방전략에는 유라시아의 큰 나라들에 대한 군사적 포위망을 조이기 위해 어느 한 순간에는 공화국을 무력 침공하여 전 조선반도를 타고 앉으려 하지 않으리라는 담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우리가 핵문제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게 된 동기이며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적인 메시지는 미국에 양자택일을 하라는 것이었다. 하나는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포기함으로써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에도 이바지하고 자국의 안전도 확보하는 길"이라며, "미국이 실지 행동으로 그러한 용단을 보여준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기꺼이 화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다른 하나의 길은 지금처럼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그에 대처하여 우리의 핵무기고가 계속 확대강화되는 것"이라며 "우리의 강경립장을 그 무슨 전술로 보는 것은 오산"이라고 경고했다. 끝으로 "미국이 끝내 옳은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 우리의 핵보유는 부득불 장기화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우리의 핵억제력은 미국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현대화되고 확장될 것"이라는 경고로 끝맺었다.

결국 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가 채택되자, 위에서 밝힌 최후통첩을 미국이 거부한 것으로 판단하고 대결적 자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로 결심한 것 같다. 동시에 '비핵화 회담은 No, 평화협정 논의는 Yes'라는 입장을 보이면서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일단 관심의 초점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여부 및 그 방법으로 모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전망·분석해보기로 한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 필자가 <프레시안>에 연재한 글을 엮어 만든 책 <핵의 세계사>가 발간되었습니다. ☞ 책 소개 바로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