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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큰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분석] 2006년 對헤즈볼라전쟁 패배를 만회할 수 있을까?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규모 군사작전이 29일로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27일 첫 공격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28일 이슬람 사원을 공격했고, 29일에는 하마스의 문화적 상징인 이슬람 대학을 폭격하며 이슬람권 전체의 분노를 자극했다.

이번 공격은 2006년 레바논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치욕의 패배를 당한 이스라엘이 오랫동안 단단히 벼른 끝에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며칠 동안의 폭격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당시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군사적 패배를 당한 것은 아니었고 헤즈볼라를 굴복시키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동안 건국 이후 이스라엘이 아랍권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 해온 전력에 비추어보면 사실상 정치적 패배라는 것이 일반적 평가였다.

그러나 객관적인 화력은 열세지만 정신력 면에서는 누구보다 강한 하마스도 결사항전에 나서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로서도 쉽지 않을 싸움이 될 것이란 뜻이고, 29일 현재 300명을 넘어선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보여 준다. 피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 28일 공격을 준비하는 이스라엘 병사 ⓒ로이터=뉴시스

쉽게 접을 싸움이 아닌 까닭

영국 <가디언>의 29일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위해 6개월 동안 철저히 준비했다. 하마스의 은신처, 무기 저장소, 훈련 캠프, 고위층 거주지 등에 관한 정보를 철저히 모아 하마스 관련 시설에 대한 정밀 폭격 계획을 반 년 동안 짰다는 것이다.

지난 19일에는 내각이 모여 5시간 동안의 마라톤회의를 하면서 세부적인 공격 전략을 논의했다. 이스라엘 언론들이 공격 준비를 눈치 채지 못하도록 허위정보와 역정보를 흘리는 주도면밀함도 보였다.

또한 공격 전날인 26일에는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가자지구의 봉쇄를 일부 완화함으로써 식료품과 연료, 구호품 등이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최종 공격 결정이 26일 아침에 내려졌다는 보도로 볼 때 팔레스타인의 경계심을 늦추기 위한 연막작전인 셈이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또 25일에는 치피 리브니 외무장관을 중재자인 이집트로 보내 협상의 여지가 있는 듯 기만전술을 펴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미 지난 11월 4일 미국 대선이 치러지던 날부터 가자지구의 비밀 땅굴을 폭격하면서 전초전을 치렀다. 일종의 '실전연습'을 한 것이다. 휴전협정을 무시한 당시 공격으로 6명의 하마스 대원이 사망했다. 이에 하마스는 로켓 공격으로 맞섰고, 이스라엘은 다시 12월 4일 가자지구 진입작전을 전개해 팔레스타인 측 무장대원 1명을 사살하며 하마스의 저항 능력을 시험했다.

떠나지 않는 2006년 전쟁 실패의 유령

이스라엘의 공세가 간단치 않을 것이라는 근거는 공격의 목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6년 헤즈볼라와의 전쟁에서 빈손으로 돌아서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했다는 평가를 받은 이스라엘이 정치·군사적 힘을 제고하기 위해 이번 공격을 준비했다고 분석했다.

헤즈볼라의 이스라엘 병사 납치를 명분으로 레바논 남부를 공격하며 시작한 2006년 전쟁은 헤즈볼라의 강력한 저항에 맞서 34일 만에 끝났다. 이후 이스라엘군은 건군 후 처음으로 전쟁에서 이기지 못했다는 멍에를 썼고, 반면 헤즈볼라는 아랍권의 칭송을 받으며 레바논 정국을 장악했다.

텔아비브 대학 국가안보연구소의 마크 헬러 연구위원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006년의 실패로 인해 이제 아무도 이스라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며 "중동에는 이제 이스라엘은 종이호랑이일 뿐이라는 자극적인 말들이 만연해 있다. 이번 작전은 이스라엘을 건드리면 엄청난(disproportionate) 대가를 치른다는 인식을 다시 심어주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익명의 이스라엘 고위 관리가 몇 주 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도 2006년 실패의 '망령'이 이번 공습에 짙게 드리워 있고, 공격은 그만큼 가혹할 것임을 보여 준다. 그는 "(2006년 당시) 우리는 충분히 단호하지 않았는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라며 "나는 (공격을 위해) 가자지구 상공을 수 천 번 날아다녔고, 반경 2m 내에 있는 목표물을 타격하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바라크가 떨어뜨리는 폭탄의 수는 노동당의 득표수

특히 이번 공격이 2월 10일 치러질 이스라엘 총선에서 집권당의 승리를 위해 단행된 것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인 가운데, 작전을 총지휘하는 국방장관의 정치적 동기가 그 누구보다 강하다는 점도 공격의 강도를 예상케 한다.

현재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은 집권연정에 참여하고 있는 노동당의 당수 에후드 바라크다. 노동당은 현재 여론조사에서 강경 보수 야당인 리쿠드당, 연정 파트너인 중도파 카디마당에 한참 밀린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하마스가 이스라엘군의 공세에 밀려 백기를 들고 이스라엘 남부 주민들이 더 이상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바라크 장관은 이스라엘이 필요로 하는 지도자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대로 바라크가 지휘하는 공격이 아랍권의 단결, 하마스의 위상 고취 등 재앙적인 결과만을 가져올 경우 그의 정치적 미래는 어두워질 것이다. 이처럼 '모 아니면 도'의 벼랑끝에 몰려 있는 국방장관이 떨어뜨리는 폭탄의 수가 총선 득표수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는 없게 된다.

▲ 공습을 당한 가자지구 ⓒ로이터=뉴시스
그러나 여전히 '도박'인 이유

이스라엘이 이처럼 제대로 마음을 먹고 시작한 공격이라면 결과는 뻔하지 않을까? 아니다. 1980년대 이후 중동에서 하마스, 헤즈볼라, 마흐디군 등 화력과 민심을 동시에 가진 세력이 부상한 뒤로 늘 그러했듯, 세계의 유수 언론들은 이러한 질문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 '큰 도박에 나선 이스라엘(Israel plays for high stakes in Gaza attack)'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이번 공격이 가자지구의 재장악이 아니라 하마스 로켓 공격의 저지라는 제한된 목적을 가졌다 하더라도 이스라엘에 하마스의 의지를 꺾을 능력과 의사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한때 바라크 장관의 보좌관이었던 요시 알퍼는 "하마스가 공격을 멈춰 달라고 애원할 정도로 망가질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하마스는 다른 이슬람 무장조직과 마찬가지로 순교를 찬양하고 있고, 그간 수많은 희생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사기가 꺾이지 않음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전투요원들은 가자지구 내 곳곳에 안전하게 은신해 있고, 이동과 설치가 간편한 로켓 발사대를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군사 시설 공격이 별 소용 없다는 것이다.

신문은 공습만으로는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라면서 지상 작전을 포함한 전면전밖에 방법이 없지만, 시가전을 하면 이스라엘의 희생자도 많아지고 국제사회의 비난도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디언>도 탱크와 보병을 이용한 공격은 하마스나 이슬라믹지하드 전투원들을 날랜 반격에 취약하다면서, 이스라엘 전문가들은 2006년 전쟁 실패 때문에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을 꺼려하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현재 이스라엘의 공격은 성공적으로 보인다면서도, 2006년 전쟁에서도 개전 초기에는 현재와 같은 만족감이 있었지만 결국은 재앙으로 끝났다고 꼬집었다.

"하마스를 '팔레스타인의 헤즈볼라'로 만들 것"

외신들의 전망대로 이스라엘의 공격이 별다른 소득을 내지 못할 경우는 다시 2006년 상황의 재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헤즈볼라가 그랬듯 하마스 역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장악하고 있는 파타를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히 잡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민족의 하마스보다 이스라엘과 더 친한 파타가 몰락하면 이스라엘이 맞닥뜨릴 도전은 엄청날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도 같은 전망을 내놓으면서 아랍권 외교관들과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행동이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고 전했다. 두바이에 있는 걸프연구소의 무스타파 알라니는 "하마스, 알카에다, 헤즈볼라에 들어가는 신입 요원들이 늘 것"이라고 했고, 아랍연맹 고위 외교관인 헤샴 유스프는 "강경파들, 불안정한 상황에서 득을 보는 이들에게 더 많은 무기가 제공되는 상황을 만들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가디언>은 하마스가 주민들에게 인기가 없다는 게 이스라엘의 전제지만, 공격의 희생자에는 민간인들도 끼어 들어갈 수밖에 없어 증오와 복수의 기운만 강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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